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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Crisis.M] 창설 50주년 맞은 ‘향토예비군'의 위대한 역사와 통일시대의 과제
    ▲ 예비군 창설 50주년을 맞아 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가안보실 이상철(앞줄 가운데) 1차장이 주관으로 모범예비군 초청행사 개최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기자/ 발행인] 예비군 창설 50주년임에도 국가안보실 1차장 주관으로 축소된 모범예비군 초청행사 개최 동원전력사령부를 창설, 초대 사령관 구원근 소장…동원분야 전문가 통일 후에도 미국·이스라엘 같은 동원체제 구축, 육군, 동원 업무의 효율성, 실효성 등 제고 기대 6일 50주년을 맞은 ‘예비군의 날’ 기념식이 국방부와 각 군단 및 사단별로 전국 17개 광역시·도에서 자치단체장 주관으로 개최됐다. 청와대에서는 모범 예비군들을 청와대에 초청하는 격려 행사가 이루어져 그동안 노고를 위로했으나 대통령이나 안보실장이 아닌 안보실 1차장이 주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지난 50년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내어준 예비군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한다"며 "예비역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를 지키고 만드는 일당백의 전력"이라고 말하고 "군복무기간 익힌 여러분의 경험은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며 훈련에 참여한 예비군 모두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비군 창설 50주년인 오늘 '육군동원전력사령부'를 창설했다"며 "예비군 역사의 새로운 50년, '예비전력 정예화'의 길을 함께 열어가고자 한다"고 했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의무만 강요하기보다 긍지와 보람을 갖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예비군의 장비와 수준을 향상하고 과학화 훈련장을 도입하는 등 여건 개선을 위해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와 제31보병사단이 예비군 육성 우수부대로 선발돼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한편, 육군은 이날 예비군 창설 50주년을 맞아 경기 용인시 3군사령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국회 국방위원, 육군발전자문위원, 예비전력 연구단체, 육군본부 주요직위자, 인접부대 지휘관 등 200여 명이 참석하여 동원전력사령부 창설식을 개최했다. 동원전력사령부는 평시 예비전력의 전투 준비태세를 갖춰, 개전 초기에 동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16만명의 긴요 전력 부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로 전쟁 개시 초기에 수도권 방어전력을 보강하는 것은 물론, 전쟁 지속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전쟁 초기 예상되는 대량 손실병력을 보충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를 위해 육군은 지난해 1월 창설추진단을 구성하고 부대의 임무와 기능, 역할 등을 정하는 한편, 지난달 20일에는 '육군동원전력사령부령'을 공포해 사령부 창설과 관련한 법적 절차를 마쳤다. 육군은 동원전력사령부 창설로 동원사단·동원지원단에 대한 단일 지휘체계가 갖춰져 동원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과 전방군단·지역방위사단의 지휘 부담이 감소하고, 동원계획 통합, 정예자원 우선관리, 예산 집중, 예비역 간부 활용 등으로 동원 체제의 실효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육군은 통일 이후에도 미국·이스라엘 등과 유사한 동원체제 구축을 할 수 있도록 동원전력사령부를 구심점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한편 초대 동원전력사령관에는 구원근 소장(육사 42기)이 임명됐다. 구 사령관은 2작전사령부 동원참모처장, 육군본부 동원차장, 36사단장, 육군본부 동원참모부장 등을 역임한 동원분야 전문가이며, 그는 "앞으로 동원전력사령부는 미래 예비전력을 재(再)디자인하고 작전환경에 부합된 예비전력 운용을 통해 전쟁승리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68년 만우절에 향토예비군의 창설, 2006년부터 4월 첫째 금요일로 예비군 창설일 변경 ▲ 1968년 4월1일. 대전 공설 운동장에서 향토예비군 창설식이 거행되고 있는 모습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소방서는 4월 1일 만우절 장난 전화로 불필요한 출동이 많아져 최근 허위전화에 대한 법적제재가 강화됐다. 그런데 1968년 1.21사태와 1월 23일 동해에서 발생한 미국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을 계기로 그해 2월 7일 경남 하동에서 열린 경전선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향토예비군의 창설의지를 밝히며 250만 향토예비군의 무장화를 역설했고, 드디어 4월 1일에는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향토예비군의 창설식이 거행됐다. 이후, 2006년 9월 6일 시행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4월 첫째 금요일로 변경됐다. 예비군이 창설된 당 해년도 6월 25일 고성군 현내에 침투한 무장간첩 소탕 작전에 최초로 참가했다. 창설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실전에 투입된 것이다. 같은 해 7월 29일에는 목포 허사도에 침투한 무장간첩 소탕작전에 나서 군경과 합동으로 침투 간첩 2명을 사살했다. 조직·장비·훈련 면에서 아직은 미약한 상태에서 올린 값진 전과였다. 예비군이 왜 필요한지를 온 국민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 1968년 11월,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소탕작전에서 생포한 공비 [출처 :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또한 같은 해 10월 30일 야간에는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 무장공비들이 울진·삼척지역 해안으로 침투했다. 무려 120명이었다. 공비들은 침투 후 3일 동안 울진군의 한 산간마을 주민들을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정부는 강원 정선·영월·삼척 지구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경과 예비군을 동원해 즉각 소탕작전을 전개했다. 2개월간의 긴박한 작전 끝에 113명이 아군에게 사살되고 7명이 생포됐다. 소탕작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예비군들의 활약상. 무장공비 ‘107명 사살. 7명 생포’라는 혁혁한 전과는 다름 아닌 ‘예비군’의 수훈이었다. 김일성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인민의 무장화’ 등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하고 끊임없는 군사도발과 침투를 사주했다. 이런 국가적 안보위기 상황에서 우리 향토와 나라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향토예비군’이다. 군사작전과 국가적 재해·재난 현장에서 보여준 향토예비군의 활약상 당시 향토예비군의 활약이 없었다면 무장공비 소탕 작전은 자칫 장기전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었다. 우리 민·관·군의 피해도 더 확산됐을 것이다. 이 사건은 북한의 위협과 예비군의 위용을 동시에 각인시켰으며 전 국민의 안보의식을 다시 한 번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고, 적시적인 박정희 대통령의 과감한 결심과 창설 추진에 경의를 표한다. 향토예비군의 활약은 계속됐다. 1995년 ‘부여 지역 무장간첩 소탕 작전’,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무장간첩 소탕 작전’등 안보위기 상황에는 어김없이 큰 역할을 했다. 현재까지 예비군의 전과를 종합해보면 총 91회에 걸쳐 작전현장에 투입됐고 연인원으로는 457만여 명이 동원돼 무장간첩 등 173명 사살, 14명 생포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예비군은 비단 군사작전에서만 활약한 것이 아니다. 국가적 재해·재난 현장에서도 예비군의 활약상은 빛났다. 대표적인 예로 2000년 강릉·고성·삼척 지역 대형 산불 현장에 동원돼 진화에 앞장섰고, 2003년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참담한 현장에서도 피해복구 작업을 수행했다. 이 밖에도 태풍·폭설·홍수·산불 등 수많은 재해·재난에 맞서 싸웠고 현재까지 42회에 걸쳐 연인원 388만 명이 동원돼 재해예방 및 피해복구에 크게 공헌해 왔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의 향토예비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신라의 ‘화랑도’, 고려의 ‘광군’, 조선시대의 ‘속오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임진왜란을 계기로 창설된 ‘속오군’은 지금의 향토예비군과 유사한 개념으로 평상시 생업에 종사하던 각 지방의 주민들이 전시 전장에 투입돼 활약하는 제도였다. 속오군은 이후 정유재란에서 왜군의 북진을 저지하는데 한몫을 담당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조국의 영토와 자국민 스스로 수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너무도 조용하게 지나간 ‘향토예비군 창설 50주년’행사였지만 자주국방의 큰 축, 향토방위 올해는 대한민국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지 50년 되는 해다. 그러나 50주년의 의의보다 너무도 조용한 기념일이 되었다. 청와대 모범예비군 초청행사도 대통령도 안보실장도 아닌 국가안보실 1차장 주관으로 녹지원이 아닌 영빈관에서 작은 행사로 이루어 졌다. 자칫 의미가 점점 축소되고 있지않나 걱정된다. 하지만, 우리의 향토예비군은 숱한 역경 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현재는 육·해·공군 합쳐서 275만명이 유지되고 있고 이번에는 육군 동원전력사령부도 창설됐다. 그 결과 향토방위는 물론 유사시 즉각 동원태세를 구축해 당당히 자주국방의 큰 축으로 자리 잡았다. 4월이 되면 만우절의 가벼운 웃음 보다는 안보위기 시 향토수호의 주역이었고, 각종 재난 시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앞장서 일하면서 싸우는 대한민국 향토예비군을 기억해야 한다. 현역 장병들 역시 전역 이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향토예비군으로서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다시 한 번 활약하길 기대해 본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 (현)안보팩트 발행인
