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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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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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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3)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하지만 영관영어반에서 만난 선배중에는 광주 출신의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중국인 공산주의자로 행세를 한 정율성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도 있었다. 정율성이 북한과 중국에서 보였던 불손하고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지만 화려한 작곡가로서의 삶처럼 그 선배도 생도시절부터 뛰어난 지혜와 지휘생도 활약으로 후배 생도들의 존경심을 받아왔고 필자에게는 목발 및 지팡이를 짚고 있다고 해서 DJ라는 별칭을 즐겨 불러 주었다. 또한 그는 명석한 지능으로 영어 수업도 우수한 성적을 계속 유지했다. 마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정율성처럼 그의 모습은 수업시간에 뛰어난 영어 회화능력으로 교관들의 칭찬을 받아 학생장교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일과후 독신자 숙소에서도 타 선배들처럼 잦은 출타를 하거나 만취되는 일도 없이 착실한 학생장교로 돋보였고 필자는 친절하게 학업을 도와주는 그가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고 대령으로 일차 진급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그는 매우 힘든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생이 사업을 하는 데 급전이 필요하고 진행상 곧 회수 가능해 일주일 뒤면 갚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현금이 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필자도 교통사고 후에 많은 출혈이 있었고 저축한 돈도 별로 없어 죄송했다. 선배의 계속 독촉에 못이겨 현재 들고 있는 적금을 해약하면 요구한 금액의 반정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거라도 빨리 주면 바로 해결하고 일주일 뒤에 갚겠다고 다짐했다. 하는 수 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 적금을 해약한 후에 그 선배에게 전달했다. 물론 일주일 뒤에 갚는다고 해서 가족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에게 갚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돈을 주고나니 빌려준 사람이 을이 되어 있었고, 그는 여유롭게 생활하며 빌린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결국 교육 종료 직전에 그 선배에게 아직까지도 가족에게 말을 안했으니 빌린 돈을 갚아주어야 통장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독촉했다. 그 선배는 다음주로 다시 미루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던졌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생도시절부터 탁월한 모습으로 존경을 했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다. 가짜 한국인 정율성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그의 언행에 현혹된 필자가 부끄러웠고, 이후에는 잘 아는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금전 문제가 생길 때에는 여유가 있어 대출이 아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것이 돈도 잃지 않고 더구나 사람도 더 잃지 않는 길이라는 교훈을 영관영어반 교육과정에서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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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2)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㉗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율성이 6·25남침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군가도 작곡했지만 인민군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점령군으로서 자유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1·4 후퇴 때는 중공군과 함께 재차 서울에 내려와 조선궁정악보를 약탈해간 매국노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광주 출신이지만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공산당원으로 변절한 자를 추모하며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추진했던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은 동족상잔의 비국을 겪은 자유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현재도 핵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는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으려면 견고한 한미동맹이 절실한 실정이다. 필자가 다녔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북한의 재 남침에 대비해 합동참모본부의 주요부서에 근무하며 군사전략을 담당했던 용삼남(육사33기) 선배로부터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용 선배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재활치료에 전념했던 필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생도시절 럭비부 선수 생활을 했는데 운동중에 부상을 입어 척추가 심하게 손상되어 의사들이 판단할 때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였으나 강한 의지로 철저하게 운동을 하여 척추 주변 근육을 강화시킴으로써 전혀 불편함 없이 더 건강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합참 근무시에 매일 새벽에 가장 일찍 출근하여 책상 및 의자 정리 및 청소를 한 뒤에 책상위에 올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300개씩 하여 근육을 강화시켰다. 