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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천 홍범도 장군의 생애와 무장항일 독립운동정신
    “홍대장이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 군대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왜적군대가 막 쓰러진다” (날으는 홍범도가“ 1절) (안보팩트=홍성덕 선임기자) 여천 홍범도는 어떤 분인가? 97년 전 일본정규군과 이뤄진 봉오동 대첩에서 홍범도장군 주도로 승전했을 뿐만 아니라, 청산리 대첩도 김좌진 장군과 함께 대승을 했으나 이 역시 주역은 홍범도장군이었다고 늦게나마 학자들이 밝히고 있다. 여천은 한마디로 부모의 덕도 나라의 덕도 전혀 보지 못했으면서 부인과 두 아들까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바친 애국자이고 독립운동가이며 신출귀몰한 게릴라전의 영웅이다. 여천은 1868년 8월 27일 평양에서 남양홍씨 홍윤식(洪允植)의 아들로 태어나 조실부모하여 머슴 노릇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15세 때 평양의 친군서영에서 나팔수로 근무하면서 사격과 전술을 배우게 된다. 23세 때에 강원도 금강산 신계사에서 이순신장군의 후손인 지담대사의 상좌로 일하면서 임진왜란 시 승병 등 애국적 전통과 의병활동을 파악하고 뒷날 아내가 된 단양 이씨를 만난다. 29세~39세 사이 함경도 북청에서 헤어졌던 단양이씨 이옥구를 만나 결혼생활, 사냥과 농업에 종사하며 양순, 용환 두 아들을 두는 등 홍장군 일생에 가장 행복한 생활을 보낸다. 39세 때 안산사 포계의 회원들과 함께 일제의 총포화약류 단속법을 거부하고, 북청에서 무장 항일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북청과 풍산의 경계지대인 후치령에서 일본군을 섬멸한다. 40세 때 300여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갑산읍을 점령한 이후 ‘백두산 호랑이’, ’날으는 홍범도’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불행하게도 일제의 고문으로 부인 이씨가 순국하고 큰 아들 홍양순은 정평배기 전투에 참전하여 전사했다. 1908년 11월에 40여명의 의병과 함께 중국으로 간 뒤, 12월에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게 된다. 41~50세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군자금으로 모집활동과 항일단체 권업회를 조직하여 부회장, 그리고 노동회 회장으로 철도공사를 하면서 노임의 일부를 군자금으로 비축했다. 51세 되는 1919년에 대한독립군을 창설하고 총사령관으로 취임하여 ‘노령주둔 대한독립군 대장’명의 유고문을 북간도 일대에 살포 독립전쟁의 명분을 선포하였다. 1920년 52세 때 지금으로부터 95년 전 5월 최진동의 도독부, 안무의 국민회군과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를 결성하고 북로 제1군사령부 부장을 맡게 된다. 그해 6월7일 북간도 독립군 연합부대인 대한북로독군부 사령부장으로 700여명의 독립군을 지휘 일본군 월강(越江)추격대대를 매복했다가 섬멸한다. 이때 일본군 120여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이 전투가 일본 정규군과 첫 번째로 싸워 대승한 ‘봉오동대첩’인 것이다. 그 해 10월 21~28일까지 백야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함께 청산리 전투를 주도하여 일본군 600여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를 청산리대첩이라 한다. 53세 때 4월 대종교 지도자 배포 서일 및 만주 전 독립군 연해주 일대 독립군이 연합하여 결성한 대한의용군총사령부를 ‘대한독립군’으로 개편하고 부총재에 취임한다. 54세 때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주최의 극동제민족(諸民族)대회에 한인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 소련 공산당 지도자 레닌을 만나고 모젤 권총과 금화 100루불을 수령하였다. 1926년(58세) 40세 때 첫 부인이 순국한 이래 18년 만에 러시아에서 이인복여사와 재혼한다. 69세 때 스탈린 강제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어 그 곳 크즐오르다 극장의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일기를 쓰며 연극 등을 통한 민족정신을 고양한다. 1943년 75세 때 2년 후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서거하셨다. 카자흐스탄에는 유해를 모신 홍범도장군 공원과 흉상을 세워 홍범도장군을 기리고 있다. 늦게나마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고 서거 62년 만에 ‘(사)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초대 이사장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선임했다. 광복 후 첫 추모행사를 거행한 이래 매년 봉오동 전승기념식과 추모식과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그의 독립운동정신과 애국애족정신을 선양하고 있다. 여천은 대한독립군의 양대 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전술가이다. 장군이면서 계급을 달지 않고 사병들과 같은 복장을 입고 함께 먹고 자는 자애로운 장군인 반면 군율을 어길 경우에는 가차 없이 총살하는 엄한 장군이기도 했다. 해방72주년을 맞았으나 아직도 한반도의 온전한 해방이나 독립이 아니라 반쪽의 해방과 반쪽의 독립인 것이다. 여천이 꿈꾸든 대한독립운동은 107년 전 한일합방 이전으로 국권과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며 이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할 우리의 과제이며 사명인 것이다. “왜적 놈이 게다짝을 물에 버리고 동래 부산 넘어 가는 날은 언제나 될까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왜적군대가 막 쓰러진다.” (날으는 홍범도가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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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31
  • 홍콩 반환 20주년 동향과 최근 미 · 중 갈등(양안 관계를 중심으로)