    • 전역군인
    • 전문가 분석
    2018-04-06
  • 국방부, ‘군복무기간 단축 불발’ 보도 반박, 4월중 단축 방안 발표
    ▲ 국방부 대변인실이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군복무기간 단축이 예정대로 추진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국방부 브리핑실. 국방부 대변인실, “전투력 강화와 복무기간 단축 통한 군 정예화를 공약대로 추진” 강조 KBS, “ 군 복무기간 단축 위한 킬 체인 등 3축 체계 구축 그리고 일선 부대 및 병사들의 임무 재조정에 수년 걸릴 것” 보도 (안보팩트=전승혁 기자) 국방부가 14일 연내 군복무 기간 단축 불발 보도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지난 13일 '연내 군 복무 단축 불발…18개월 단축도 불투명' 제하의 KBS 보도에 대해 "국방부는 복무기간 단축을 군 정예화를 위한 전투력 강화와 병행하여 공약대로 임기내에 시작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또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향후 '국방개혁 2.0'에 포함하여 확정 발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송영무 장관이 오는 4월 중에 확정해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예정인 '국방개혁 2.0'에 군 복무기간 단축방안에 대한 타임 테이블이 제시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앞서 지난 13일 KBS는 국방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했던 '임기 내 군 복무기간 18개월 단축'이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해 대선 유세에서 현행 21개월인 병사들의 복무기간을 임기 말기인 2020년까지 18개월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오는 7월부터 복무 기간을 조금씩 줄이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KBS는 “군 구조개혁과 킬 체인 등 3축 체계 구축 그리고 일선 부대 및 병사들의 임무가 복무기간 단축에 맞추어 효율적으로 조정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취지로 연내 군복무기간 단축 등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전역군인
    • 종합
    2018-03-14
  • [직업군인사용설명서](20) 시원섭섭한 초등군사반(OBC) 교육의 추억과 유비무환(有備無患)((
    ▲ 초군반 학생 장교들이 소대방어 전술 명령 하달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생도의 통제된 생활을 벗어나 장교의 자유와 책임을 경험하는 초등군사반 교육 국민가요인 故김광석의 ‘입영열차’ 노래에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어머님께 큰 절하고~“라는 가사가 항상 입가에 맴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첫 발령지는 야전부대도 훈련소도 아니라 광주에 있는 보병학교였다. 부임전 재교육을 위해 모든 초임장교가 반드시 거쳐 가는 과정으로 보병, 포병, 기갑, 공병, 통신 등의 각 병과학교에서 약 16~20주 동안 초등군사반(Officer's Basic Course) 교육을 받았다. 졸업 성적은 제대할 때까지 출신별 진급과 선발에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초등군사반 교육 기간은 생도생활 4년 동안의 통제 받는 생활을 벗어난 최초의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 숙달 안된 초임장교들에게는 자유가 방종이 될 수도 있었다. 매일 위병소를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는 외출이 허용되니까 아침 수업이 시작되면 여기저기에서 밤새 마신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심지어는 지난 밤 과음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벌점을 먹더라도 출근을 못하는 장교도 있었다. 게다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도 1년 남짓 지나지 않아 군복을 입고 학교밖을 다닐 때에는 시민들의 눈초리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부모 같은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느낌이었다. 보병학교 초등군사반 교육은 타 병과학교와 달리 대부분 생도생활 동안 하기군사훈련을 통해 숙달한 지휘통솔, 참모학, 화기학, 소대~대대 및 제병협동전술훈련 등 각종 훈련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인지 교육보다는 얼마 후 각자의 임지로 떠나는 동기들과의 이별이 더욱 아쉬운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필자도 광주 보병학교 울타리 밖의 인접한 술집은 다 가 보았다. 특히 휴일 광주시내 식당에서 먹어본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푸짐한 전라도 전통밥상은 잊을 수가 없다. ‘불모지대’의 감동과 현충일 기념 50Km 마라톤의 뼈아픈 교훈 필자는 초군반교육 기간 중 우연히 일본의 작가인 야마사키 도요코의 ‘불모지대’ 책을 접했다. 1978년 5권의 전집으로 출간된 이 책은 일본 대본영 작전참모였던 ‘이키 다다시’가 종전후 소련군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풀려나 제 2의 인생을 종합상사에 취업하여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동군 시절 상사이기도 했던 ‘세지마 류조’의 일대기를 주축으로 일본의 종합상사인 ‘긴끼’가 형성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었다. 그 회사는 일본군의 참모조직을 본떠서 만들었고, 이 책은 2009년 일본 TV 드라마로 성황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군생활을 막 시작하는 입장이었지만 제대 후 군 보다 더 넓은 사회에서 사관학교 출신 선후배들이 끈끈한 의리와 군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서 심장이 마비될 것 같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책 내용이 좋아 반복해서 읽는 동안 바로 전역해서 ‘이키 다다시’나 ‘효도 신이치로’ 처럼 상사원으로 국가 경제를 위해 국제적으로 직접 뛰고 싶은 충동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주인공 ‘이끼 다다시’의 사회적응 삶을 그린 소설 ‘불모지대’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마침 현충일이 되어 휴일이 되자 새로운 도전을 갖게 하였다. 룸메이트였던 김종주 동기의 마라톤 제안에 동의를 하고 준비 없이 뛰어 들었다. 코스는 광주시내 동쪽 지방 국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출발하여 화순 근처인 김종주 소위의 집까지 약 50Km 거리였다. 그동안 생도생활에 단련된 몸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만만치 않았다. 처음 10km는 약 30분 정도 걸렸는데 이 속도면 마라톤 선수도 가능하겠다고 웃으며 달렸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동기 김소위는 약 한달 동안을 거리를 늘려가며 사전 준비를 했는데 사전 준비를 못한 나는 20km를 넘기자 호흡은 괜찮은데 다리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점점 속도가 떨어지면서 양 무릎 통증으로 마지막 10km는 걷기도 힘들었다. 김소위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목적지인 친구 집에 도착했다. 같이 뛰지는 안았지만 동기 현창부 소위가 완주 기념품까지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고 반면에 제대로 뛰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불모지대의 감동은 심장을 마비 시켰고, 사전 준비 없이 무모하게 도전한 마라톤은 두 다리를 마비 시켰지만 어떠한 성취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사전 철저하게 준비해야하는 교훈을 뼈져리게 체험한 순간 이었다. ▲ 초군반 학생 장교들이 제병협동(보병과 전차) 훈련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반면교사’가 된 ‘하얀 시트’ 바바리맨 사건 마라톤의 후유증으로 근 일주일 넘는 시간 동안 학과출장 속도를 맞추지 못해 항상 열외하여 절뚝거리며 이동해야 했다. 건강이 회복되자 교육과목이 제병협동으로 바뀌었다. 