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3 (금)
 


탈레스의 Reco NG(AREOS) 정찰 포드를 장착하고 비행 중인 라팔 전투기. 현재 비행 시험 중인 이 신형 포드는 2012년까지 공군과 해군 라팔 전투기에 도입될 예정이다. 사진= 다쏘..jpg
탈레스의 정찰 포드를 장착하고 비행 중인 라팔 전투기.사진= 다쏘.


 

[시큐리티팩트=최석윤 기자] 방위산업 세계에서 '프랑스'는 독보적이며 때로는 고집스러울 정도의 자존심을 상징한다. 그들은 미국의 강력한 동맹이지만, 결코 자국 운명을 미국 무기 체계에 온전히 맡기지 않는다. 샤를 드골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른바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의 정신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자존심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며 프랑스의 '홀로서기'를 가능케 하는 핵심 기둥이 바로 탈레스(Thales)다. 


다쏘(Dassault)가 전투기의 유려한 몸체를 만들고 네이벌 그룹(Naval Group)이 함정의 외형을 빚어낸다면, 탈레스는 그 모든 플랫폼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레이더, 소나, 전자전 시스템, 그리고 위성 통신에 이르기까지 탈레스가 없는 프랑스 방산은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팔 전세계 수출행진, 탈레스의 숨은 공헌

탈레스의 위상을 보여주는 지표는 어떤 화려한 수사보다 단호하다. 2025년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12% 성장한 약 105억 유로를 기록했다. 이를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17조 7500억 원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치다. 수주 잔고의 흐름은 더욱 위협적이다. 역대 최고치인 450억 유로(약 76조 원)에 육박하는 일감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라팔 전투기의 기록적인 수출 행진이 탈레스의 전자 장비 수주로 이어진 결과이며, 동시에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급증한 무기 수요가 실적을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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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스트릭(Starstreak) 미사일. 출처=영국 국방부

 

러-우크라 전쟁, 영국 공장 24시간 가동

탈레스는 단순히 '전자전의 브레인'에 머물지 않고 현대전의 최전선에서 파괴력을 실체화하고 있다. 특히 탈레스 영국 법인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무기 생산량을 이전보다 두 배로 늘렸으며, 다시 두 배의 추가 증산이 예고되어 있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와 크로스가 지역의 공장들은 현재 쉴 틈 없이 가동 중이다. 공장은 24시간 돌아간다. 이곳에서 설계되고 생산되는 스타스트릭(Starstreak) 미사일과 경량 다목적 미사일(LMM) 시스템, 그리고 사브(Saab)가 설계하고 탈레스가 조립하는 차세대 대전차 미사일(NLAW)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적의 기갑 부대와 항공 전력을 저지하는 핵심 억제력으로 활용되고 있다.


탈레스의 무기 체계는 이미 수십 년에 걸친 전쟁사에서 그 신뢰성을 입증해왔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부터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탈레스의 정밀 타격 기술은 전장 판도를 바꾸는 열쇠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기술이 전쟁뿐만 아니라 평화 상징인 올림픽 보안까지 책임진다는 것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상공을 지켰던 스타스트릭 미사일은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테러 위협으로부터 하늘을 방어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러한 실전 경험과 상징성은 탈레스가 전 세계 68개국에 사업장을 둔 글로벌 거인으로 성장한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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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쏘 라팔 전투기에 탑재된 탈레스 시스템

 

라팔 전투기의 눈과 보이지 않는 방패

프랑스 국방의 핵심 자산인 라팔 전투기가 세계 시장에서 미국의 F-35를 위협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의 절반은 탈레스가 주도해 개발한 전자전 체계 '스펙트라(SPECTRA)'가 있다. 이 시스템은 적의 레이더 신호를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분석하며, 이를 무력화하는 방해 전파를 쏘아 보내는 라팔의 '보이지 않는 방패'다. 덕분에 라팔은 별도의 전자전기 지원 없이도 적의 고도화된 방공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독보적인 생존성을 확보했다. 여기에 탈레스의 AESA 레이더 'RBE2'는 수십 개 목표물을 동시에 추적하며 정밀 타격을 지원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장비가 미국제 부품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ITAR-Free' 기술로 구현되었다는 점은, 미국의 수출 규제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제3국 국가들에게 탈레스를 매력적인 파트너로 만들고 있다.

