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7(토)

외교안보정책
Home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실시간 해외안보 기사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⑭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교훈(하)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셋째, 새로운 방식의 다영역작전과 하이브리드전이다. 이제 현대전과 미래전은 지상, 해상, 공중영역을 넘어 사이버영역과 우주영역을 포함하는 다영역작전(MDO: Multi-Domain Operations)과 하이브리드전(Hybrid Warfare)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특히 하이브리드전은 원래 러시아가 종주국으로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름반도 합병 때 위력을 발휘했다. 하이브리드전은 정규전과 여론전, 심리전, 사이버전, 외교전 등을 혼합하여 수행하는 복합전을 말하는데 러시아의 하이브리드전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학습을 하였고 우크라이나군은 자기화하여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하이브리드전을 수행하여 큰 성과를 보고 있다. 넷째, 신무기체계와 전투에 활용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지속되자 3개월째가 되면 전투수행 무기 및 장비, 물자가 고갈되어 전쟁 지속능력을 상실하였다. 그러자 제렌스키 대통령 및 장관들이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며 30개국 이상의 국가들이 무기 및 전투장비, 물자를 지원하게 되었다. 지원된 장비로 터키제 바이락타르 무인기, 서방국가들이 재블린 대전차 화기, 스팅어 휴대용 대공화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등을 지원하여 적을 찾는데 드론을 활용하고 이를 장거리 정밀타격 포병과 통합하여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에게 정밀 타격을 가하여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 드론 등과 같은 무인기와 재래식 포병 전력과의 통합으로 전투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다섯째, 교육훈련과 보급, 국제사회의 지원이다. 전투에서 효과적인 전투발휘를 위해서는 교육훈련이 중요하다. 2014년 크름반도 합병이후 우크라이군은 미군, 영국군으로부터 훈련과 장비를 다루는 교육훈련을 받았으며 연합훈련도 하였다. 전쟁이 발발하고 우크라이나군은 국제사회가 지원하는 무기체계, 전투장비, 물자 등을 잘 활용할 수 있었고, 국제사회의 지원은 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속능력을 강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유사시 한국군도 초기 전쟁 후에는 정밀 탄약 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유사시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2022-10-21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⑬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교훈(상)
    [시큐리티팩트=송재익 국가전략연구소 전문요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진행 중으로 전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전쟁 당사자가 아닌 국가와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고 조심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전쟁에 대해 쉽게 그리고 안일하게 한다는 것이 생사를 넘나드는 당사국 국민들에게 죄를 짓는 행위임을 인식하여 승패의 전망보다는 전쟁, 군사작전에 대하여 객관적인 군사작전 상황, 사실에 입각하여 전쟁 교훈과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개략적이나마 제시하고자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교훈 첫째, 국가 총력전에서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이 핵심 요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침공에 의해 발발하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제렌스키 대통령이 해외로 도망갔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그러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가용한 SNS 등을 통하여 키이우 수도에 있으며 끝까지 항전하며 러시아와 싸우겠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발표하였다. 이런 모습을 젤렌스키 대통령이 보이자 키이우 시장 등 지자체장들도 전투복을 착용하고 기관총을 잡고 전투의지를 보여주며 항전의지를 보여주었다. 정치지도자들이 항전의지를 보여주자 국민들도 각자 위치에서 자기지역을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며 정부, 군 및 국민 등 삼위일체의 국가 총력전을 수행할 수 있었고, 우크라이나가 항전의지를 보이고 버텨내자 국제사회도 전투병력은 지원 못하지만 무기와 장비, 물자, 전쟁기금 등을 지원할 수 있었다. 둘째, 동맹의 중요성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이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고 하는 것도 중요 원인이다.그러나 만일 우크라이나가 NATO 또는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러시아도 쉽게 전쟁, 군사작전을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6.25전쟁도 태평양전쟁시 연합군으로 한국을 지원하였던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었다면 북한의 남침은 어려웠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한국처럼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나라는 주위의 강대국에 의해 침략을 당할 수 있다. 따라서 동맹관계는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중요 요소인 것이다.(다음편 계속)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2022-10-18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⑫우크라이나 전쟁 2단계작전