그가 원주에 있는 부대에 근무할 때에는 고속도로에서 시비를 걸던 조폭을 한방의 주먹으로 넉아웃시킬 정도로 강해졌다는 여담도 남겼다. 건강한 체력은 건전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업무에 질도 고양시킬 수 있다. 건강의 이상을 극복하며 지칠줄 모르는 용 선배의 체력에 상관들은 힘든 업무도 쉽게 맡길 수 있었고 업무상 만나는 미군들과도 쉽게 친해져 한미 연합작전과 군사전략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일과후에는 독신자 숙소에서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을 연주하며 하루를 마감하여 건강상 어려운 위기를 적극 극복하는 강한 의지와 동시에 예술감까지 가진 문무를 겸비한 군인으로 끝없는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앞으로의 군생활의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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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1)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㉖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0월2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에 세워져 있던 중국 음악가 ‘정율성 동상’이 기단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정율성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 귀화한 음악가로, 북한·중공군 군가를 작곡한 인물인데, 광주시가 기념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정율성 동상은 중국 청년단체가 제작해 광주 지역 청년단체에 기증한 것으로 2008년 광주 남구 양림동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 입구에 세워졌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이날 재물손괴 혐의로 보수단체 회원 윤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전날(1일) 오후 정율성 흉상 목 부분에 밧줄을 묶고 2.5톤 승합차에 이를 연결한 뒤 쓰러뜨리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정율성 흉상은 위의 사진처럼 약 1m 높이의 기단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기단 옆 땅바닥에 누운 모습으로 발견됐다. 윤씨는 범행 직후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중단하라고 광주시에 요구했는데 이를 이를 수용하지 않아 강제로 (흉상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경찰에서 “내가 그랬다. 3일 오전에 경찰서로 가서 조사받겠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유족 대표인 고(故)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전 광주대성여고 교장은 2일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광주시가 혈세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짓는다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무조치로 일관하고 있다”며 “공원 철폐를 위한 릴레이 피켓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오복 전 교장은 “북·중공의 군가를 짓는 등 한국 침략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한 정율성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강기정 광주시장은 아무 중단 조치도 없이 정율성 공원조치를 강행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율성 공원 문제 제기에 대해 철지난 이념몰이, 색깔론, 민간외교라는 억지 논리만 되뇌고 있다”면서 “지난 한 달여 동안 보훈단체들의 집회를 관제 데모로 깎아내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과 보훈가족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을 철폐하거나 대안을 만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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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0)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근 국방부장관으로 지명된 신원식 의원(육사 37기)은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으로 독립군을 직접 사살한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의 동상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영관영어반’ 과정에 다닐 즈음에는 홍범도의 존재 조차도 몰랐다. 청산리 대첩 이후인 1921년,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와 그 일당들에 의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들은 몰살당하며 해체됐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소련군 복장의 공산주의자를 추모한다는 것은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인민군과 중국인민군 군가와 마오쩌뚱 찬양가 등을 수십 곡 만들며 뼈속까지 어용 공산주의자인 정율성 작곡가의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관생도를 포함한 건전한 국민들의 정체성과 대적관을 현혹시키는 잘못된 처사이다. 필자가 다니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확고한 대적관을 바탕으로 견고한 한미동맹을 위한 교육이 계속되었다. 