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뉴스=최석윤 기자] 미국과 유럽, 우크라이나 3자가 우크라이나의 장기적 안보를 담보할 포괄적 합의안 도출에 근접했다. 15일(현지 시각) 외신 보도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에서 이틀간 이어진 고위급 회담 결과, 전쟁 종식을 위한 20개 항목의 초안 중 90% 이상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뤘다고 미 고위 당국자들이 밝혔다.
이번 합의안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배제하는 대신, 서방이 대규모 병력 유지와 즉각적인 군사 개입을 약속하는 '나토급' 안보 보장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통제 중인 도네츠크 일부 지역의 영토 포기 문제를 두고 우크라이나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최종 타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회담의 핵심 성과는 서방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의 미래 안보를 위해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군사적 지원을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회담에 참석한 유럽 정상들이 밝힌 초안 세부 사항에 따르면,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평시 약 80만 명 규모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필수적인 재정 및 군사 지원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유럽 내 단일 국가로는 최대 규모이자 가장 실전 경험이 풍부한 군대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프랑스와 영국을 주축으로 한 '유럽 주도 다국적 우크라이나군' 창설이 포함되었으며, 폴란드 등 인접국들의 참여도 논의되고 있다. 다만 이 다국적군이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직접 주둔할지 여부는 러시아와의 확전 가능성을 고려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미국의 역할은 지상군 파병을 제외한 공중 및 정보 자산 지원으로 한정됐다. 트럼프 측은 미군을 직접 전장에 투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대신, 비행금지구역 집행을 위한 공중 순찰, 정찰 위성 및 신호 정보 공유 등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미 관리들은 이번 안보 공약이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상원 비준을 거친 공식 조약 형태를 띠거나, 최소한 초당적 지지를 확보한 법적 구속력을 갖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가 러시아의 침공을 막지 못했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가 반영된 조치다.
협상의 최대 난관은 전선 획정 문제, 특히 도네츠크 지역의 경계 설정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솔직히 이견이 존재한다"고 시인하며,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사수하고 있는 도네츠크 영토를 러시아에 넘겨주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반면 트럼프와 회담에 참석한 재러드 쿠슈너 등 미국 측 인사들은 현실론을 앞세워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 관계자에 따르면 트럼프 측은 "전투가 지속될 경우 수개월 내에 해당 지역을 군사적으로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황 분석을 근거로, 현 단계에서 영토를 양보하고 확고한 안보 보장을 얻어내는 것이 실리적이라는 입장을 젤렌스키에게 전달했다.
이번 베를린 회담은 러시아가 배제된 채 진행되었으나, 최종 합의의 열쇠는 결국 푸틴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미 고위 관리들은 푸틴이 서방의 구체적인 안보 공약보다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에 더 큰 전략적 목표를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러시아는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지속하며 협상력을 높이려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과 유럽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의 생산 전력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50대 50으로 분배하는 중재안을 마련하는 등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유인할 수정 제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베를린에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주요 정상들이 집결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 연결을 통해 협상 상황을 공유받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미국이 제시한 28개 항목의 평화안을 우크라이나가 거부한 이후, 유럽 주도로 새롭게 판을 짠 이번 안보 보장안이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의 출구를 열 수 있을지, 아니면 영토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또다시 좌초될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