제병협동훈련은 각 병과로 흩어져 교육받던 동가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돌이켜 보면 그 훈련 후 헤어지면 다시 보기란 매우 어려울지도 모르기에 애틋한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시간이었다. 주로 보병과 포병, 기갑, 병과가 협동훈련의 주인공이었다. 그중 기억이 나는 것 중 하나는 ‘전장소음체험훈련’으로 표적 부근 벙커에 들어가 머리위로 떨어지는 105mm, 155mm 포병탄 등의 파열음과 충격을 직접 체험하는 훈련이다. 방어전투시 중과부적으로 위급한 상황일 때에는 아군 머리위로 ‘진내사격’을 요청한다. 6.25 남침전쟁시 많이 사용했던 전술이다. 몇 일 뒤에는 모두 전방 각지로 부임하는데 실제 전장 감각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야간 훈련이 없는 날이면 생활관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동기들은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다보니 이별의 아쉬움에 젖어 있었다. 그게 화근이 됐다. 어느 날 새벽에 비상이 걸렸다. 동기생 전원이 전투복으로 연병장으로 집합하라는 통보였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나가보니 단상에는 정형진 소령(30기, 예비역 소장)을 비롯한 보병학교에 근무하는 영.위관급 육사 선배들이 모두 있었고 분위기는 매우 살벌했다. 몇명의 동기생들이 심야에 바바리맨처럼 하얀 시트로 몸만을 가린 채 생활관 울타리 밖의 다방 같은 주점에 들어가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며 술을 마시다 지역주민의 신고로 난리가 난 것이다. 사관학교 출신의 망신을 다시킨다며 선배들은 일장 연설을 한 뒤 기합을 주었다. 후배들을 바르게 선도하려는 선배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생활관에서 조용히 취침 중이었는데 한밤중에 홍두께 격이었다. 그러나 지옥과 천당도 인솔해 간다는 군대이다. 하물며 군과 국가의간성인 사관생도 출신들은 누구 하나의 실수로 인해 전체가 매도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생도생활 동안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귀 따갑게 들어 왔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며 군생활을 해야된다는 결집의 기회가 되었다. 지뢰사고로 순직한 선배의 가슴 아픈 소식이 만들어낸 ‘유비무환’ 제병협동훈련이 끝나자 초군반 교육도 막바지가 되었다. 그때 전방에서 슬픈 소식이 우리를 긴장 시켰다. 1년 선배 36기 故 신현준, 박흥수 중위가 전방 사단 수색대대 DMZ 작전중 지뢰 사고로 순직한 것이다. 바로 몇 일 뒤에는 그 자리로 우리들이 가야만 한다. 참 군인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국가를 위해 뛰어들어야 한다. DMZ 지역은 대부분 보병 장교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일순 생활관은 숙연해지면서 긴장도 감돌았다. 동기회에서는 제병협동훈련장 사건에서도 느꼈듯이 선배들의 불의 사고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앞에 닥쳐온 현실로 받아들이고 의견을 모아 지뢰 덧신을 만들기로 했다. 희망자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의 군화를 동기회에 맡겼고, 얼마 후 신발 밑창에 철판을 장착한 지뢰 덧신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동기생은 한 술 더 떴다. 간단한 조작으로 금속을 식별할 수 있는 지뢰 탐지기를 만들었고 대부분의 동기들은 자비를 들여 지뢰탐지기와 지뢰덧신을 준비하고 전방으로 배치되기만 기다렸다. 아마도 필자는 준비없이 무모하게 시도한 50km마라톤에서 다리가 마비되었던 체험이 이런 준비를 하게 만든 것 같다. 훗날 임지에 부임해 갔을 때, 그 곳의 군 선배들은 이렇게 준비를 하고 온 필자를 비롯한 동기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함께 신뢰를 받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편, 생도시절 태권도부장을 했던 고장호 동기는 야전부대에서 태권도 교육이 강조된다며, 검도와 유도를 했던 동기들에게 태권도 유단증을 받도록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필자는 생도시절 검도 2단을 땄으나 태권도 유단자증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동기의 애정 어린 배려속에서 노력을 거듭해 초군반에서 유단자증을 받게 되었다. 290명의 동기생들과 함께 청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생도생활 4년에 이은 초군반 4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청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딜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동기회에서 갑자기 소집해 강당에 모였는데, 육군본부에서 일부 인원의 부대 부임을 통보했다. 전방 사단 중 가장 힘들고 오지인 3, 15사단 부임자 발표였다. 필자도 1군 사령부의 예하부대인 15사단 발령자에 포함되었다. 15사단은 겨울에 가장 추운 대성산과 사단 전 지역이 비포장도로인 산악 지형, 지역내 최고 높은 기관장이 이장이라는 야전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준비는 끝났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국군 통수권자로부터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한마음으로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하는데 한 몫을 다하려고 야전으로 빨리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 했다. 뜻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졸업 후 보병학교 초군반까지 절차탁마(切磋琢磨)로 무장한 290명의 동기들은 국가의 명을 받아 이제 견습생이나 계약직이 아닌 야전부대 소대장으로 진짜 군생활을 시작했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 (현)안보팩트 발행인
    • 전역군인
    2018-03-12
  • 뇌물수수혐의 박찬주 전 대장, 1000만원 보석금 내고 석방돼
    ▲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법률(특가법) 상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30일 오후 경기 수원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 이동하고 있다. 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 ‘공관병 갑질’의혹으로 수사 받던 중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돼 수원지법 11부,“피고인 도주 우려 없다”며 보석 신청 허가 (안보팩트=전승혁 기자) '공관병 갑질' 의혹으로 군 검찰 수사를 받던 중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박찬주(60)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대장)이 30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박 전 대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 상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는 이날 법원의 보석 허가결정으로 경기 수원구치소에서 풀려났다. 박 전 대장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외투 없이 양복만 입은 상태로 교정직원 1명의 안내를 받아 구치소 정문으로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나왔다. 양손에는 구치소에서 쓰던 옷가지와 성경책 등이 든 가방 3개를 들고 있었다. 그는 심경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고,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짧게 답하고, 가족이 준비한 차량에 탑승해 구치소를 빠져나갔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송경호)는 이날 "피고인이 도주할 우려가 없고, 보석 허가 조건만으로 피고인의 법정 출석을 담보할 수 있다"며 박 전 대장이 신청한 보석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1000만원의 보증금을 낼 것을 보석 조건으로 걸었다. 재판 등에 출석하지 않거나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보석은 취소되고 법원이 보증금을 몰수하게 된다. 박 전 대장은 고철업자에게 5억원대 돈을 빌려준 뒤 수천만원의 과도한 이자를 받고, 군 사업과 관련한 편의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향응 등을 받은 혐의(특가법 상 뇌물수수)로 군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박 전 대장은 제2작전사령관 재직 당시 모 중령의 인사 청탁을 받고 부하직원을 시켜 보직심의 결과를 변경한 혐의(부정청탁금지법 위반)도 받고 있다. 박 전 대장은 공관병에게 폭언과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이른바 '공관병 갑질' 의혹으로 처음 세간에 알려졌지만, 수사에 나선 군검찰은 법적 처벌대상으로까지 볼 수 없다며 뇌물 수수 등 혐의만 적용해 기소했다. 이 사건 재판은 대법원이 지난달 "현역에서 전역한 사람이 범한 범죄 중 특정 군사범죄 외에는 군사법원이 재판권을 가질 수 없다"며 박 전 대장이 신청한 재판권 쟁의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군사법원에서 박 전 대장의 주소지 관할지인 수원지법으로 넘어왔다. 박 전 대장은 지난 10일 열린 첫 공판에서 "지난 수개월간 헌병대 영창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에 있는 것인지, 적국에 포로로 잡힌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일반 법원이었다면 제기된 공소사실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했을지 의심스럽다"며 보석 허가를 호소했다. 그는 “국방부가 전역을 막으면서 현역 대장을 포승줄로 묶어 대중 앞에 세운 것은 상징적 의미를 위해서였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몇 달간 헌병대 지하 영창에 수감돼 있으면서 적군 포로로 잡힌 것 같은 혼란스러움과 극심한 굴욕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 전역군인