이 교육을 통해 숙달한 영어회화 능력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 및 훈련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을 마치면 다음 보직은 연합사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다음 보직이 충북 충용부대로 정해져 있었고, 다른 교육생들은 연합사령부 또는 예하 부대 및 연합작전/훈련을 주로 시행하는 합동참모본부로 분류되었다. 마침 합참의 중요부서에서 근무했던 선배도 함께 교육을 받고 있어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한명은 육사 33기 용삼남 중령이었다. 과거 승리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양태수, 나대일, 김형배 선배 등을 포함하여 많은 선배 동료들을 다시 만나는 해후의 시간도 만끽했으나 용 선배는 6개월 교육기간 중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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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9]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민관군 통합작전이 중요시되는 향토사단은 사단장이 타부대를 방문할 때 지역 기관장들이 참석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다. 이번에는 상급부대에서 업무보고시에 해당 지역 기관장들을 초청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 그래서 사단장 업무보고 있다는 사항을 지역 기관장들에게 전파하지 않았고 초대도 안했는데 청원군수와 의회의장이 불쑥 찾아와 난처하게 됐다. 상급부대 지침으로 필자가 곤란하게 됐다고 청원군수에게 복귀할 것을 권했지만, 사단장을 이렇게 개별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다며 그들은 막무가내로 대대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승용차에서 내리는 사단장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는데 역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연대장과 필자가 사단장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청원군수와 의장은 한발 앞서 나서며 “사단장님, 기관장들을 초대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셨다면서요. 하지만 사단장님께서 우리 지역에 오시는데 군수가 인사를 안드리면 실례가 되고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이렇게 떼를 써서 나왔습니다. 대대장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라는 넉살에 대대막사 현관앞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할 수 없이 막사로 들어가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라고 권했지만 청원군수와 의장은 인사드렸으면 됐고 더있으면 업무보고에 방해된다며 바로 부대를 빠져 나갔다. 나중에 확인된 사항이지만 청원군수는 사단장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하여 업무보고 후에 사단장을 모시고 식사대접까지 했다고 전해졌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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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9]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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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8]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성실한 사람은 그냥 평범할 뿐이다.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4성(전문·적시·창의·현장성)’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하라고 전 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이성출 대장(육사30기)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4성중 현장에 적용가능한 창의성이 타인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그동안 타부대에서 업무보고한 내용보다는 적시적이며 창의성 있는 분석 결과에 따른 앞으로의 지휘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동원분야의 전문가인 사단장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전방사단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작전적 측면보다는 향토사단에 부합된 예비군 관련 내용들을 분석하여 발전시키는 방안에 착안했고, 급하게 확인된 예비군 총기번호 오류의 발견은 매우 고무적인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또한 현역 4개중대와 예비군 23개 중대로 예하대가 많다보니 상황전파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 당시에 사회에서 막 유행하고 있던 ‘151전화사서함’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다. 평시와 유사시 그리고 훈련시에 주기적으로 ‘151전화사서함’에 상황전파 및 지시사항을 입력하면 원거리에 떨어져 있는 예비군 중대장도 출근해서 비밀번호를 입력 후에 ‘151전화사서함’을 듣고 숙지하여 조치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매일 아침에 필자가 중요사항을 직접 전화사서함에 입력하여 예하 예비군 중대장들이 대대장 목소리를 듣고 부대운영에 반영하도록 유도하였고 원거리 다수의 예비군 중대장들이 지휘주목을 하기에도 용이했다. 지금은 부대개편으로 해체되었지만 당시 청주시 강서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청원대대에 드디어 사단장이 초도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방문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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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8]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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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7]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②
