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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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AE

 

[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RTX가 현대전의 '눈'과 '심장'이라는 미시적 부품을 장악했다면, 그 모든 것을 담아내는 거대한 '그릇'이자 전장의 '지휘자'인 기업이 있다. 영국의 자존심, BAE 시스템즈(BAE Systems)다.


방산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낯선 이름일지 모른다. 체급은 압도적이다. 록히드 마틴, RTX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미국 이외 국가 중 유일하게 전 세계 방산 매출 '톱 5'를 위협하는 거인이다. 육·해·공은 물론이고 우주와 사이버 공간까지 이들의 로고가 박히지 않은 곳은 없다. 단순한 무기 제조사가 아니다. 안보의 '판'을 짠다.

"지는 해는 없다"… 조선소에서 IT 기업으로 변신

BAE 역사는 대영제국의 영광과 궤를 같이한다. 16세기부터 영국 해군을 지탱했던 조선소들이 이들의 뿌리다. 과거엔 무거운 철갑과 함포가 전부였다. 지금의 BAE는 완전히 다르다.


1999년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PLC(BAe)는 영국 제너럴 일렉트릭(GEC) 산하의 마르코니 일렉트로닉 시스템즈와 합병했다. 합병은 신의 한 수였다. 쇳덩이를 만드던 회사에 '전자 장비'라는 뇌를 심었다. 이제 이들은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직접 건조하면서 그 안에 들어가는 초정밀 전투 체계까지 직접 설계한다.


지난 7월 발표된 2025년 상반기 실적은 경이롭다. 매출은 146억 파운드(약 29조 2000억 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1% 급증한 수치다. 수주 잔고는 더 놀랍다. 무려 754억 파운드(약 150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역대 최고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적인 재무장 흐름 속에서 공장은 24시간 쉴 틈 없이 돌아간다. 거인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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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병사들이 방어 공격 훈련 중 브래들리 장갑차를 조작하고 있다. 사진=알리샤 그레즐릭 상병/미 육군

 

44% 매출이 미국 시장서 나오는 '펜타곤 파트너' 

BAE의 가장 무서운 점은 영국 기업이면서 미국 시장의 '안방마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매출 44%가 미국에서 나온다. 본진인 영국(27%)보다 높다. 펜타곤(미 국방부)은 이들을 외국 기업이 아닌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로 대우한다.


미국 육군의 주력인 '브래들리(Bradley)' 장갑차가 BAE 자회사인 BAE 시스템즈 Inc.(미국 법인)에서 나온다. F-35 전투기 개발에도 주요 파트너로 참여한다. 꼬리 날개와 전자전 시스템을 공급한다. 록히드 마틴 성공 뒤에는 항상 BAE의 조력이 있었다. 영국 국기를 달고 있지만 실상은 미군 전력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다국적 괴물이다.


동맹은 견고하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만 수만 명의 고용을 책임진다. 펜타곤이 예산을 짤 때 BAE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영국 기업이라는 꼬리표는 이미 의미가 없다. 미국 방산 생태계의 거대한 일부분으로 완전히 녹아들었다.

심해의 포식자, 오커스(AUKUS)의 주인공

최근 BAE가 가장 주목받는 곳은 바다 밑이다.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프로젝트의 핵심 플레이어로 낙점됐기 때문이다.


핵잠수함은 기술의 결정체다. BAE는 영국 차세대 핵잠수함인 '어스튜트급'을 건조해온 노하우를 가졌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가 갖게 될 사상 첫 핵잠수함(SSN-AUKUS)의 설계를 도맡았다. 바다 패권을 결정짓는 게임 체인저다. 수십 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다.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이 거대 사업은 BAE 시스템즈의 향후 50년 먹거리를 책임질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단순히 배를 파는 것이 아니다. 유지 보수와 교육, 시스템 업데이트까지 통제한다. 치밀한 전략이다. 한 번 맺은 계약은 반세기 동안 끊이지 않는 현금 흐름을 만든다. 이것이 플랫폼 기업만이 가질 수 있는 압도적인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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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대 스텔스 전투기 '템페스트(Tempest)'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 미래 하늘을 설계하다

하늘에서의 야심도 만만치 않다. F-35가 현재를 지배한다면 BAE는 미래를 본다. 바로 6세대 스텔스 전투기 '템페스트(Tempest)'다.


조종사는 이제 데이터와 싸운다. 템페스트는 단순한 비행기가 아니다. 인공지능(AI)이 조종사를 보조한다. 수십 대 무인 드론을 지휘하는 '하늘의 서버' 역할을 한다. 영국, 이탈리아, 일본이 손잡은 글로벌 전투 항공 프로그램(GCAP)의 중심에 BAE가 있다.


자존심을 건 승부다. 미국을 제외하고 독자적인 최첨단 전투기 생태계를 유지하겠다는 유럽의 마지막 의지다. 록히드 마틴 F-35에 주도권을 내줬던 유럽이 6세대에서는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선언이다. BAE 어깨에 유럽 방산의 운명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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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우드번(Charles Woodburn) CEO. 출처=BAE

 

찰스 우드번 CEO '기술 우선' 강조

현재 BAE 시스템즈를 이끄는 찰스 우드번(Charles Woodburn) CEO는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 리더다. 그는 취임 이후 "우리는 기술 기업이다"라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2024년 초 완료된 볼 에어로스페이스(Ball Aerospace) 인수는 그 정점이었다. 55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우주와 위성 분야의 눈(Sensors)을 확보하기 위한 과감한 베팅이었다. 이제 BAE는 지상과 해상을 넘어 우주 궤도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전장으로 쏘아 올린다.


우드번은 과거 군함·탱크 제조 공정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3D 프린팅으로 부품을 찍어낸다. 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 공간에서 무기를 미리 조립해본다. "실수 없는 생산"이 그의 철학이다. 미국 정부 셧다운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견고하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배짱은 두둑하다. 탄탄한 실적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K-방산,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라

한국 방산과 접점도 깊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시장에서 BAE의 지상 무기들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협업할 지점도 많다. 잠수함 기술이나 차세대 장갑차 분야에서 BAE는 한국 기업들에게 넘어야 할 벽이자 최고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길은 열려 있다. K-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이 거대 공룡들과의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BAE가 구축한 영미 동맹의 방산 생태계를 연구해야 한다. 때로는 경쟁자로, 때로는 파트너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을 준비해야 한다.


전쟁은 참혹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기술은 진보한다. BAE 시스템즈는 수백 년 전 범선을 만들던 망치 소리를 이제 AI 코딩 소리로 바꿨다. 록히드 마틴이 화려한 기동으로 적을 압도한다면 BAE는 거대한 체급과 치밀한 신경망으로 전장을 통제한다.


전 세계 바다 밑부터 우주 끝까지 영국의 이 조용한 공룡은 이미 미래 전쟁의 표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지배자'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방산 기업이다. 그것이 바로 BAE 시스템즈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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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방산기업④: BAE 시스템즈] 대영제국 '철갑'에 미래 '인공지능'을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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