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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0]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대대장 취임후에 시작된 읍면대의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의 경계초소 새벽순찰을 매주 다니면서, 특히 낭성면 무기고가 협소하고 허술하며 노후되어 피탈우려도 있고 파출소 직원 및 경계근무자가 관리가 어려운 상태로 파악되어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해당 예비군 중대장도 그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재신축을 상급부대에 건의했으나 진척이 않되어 관심이 촉구되다고 했다. 연대 및 사단에 확인한 결과 예산 반영이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할 수 없이 변종석 청원군수에게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하자 변 군수는 주저없이 군의회 의장이 낭성면 출신이니 의장과 협의해 함께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필자는 바로 군의회 의장을 만나 낭성면 예비군무기고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불순분자에 의해 피탈이 우려되고 지역 주민들도 불안하게 생각한다며 시급히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현실태를 설명했다. 의장은 놀라며 “그러면 빨리 청원군수에게 무기고 신축 예산을 의회로 건의하면 바로 심의해서 통과시키겠다”는 대답을 얻었다. 당시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을 군청에서 받아내는 것은 타부대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사항이었지만, 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청원군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대의 애로사항을 해결한 덕택에 낭성면 지파출소 무기고의 취약점이 신축보강되어 상급부대 회의시에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한 효율적인 협업 조치로 전파되기도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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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0-1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9]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비록 우의를 입었지만 세차게 쏟아붓는 폭우는 온몸을 적셨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비를 흠뻑 맞은 변종석 청원군수도 집중폭우로 인한 피해 현장에서 약속이나 한 듯 우연히 만나 청원군을 아끼는 마음을 서로 같이 한 것에 대한 공감대와 희열을 느끼며 각자의 사무실로 돌아가 후속조치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 필자의 긴급 지휘보고를 받은 연대장은 수해 현장에서 청원군수를 만나 피해복구 지원 대책을 상의한 것을 칭찬하며 즉각 사단에 보고하였다. 사단 기동대대 전원이 기상과 동시에 청원군 미호천 수해지역으로 우선 투입되어 수해복구를 시작했다. 이는 청원군청과 청원대대의 확고한 민관군 통합작전 태세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집중폭우으로 인한 수해복구에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 결과로 부대와 기관 및 지역 주민들은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 육사 동기생인 사단 공병대대장 권태환 중령이 급하게 필자를 찾는 전화가 왔다. 예비군 교육 현장을 확인하다가 사무실에 들어와서 권 동기의 전화를 받았을 때 충북도청, 청원군청과의 실무협조가 잘 않되어 도움이 필요하다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지역 대대장이 해결할 임무인가?’ 하면서도 왠지 사단에서도 협조를 못하는 사항을 필자가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뿌듯함에 흐뭇한 미소를 띄웠다. 동시에 군부대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적극 협조할 것이라 믿음을 주는 변종석 청원군수를 사단에서도 신뢰한다는 생각에 그가 너무도 감사했고 든든했다. 사단 공병대대장의 협조 요구사항은 곧 개최할 ‘국군의 날’ 행사와 동계를 대비해 연병장 복토 및 정비 공사를 앞두고 모래가 많이 필요한데 미호천 모래를 채취하여 활용하려면 정부기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며, 효율적으로 민관군통합작전을 잘하는 대대가 청원군청에 직접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필자는 즉시 군청으로 향했고, 집무실에서 사단의 애로사항 설명을 들은 변 군수는 해당 과장을 바로 호출해 이번 집중호우에서도 사단 기동대대원들의 지원으로 피해복구 시간이 단축되었는데 사단에서 필요한 양만큼 모래 채취를 허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 사단 공병대대장은 애로사항이 해결되었다며 고마움의 전화를 보내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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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0-1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8]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현재 청원군은 청주시와 통합되었고 청원대대는 해체되었지만 당시에 필자의 청원대대는 14개 면대와 1개 기동대 그리고 8개 직장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면대의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에 상근예비역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상급부대에서 대대장의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지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전방의 GOP철책에서 근무하는 대대장들은 매일 야간 순찰을 다니는 것처럼 후방지역 향토사단에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야간 순찰을 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대장 취임 후에 야간 지파출소 무기고 순찰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 감행했었다. 