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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5]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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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11월의 6‧25남침전쟁영웅,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발도메로 로페즈 미국 해병 중위’ 선정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고(故) 강재구 소령처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전우들을 구한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미국 해병 중위를 ‘2024년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5년 8월23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난 로페즈는 1947년 6월6일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6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에 지원했다. 한국에 도착한 로페즈는 미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하였으며,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소대원들과 함께 해안에 상륙한 로페즈 중위는 선두에서 사다리에 올라 해안 방벽을 넘은 후, 전방의 북한군 벙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던 중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우측 어깨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기어 수류탄을 다시 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멀리 던질 수가 없었던 로페즈 중위는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대신 자신을 희생하기로 선택했고, 결국 수류탄을 끌어안으며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러한 공로로 미국 정부는 1951년 8월 30일 미합중국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대한민국 정부는 2023년 4월25일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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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을 마치고 대상을 받은 최지효 학생은 소감 발표에서 “이책을 통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 지를 분명히 알게 되면서 나라사랑 마음이 깊어졌으며,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라를 빛내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초등부 금상인 김세진 학생은 심사위원 및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본인을 뽑아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해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저의 꿈도 장차 국방과학연구원으로 자유를 수호하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이날 1부는 국민의례에 이어 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 회장의 환영사,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과 김재창 명예회장의 축사에 이어 공모전 시상식으로 축제분위기가 이어졌고, 2부에서는 테너 지명훈과 싱어송라이터 이유진의 축가와 ‘할들육(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관련 퀴즈로 시작된 작가 장삼열 박사의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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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 시행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27일 “국가안보를 위해 오랜 기간 군에서 복무한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와 취업 촉진을 위해 이날부터 오는 7월26일까지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을 위한 신청·접수를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확보된 일자리에 지속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기업이 제대군인 채용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특히, 국가보훈부는 2021년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를 법률로 명문화한 뒤, 인증제에 대한 기업의 관심 유도를 위해 행정·재정·법률적 혜택(인센티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제대군인 고용우수 인증기업은 시중은행의 여신지원 시 금리 우대를 비롯해 관세 조사유예, 방위사업청 및 지방자치단체 우수기업 선정 평가 시 가점 부여 등의 우대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신청 희망 기업은 오는 7월26일까지 신청서류(국가보훈부 홈페이지 공지)를 준비하여 한국경영인증원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사무국에 전자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이미 국가보훈부는 6월20일 ‘인증설명회’를 온라인(ZOOM)으로 개최하며,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제도와 인증기준 등 세부 사항을 추가로 안내할 예정이다. 또한, 신청기업을 대상으로 한국경영인증원에서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통해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여부를 심사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국가보훈부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9월 인증기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류심사와 현장실사의 평가지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 고용인 수와 우대채용 현황, 제대군인지원센터 협력 정도, 근속 기간, 근로 만족도, 기업 재무 건전성 등이다. 