- [시큐리티펙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업무보고서 초안을 거의 완성시킨 상태에서 보고연습을 하고 있는데 군수장교 역할을 겸직하고 있는 현역 중대장이 대대장실 문을 노크했다. 대대는 간편이기 때문에 각 중대장들을 현역으로 편성된 10명의 중대원들만 갖고 있고 나머지 요원들은 모두 동원되는 예비군으로 편성된다. 따라서 중대장들이 부족한 대대참모 역할을 겸직하고 있고 통합 중대장이 현역병 전체를 지휘했다. 군수장교는 사단의 지시에 의해 대대에 보유하고 있는 진공포장된 M16 총기탁본을 세밀하게 대조확인결과 중복된 총번 24정 발견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다. 필자는 업무보고 연습을 일단 중지하고 주임원사와 모든 간부들에게 대대가 보유한 진공포장된 탁본을 모두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그때부터 14시간동안 무기고를 열고 진공포장된 총기들의 탁본을 일일 확인하자 대대가 보유한 총기 4100정 중 259정이 동일하게 중복된 오류 총기번호임을 발견했다. 전산에 입력된 자료에는 동일한 총번 앞에 *표로 표시하여 구분해 놓은 것도 확인이 되었고, 동일한 총기박스는 대부분 타부대에서 인계된 무기였음을 발견했는데 주로 대부분이 국내에서 제작된 총기와 미군에게 인수받은 총기가 번호가 중복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대 실태를 파악해서 분석 결과에 따라 앞으로 지휘방향을 제시하는 업무보고서에 긴급하게 포함시켰다. 연대에도 이렇게 확인한 진공포장 M16의 총기번호 오류를 보고할 시간도 없었다. 바로 다음날이 계획된 사단장 초도업무보고일이기 때문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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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7]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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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6]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 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사령관 조성태(육사20기) 대장이 주관한 군사령부 전술토의에 이어 향토사단 대대의 연초 가장 중요한 예비군 교장 사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바로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취임후 첫 업무보고도 하기 전에 사단장 이상신 장군을 이미 여러번 만나 보고를 한 상태라 첫 보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대의 실태를 파악한 후에 대대장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초도 업무보고를 통해 밝히고 사단장의 추가 지침을 받아야 하는 관례상의 과정이었다. 먼저 전입와서 이미 부대를 잘 파악하고 있는 부대대장과 주임원사를 통해 예하 예비군 중대장들의 특성을 전해 듣고 본인이 직접 예비군 중대 사무실 23개소를 모두 방문하고 실태를 확인한 후에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를 준비했다. 본인이 직접 방문하며 확인해보니 대대본부 막사뿐만 아니라 예하부대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식별할 수 있었고 이들을 해결할 방도를 보고서에 담았다. 군사령부 전술토의와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에 혼신을 다해 고생한 대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짜피 예정된 업무라 가능한 대대원들에게는 덜 수고하도록 필자와 참모들만에게만 임무를 주어 고민하며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무래도 대대원들도 막사 주변 정리 등에 애를 많이 썼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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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6]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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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5]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드디어 사단장이 부대를 방문하며 그해 예비군 교육을 위해 교장 준비 사열이 시작됐다. 사단장 이상신 장군은 갑종 197기로 수방사령부 동원처장 근무시에 장군으로 진급한 동원분야의 대가였다. 전체적인 예비군 교장 개선 사항을 필자가 보고했으나 현장에서는 과목별 담당교관인 예비군 중대장들이 직접 보고했다. 물론 사단장 옆에서 필자가 추가 설명도 간간이 병행했다. 하지만 과목별 교장을 직접 만든 해당 예비군 중대장들이 자신있게 사단장에게 보고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부대대장 이완목 소령이 얼마나 혹독하게 사전 훈련시켰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타부대에 비해 유독 많이 설치된 간판과 샌드백, 섬건너뛰기 등 보조물들과 블록 및 폐타이어를 이용한 계단식 강의장 좌석 등 정성어린 훈련준비를 한 현장의 흔적들도 사단장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당시 동원장교였던 장석우 대위의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와 주임원사와 예비군 중대장들을 비롯한 전 대대원이 휴일까지 반납하며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실이고 그 덕분에 청원대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추후 실제 예비군 훈련시 교장별 이동코스에 설치된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을 한 대 치고 지나가던 예비군이 “야! 니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훈련받느라 고생한다!”라고 외치자 함께 훈련받던 예비군들이 한바탕 웃는 모습을 보면서 대적관도 덩달아 확고해지는 보람도 느꼈다. 