    [시큐리티팩트=송재익 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러시아는 1단계 작전을 종료하고 약 20일 간에 걸쳐 부대 재배치와 정비 활동을 하며 별다른 공세 행동을 하지 않다가 4월 19일부터 공세를 재개하였다. 키이우 방향에 투입했던 부대들을 재배치하여 하르키우 방향으로 공세를 재개했다. 그리고 2단계 작전에서는 돈바스 지역에 집중 공격을 하였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군(아조우부대 등)이 약 8년 간 요새화하여 벙커 및 지하시설이 발달하여 공격이 어려운 지역이다. 러시아는 2단계 작전에서 전술을 수정했다. 전술을 수정한 이유는 첫째는 민간인 요소이다. 러시아는 전반적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작전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부분 국민이 항전 의식으로 뭉쳐 러시아군에게 항거했다. 게다가 돈바스 지역의 우크라이나 아조우연대는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사용함으로써 작전에 차질을 빚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협력하여 인도적 통로를 통해 주민들을 호송시키고 나서 그 이후에 작전을 실시하려고 하였으나 통로 설치와 관련한 합의가 미흡하고 준수하지 않아 원활한 작전을 수행하지 못했다.따라서 2단계 작전부터는 작전지역 내의 민간인을 먼저 호송시키는 동시에점령지역의 주민에 대해서도 회유와 민사작전을 강화하여 시행하였다. 둘째는 특수 군사작전 수행으로 러시아의 정규 군사작전 교리에 의한 군사력 운용을 하지 못해 제병종 합동작전을 시행하지 않아 작전에 차질을 빚는 결과를 초래했다.이에 따라 2단계 작전에서는 피해를 방지하고 우크라이나 유생역량을 말살하기 위해 소모전 전략에 의거 군사력 운용은 항공기 및 포병으로 적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후에 기동부대가 전진하는 군사작전으로 시행하였다. 이러한 작전개념에 따라 러시아군은 작전 템포는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점령지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2단계 작전 결과 마리우폴, 세베로도네츠크, 리시찬스크에 대한완전 해방을 할 수 있었고, 이 세 도시는 우크라이나의 아조우부대가 공장지대에서 저항을 강력히 하여 점령하는데 2-3개월이 소비되었다. 특히 러시아는 점령지역에 대한 민사작전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점령지역에 임시 난민수용소를 운용하여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였으며, 헤르손 지역에서는 희망자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하여 러시아로 이동을 제공하고 러시아 내에 난민 수용소를 9,500개를 운용하여 난민들에게 숙소 및 일자리 제공, 어린이 취학 등을 제공하여 주민들의 민심을 사는 노력을 병행하였다. 2단계 작전 기간인 6월 초순에 우크라이나군은 무기와 장비, 물자가 모두 소진되거나 파괴되어 전적으로 외국의 무기 지원에 의존하게 되었다. 7월 말까지 러시아군은 소모전 전략으로 포위전술을 구사하며 자국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화력전으로 우세를 달성하였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대량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무기, 탄약 및 유류 등 물자부족으로 효과적인 방어에 제한이 되는 상황이었다. 8월 이후 전쟁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공격이 공중폭격과 미사일 공격의 위주로 군사작전이 진행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공격을 하며 러시아군의 점령지를 탈환하고 일부 러시아 점령지에 대해서는 장거리 정밀사격으로 타격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장거리 정밀 타격전 양상을 보이면서 게릴라전을 병행하며 우크라이나가 일부 지역에서는 우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외국과의 화상 인터뷰 및 외교전을 펼치며 전투무기, 장비 및 물자를 지원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며 장차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및 서방국가들로부터 무기 지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편 계속)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2022-10-15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⑪우크라이나 전쟁 1단계작전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 송재익 정치학 박사]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벨라루스 지역에서 2월10일부터 20일까지 연합훈련인 ‘동맹 결단-2022’를 실시하고 훈련했던 부대들은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벨라루스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전면전 공격을 앞두고 부대전개와 기만의 효과를 보기 위한 연합훈련이었다. 4일 후 푸틴 대통령은 의회의 군사작전 승인 후 대국민 연설을 통해 ‘특수 군사작전’을 수행하기로 밝히며 04:50경 군사작전을 감행하였다. 예상했던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격작전이 아닌 우크라이나 영토의 북부, 동부, 남부에 전력을 투입하며 공격을 개시하였다. 러시아군의 명시된 작전목표는 돈바스의 해방이었다. 이를 위해 정밀무기로 우크라이나 군사시설, 무기 및 장비, 탄약 및 물자 기지를 선택적으로 파괴했으며, 우선적으로 민간인 피해 방지였다. 러시아는 돈바스 주민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위해 공격지역을 검토한 결과 돈바스 지역만 공격할 경우 다른 지역의 지원 병력이 지속해서 돈바스 지역으로 유입될 것을 고려하여 전 지역의 비군사화를 계획하여 실행에 옮겼다. 기동부대 운용은 초기의 계획대로 북부 지역에 동부군관구와 중부군관구가 고착견제하고, 북동쪽에서는 서부군관구의 일부 부대를 투입시켰다.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에는 각각 지역 인민경찰대가 군단급 편성으로 공격을 시도하였고 러시아군이 지원하는 운용개념이었다. 그리고 크름반도 북쪽의 헤르손과 니콜라예프, 남동부 해안의 마리우폴은 러시아 남부군관구 예하 부대가 공격작전을 실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브리핑에서 1단계 작전의 기본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평가했다. 1개월간의 군사작전 결과는 작전목표별로 다음과 같다. 첫째, 돈바스 지역 해방 목표는 이전의 37%에서 74%로 점령지역을 확대했다. 