 

 

탈레스의 음파탐지기 기술이 적용된 프랑스의 3세대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SSBN)..jpg
탈레스 음파탐지기 기술이 적용된 프랑스의 3세대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SSBN).

 

심해에서 우주까지, 지배할 수 없는 공간은 없다

탈레스의 영토는 심해와 우주 끝까지 뻗어 있다. 바다 밑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터에서 탈레스는 세계 최고의 소나(Sonar, 음파탐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영국과 호주, 인도 등 전 세계 50개국이 넘는 해군이 채택하고 있다. 바다는 깊고 냉혹하다. 우주 공간에서도 자회사인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를 통해 군사 통신 및 지구 관측 위성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2024년 말 쏘아 올린 차세대 군사 위성은 전 세계 어디서든 암호화된 실시간 전장 데이터를 제공하며 프랑스의 독립적 작전 수행 능력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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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 케인(Patrice Caine) 회장. 출처=탈레스

 

파트리스 케인 회장의 '디지털 퍼스트' 리더십

2014년 12월부터 탈레스를 이끌어온 파트리스 케인(Patrice Caine) 회장은 엔지니어 특유 정교함과 경영자의 과감함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다. 그는 취임 이후 탈레스를 단순 '하드웨어 제조사'에서 '딥테크(Deep Tech) 기업'으로 완벽히 탈바꿈시켰다. "데이터가 미래의 화약이다." 케인 회장의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2023년 말 완료된 사이버 보안 전문 기업 '임퍼바(Imperva)' 인수에 약 33억 유로(약 5조 5800억 원)를 쏟아부으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물리적인 미사일 방어만큼이나 '데이터 방어'가 중요하다는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이제 탈레스는 위성 보안, 금융 보안, 그리고 전장 네트워크 보안을 아우르는 글로벌 '디지털 요새'를 구축했다. 그는 또한 정치적으로도 매우 영민하다. "유럽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클라우드와 AI 생태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탈레스를 유럽 '주권 기술'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K-방산과 인연, 스승에서 라이벌로

한국 방산 역사에서 탈레스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과거 삼성그룹, 한화그룹과 합작사인 '삼성탈레스'와 '한화탈레스'를 통해 한국 방산 전자 및 레이더 기술의 기틀을 닦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인연은 깊고도 질기다. 이제 한국은 탈레스의 기술을 배우던 학생에서, 세계 시장을 놓고 다투는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했다. 특히 중동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한국형 AESA 레이더와 탈레스의 제품은 매번 피할 수 없는 수주전을 벌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협력의 여지가 크다고 분석한다. 위성 통신이나 차세대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탈레스의 원천 기술과 한국의 빠른 상용화 능력은 훌륭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경쟁할 땐 경쟁하되, 핵심 자산에서는 손을 잡는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길은 열려 있다.

 

 

차세대 대전차 미사일(NLAW). 출처=영국 국방부.jpg
탈레스의 차세대 대전차 미사일(NLAW). 출처=영국 국방부

 

'주권=독자적인 힘'을 파는 기업

탈레스가 시장에 내놓는 상품의 본질은 레이더나 위성 같은 개별 무기가 아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을 권리', 즉 국가의 주권을 판다. 전쟁은 비극적이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 독자적인 힘이 필요하다. 프랑스가 국제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전략을 관철할 수 있는 배경에는 탈레스가 구축한 정교한 전자적 방패와 위성의 눈, 그리고 최전선에서 신뢰받는 미사일 전력이 존재한다.


기술이 곧 주권이다. 탈레스의 신념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그들의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파 신호와 미사일의 궤적은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유럽이 나아가야 할 독립적 미래의 이정표다. 2026년 현재, 미래의 전장은 이제 탈레스가 설계한 디지털 그리드 위에서 소리 없이 재편되고 있으며, 이 거대한 공룡은 이미 미래 전쟁의 표준을 자신의 언어로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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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방산기업⑧: 탈레스] 보이지 않는 전장의 설계자, 프랑스 방산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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