    ▲ 지난 6월 30일, 홍콩의 통치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지 20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부대에서 사열하고 있다. ⓒ뉴시스 (안보팩트=문용석 전문기자) 1997년 6월 30일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 20년이 지난 2017년 7월 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후 처음으로 홍콩을 찾아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부대를 사열하고, 캐리 람 신임 홍콩 특별 행정구(HKSAR) 행정장관이 이끄는 새 홍콩정부 출범식을 주관했다. 홍콩 현지의 반응과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 시기에 맞추어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 재개 등 중국 견제 정책 등을 중심으로 분석해 본다. 홍콩 반환 20주년 주요행사 및 특이동향 시진핑 국가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총정치부 소속 소장)와 홍콩 주권 반환 20주년(7월 1일) 기념식 참석을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홍콩을 방문하였으며, 이는 국가 부주석 시절인 2008년 이후 9년만이며, 2013년 국가주석 취임 후 처음이다. 시진핑 주석은 6.30일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부대(사령관 탄본홍 중장)를 시찰하였다. 시 주석은 중산복(中山服, 중앙군사위 주석 자격으로 행사시 착용) 차림으로 홍콩 스깡(石崗)에 주둔한 인민해방군 홍콩 특별 행정구 주둔군 부대를 이례적으로 군용 지프를 타고 사열하였다. 통상적으로 중국 국가주석은 10년 주기로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거행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기념 열병식과 2015년 천안문 광장에서 실시한 전승절 열병식에서는 중국이 자체 생산한 홍치(紅旗) 검은 세단을 타고 인민해방군과 무기장비를 사열하였는데, 이번 홍콩 주둔군 사열시 중산복을 착용하고 지프차를 타고 사열한 것은 중국 정부가 상승하는 국력 과시와 복잡한 동북아 정세와 동.남중국해와 북핵문제 관련 미국과 대립하는 분위기를 감안해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열식은 홍콩 특별 행정구 사령관 탄번홍 중장의 보고 후 육.해.공군과 특종부대(우리의 특공연대와 對테러부대와유사) 그리고 기계화 부대와 유도무기 부대 등 20개 제대 3166명의 열병과 분열로 진행되었으며,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의 대규모 국경절 행사와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되어 홍콩 반환 20주년의 의미를 더하였다. 2012년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주관한 홍콩 주권반환 15주년 사열식에서는 15개 제대 규모였던 것과 비교 시 이번 사열식은 인민해방군(PLA)이 홍콩 주둔 이후 가장 큰 규모이다. 향후 5년 후 시진핑 주석의 임기 말에 홍콩 반환 25주년 행사에 25개 제대로 늘어날 지는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또한 관심이 가는 것은 1997년 최초로 홍콩 주둔군이 창설될 당시 초대 사령관은 류쩐우(劉振武) 소장이었는데 현재 탄번홍 사령관은 육군 중장으로 진급시켜 총참모부의 부총참모장급 직책으로 격상시킨 것인데, 이는 一國兩制(one nation two system) 하에서 홍콩과 마카오를 관리하면서 향후 대만까지 통일하여 중국 공산당이 염원하는 완정한 통일을 위한 군사적 관심이라면 과도한 추측일까. 참고로 홍콩 주둔군의 병력 규모는 여단급 수준이며, 무기장비 면에서 는 현대화되고 증강된 규모로 볼 수 있다. 또한 중국 인민해방군 여단장과 사단장은 大校(senior colonel)이며 군단장이 소장(ONE STAR)임을 감안하면 홍콩 주둔군 사령관의 직급이 얼마나 높게 책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겠다. 7월 1일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 등 주요 행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발언 중 주목되는 것들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다.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가 안정적으로 실현되도록 보장할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주권.안전을 해치는 활동과 중앙 권력과 홍콩 기본법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홍콩을 이용해 중국 본토를 침투.파괴하려는 행위는 모두 레드 라인(Red Line, 금지선)을 넘는 것으로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홍콩의 국가 주권.안전과 발전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또한 홍콩 주민들은 역사상 어떠한 시기보다 광범위한 민주적인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으나, 이 모든 것을 정치화하거나 의도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홍콩의 발전을 저해하고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홍콩 및 해외 주요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 홍콩 독립 움직임에 대한 시진핑 국가 주석의 경고는 전임 주석인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의 발언에 비해 훨씬 강경한 것이며, 이번 경고가 신임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 정부에 국가안전법과 국민교육법 도입이라는 두 가지 큰 숙제를 준 것이다.(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 중국의 국가 지도자가 홍콩을 겨냥해 ‘레드 라인(Red Line)이라고 표현한 것은 처음이며, 홍콩 특별 행정구에 대한 국가안전법 제정 작업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미국 뉴욕타임스, 홍콩대 윌리 람 교수 발언 인용) 과거 20년과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미래에도 홍콩 주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조연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이며, 고도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중국 정부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많은 홍콩인들이 앞 다투어 영국 등 서방국가와 대만 등의 여권을 얻으려 하고 있다.