러시아는 1단계 작전을 통해 대부분의 돈바스 지역을 장악하고 남부의 크름반도와 돈바스를 연결하는 육상 벨트를 점유하며 흑해 및 아조프해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우크라이나 비군사화를 위해 러시아는 3월 28일 기준 미사일 1,300여발(킨잘, 칼리브르, 이스칸데르, 오닉스 등)을 발사하여 우크라이나의 주요 시설을 타격했으며, 공군기지 16개소, 무기고 39개소를 파괴하여 무기 및 탄약, 유류 등 전쟁물자 보유량의 70%를 무력화했다.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해군은 무력화 됐고, 공군도 임무수행 불가 상태에 있다고 하였다. 우크라이나의 보급기지, 무기고, 공군기지, 방위산업시설, 정비공장 등이 거의 무력화되었다고 하였다. 셋째, 탈나치화는 극우 나치주의자인 아조우부대 등을 포함한 5만 9,300여 명 중에서 사망 7,000명을 포함하여 1만 6,000명을 격멸했다고 발표했다. 1단계 작전간 러시아군 피해는 사망 1,351명, 부상자 3,825명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발표는 러시아군의 피해가 2만 명으로 미 정부기관은 약 1만 명으로 평가하였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대국 피해 현황 발표는 진행 중인 전쟁으로 사기를 고려하여 과장되어 발표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다음편 계속)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2022-10-12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⑩우크라이나 전쟁 원인
    [시큐리티팩트=송재익 국가전략연구소 전문요원]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을 네 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돈바스 지역에서의 충돌이다. 2014년 크름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자 미국 및 서방세계는 대러 경제제재를 8년째 하고 있다.돈바스 친러 주민들은 2014년 크름반도가 러시아로 편입하는 것을 보면서 크름공화국과 같은 길을 가고자 하였다. 루한스크 자치공화국과 도네츠크 자치공화국은 크름공화국을 따라 독립선언을 한 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무력투쟁을 지속하다가 휴전협정을 맺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강경진압에 따라 무력투쟁은 지속되었다. 유럽연합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민스크 협정’을 체결하여 정전 상태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우크라이나측은 적극적으로 준수하지 않아 친러 주민들이 많이 희생되었는데 러시아 측은 이를 ‘신나치주의자들의 인종학살’로 규정하면서 비판하였다. 따라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특수 군사작전을 수행하며 돈바스 지역의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목표를 발표하고 군사작전을 시작하였다. 둘째, NATO의 동진과 러시아의 위협인식이다. 소련 붕괴 후 NATO는 동유럽으로 가입 국가들을 확장하여 갔다. 1999년 NATO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를 가입시켰으며, 2004년에는 발트 3국,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 7개국이 추가로 가입하였다. 그리고 독립국가연합(CIS) 중에 조지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타에 ‘색깔 혁명’이 일어났는데 러시아는 미국 및 NATO의 공작으로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봤다. 따라서 러시아는 CIS 국가에서 반러시아 동향이 발생하는 것은 러시아의 CIS 통합 노력에 절대적 위해 요소로 인식하였다. 셋째,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추진이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이후 친러정권과 친서방정권이 교대로 들어서게 되는데, 친러 정권이 들어서면 유럽연합 및 NATO 가입을 추진하였다.특히 제렌스키 대통령이 2019년 5월20일 취임하고 NATO 가입을 재추진하자 러시아는 이것을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레드 라인을 정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전쟁의 중요한 핵심요소로 작용하였다. 넷째,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자신감이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면서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1999년 체첸전쟁,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름반도 합병을 성사시키면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돈바스 지역으로 한정할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그 예상을 깨고 전면적으로 침공을 개시하게 된 것은 계속된 성공에 취해 판단을 잘못하고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복속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6개월째 들어 장기전화되고 있는 상황이다.(다음편 계속)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 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2022-10-09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⑨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배경(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치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속국으로 생각하며 독립을 방해하고 탄압하였으며 체르노빌 원전 사고시에는 숨김으로써 우크라이나인들로부터 반감과 저항, 독립의지는 계속 싹트고 있었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으로 분석하면, 우크라이나는 현재 푸틴이 추구하는 유라시아 건설과 유럽 서방국가의 관계에서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동부 유럽의 북부는 폴란드와 벨로루시가 있으며, 남부에는 우크라이나가 위치하고 있다. 남부지역은 카르파티아 산맥을 지나면 동부의 우크라이나는 평야지대로 남쪽에서 모스크바를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남부에 크림반도가 있어 흑해로 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유럽의 서방국가들 간의 지역 선점을 위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있다. 