[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냉전 시대부터 이어진 러시아와 인도의 끈끈한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며 인도의 '러시아 편들기'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미국과 인도 관계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한편 인도는 노후화된 공군 전력 현대화라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인도의 외교적 줄타기는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과연 인도는 전통적인 우방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주요 전략적 파트너인 미국의 압력 속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러시아는 인도와 군사 기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DIU)에 따르면, 러시아와 인도는 2025년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군사기술 협력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회의에서 양국은 2025~2026년 양자 군사 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논의할 계획이다.
양국은 오랜 군사 협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도의 주력 전차는 T-72와 T-90이며, 전투기 역시 러시아 Su-30MKI를 라이선스 생산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와 인도는 PJ-10 브라모스 초음속 순항 미사일을 공동 생산하고 있다. 또한, 인도 군 현대화를 위해 AK-203 소총을 현지 생산하는 인도-러시아 합작 회사도 설립했다.
러시아는 이 외에도 최신 무기를 인도에 판매하려 애쓰고 있다. 특히 러시아 5세대 스텔스 전투기 Su-57을 인도에 판매하기 위해 현지 생산을 제안하고 있다. Su-57은 공대공, 공대지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전투기로, 뛰어난 기동성과 초음속 순항 능력을 자랑한다. 내부에 무기를 탑재해 스텔스 성능을 유지하는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인도 공군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모든 협력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S-400 방공 미사일 시스템의 인도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러시아는 S-400의 마지막 두 포대 인도를 2026~2027년으로 연기했다. 이 지연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시스템 손실과 방공망 재정비 때문으로 보인다.
인도 공군의 전력 감소 문제는 심각하다. 지난 10년간 전투기 수가 151대나 줄었다. 현재 인도 공군은 승인된 42개 비행대 중 31개만 운영하고 있다. 이는 11개 비행대, 즉 180~200대의 전투기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MiG-21 같은 구형 전투기들이 퇴역하면서 생긴 공백이다.
인도 공군은 이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MRFA(Multi-Role Fighter Aircraft) 프로그램을 재개하려 한다. 이 프로그램은 외국 전투기 114대를 구매해 인도에서 부분적으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5세대 전투기 2~3개 비행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Su-57은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 공군은 Su-57을 주요 경쟁자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협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또한, 미국 F-35 전투기 도입도 고려하고 있지만, 미국의 무역 관세 문제로 승인 가능성이 낮다.
인도 공군 전력 증강은 인도 안보와 직결된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어떤 기종을 선택할지는 단순한 무기 구매 이상의 복잡한 외교적 결정이 될 것이다.
인도와 미국 관계는 겉보기와 달리 순탄치 않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인도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8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인도의 숙적 파키스탄과는 19%의 낮은 관세로 무역 협정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인도 경제를 "죽었다"고 비난하며, 관세율을 50%까지 인상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의 표면적인 이유는 인도의 러시아 석유 수입과 군수품 판매 때문이다. 트럼프는 인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되는 러시아 무기와 부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동은 단순히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인도보다 더 많은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이고 있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무역 협정 협상 연장을 제안했다. 러시아 자체도 10%의 낮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인도를 특정적으로 겨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9년 텍사스에서 열린 '하우디 모디' 행사 등 끈끈한 개인적 친분을 과시했던 두 지도자 관계는 파키스탄과 휴전 중재에서 트럼프 역할을 인정하지 않은 모디의 태도에 금이 갔다. 노벨 평화상을 노리던 트럼프는 이에 불쾌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관세 폭탄은 인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인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관세는 인도 GDP 성장률을 1%포인트 둔화시킬 수 있다. 인도 정부는 무역 협상을 통해 이 위기를 해결하려 하지만, 국내 정치적 압박이 만만치 않다.
워싱턴이 요구하는 주요 조건 중 하나는 미국 농산물과 유제품 시장 개방이다. 그러나 인도 농업과 낙농업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다. 인도 인구 45%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모디 총리에게 중요한 지지층이다. 2020년에도 농업 관련 법안 통과를 시도했다가 농민들의 대규모 시위에 직면한 모디 정부는 결국 법안을 철회해야 했다. 또한, 힌두교 인구가 많은 인도에서 미국산 동물성 유제품 수입은 문화적 이유로도 거센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야당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디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야당 지도자 라훌 간디는 트럼프 관세를 "경제적 협박"이라고 비난하며, 정부가 "강압과 괴롭힘에 맞서 똑바로 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디 총리는 '자립적인 인도인'을 뜻하는 '아트마니르바르 바라트'를 외치며 미국 압력에 저항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인도 국민 땀으로 만들어진' 인도산 제품을 구매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2020년 중국과 국경 분쟁 이후 중국 제품 불매 운동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급증했던 전례를 볼 때, 이러한 선언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인도 외교 정책은 독립 이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가 주창한 '비동맹' 노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도는 미국과 소련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길을 걸었다. 약 8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기조는 여전하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일본, 호주와 비공식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 속해 있다.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가 포함된 브릭스(BRICS) 창립 회원국이기도 하다.
2008년 미국과 인도가 민간 원자력 에너지 협력을 위한 획기적인 협정을 체결한 이후, 미국은 인도를 중국에 대한 중요한 파트너로 여기며 관계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워싱턴 정책 입안자들은 인도의 보호주의와 같은 경제적 이견을 방위 협력과 정보 공유를 위한 관계 증진 걸림돌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러한 전통적인 외교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인도와 경제적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 압력을 가하면서, 인도가 러시아와 관계를 정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선임 연구원 애슐리 텔리스는 트럼프의 인도 전략이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국가가 궁극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게 될 대통령의 매우 값비싼 변덕 중 하나"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와 모디의 '브로맨스'는 이제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모디 총리는 트럼프 요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러시아, 중국과 관계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는 최근 모스크바에 국가안보보좌관을 파견했고, 9월 초에는 7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디는 지난 금요일 공개 행사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라며,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과연 인도는 이 위험한 외교적 줄타기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이는 인도 미래뿐만 아니라 국제 질서 향방에도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