(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홍콩의 미래를 예측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양극화되고 있는 바, 옛 중국 대륙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많은 노년층들은 홍콩이 여러 면에서 영국 통치 시절보다 좋아졌다고 하고, 중국 중앙정부가 잘돼야 홍콩의 미래가 밝다고 하는 반면, 2,30대 젊은 청년층은 反中 감정이 커지고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늘고 있으며, 전면적인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對대만 무기 판매와 국방수권법 통과 발표에 대한 중국 측 반응 홍콩 반환 20주년을 맞아 시진핑 국가주석이 최대 규모의 홍콩 주둔군 사열식을 주관하기 직전(6.29일)에 미국 국무부는 대만에 대한 13억불(약 1조 4865억원) 규모의 무기판매를 승인하였고, 미 국무부는 조기경보 레이더 관련 부품과 對레이더 미사일, 어뢰, SM-2 미사일 부품 등 7개 품목이 포함된 판매 안을 미 의회에 통보하였다.(AP통신) 미 국무부의 對대만 무기판매 승인은 시진핑 주석이 주관하는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 열기에 재를 뿌리는 상황이 되었으며,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 재직 시인 2015년 12월 이후 2년 만이며,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있는 일이다.(월 스트리트 저널, 6.28일) 6.28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미군 함정이 대만 항구에 기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2018년 국방수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다면, 1979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이후 38년간 미군의 해군 함정을 대만에 정박시킨 적이 없는 미국이 지켜온 ‘하나의 중국’ 원칙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외교 전문지 Diplomat)국방수권법은 한 해 미국의 국방정책과 예산 지출을 총괄하는 법으로 상원 군사위원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상원 전체회의와 하원 의결을 거치게 된다. 미국의 對대만 무기판매에 대해 추이티엔카이(崔天凱) 駐美 중국대사는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는 미.중 양국 간 상호신뢰를 해치며,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반발하였으며, 중국의 인민일보 자매지인 環球時報도 “미국이 대만에 무기판매를 결정한 것은 중국을 분노하게 할 것”이라고 즉각 반발하였다. 6.28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가 미 함정의 대만 기항을 포함한 2018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에 중국은 즉각 거세게 반발하였으며, 중국 외교부 루캉 대변인은 “이 법안은 중국 내정에 대한 간섭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엄중한 우려와 결연한 반대를 표시한다”고 했다.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를 앞두고,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고도의 자치권, 경제. 개인적 자유, 법치주의 존중의 결과로 이룬 홍콩의 탁월한 성취를 찬양한다”면서 “홍콩 내 언론의 자유 침해를 포함한 시민의 자유 침해가 여전히 우려되며 또한 미국은 홍콩기본법에 따른 보통 선거권 이행 등 홍콩의 민주주의 체계 발전을 지지한다”며 홍콩 민주세력이 주장하는 홍콩 특별 행정구 행정장관의 완전 직선제를 지지하는 의미의 대변인 발표를 하였다. 향후 중국의 對홍콩 정책과 중 · 대만관계 전망 중국 개혁 · 개방의 총설계사인 떵샤오핑(鄧小平)은 개혁 · 개방 초기 1978년 국무원 예하에 홍콩 사무판공실을 설치하여 20여년 후의 홍콩 반환을 미리 대비하였고,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 라는 홍콩 회귀 후 통치방식을 만들었다. 1997년 영국의 통치로부터 중국에 반환된 이후, 떵샤오핑이 약속한 50년 동안 홍콩에 대한 고도의 자치는 정치제도를 제외한 경제 등 제반 분야에서는 대체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홍콩 행정장관의 직선제를 요구하는 홍콩 젊은이들의 요구는 점점 확산되고 있고, 급기야는 금번 반환 2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가의 주권.안전을 해치는 활동과 중앙권력. 홍콩기본법 권위에 대한 도전과 홍콩을 이용해 중국 본토를 파괴하려는 행위는 모두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며, 이전 주석들이 언급한 적이 없는 고강도 경고로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입법 추진이 예상되고 있다.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에 맞추어 미 국무부가 대만에 13억불의 조기경보 레이더 관련 부품 등 7개 품목의 판매 안을 미 의회에 통보한 것과 미 상원 군사위가 미 함정의 대만 기항을 포함한 2018년 국방수권법 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은 홍콩과 대만 문제에 대한 미.중 간 갈등이 점화될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금년 10월 19차 중국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정부는 중-대만 양안문제와 홍콩, 마카오의 一國兩制하의 원만한 관리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의 미국.일본과의 갈등관리 그리고 신장,시장 등 소수민족 문제 등 산적한 핵심이익(Core Interest)와 북핵문제와 대북 제재 등의 험난한 난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정부가 여하히 홍콩과 대만문제를 관리하여 중국의 염원인 완정된 통일로 갈 수 있는지의 과정을 주도면밀하고 다각적으로 학습하고 관찰하는 것이 우리의 독일 통일과정에 대한 연구만큼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믿고 싶다. -문용석- ·국방부 국제정책 분야 자문위원 ·주 중국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 ·前 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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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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