그러던 중에 한여름 청주 지역에 폭우가 심하게 내렸던 어느날 새벽 3시 즈음에 야간순찰을 위해 관사 앞에 대기하던 짚차에 올랐을 때 불연듯 폭우로 인해 미호천의 범람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교량이 떠올랐다. 필자는 폭우속에서 출발하려는 운전병에게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 순찰에 앞서 강내면 미호천 교량으로 가자고 방향을 전환시켰다. 새벽 4시즈음 미호천 교량 옆 공터에 도착해 범람의 위험을 확인하러 차에서 내리자 깜깜한 심야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터에 일부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변종석 청원군수와 직원들이었다. 군수는 차에서 내리는 필자를 확인하고는 대뜸 “아니 대대장님이 폭우가 쏟아지는 이 새벽에 어쩐 일이냐?”고 놀라며 말을 던졌다. 그리고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띄웠다. 폭우로 인한 미호천 범람이 우려되어 현장을 확인하려는 똑같은 마음에 서로가 감사하며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범람으로 피해가 발생한 지역의 대민지원 소요를 판단했고, 변 군수는 대대의 병력이 적으니 바로 사단 기동대대를 투입시키는 것이 좋겠다며 군청에서도 지원 요청을 할 터이니 대대장도 사단에 건의해서 재빠르게 피해지역 복구하자고 협조했다. 비록 수해복구였지만 적시적이고 효율적인 민관군 통합작전이 이루어졌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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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0-0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7]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대장 취임식에서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는 필자를 보고 한없이 걱정했던 변종석 청원군수는 대대장 임기 기간 내내 필자와 돈독하게 지냈다. 변 군수는 1933년 충청북도 청주군 북일면 초정리에서 태어나 청주농업고등학교, 청주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1970년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농민당 후보로 충청북도 청주시-청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정종택 후보와 한국국민당 윤석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북도 청원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필자가 대대장을 끝낼 무렵인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당선되어 군수를 재선했다. 그러나 1997년 당시 초정약수 스파텔 건립과 관련하여 모 건설회사와의 뇌물수수혐의로 2001년 징역 3년, 추징금 1,160만원을 확정 판결받아 군수직을 상실하였다. 영어(囹圄)생활을 하던 그는 2003년 8월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되었으나 이듬해 2004년 12월21일 초정노인병원(현 초정노인요양원)에서 71세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대대장 근무시에 고(故) 변종석 군수는 필자보다도 나이가 25세 정도 많고 운동을 좋아하며 적극적인 성격이라 지역 주민들의 인기가 높았다. 필자는 대대장 재임기간동안 명절이 되면 군납양주 한 병을 들고 군수의 자택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는 더 많은 선물도 받아오곤 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런데 변 군수는 과거 5공화국 시절 삼청교육대가 운용될 때 축구선수로 지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중 경찰에 밉보여 삼청교육대 대상으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당시 대대장이 경찰서를 찾아와 변 군수를 보증하며 꺼내주어 위기를 모면한 덕택에 우리 군에 항상 감사해하며 애군심(愛軍心)을 갖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민관군 통합작전 태세 공고화에 큰 기여를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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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0-0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6]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전국시대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 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못한 채 고심했다. 이 때에 모수라는 식객이 데려가 달라고 했다. 평원군은 어이없어 하며,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낭중지추:囊中之錐).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지 않소?’ 하고 반문했다. 모수는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끝 뿐이 아니라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하고 재치있는 답변을 했다.