    2018-01-3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8)‘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다
    ▲ 필자(김희철)의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 모습 고등학교에서는 전공학과보다 대학교 브랜드가 중요하다‘16년도 어김없이 11월 17일에 대학입시 수능시험이 치루어졌다. 수시로 대학입학이 확정되는 것도 수능점수가 결정적이다. 아무리 내신 성적이 좋아도 수능점수가 나쁘면 대학입학은 어려워진다.나는 말도 많은 58년 개띠로 격동의 세월 현장에 항상 있었다.58년 개띠부터 전국 최초로 중학교 입시도 시험에서 추첨제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입시도 소위 뺑뺑이 추천제로 바뀌었다. 오늘날 수학능력평가처럼 그때에도 대학입시 예비고사(연합고사)가 있었다.당시 학생들의 적성과 희망직업에 대한 고려는 고등학교 입시를 담당한 선생님들에게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국의 많은 고등학교 중에서 소위 SKY대학을 몇 명이나 합격시켰느냐가 고등학교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였다. 명문대학이라면 비인기 학과 또는 농업·예능계열을 가리지 않았다. 조금만 가능성이 있으면 학교에서 권했다. 지원학과 선택에 있어 개인의 특성은 그냥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특히 미술과 음악, 체육 분야에 재주가 있고 성적이 조금 높은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당해 연도에 서울대, 연대, 고대 등에 한명이라도 더 합격시키는 것이 고등학교 선생님, 학생, 그리고 부모들의 목표였다.설명회에 나온 육사 생도 선배의 '군인관'에 홀린 듯 매료돼 그런 시대 풍조에 젖은 학생이었던 나는 고교 3학년 어느 날에 인생을 결정짓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날의 경험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의 느낌과 열정은 바로 직업으로서의 군인에 대한 글을 쓰고자하는 원동력이다. 앞으로 이 글이 청소년과 청년들, 나아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에게도 꿈을 주기를 소망한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매년 생도들을 출신고등학교에 설명회를 가짐으로써 우수한 재원들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운명의 날에도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가 학교강당을 빌려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손에 끌려 강당 한 귀퉁이에 앉아 선배의 열띤 설명을 들었었다.눈동자가 보일 듯 말듯 눌러 쓴 사관생도 모자 밑의 생도 얼굴에서는 힘차고 차분하게 터져나오는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는 입만 보일 뿐이었다.그런데, 가슴에 꽉 꽂히는 말이 들렸다.“사관생도 신조...하나, 나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였다. 후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명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사실 그 때만 하더라도 군인 그것도 육군사관학교 생도 하면 좀 더 근육질에 우락부락하고 키도 크며 만능 스포츠맨 같은 전투적인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때문에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선배님, 저같은 사람도 사관학교에 갈 수 있어요?”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자 선배생도(육사35기 조정)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며 못마땅한 듯 툭 말을 던졌다. “자네는 공부 좀 하나?”개인적으로 찾아간 육사 생도 선배는 의외로 냉담한 반응어이가 없었다. 그렇게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의 길을 강조했던 선배 입에서 의외의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다.“아~, 예~, 성적은 조금 괜찮아서 지금 학교 특수반에 포함되어 대입준비를 하고 있습니다.”그러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우선은 공부를 잘해서 연·고대 수준이 돼야 1차 합격할 수 있고, 그 다음은 체력이 좋아야 한다. 의지만 있으면 자네도 가능해…”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는 듯 대답을 하고 떠났다.담임선생님은 특수반(성적 우수학생들만 따로 모아 일과 후에도 보충수업을 시키는 학급)에다 그림도 잘 그리니 서울대학교 미대를 갈 준비를 하라고 조언을 해주셨고 나도 별뜻없이 순종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였다.그런데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의 이 한마디에 선생님의 조언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차피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그 선배처럼 직업군인의 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매력적일까" 이런 상념을 하면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던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결국,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택하는 길보다 험난한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몇 일 뒤, 담임선생님께 육사시험에 응시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인생은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삶이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가는 생(生)이라고 했다. 언제나 누구에게도 아슬아슬하게 외나무다리 고비를 넘어가며 죽음의 문으로 다가간다.지옥의 세계 속에서 희망의 빛을 쫓아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는 고3 시기는 더 많은 리스크(Risk)와 유혹 그리고 장애가 버티고 있는 과정의 시간이다.육사를 지원하겠다는 말을 들은 담임선생님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면서 단호하게 반대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가면 얼마나 너의 인생이 멋지겠느냐. 실현 예술가로서 명성도 얻으면 삶의 희망이 실현되는 것이다"라고 나를 설득했다. 선생님은 육사지원서 작성은 불가하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그러나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간신히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선생님은 학업성적 평가 차원에서 육사시험에는 응시하되 합격여부를 떠나서 서울대 미술대학은 반드시 응시하여 시험을 봐야한다는 조건이었다. 아무튼 조건부라도 육사시험원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내었다.그 당시 가정 형편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강원도 원주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학비가 많이 들어가는 미술대학 뒷바라지를 부탁하는 것도 사실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평택에, 필자는 서울 충정로 셋방에서 세집살림 하기에도 아버님 봉급 가지고는 빠듯한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일단은 육사로 목표를 정했다.여름방학 때 종로의 사관학교입시 전담학원에 등록했다. 마침 그 학원에는 동창생 3명이 사관학교를 목표로 함께 수업을 받게 되었다.드디어 그해 10월 육사시험에 응시했다.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기 위해서…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주요 저서 및 연구-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전역군인
    2018-01-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7)사관생도의 인턴과정 ‘야전지휘실습’서 깨달은 교훈들