최종 인증기업에 대해서는 제대군인주간인 10월 둘째 주 국가보훈부 장관 인증패와 인증 현판을 수여할 계획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제대군인에 대한 사회복귀 지원은 제복근무자로서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지금도 국가수호 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는 현역 군인들이 맡은 바 임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국가보훈부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제대군인들의 원활한 취업을 위한 고용환경 조성을 위해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고용 우수 인증기업에 대한 우대지원제도를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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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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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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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6]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동계 혹한기훈련이 끝나고 3월로 접어들자 군단장이 연대장들을 비교 평가하는 연대전투단 훈련이 바로 다가왔다. 당시 연대장의 임기중 가장 중요한 훈련이기 때문에 필자는 부하된 도리를 다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그동안 소개장, 중대장 등의 군생활에서 네 번에 걸친 연대전투단 훈련 경험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와 진수를 모두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볼 각오를 다졌다. 훈련에 임하는 신현정 연대장의 작전 마인드는 대단히 탁월했다. 부여된 상황에 대한 적시적인 작전 지침은 명쾌했고 단지 예하 부대들이 그 지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천하여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대대원들은 이미 지난 전투지휘검열시에 후방지역 작전 훈련(‘[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25)] 전투지휘검열도 끝나자 더 바빠진 청원대대(하)’ 참조)을 통해 숙달된 상태라 별로 어렵지 않았고, 훈련 결과는 또 대성공이었다. 특히 이번 훈련을 통해서 손자병법의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뜻과 의미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미 군단장과 군단 참모들은 신현정 연대장의 팬이었다. 게다가 평가의 주무를 맡은 군단 작전참모는 필자의 교통사고가 아니였으면 무적태풍부대 군자산 대대장으로 취임해 직속상관인 연대장으로 모셨을 유대우 대령(육사30기)이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90~192)] 잔인한 4월도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참조) 무적태풍부대의 군자산에서 상하급자 관계로 맺을 뻔했던 인연 때문에 유 대령이 필자를 아껴주는 모습이 확연하게 표출되는 연대전투단 훈련이었다. 물론 호국충절의 고장답게 연대 책임지역내의 괴산·음성·진천군수와 청주시장이 훈련을 격려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그 중에 청원군수의 위문이 가장 눈에 띄었다. 또한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다는 말처럼 성공적인 연대전투단 훈련종료 후 필자는 훈련 유공으로 군단장 표창을 받았고, 더불어 이번 호국충절의 고향에서 치룬 동계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 훈련을 통해 전임 사단장에 이어 신임 사단장에게도 확실하게 신임을 받는 계기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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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6]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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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4]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영호 사단장(학군7기)은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 때 만난지 2주일도 안되었지만, 동계 혹한기훈련을 잘하고 있는지 현장지도를 하기 위해 00비행장 주변에 배치된 대대의 숙영지와 훈련장을 또 방문했다. 사실 대부분의 병력이 전시에 동원자원으로 구성된 향토사단은 임무 백브리핑이 매우 중요하다. 현역 병사들이 자신의 개인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동원되는 소대장 등 간부에게 전투 임무를 전달 및 교육시키는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에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브리핑’이 반드시 필요한 전투준비이기도 하다. 훈련장을 방문한 사단장에게 필자가 훈련 진행 전반을 보고한 뒤에 동원되는 소대장에게 백브리핑을 하는 소총병이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브리핑’을 했고, 이어 비행장 외곽을 방어하는 현역 중대장이 자신의 임무를 발표했다. 사단장 앞에서 긴장할 것으로 예상되어 연습을 많이 시켰으나 병 1인 다역화로 소대장에게 전투 임무를 전달 및 교육시키는 역할을 할 병사는 소대 방어지역의 배치와 전투준비 그리고 우발상황 발생시 대처하는 요령까지 자신있게 또박또박 발표를 하자 사단장은 놀란 듯 박수까지 치며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 오히려 중대장이 더 긴장하여 더듬거렸으나 바로 전에 탁월하게 발표한 병사의 백브리핑에 감탄의 여운이 남아있던 사단장은 중대장에게도 칭찬을 가미했다. 그때 변종석 청원군수가 상황실 텐트로 불쑥 들어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단장의 훈련장 현장지도 시간에 맞추어 바쁜 일정의 군수가 사단장을 영접하기 위해 훈련장을 또 찾은 것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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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4]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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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3]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둔지에서 비상을 발령해 출동준비태세 훈련을 하고, 각 개인을 군장 상태를 확인한 다음에 30km행군으로 이동하여 숙영지를 편성하고 첫날밤을 보냈다. 