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고,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으로 환대받고, 구원군도 얻을 수 있었다는 사례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유래됐다. 창조는 모방이다. 중대장겸 정보장교인 이지현 대위가 정보분석조 임무를 수행하며 전투지휘검열을 받다가 정보분석조 가방이 너무 불편하여 등산용 조끼의 주머니에 장비들을 넣고 가방없이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건의했다. 좋은 착안이라며 극찬을 해주었는데 지금은 전부대가 활용하고 있고 대대가 최초로 개발한 부대가 되었다. 또한 마침 상급부대 불시 검열시에 제시하였는데 검열관도 감탄하며 전군에 전파하겠다고 칭찬했으며, 이어 기무부대장, 연대장 그리고 대대를 갑자기 방문한 부사단장에게도 보고하자 부사단장은 사단장에게 보고하겠다며 정보분석조 조끼를 사단으로 가져갔다. 결국 정보분석조 조끼는 사단에 통일되어 활용하게 됐고, 이지현 대위는 낭중지추(囊中之錐)가 되었으며 이로인해 잠수하려던 난득호도(難得糊塗) 실천은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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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5]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아보협업연구소장] 행사를 위해 60여명밖에 안되는 대대원들이었지만 부지런히 연습해 태권도와 군무 시범도 보이면 참석한 기관장들과 어린이들의 환성과 박수에 시범을 보인 대대원들은 사기도 고양되었다. 어떨 때는 지역 태껸도장 사범과 협조해 단원들을 초청하여 태껸 시범을 모이면 참석한 주민들도 매우 즐거워했다. 국군의 날 행사를 하면서 단풍이 시작되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도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1994년 4월 대대장반 교육시에 대구 팔달천변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입원하며 시작된 병원 생활이 또 재골절 수술까지 무려 8개월이나 됐다. 그동안 군사영어반 6개월, 군수학교 2개월 등 비정상적인 보직에서 벗어나 대대장으로 취임한지 9개월을 포함해 31개월이나 되었다. 그중에 정체된 시간이었던 22개월의 재활기간 동안 이룬 군생활의 아쉬움을 지난 9개월 동안 원없이 바쁘고 보람차게 달려왔다. 대대장 취임후 천군만마가 된 이완목 부대대장의 잠수(潛水)하라는 조언을 명심하고 몇 개월 동안 소리없이 부대 내실을 기하며 지역 주민들과 호흡을 함께하는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한 대민활동에만 집중했었다. 하지만 ‘일부러 바보인 척하기도 참 어렵다’라는 의미의 정판교가 남긴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고사성어처럼 경쟁하는 인접부대를 자극하는 불쑥 튀어나오는 일이 또 발생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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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4]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매년 10월1일 즈음에 대대에서 연례적으로 준비하는 ‘국군의 날’ 행사는 큰 보람을 느끼게 한다. 믿음의 집 뇌성마비자와 희망원 고아들, 보이스카웃단원들 그리고 지역 기관장들을 초청해서 민관군이 하나가 되는 행사를 치루었다. 국군의 날처럼 민관군초청 행사외에도 지역 기관장들과는 주기적으로 모임을 했다. 특히 지역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변종석 청원군수와는 형제나 부자(父子)처럼 더욱 각별하게 지냈다. 변 군수는 필자보다도 나이가 20세 정도 많고 운동을 좋아하며 적극적인 성격이라 지역 주민들의 인기가 높았다. 필자는 대대장 재임기간동안 명절이 되면 군납양부 한병을 들고 군수의 자택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는 더많은 선물도 받아오곤 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런데 변 군수는 과거 5공화국 시절 삼청교육대가 운용될 때 축구선수로 지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중 경찰에 밉보여 삼청교육대 대상으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당시 대대장이 경찰서를 찾아와 변 군수를 보증하며 꺼내주어 위기를 모면한 덕택에 우리 군에 항상 감사해하며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었다. 또한 서부경찰서장인 한진희 총경(훗날 서울경찰청장 역임)은 청주에 혼자 내려와 살고 있었는데 수시로 관사를 찾아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냈고 덕분에 대대정문 앞 가로수 터널에 신호등을 설치하도록 협조를 해주어 보다 안전하게 차량들이 부대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한편 당시의 지검장은 나름대로 지식인임을 자처하며 필자에게 각별했는데 기관장 회식시에 술에 취해 “한국에서는 숨만쉬면 구속가능하다”는 농담도 하여 필자를 당황시켰고, 실제로 타지역 출신 교육감이 얼마 뒤에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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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3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3]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믿음의 집’ 박선규 목사님은 자비를 털어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무연고 걸인과 정신박약아, 뇌성마비자들을 믿음의 집으로 데려와 숙식을 제공하는 복지시설을 운용하며 사회에서 버려지고 어두운 곳의 빛과 소금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사님의 믿음의 집은 정부에서 아직도 복지시설 인가를 못 받아 어려움이 많았고, 대대에서 도로보수, 주변 청소 및 봉사활동 등을 