    ▲필자의 4학년 생도 실습때 동행했던 육사 동기생들 ⓒ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희철 기자/발행인) 사관학교 ‘장교 인턴과정’ 야전 지휘실습은 3,4학년 두 차례 실시 사관학교는 국가의 간성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래서 미국 육군사관학교(West -point)는 2000명이 넘는 인원을 선발하여 대위로 진급하면 임관 인원의 50%를 사회로 복귀시켜 공무원 및 기업인 등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도록 시스템화하였다. 이는 올바른 국가관과 사명감을 지닌 인재들이 군에서보다도 사회 각층에서 맹활약하여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고교시절 지방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사관학교는 군 장교를 양성하는 개념에서 국가의 일꾼들을 배출하는 일종의 인턴과정으로 전환됨으로써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 군도 한번 즈음 제고해볼 가치가 있다. 태릉골 육사는 학년별로 특화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겨울방학을 끝내고, 신입생도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시기에 2학년은 야전부대로 배치되어 분대원으로 병생활을 체험하며, 3학년 때에는 전방부대에서 소대장 지휘실습을 10일~2주간씩 진행한다. 일종의 장교 임관전의 ‘인턴과정’이라 할 수 있다. 4학년은 생도대에서 고급장교가 되기 위한 리더십과 영어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졸업을 앞둔 시기이라 그들이 모여 있는 별도 공간을 속칭 양로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필자의 생도 시절에는 3학년과 4학년 때 야전 지휘실습을 받았다. 3학년 실습 때 인상 깊었던 육사 선배, 예비사단 오뚜기 부대의 All cover 만능 소대장 문맹자 병장도 소대장보다 뛰어난 리더십과 숙달 수준 보여,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깨달아 육군 부대는 전방(GOP), 예비, 향토, 동원사단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3학년 지휘실습은 예비사단에서 각 분대까지 배치되어 병 생활을 체험하며 약 2주간 진행되었다. 예비사단은 전방(GOP)사단 후방에 위치하여 GOP 경계근무 보다는 주로 교육훈련 위주로 운용된다. 당시 사단장에게 신고한 뒤 트럭에 나누어 탑승하여 실습 대대에 도착했을 때 가슴은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왜냐면 1년 뒤에 내가 지휘해야할 병사들을 직접 만나본다는 기대감에 설레였기 때문이었다. 보병중대에는 4명의 소대장이 있다. 그중 화기소대장은 선임 장교가 통상 임무를 수행한다. 주로 학군장교가 대부분이고 간혹 단기사관, 삼사, 육사출신 장교가 끼어 있다. 도착한 대대에는 다행이도 2년 선배인 35기가 1명 있었고 그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소대장 BOQ에 짐을 풀고 소대에 배치되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 중대는 학군과 삼사 출신 소대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3학년 야전실습 때 만난 육사 선배 소대장ⓒ뉴스투데이 만나 본 병사들은 오히려 전방(GOP)사단을 선호했다. 전방(GOP)사단은 경계근무 만하고 휴식 시간이 보장되나 예비사단은 365일 계속되는 훈련에 힘들기 때문이었다. 2~6주 동안, 하계나 동계 종합훈련을 나가면 야외에서 텐트 생활을 하며 한여름 폭염과 한겨울 혹한을 이겨내야 하고, 춘추계 진지공사에 투입되면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것은 더 고역이었다. 배치된 중대 병사들의 가정형편을 파악해 보니 대부분 중학교와 고교졸업자 였고 대학생 출신은 10% 정도였으며, 50% 정도가 홀어머니, 부모이혼, 고아 등의 결손 가정이었다. 게다가 1979년 당시에는 문맹자도 중대내에 있었다. 그래도 병장이 되면 소대장보다도 오히려 리더십이나 교육훈련, 작업에 대한 지식과 숙달정도가 더 뛰어났다. 거기서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놀라움도 느꼈다. 일과를 마치고 소대장 숙소인 BOQ에 돌아와 타중대에서 실습한 동기들과 다시 모여 많은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대대에 1명 밖에 없는 육사선배의 근무모습은 All cover하는 활동 영역을 갖고 있는 만능의 맥가이버를 보는 것 같았다. 소대장 보직이지만 대대 교육장교 대리근무를 하면서 작전장교의 업무를 보좌하고 전 대대원이 모여 의식행사를 할 때에는 단상에 올라가 애국가를 지휘하고 또 소대원 교육훈련 시간에는 현장에서 지도 감독도 하였다. 태권도 유단자인 그는 상급부대 측정에 대비해서 전 대대원을 대상으로 품세와 대련 등을 일일이 지도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대대 실습기간 마지막 전날에 그 선배는 소대장의 쥐꼬리만한 봉급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모아놓고 저녁을 사주며 “임관해서 야전에 나오면 육사 출신들은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 고 말하며 “육사교육에 버릴 것이 없다. 특히 검도, 유도도 있지만 태권도는 반드시 유단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3금으로 음주가 불가능 하지만 선배가 주는 것이니 마셔라하며 따라준 막걸리 한잔의 그 맛과 한마디 조언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전방(GOP)사단 칠성 부대에서의 야전 지휘실습에서 느낀 ‘병사들의 투지’ 그 병사들,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와 ‘조직 관리’의 중요성 깨닫게 해줘 4학년 소대장 지휘실습은 전방(GOP)사단에서 진행되었다. 이미 3학년 하계 군사훈련 때 소대에서 대대까지 전술훈련과 주요 화기를 다루는 법까지 교육도 받았고 4학년 하훈 때에는 공수훈련까지 받은 상태라 당장이라도 소대장 근무를 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임관한 상태는 아니었다. 전방 지휘실습을 했던 1979년은 아래(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장공비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출몰하는 시기였다. 때마침 칠성부대는 북한 무장공비가 GOP를 뚫고 내려와 아군 경계근무를 무력화 시키고 다시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모든 간부 및 병사들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 자료출처=2016 국방백서 252쪽 참조 대남 침투도발 양상은 1960년대에 1,011건의 최고점을 찍다가 1970년대 311건으로 감소하여 다음 연도부터는 직접침투 보다는 해안과 타국을 이용한 루트 등 간접침투로 전환하여 국내로 들어와 지금도 암약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단 및 연대 신고를 하고 백암산 정상의 GOP중대로 배치를 받았다. 화랑대에서 사단까지 이동하여 신고하고 소개받는데 하루가 걸렸고 다시 연대를 거쳐 GOP중대 소초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 되었다. GOP는 산악으로 이루어져 도보로 이동을 하기에 많은 시간도 걸렸고 지치기도 했다. 수 백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니 무릎 관절도 통증이 왔다. 마침 GOP중대장이 육사 6년 선배님이었다. 백암산 정상의 거친 바람과 친구가 되니 수염도 덥수룩하고 거친 모습에 피곤해 보였다. GOP는 야간 경계근무가 주로 핵심 일과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가진지를 점령했다가 은밀하게 주진지를 점령하여 적의 침투도발을 감시하는 것이다. 심심해 질려고 하면 북한의 대남 방송이 졸음을 깨웠고 전반야에는 선임하사관이, 후반야에는 소대장이 근무실태를 확인 차 순찰을 돈다. 경계근무중에 간혹 중대장과 대대장의 순찰을 접하게 된다. 병사들은 이것을 더 두려워했다. 그들로부터 근무자세 불량을 지적받으면 바로 영창행이기 때문이었다. 얼마전 경계근무에 실패하여 철책을 은밀하게 절단하고 내려와 그 침투조는 남쪽을 정찰하여 정보 수집을 다한 후 다시 강습 돌파로 철책을 뚫고 돌아갔다. 그들과 조우한 우리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반면 그 당시 인접 백두산 부대에서는 침투한 3명을 모두 사살하여 비교가 되다보니 칠성부대의 장병들은 그 일부의 실수로 치욕과 수치심에 전체가 침체되어 있었다. 해당 지휘관은 경계 실패의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 되었지만 남아 있는 간부 및 병사들도 대책 강구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피곤에 절어 있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로 잘못한 자가 그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로 인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다른 자들까지 피해를 주는 것은 무언가 겉돌고 있는 모습이었다. 산 정상의 중대 본부 막사 뒤에는 몇 평정도의 평평한 공간이 있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그곳에서 사기가 충천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 먹다 남은 밥과 반찬을 잔반이라고 부른다. 심야 근무를 끝내고 막사로 돌아올 때 그 평지 잔반통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산돼지 가족을 만났다. 사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니 매우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씩씩거리며 먹는 모습에서 침체에 빠져있는 장병들과 대조적으로 사기가 충천한 모습이었다. 부대원들은 잔반을 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멧돼지들의 먹이도 나누어주면서 잔반을 처리해줄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고 생각되었다. 사관학교 4년 동안 가장 많이 듣는 말중에 하나가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였다. 경계실패의 후유증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칠성부대 장병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 와중에 지휘실습 나온 사관생도들에게 관심을 써주는 모습에서 오히려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를 찾을 수 있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은 당연한 것이나 군대는 사기를 먹고 사는 동물이다. 실습을 마치고 화랑대로 복귀하면서 대규모의 조직은 혼자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특히 사람들을 잘 관리하고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느끼며, 이 부대가 조속히 수렁에서 빠져나와 사기충천한 부대가 되길 기원했다. 이러한 장교 인턴과정인 야전 지휘실습을 통해 사관생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엿한 육군 소위로 성장되어 갔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전역군인