이튿날, 2월 초이지만 깜깜한 새벽 기온은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져 혹한 속에 텐트에서 취침하는 대대원들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매우 걱정되어 상황실 텐트에서 현장확인차 밖으로 나갈려고 일어섰다. 바로 그때, 불쑥 텐트 출입구 거적을 젖히며 변종석 청원군수가 들어왔다. 변 군수는 대뜸, “대대장님, 민관군 통합작전을 강조하면서, 대대가 이 혹한에 훈련하는 것을 왜 군청에 알리지 않았습니까?”하며 힐책하였다. 그리고는 수행자에게 “여기 담당 면장이 누구냐?”며 “면장은 자기 지역에 우리 대대가 훈련하는 것도 파악 못하고 뭐하는 것이냐?”고 정색을 하며 야단쳤다. 텐트 밖은 새벽별이 초롱초롱한 아직도 어두운 밤인데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책임지역 농가들의 피해가 없는지 현장 확인차 다니다가 부대 훈련 간판이 있는 것을 보고 차를 돌려 대대 훈련장으로 기습 방문한 변종석 군수의 목민관적인 자세와 군을 사랑하는 마음에 존경심이 깊어졌다. 필자는 성토하는 변 군수를 간신히 달래며 감사함을 표했다. 다음 일정 때문에 변 군수가 훈련장을 떠나고 얼마 안되어 해당 면장이 위문품으로 떡국을 끓여와 중식에는 혹한에 떨던 대대원들이 포식을 했고, “사전에 알려주시지..., 군수님에게 야단을 맞았다”며 넉두리 했다. 역시 호국충절의 고향다운 청원군임을 확인했다. 그날 밤에도 사진처럼 변종석 청원군수와 군의회 의장이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가져와 야전 현장에서 전달식을 했다. 청원군은 과거 임진왜란 때 부모산 및 상당산성 전투와 일제 강점기 의병대장 한봉구 활약 등 애국심이 불타는 호국충절의 고장이다. 이번 동계 혹한기 훈련을 통해서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됐고, 변 군수의 기습적인 이벤트에 대대원 전체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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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3]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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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2]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 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신년 초 대대를 들썩거리게 만들며 바쁘게 준비하여 사단장을 비롯한 300여명에게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을 마치자 늦겨울 혹한 속에 동계 혹한기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년전 대대장 취임식에서도 혹한과 폭설속에 행사를 치루고 격려차 참석한 하객들이 빙판길을 안전하게 이동해서 무사히 복귀했는지가 걱정이 되어 일일이 전화로 확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부하들은 상관의 신뢰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고 그 결과는 하루아침에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으로 치룬 연초 시범 덕분인지 혹한기 훈련은 사전 준비부터 숙달된 참모들이 철저하게 준비하여 혹한 속에서도 내실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사시에 대대의 주임무는 비행장 방어이기 때문에 전면 방어가 가능하도록 각 중대의 진지는 울타리를 연하여 구축되었다. 하지만 병력 통제와 원활한 훈련 진행을 위해 한곳을 정하여 대대 전체가 모여 숙영하고 있었다. 민가가 많은 향토사단 후방지역 특성을 고려해 과거 전방 GOP부대 근무시 훈련처럼 분침호까지 구축하는 무리였고, 대신에 텐트안의 보온을 위해 핫패드를 많이 준비했다. 특히 비행장을 주타격 목표로 저공침투하는 북한 저격여단을 격퇴하기 위해 야간에 낙하하는 적들을 공중에서 격멸하도록 탐조등을 중대별로 준비해 훈련에 임했으나 전시에 대대전체가 동원되어 실전에 임할 때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필자가 대대장 취임후 바로 시행했던 군사령부 주관 공군기지방어 전술토의에서 대통령 훈령까지 변경시키도록 획기적으로 발전 방안을 제시해 전투태세를 강화했다. 하지만 야간에 침투하는 적들을 격퇴하기 위한 탐조등 구입 예산이 턱었이 부족한 상태였고, 군청에서 지원이 가능한지 은근히 부탁도 했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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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2]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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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1]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⑧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영호 사단장은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을 마치며 참관자들 앞에서 시범 준비를 한 청원대대를 극찬했다. 동시에 2개의 시범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단에 건의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필자에게 어필했던 대대 참모들은 성공적으로 행사가 끝나자 희열을 느끼며 보람과 성취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대대원을 비롯한 사단의 전부대에 청원대대가 확고부동한 최고 수준의 선봉부대임을 재확인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사단장이 복귀하자 신현정 연대장은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시범의 대성공 때문에 인접 연대장이 농담처럼 “청원대대장을 업어주라....ㅋ”라는 말을 하였다며, 경쟁의식 속에 몹시도 자신을 견제하는 것을 느꼈다고 즐거운 불평도 했다. 헌데 그 불평의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움찔하며 긴장했다. 인접 연대장의 농담이 어떻게 변화되어 필자에게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긴 재활치료의 아픔을 이겨내며 성공해도 불안한 것은 정답이 없기 때문인가? 