수시로 제공하는 작은 도움에 고마움을 느끼며 대대의 일이라면 발벋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지역 주민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군부대 역할에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얼차려와 정신교육을 받은 사고 및 문제병사들을 2박3일 동안 믿음의 집으로 보내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수용된 어려운 사람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며 청소와 심부름을 하도록 한 뒤에 소감문을 받으면 대부분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고 건강한 신체에 감사를 느끼고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국군의 날 등 지역 주민 초청행사시에 대대를 방문한 믿음의 집 가족들이 군기교육시에 봉사 활동을 한 병사들을 다시 만나면 너무도 반가워하며 고마워해 그들은 감동과 보람을 느끼게 됐고, 오히려 봉사활동을 하여 혜택을 주기보다는 사고 및 문제 사병들 관리에도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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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2]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후방지역의 군부대는 원할한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해 대민관계가 중요하다. 상근예비역이 사고를 내면 군사경찰(헌병) 보다 인근 파출소에서 먼저 사고를 접수하고 처리한다. 이후에 군사경찰이 현장과 파출소에 도착해 피의자를 인수하여 조사한다. 역시 노마지지(老馬之智)였다. 대대 주임원사는 이미 지역내 모든 파출소장과 친분이 있었고 지역 상근예비역들이 사고를 내면 파출소에서는 바로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해줘 대대는 신속한 사후처리를 할 수 있었다. 주임원사는 지혜롭게 대민관계를 유지하며 군입장에서 대대원들을 보호했다. 사고친 병사들은 대대 군기교육대에 입소시켜 얼차려와 정신교육을 병행했다. 그 방법중에 대대 작전지역내에 위치한 복지시설 ‘믿음의 집’을 최대로 활용했다. 필자는 고교 졸업후 육군사관학교 입교전의 한달 시간동안 신촌 세브란스병원 재활원에서 봉사했던 추억이 있다. 그때 건강한 신체를 허락해 사관학교에 응시할 수 있었고, 몸이 불편한 뇌성마비 환자들에게 봉사하는 기회를 만들어준 하느님께 너무도 감사했고, 험하고 힘든 군생활을 이겨내는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과거 소중했던 추억을 되살리며 사전에 지역 면대장에게 사회복지시설 정보를 입수해 가족과 아들을 데리고 먼저 뇌성마비 환자들과 무연고 걸인들을 모아 생활하고 있는 ‘믿음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감동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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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1]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변 어려운 사람들을 조용히 도우며 조용히 민관군 협업에만 중점을 두고 부대운용을 하다보니 잠수시기(潛水時期)가 자연스레 도래했다. 사람은 잘잘못을 떠나 처지가 딱하고 한가로우며 외롭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사서오경의 하나인 대학(大學)에서는 이렇게 답한다. 군자는 반드시 혼자 한가로이 있을 때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항상 자신의 언동을 점검하지만 (君子必愼基獨也/군자필신기독야), 소인은 그러할 때 착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다(小人閒居爲不善/소인한거위불선)고 했다. 신독(愼獨)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해야 군자라고 중용(中庸)에서도 가르친다. 맹자(孟子)는 같은 맥락으로 홀로 어렵게 되었을 때 의(義)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아직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지만 10월이 되자 장군 인사가 있었다. 필자가 작전보좌관 시절에 사단장으로 모셨던 이재관 대장(육사 21기)이 대침투작전중인 1군사령관으로 취임했고, 뒤이은 인사로 지팡이를 짚고 DJ대대장 취임을 허락하며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어준 이상신 장군도 사단장직을 인계하게 됐다. 더불어 신현정 대령이 연대장 보직전에 군사령부의 본부사령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든든한 뒷백이 되어준 조성태 대장(육사20기)도 2군사령관 임기를 마치고 야인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인정과 칭찬을 들었던 신 연대장도 신뢰하던 상급 지휘관들의 교체로 실망이 몹시 큰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잦은 연대 지휘관 참모 회식자리에서도 일부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정신없이 바쁘게 임무수행하다가 한가로운 여유를 찾게 될 때 더욱 신중하라(신독/愼獨)는 사서오경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명언이 가슴 깊히 파고든다. 게다가 대대의 유격훈련이 시작될 즈음 예하 면대에서 상근예비역 무단결근과 휴가미귀자가 발생했다. 인접 대대에서 현지탈영 사고에 이어 필자의 대대에서도 사고가 계속되자 연대장은 사단으로부터 더욱 불편한 입장이 되었다. 이완목(삼사14기) 부대대장의 조언에 따라 잠수하며 내실을 기하는 부대관리에 집중했으나 난관에 봉착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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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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