    2018-01-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6)미·중전쟁 위기 속에도 사관생도의 보행은 지축을 울려
    ▲육사생도들이 지축을 울리는 ‘화랑 의식’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김희철] (안보팩트=김희철 선임기자) 전 유엔주재 美 대사 볼턴의 대북 군사공격론 속 미·중전쟁 가능성 증대 트럼프 자문역인 대북 강경파 존 볼턴 전 유엔 미국대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때가 곧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USA Today가 지난 17일 보도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2일 “북한과 전쟁 가능성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 와중에 H-6 전략폭격기와 Su-30전투기 등 중국 군용기 5대가 지난 18일 오전 사전통보 없이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과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에 무단 진입했다. 이에 맞서 출격한 우리 공군 전투기 10대와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 10~20대가 이어도, 대마도, 독도 주변 상공에서 약 3시간 30분 동안 뒤엉키는 상황이 벌어졌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영공은 아니지만 이곳에 진입하는 외국 항공기는 관할국의 사전 허가를 받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어도 부근이 중국 방공식별구역(CADIZ)과 중첩된다는 이유로 사전 통보한 적이 없다. 이날 우리 측 핫라인을 통해 KADIZ 진입 이유를 묻자 중국 측은 “일상적인 훈련일 뿐 한국 영공을 침범할 의도는 없다”고 답했다고 합참은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 중국 국빈 방문 직후에 중국이 군사적 위협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굳이 한 배경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때 맞추어 최근 美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에서 “중국의 한반도 개입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은 묘한 연관성을 느끼게 한다. 이번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는 한반도 유사시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현실화하면서 중국군의 남하 정도를 구분해 중국군의 개입 시나리오를 4개 상정했다. ▲ 자료=랜드연구소/방송화면 캡처 가장 깊게 내려오는 시나리오는 중국군이 평양 남쪽까지 전진해서 영변의 핵 시설을 장악하고 남포~원산을 잇는 동서길이 250Km 구간에서 한·미 연합군과 대치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평양을 포기하고 영변 핵시설 정도로 남하하는 것으로 청천강과 함흥만을 잇는 200Km 구간에서 한·미 연합군과 대치한다. 동서 전선이 비교적 짧아 가장 현실적이다. 그 밖에 완충지대를 형성할 목적만 갖고 북중 국경에서 내륙으로 100Km 진입할 경우에는 500Km, 50Km 진입할 경우에는 550Km로 대치 구간이 길어 부담을 갖게 한다. 최근 북중 접경지역에서와 남쪽 방공식별구역에서의 빈번한 중국군 활동을 볼 때, 고려시대 몽골 침입과 조선시대 임진왜란, 그리고 6.25남침전쟁 때 처럼 주변 강대국이 한반도에서 대리전을 치룰 가능성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잔치에 쓰이기 위해 잘 길러온 돼지는 전쟁을 대비하는 군대와 같다. 랜드연구소의 선임 연구위원 브루스 베넷은 이번 보고서에서 “북한 급변 사태 종료 후 한국이 통일을 이룩하고 중국군의 완전 철군을 유도하려면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 능력을 시급히 향상시켜야 한다.”고 했다. 4가지 시나리오 모두, 미군이 있는 한 중국군은 철군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이 철수하는 대신 미군도 서울 남쪽까지 혹은 한반도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게다가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체제생존 보장 외에도 한반도의 적화통일과 중국의 견제란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 사례로 지난 3월6일 동창리에서 사거리 1000km로 스커트ER 미사일을 동해에 발사한 것은 중국 방향으로 서북쪽 1000km내의 수많은 중국 대도시를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군도 지난 11월 북중 국경선 일대에서 한반도 투입부대로 알려진 북부전구 38집단군이 “연한-2017”훈련을 진행했다. 하와이에서도 매달 핵투발 시 대피훈련을 시작했고 일본도 민방공훈련을 강화 하였다. 그런데 실제 전쟁터가 될 수도 있는 한반도에서는 직접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민방공 대피 훈련을 강화한다는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2018년 국방예산은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인 7% 증가한 43조 1581억원으로 확정되었다. 3축체제(Kill-Chain,, KAMD, KMPR) 등 북핵 대응체계 조기 구축을 위한 방위력 개선비는 13조 5203억원이나 국방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18-2022년 국방중기계획에 제시한 목표로 향후 5년간 78조 2000억을 투입할 것에 대비할 때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주민들을 못 입히고 못 먹여 굶어 죽기까지 하면서도 핵개발과 미사일 실험을 하여 앞으로 3개월 뒤면 완성된다고 존 볼턴 전 유엔미국대사와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말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 하와이나 일본 도쿄에서도 하는 민방공훈련도 소홀히 하고 3축체계 구축도 걸음마 수준이다. 잔치에 쓰기 위해 평소에 돼지를 잘 먹여 길러야 살찐 돼지를 요리하여 풍족한 잔치가 될 수 있다. 군대도 마찬가지이다.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면 안되지만 유사시 전쟁이 일어날 때 적을 능가할 수 있는 강한 군대가 없으면 그 국가는 패망한다. 고대 로마의 장군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국가안보는 군인만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국민이 혼연일치가 되어 대비해야 한다. ▲ ⓒ육사생도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절제된 동작을 생명으로 삼고 있다. [사진=김희철] 올해 육사 등 사관학교 응시율 역대 최고 수준...사관생도의 보행은 지축을 울린다.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올해 사관학교 응시율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해사 39 : 1, 공사 38.6 : 1, 육사 32.8 : 1 등 우수한 젊은이들이 대거 사관학교로 몰렸다. 현재의 사회를 이끌어 가며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좀더 정신을 차리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보다 행복하고 발전된 국가를 인계할 책임이 기성세대들에게 있다. 새해가 되면 생도대에는 새로운 바람이 분다. 신입생도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으면 재학생들의 계급장이 쪼개질 날만 기다리게 된다. 벽돌 하나는 둘이 되고, 셋은 넷이 된다. 근무 생도들도 바뀌어 후배들을 지휘하게 된다. 필자도 학년 진급을 앞두고 임관을 앞둔 선배들의 새로운 각오의 말이 떠오른다. “첫째, 더 명예로워지자. 둘째, 최후의 제복을 사랑하자. 의지가 약한 사나이는 곧 죽은 사나이를 뜻한다. 철학이 없는 군인은 백정과 같고, 우리들이 흘리고 있는 땀방울 하나 하나는 진주가 되어 맺힐 것이다. 초인(超人)답게 의지와 인내로 현실을 극복하자.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 지축을 울리는 사관생도의 보행자세..!” 연평도 포격 도발 시 해병대 지원율이 엄청났고 지금도 해병대 입대를 위해 별도로 헬스장 등에서 체력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피끓는 젊은이를 대표하는 사관학교 응시율이 계속 최고점을 찍는 우리 대한민국 전도는 양양할 것이다. 왜냐면 화랑대를 비롯한 각군 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의 보행으로 지축이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전역군인
    2017-12-2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 채용시험 합격 후 입사준비는 어떻게?