확실히 정답은 없었지만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은 진리였다. 고(故) 이완목 부대대장과 참모들 그리고 23명의 예비군 중대장과 현역 대대원들이 긴 재활치료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쩔뚝거리며 노력하는 부족한 DJ대대장을 믿고 따라와준 열성에 감사할 뿐이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2개 분야의 동시 시범은 사단의 많은 인원이 분야별 시범을 위해 반복해서 타지역으로 이동해서 소집하는 노력을 감소시켰고, 대대원들의 불평을 감안해서 배려해준 해당 참모의 토의 진행으로 동시에 사단의 지침을 명확하게 전파하는 기회도 되었다. 세월은 쏜 살같이 날아간다. 시범이 끝나자 벌써 대대장 취임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의 대대장 근무도 ‘정비공’ 건배사처럼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는 이 세상에서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으로 자랑스럽고 충성스러운 대대원들과 함께 또다시 헤쳐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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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1]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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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0]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⑦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왜란 및 병자호란의 후유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많은 사상자와 가옥 파괴 및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났고, 특히 청군이 철수하면서 끌고 간 50만 명에 달하는 조선 여성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청군이 여자들을 끌고 간 목적이 포로교환 명목의 속가를 받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싸도 25~30냥이었고, 대게 150~250냥이었으며, 비싼 경우에는 1,500냥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런 때문에 청군은 양민보다도 양반집 여자를 더 선호해 포로로 데려갔다고 한다. 일부 비싼 값을 치르고 아내 및 딸들을 찾아온 경우도 있지만, 되돌아온 대부분의 환향녀(還鄕女)들이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은 조상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 하여 이혼의 문제가 조선 정치 및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 뒤로부터 남의 남자와 잠을 잔 여자를 ‘화냥년’이라 부르게 되었고, ‘호로자식’은 제풀로 자란, 교양이 없는 사람을 욕하는 말로 버릇없는 놈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포로로 끌려간 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국방력 강화를 소홀하여 전쟁에서 패배하며 나라와 백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치가들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위로받고 보상을 받아야할 환향녀(還鄕女) 등 희생자들에게 도리어 책임을 떠넘긴 꼴이 되었다. 이처럼 국가안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내용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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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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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0]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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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9]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해 사단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은 13시부터 시작됐다. 시범에 참석한 각부대 지휘관 및 참모, 그리고 정훈조교 병사 등 250명을 대상으로 필자의 설명과 VTR 시청 및 해당 참모 주관의 내실있는 토의, 그리고 조영호 사단장의 훈시 후에 약 1시간 30분간의 교장 현장 견학순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시범시에 필자가 과거 역사로 인해 현재까지 사용되는 ‘환향녀(還鄕女)’라는 단어를 돌이키며 안보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과 북한 김정일 정권의 현상태가 사이비 종교집단과 유사해 현혹되지 말고 철저히 대비하자고 강조한 내용이 효과가 있었다. 왜란 및 호란 때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일본 및 청나라로 끌려갔다. 이때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를 ‘화냥년’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로는‘환향녀(還鄕女,고향에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화냥년’과 ‘후레자식’이란 욕이 유행하게 되었다. 화냥년은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여자란 뜻으로 환향녀에서 나온 말이고, 후레자식은 ‘호로(胡虜:오랑캐 호, 종 노)자식’으로 오랑캐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자가 낳은 자식이라는 의미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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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9]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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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8]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선 정신교육 및 예비군 교육용 VTR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필자는 지난해 정신교육을 시켰던 자료가 충분하게 준비되어있어 녹화 촬영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편집이 문제였다. 