셋째,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는 유럽, 아니 전 세계의 곡창지대이다. 영토가 약 60만㎢로 프랑스보다 크며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럽국가 중에 제일 큰 영토를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땅은 흑색을 띄고 있다. 검은 색 땅을 초르잼(흑토)이라고 부르는데 밀, 옥수수, 콩 등 농작물이 자라는데 많은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어 비료 없이 농작물들이 잘 자란다. 우크라이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러시아와 밀, 옥수수, 콩 농작물의 4대 수출국의 하나이다. 특히 밀과 옥수수의 수출이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에서 막히자 국제사회 밀과 옥수수 값이 상승하기도 하였다. 또한 청광석 및 석탄, 니켈 등 광물자원의 보고 국가이다.(다음편 계속)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2022-10-06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⑧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배경(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크라이나 전쟁 배경을 우크라이나 역사와 정치, 지정학, 경제적 관점으로 분석해보면, 첫째,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30년 전쟁 후 맺어진 베스트팔렌 조약 당시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공국에 속해 있었다. 당시 폴란드 통치 하에서 코사크 봉기가 일어나고 카자크 수장국(Hetmandate, 군사국가)이 1648~57년 수립되며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는 현대 독립국가가 형성되는 선구로 인식하고 있다. 안드루소보 휴전협정(1667년)으로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동부 일부를 모스크바 공국에 넘겨준다. 이후 러시아와 폴란드는 평화조약을 맺고 카자크 수장국은 분할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코사크 족은 친폴란드, 친러시아, 친오스만파로 분리되는데 현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시기를 ‘암흑의 시대’로 부른다. 이후 러시아제국은 동부 카자크 수장국을 없애고 영토를 완전히 합병하고 폴란드에 넘어가 있던 서부 우크라이나도 흡수하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는 독립선언을 하였지만 1921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점령하며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우크라이나는 나치독일과 싸우다가 많은 희생을 치렀으며, 나치가 물러가고 나서는 소련에 의해 나치 독일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타타르계 우크라이나인들이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로 추방되었다. 1953년 스탈린이 죽고 흐루시쵸프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자치공화국으로 이양하였으며 계속하여 1960년대 소련 폭압에 대한 무력저항이 일어났으나 소련군의 강제진압으로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1972년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시 소련은 사실을 숨기어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희생되었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는 1991년 우크라이나는 독립되었다.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 소통시대
    • 종합
    2022-10-05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⑦루덴도르프의 군대병영과 같은 북한의 총력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북한의 위협을 분석함에 있어서 아군에 대하여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적의 능력과 기도로서 적의 군사사상, 군사전략,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전술 및 군사력을 의미한다. 현재 북한군이 미래전에서 적용할 것으로 예상하는 군사전략으로 기습공격, 속전속결의 단기전,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배합하는 배합전, 그리고 총력전 등이 있다. 북한이 구사할 것으로 예상하는 총력전은 북한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각 분야의 총체적인 힘을 전쟁에 투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적은 장차전에서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력을 포함한 모든 역량을 투입함은 물론 외교전, 심리전, 선전전 등을 통해 군사작전을 지원할 것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루덴도르프가 총력전에서 나라 전체의 남녀노소 모두가 각기 자기 직책에서 군복무를 하는 하나의 거대한 군대병영과 같은 국가조직을 제시하였는데 루덴도르프가 제시한 국가체제가 현재의 북한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초기 독일제국이 군사작전에 효율성을 발휘하며 전쟁, 군사작전을 연합군에 대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루덴도르프의 군대병영과 같은 총력전으로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총력전 군사전략은 초전에 성과달성 시 한국군에 치명적인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2022-10-04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⑥충무계획에 의한 한국의 총력전