    ▲ 육사 입교 후 생도들은 승마수업을 받는다. 오른쪽은 필자의 육사 1차합격 통지서 ⓒ육군사관학교/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요즘 세태, 취업에 성공한 '화려한 백수'는 과로사(死)한다? 필자가 육군사관학교 합격 후 보냈던 한 달 정도의 준비기간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그들이 원하던 기업의 공채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은 뒤 입사하기 전까지 어떻게 보냈는지를 조사해보았다. 취준생 중에 취업이 확정된 화려한 “백수는 과로사 한다.”는 말이 꼭 맞았다. 주로 같이 취업 준비를 했던 친구들을 만나 축하와 위로주를 마셨다고 한다.혹, 이미 취업한 친구와는 점심시간에 만나 취업 후 노하우를 듣다가 저녁에는 시험에 탈락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한 자리로 매일 계속이었다. 특히 점심미팅 후 저녁까지 짜투리 시간이 애매해 찜질방, 영화관 등으로 시간을 때운 후 저녁모임에 참석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숙취가 남아 고생하였다가 점심미팅에 또 나가는 일정을 반복하다보니 화려한 백수의 과로사(死) 위기를 느꼈다고 한다.사관학교 합격자 발표는 조간신문에 게재되다.필자는 1977년 1월 6일(목요일) 조간신문에 합격자명단을 보았다. 하루 전날 TV에는 육사·공사 수석 합격자 발표는 있었지만 병무청에도 합격자 명단은 없었다. 밤새 잠을 설치면서 새벽5시, 6시 라디오 뉴스를 틀어도 명단은 발표되지 않았다.헌데, 아침밥을 먹으려고 준비하는 때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방문을 두드리며 부산말투로 말씀하셨다.“희철아, 니 합격했데이...”라며 한국일보를 들고 오셨다.신문을 펼쳐보니 주인 아저씨가 내 이름에 파란볼펜으로 네모를 그려 넣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과 친지들의 기대서렸던 얼굴들이 스쳐갔다. 또 1차 필기시험 전날 학교 운동장 스탠드로 불러내어 큰 엿을 주면서 합격을 기원했던 고3짝꿍 친구 일성이 얼굴도 떠올랐다.그런데 걱정이 또 생겼다. 선생님과의 약속 때문이었다.약속을 못 지킨 학생이 '수제자' 되다담임선생님이 육사시험 응시를 허락하실 때 조건을 서울대학교 미술대 원서를 내고 응시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당연히 대학 입시원서를 들고 학교로 향했다. 교실에 모여 있던 동창들은 모두 축하를 해주었다. 하지만 대입시험의 지옥 속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선생님과의 약속보다는 합격한 육사에 들어가 그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고 싶었다.헌데 교실에 들어오신 담임선생님(故이경은)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당해년도 입시에서 가장 먼저 성과를 올린 필자에게 “오, 수제자 왔어!…” 하시면서 육사응시 전 약속했던 것을 잠깐 잊어버리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이 아닌가?필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학입시원서를 몰래 꾸겨서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선생님과 약속을 어긴 학생이 졸지에 “수제자”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 필자는 육사합격 후 교회선생님의 조언으로 세브란스병원 재활원에서 지체부자유아동들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가장 보람 있고 유익한 입사 준비는 무엇인가?음주가무보다는 봉사활동과 사전지식 구축에 힘써야그해 1월 31일(월요일)이 육사에 입교하는 날이고 그때부터 4주 동안 기초군사훈련(신병교육)을 받는다는 통지가 왔다. 합격자 발표 후 입교까지는 25일간의 시간이 있었다.요즈음 기업에서도 채용발표 후 짧게는 3일에서 약 한달 가까이 입사준비기간이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입사 후 적응시간을 단축시키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저력을 키우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필자는 교회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교회선생님은 사회공헌 봉사활동을 추천해 주셨고 세브란스병원 재활원까지 동행하여 수간호사를 소개시켜주셨다.그때부터 지체부자유아동들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전신마비가 되어 손발은 따로 놀아 걷지 못하고 굴러다니면서도 항상 다른 곳을 보고 웃는 이성우가 내가 도와줄 대상으로 지정되었다.물리치료 받을 때 보좌를 하며 책을 읽어주고, 식사시간에 밥을 먹여주고, 세수도 시켜주며 같이 놀아주는 것을 통해 그들이 위로를 받는 것보다는 오히려 내 자신에 안식과 보람이 차고 넘치며 엔돌핀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오줌을 싸고 옷에 똥을 지릴 때에는 직접 갈아입혀야 한다. 처음에는 속이 불편해 구역질을 느꼈으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능숙해진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앞으로 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어떤 힘든 훈련을 받더라도 재활원 친구들을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각오와 다짐을 하게 되었다. 사지가 멀쩡한 내 자신에 대해 신(神)께 감사드렸다.요즘 취준생이 합격이 되면 그 즐거움에 입사 전까지 화려한 박수로 과로사 직전까지 간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그 과로가 '음주가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사회공헌 봉사활동'과 입사할 회사의 정보를 미리 알고 '사전 지식'을 넓히는 기회로 삼을 때, 보람 있는 입사준비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즉 입사 준비 기간은 정신무장과 직무지식으로 사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다.먼저 이겨놓고 싸운다손자병법 군형(軍形) 편에 승병선승이후구전, 패병선전이후구승(勝兵先勝而後求戰, 敗兵先戰而後求勝)이라고 했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싸움을 구하고,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시작해놓고 나서 승리를 구하려고 한다는 뜻이다.채용시험 합격 후 활용할 수 있는 입사준비기간은 그 회사원으로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취준생으로 힘들게 버티다가 얻은 취업의 기회를 자신의 취약분야를 보완하기 위해 외국어공부, 체력단련, 혹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정신무장 등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하는 직장인이 될 것이다.많은 취준생들에게 선승구전(先勝求戰)을 기대해본다. 끝.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안보팩트 발행인
    • 전역군인
    2017-01-1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면접시험에는 ‘정답’이 없다