정훈참모가 도와준다고 했으나 책임지역내에 공군사관학교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마침 공사 및 고교동기생이 공사에 근무하고 있어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직접 관련 참모와 협조해 다소 어려움이 있었으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북우위의 확고한 대적관 확립을 위해 정신교육의 날 행사, 집중정신교육, 시사안보 교육기법 등을 부대여건을 고려해 다각도로 모색한 방안을 제시했다. 예비군 교육훈련 방안 시범은 지난해 받은 전투지휘검열 수검후에 2군사령관 조성태 대장의 지시로 9군단장 안성용 중장(육사23기)을 위시해 각 사단장 등 장군 9명(별 19개)을 포함한 100여 명이 동시에 대대 예비군 훈련장을 시범식 견학하는 등 수많은 타부대 지휘관들이 다녀간 교장이라 특별하게 추가로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소대장급 이상 지휘관과 정훈조교 병사 등 250명이 참석한 토의는 정훈참모 및 동원참모가 직접 진행하도록 협조해 대대에서 판을 깔아놓고 해당 참모가 사단지침 및 시행 방안을 제시하며 진행하여 더욱 효과적인 시범식 토의가 될 수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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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8]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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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압록전투’의 ‘남제평 경감’, 10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7월29일,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벌어진 ‘압록 전투’에서 적의 이동 경로를 사전파악 후 매복 작전을 통해 적 정규군을 섬멸하는 놀라운 전공을 세운 남제평 경감(당시 경위)을 ‘2024년 10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18년 10월25일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출생한 남제평 경감은 1948년 11월15일 경찰 경위로 임용됐다. 1950년 곡성경찰서 정보참모로 재직 중 발발한 6‧25남침전쟁 1개월 만에 전라남도 곡성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당하자, 300여 명의 곡성경찰서 대원들은 북한군의 남하 저지와 관할지역 사수를 결의하고 작전지휘소를 태안사로 옮겼다. 1950년 7월29일 북한군이 경상남도 하동에서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곡성군 죽곡면 압록교를 통과할 예정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남제평 경감은 주변에 매복한 후 적 대열을 기습했다. 약 4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적군 52명 사살, 생포 3명, 트럭 4대를 포함한 장비 70여 점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적군의 이동을 일주일 이상 지연시킴으로써 아군의 낙동강 방어작전에 크게 공헌했다. 압록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북한군은 보복을 위해 8월6일 08시경 곡성경찰서 주둔지인 태안사를 포위 공격했다. 1개 연대에 달하는 적을 상대로 남제평 경감과 47명의 경찰관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써 살신보국(殺身報國)을 실천했다. 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50년 12월, 경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하였다. 한편, 전라남도 경찰국은 1985년 8월 곡성군 죽곡면에 태안사 전투에서 전사한 경찰관 48명의 넋을 추모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경찰충혼탑을 건립하였으며, 전남경찰청에서는 매년 8월6일을 전후해 경찰충혼탑에서 태안사 작전 전몰경찰관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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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압록전투’의 ‘남제평 경감’, 10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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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7]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신교육강화 분야는 정훈 참모가 전반기 상급부대 불시 검열시에 좋은 성과를 올렸다면서 고집하는 바람에 예비군 교육훈련 분야를 포함한 두가지 시범을 동시에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사단의 이러한 지시를 받은 대대 참모들은 심한 불평을 쏟아냈다. 지난해 각고의 노력으로 준비해 높은 성과를 올리며 사단을 빛냈던 예비군 교육훈련 분야 한가지도 제대로 시범을 보일려면 엄청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데, 정신교육강화 분야까지 동시에 시범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단에 건의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필자에게 어필했다. 이때 사단 정훈 참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대참모들이 정신교육강화 분야까지 포함한 동시 2개 시범을 거부하려는 분위기를 어떻게 감지했는지 놀랐지만 역시 ‘정비공(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다)’이라는 건배사의 ‘비밀도 없다’는 말처럼 그 소문이 사단참모들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 같았다. 정훈 참모는 사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터이니 걱정말고 준비하라며 계획대로 시범을 보일 것을 간곡하게 강요했다. 부여되는 임무와 일을 겁내지 않고 좋아했던 필자는 즐거운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미소를 띄웠지만, 우선 시범 준비에 앞서 대대 참모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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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7]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