    [시큐리티팩트=송재익 국가전략연구소 전문요원] 전편에서 총력전에 대한 설명을 정리하면, 전쟁은 국가 수준의 큰 일이며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안위가 걸린 중차대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1835년의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연속으로 하나의 수단으로서 폭력행위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전쟁의 3중성을 고려하여 정부, 군대, 국민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며 전쟁을 수행하는 최고사령관은 나폴레옹과 같은 군사적 천재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루덴도르프는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방해하는 집단이 정부, 정당, 협회, 기업가, 신문사들이라며 이들을 강력하게 전시에 통제할 군사독재자가 필요하며 정부, 군대, 국민들까지 거대한 군대병영과 같은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총력전 대표적인 사례로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전의 총력전은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 침공에 의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보면 현대 총력전을 이해할 수 있겠다. 분명히 루덴도르프의 총력전은 로마시대의 전시 독재관으로 로마시대에도 공화제냐 아니면 황제 체제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그리고 현대 국가 총력전을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루덴도르프의 총력전이 아니라 클라우제비츠의 총력전 개념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루덴도르프의 총력전은 효율성만을 강조하면서 현대 민주주의체제에서는 맞지 않는다. 그가 주장한 총력전은 나치와 같은 전제주의, 군국주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19세기에 철도와 전신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듯이 21세기는 육지뿐만 아니라 해상 및 수중, 공중 및 우주에서의 이동수단의 발전, 인터넷의 발달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현대 및 미래의 총력전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추가되어 정부, 군대, 국민과 국제사회의 지원(무기 등 장비 및 물자, 자금, 국제의용군, 우주인터넷, 민간 상용이미지 등)을 포함한 총력전이 될 것이다. 현대 총력전은 국가 총력전을 의미하며 한국의 총력전은 충무계획에 의하여 국가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 심리 등 각 분야의 힘을 전체적으로 종합해서 전쟁목적에 투입하는 것이 요구되어 군인뿐만 아니라 정부, 국민까지 전 구성요원, 기관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시 및 비상사태에 국가가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평시에 준비하는 범국가적인 비상대비 계획이 충무계획이다.충무계획은 국가비상시 군사작전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전시 정부기능을 유지하며, 국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가기반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 대비 계획이다.(다음편 계속)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2022-09-29
  • [총력전의 진면목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⑤서양 루덴도르프의 총력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총력전이란 용어는 처음 사용한 사람은 1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의 동부전선 참모장이었던 루덴도르프(Erich Ludendorff) 장군이다. 그는 '총력전(Der Totale Kriege, Total War'(1935)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요약하고 과거의 자신의 실수를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 내용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라고 정의하였는데 루덴도르프는 이것을 부정하고 싶어 하였다. 총력전이라는 책에서 루덴도르프는 독일의 자원들이 모두 전쟁 노력에 투입되지 못하도록 방지하였고 그를 방해한 국민과 조직들에 관한 불평이 자세하게 퍼지도록 만들었다고 불평하였다. 그가 비난한 사람들 중에는 독일제국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나라들이 들어 있었다. 정당들과 무역협회, 기업가들, 신문사들 그리고 수상인 자신까지도 끼어 있었다. 그들 모두는 국가의 이익 앞에서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해서 고려하며 그가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고 하였다. 이 총력전은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청사진이었다. 유사한 상황이 재방되지 않도록 예방하면서 최대의 효과를 올 릴 수 있도록 저자는 정부, 군대 그리고 국민 사이의 보편적인 구별을 철폐하도록 요구하였다. 제복을 입었건 입지 아니하였건 나라 전체는 남녀노소 모두가 각기 자기 직책에서 군복무를 하는 하나의 거대한 군대병영과 같은 것이 되는 내용이다. 이 기구의 최고기관에는 군사 독재자가 한 사람 존재하게 되어 있다.전시의 최고 사령관은 전쟁수행 노력에 방해가 된다고 자신이 판단하는 국가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죽일 수 있는 사법권을 초월하는 권력을 포함해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마틴 반 클레벨트는 아마도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은 이러한 종류의 조직이 전시에만오로지 국한되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이다. 현대의 무력충돌은 이러한 규모로 수행되고 그만큼 장기간의 준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유한 해결방책은 독재정권을 영구화하는 것이다.루덴도르프의 생각은 극단적인 것으로서 독일 군국주의의 극치를 대표하였다. 루덴도르프의 사상은 광범위한 서방측의 사상학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금세기 초에 시작하여 인간의 성취로서 효율성을 보게 되어 사회구조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형성되도록 어려 방법들을 추구하였다. 루덴도르프의 견해가 공포의 현실로 변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다음편 계속)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 외교안보정책
    • 해외안보
    2022-09-27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