    ▲ 면접시험장 ⓒ뉴스투데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발행인)신입사원 채용 면접 시 명문대·자격증 등 스펙이 전부가 아니다현재의 모든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발굴 채용하는 것이 회사 미래와 성패를 결정짓는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대학생들은 '인재의 객관적 조건'으로 생각되는 스펙을 쌓기 위해 졸업을 늦추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해외연수를 택한다.필자가 소속된 군인공제회는 6년 전부터 매년 공채로 신입사원을 뽑기 시작했다. ‘15년 신입사원 공채 시에는 5명 선발에 523명이 지원하여 104.8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16년에도 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채5기가 선발되었다.많은 지원자를 모두 면접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각 대학별로 1~5명씩 학교 성적 등을 참고로 컴퓨터로 돌려서 뽑았다. 이렇게 뽑힌 사람들을 다시 서류로 심사하여 5배수 정도로 압축시켰다. 이때까지는 스펙이 필요했다. 졸업성적도 B+ 이상이 되는 지원자들로 추렸다. 1차 면접은 본부장·팀장급이 심사위원이었다.면접에 나온 서류전형 합격자들은 공인회계사, 건축 및 토목 기사에 토익은 850점 이상 등과 같은 탁월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각 학교에서 1명씩 뽑았으니 지방대 출신이라도 그 능력은 탁월했다.허나 면접을 하면서 우열이 가려졌다.명문대 출신의 교만은 패착, '절실함'이 면접위원 마음 사로잡아가장 중요한 것은 “절실한 사람”이었다.보통 다섯 번 이상 채용시험에 응시했던 지원자들이라 자기소개시간에 발표는 흠잡을 때가 없었다.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SKY 출신들의 자세에서는 우월의식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으나, 여기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 자신을 채용할 것이라는 교만감은 패착이었다.모든 기업은 애사심(愛社心)을 갖고 회사를 위해 평생을 함께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을 선호한다.공채 1~3기는 주로 명문대 출신위주로 선발했으나, 결국 2~3년 경력을 쌓고는 다른 업체로 옮겨갔다. 그래서 “절실한 사람”이 훌륭한 스펙을 갖고 있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다.2.5배수로 압축된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2차 면접이 시작되었다.회사의 이사들과 기조실장이 심사위원이었다. 2차에서 놀라운 것은 1차 면접 시 우수한 지원자가 의외의 실망스런 성적이 된다는 것이다.요즈음 면접요령을 교육시키는 학원과정이 많이 생기다보니 1차 면접 시에는 연습한대로 능숙하게 하다가 2차 면접에는 교육받은 내용이 아닌 다른 것을 질문하니 당황하여 실수하는 지원자가 생겼다. 반면 오히려 2차 면접 시 소신있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지원자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면접시험에는 정답이 없다.그동안 공부하고 평소 가진 소견을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성이 있고 신뢰를 받을 수가 있었다. ▲ 체력측정 시험장 ⓒ뉴스투데이 체력이 약했던 필자, 목표에 대한 절박감으로 육사 체력측정 시험 통과필자는 육사입학시험에서 체력이 가장 걱정이었다.여름방학 때 종로의 육사전담학원에서 공부한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해 10월 서울 청량리공고에서 필기시험을 볼 때 한 교실에 40명 씩 시험을 봤으나 최종합격자는 2명 뿐이었다.필기시험 하루 전날, 학교수업 휴식시간에 짝꿍이었던 이일성(현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교수)이 교실 밖으로 불러냈다. 나보고 뒤로 돌라고 했는데 부시럭 소리가 나더니 접시만한 엿을 주면서 비어먹으라고 했다. 소중한 짝꿍의 합격기원이었다.1차 필기시험을 치루고 필자는 체력보강을 위해 매일 새벽에 남산을 올랐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려면 체력이 우선이다”라는 생각을 되씹으며 남산계단을 뛰어올랐다.충정로 미동초교 옆에서 셋방살이를 했으니 남산까지의 왕복은 2시간이 족히 걸렸으나 육사합격이란 목표는 악과 깡을 배양시켜주었다.체력측정 시 월등한 체력은 아니었지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고 드디어 면접시험을 보게 되었다.육사 골키퍼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소신 답변'도 면접 합격국가관과 인생관에 대한 건전한 사고와 심성을 갖고 있는지 성격에 결함은 없는지와 같은 질문이었고 별로 어려움도 없었다.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은 미리 준비하고 있어서 이순신과 나폴레옹이라고 거침없이 이야기 했다.훗날 육사에 합격한 동기생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기도 했다.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 동기생은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현재 육사에 재학 중인 김봉환 생도입니다”라는 대답을 했는데 면접 채점관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그 친구는 축구를 너무도 좋아했는데 삼사체육대회 시 육사 축구부의 골키퍼로서 육사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김봉환 생도를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친구도 육사에 거뜬하게 합격했다.면접시험관들은 지원자의 사상적 결함이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하지만 소신과 자신감으로 똑바로 대답하는 자에게 신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면접시험을 대비해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자기생각을 정리해놓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면접에는 정답이 없다.취준생을 위한 한 마디 조언, "주머니 속의 ‘송곳’은 튀어나온다"군인공제회는 회사 여건상 서류심사 후, 2번의 면접을 치루는 채용절차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 등 대기업 대부분은 3번 이상의 면접을 통해 인재를 선발한다고 한다.따라서 직업군인을 포함한 취업준비생들에게 몇 가지 참고사항을 정리해 보았다.첫째, 회사는 훌륭한 스펙을 가진 사람보다는 회사에 오랫동안 기여할 사람을 선호한다. 따라서 서울에 있는 일류 명문대보다는 오히려 지방대출신의 우수한 자가 절실하게 입사를 희망할 때 유리할 수 있다.둘째, 말을 잘하는 달변가보다는 신뢰감을 느낄 수 있게 진실을 말하는 지원자가 유리하다. 소신과 자신감은 중요하지만 자칫 교만해보이고, 더 좋은 여건이 생기면 거침없이 전직할 사람으로 느껴져 신뢰감이 상실될 수 있다. 잘 모르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개인의 소견을 진실되게 이야기해야 한다.셋째,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평소부터 근면하게 공부하여 어느 정도 성적도 유지해야 하고, 독서량을 늘려 인문학쪽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면접관의 전혀 의도하지 않는 질문이 나오더라도 나름대로의 논리도 갖고 있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고, 일단 서류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성적도 중요하다. 육사 2차 시험(면접, 체력측정)을 치루더라도 결국 필기시험과 예비고사(現수능) 성적의 우열이 당락을 결정짓기 때문이다.기타 자격증 등의 스펙은 없는 것보다는 더 유리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이다. 어떤 회사던 인재선발에서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취업준비생들은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능력과 인성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직장을 끝까지 찾아야 한다.그래서 면접시험에는 정답이 없다. 오직 최선을 다할 뿐이다. 끝.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주요 저서 및 연구-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전역군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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