과목별로 보고를 받던 사단장은 직접 준비한 예비군 중대장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또한 사열을 마치고 대대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필자에게 수고했다고 격려금도 주었고, 수행한 동원참모에게 이미 사열을 받은 대대들도 다시 이곳을 견학해서 교장 준비 상태를 참고해 추가 발전시키도록 지시했다. 대대의 연초 가장 중요한 예비군 교장 사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그냥 조용하게 지나갈 수가 없었다. 사단장이 복귀하자 주임원사는 발빠르게 거창한 대대 회식을 준비했다. 지팡이를 짚은 DJ 대대장인 필자도 그동안 고생해서 첫 성과를 올린 부하들의 격려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은 어쩔 수 없이 필자도 대대장 취임후 첫 번째로 취할 정도의 과음을 했지만, 휴일까지 반납했던 대대원들과 함께 즐겁고 보람을 느끼며 하나가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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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5]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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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4]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과목별 교장간에 이동코스가 긴 곳은 예비군들이 지루하고 짜증을 낼 수도 있어 중간에 섬 건너뛰기를 설치하여 흥미를 유발시키고, 다른 코스에는 김정일 얼굴을 그려 넣은 샌드백을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지나가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착안했다 또한 급경사를 오르는 구간에는 ‘유머가 그려진 간판’을 설치하여 지나가면서 미소를 띄울 수 있도록도 만들었다. 그리고 사로에 설치한 북한군 모습의 표적들을 군데 군데 설치하여 이곳이 훈련장임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렇게 준비하여 그동안 칭찬을 들었으나 반면에 “기존에 설치된 교장 위치가 지그제그로 되어 혼선을 빚는 역행군 이동이라 생각되니 순환식으로 바꿔라”는 사전 지도방문한 부연대장의 지적도 있었다. 이에 사열을 며칠 앞두고 휴일을 반납하며 예비군 중대장들과 함께 추가 작업하여 완벽한 순환식 훈련장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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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4]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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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3]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마침 대대 예비군 교장에는 현역들의 간이 실거리 사격장에 표적을 설치하는 지점의 연결된 교통호와 감적호(표적을 확인하기 위한 대피호)가 있어 동굴 및 폐광 수색정찰 훈련장을 설치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실거리 사격장의 표적을 설치하는 곳의 교통호에 옥산면 중대장이 협조해온 레일과 침목을 설치하였고, 표적 확인 후 실제 사격간에 대피하는 감적호를 약간 개조하여 폐광을 만들었다. 또한 주변 수색지역에 무인포스트도 설치해 흥미를 유발시켰다. 이렇게 준비했지만 “어느 곳, 어느 처지에 다다르더라도 주관을 잃지 않고 자신의 주인이 되라”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처럼 필자가 예비군이라면 이 교장에서 훈련받는 느낌이 어떨까(?)하는 생각과 고민을 하면서 타부대와 비교해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무엇인가 2%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부대대장과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결과 추가 간판과 섬 건너뛰기, 샌드백 등 보조물들과 블록 및 폐타이어를 이용한 계단식 강의장 좌석을 설치하는 등의 정성어린 훈련준비를 가미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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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3]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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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2]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실 대대장으로 갓 부임하여 군사령부 전술토의를 준비하면서도 교장사열을 준비하는 인접 대대를 수시로 방문하였고, 이미 사단장 사열을 받고 칭찬을 들었던 타부대의 장점들을 모두 가져와 적용하기로 했다. 심지어는 그동안 책임지고 사열 준비했던 부대대장에게 잘되어 있는 부대를 직접 찾아가 참고하라고도 지시했었다. 그중 타부대에서 극찬을 받았던 대공사격술 교장에 각별히 착안하여 좀 더 발전시키도록 준비했다. 예비군들이 실감나게 리드를 적용해 화망을 구성할 수 있도록 공중으로 연결된 줄에 추를 달아 모형 비행기가 빠르게 내려가도록 만들어 효과를 극대화했다. 타부대의 장점을 베치마킹하여 해당 부대에 맞게 추가 발전시키는 것이 창의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헌데 교장을 보수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고, 모든 장비와 설치물은 해당 교관이 준비하기 위해서는 책임 지역내의 주요 업체와 기관장들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었다.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과목별 담당 교관인 예비군 중대장들이 책임지역내의 주요 기관장들과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고민 끝에 새롭게 창안한 것은 수색정찰 과목에 동굴 수색을 추가한 교장 준비이다. 이는 충북지역에는 자연동굴과 폐광들이 산재해 있어 침투한 무장공비들이 동굴에 은신하는 것을 색출하고 거부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때 부대대장의 뚝심이 발휘되었다. 부대대장은 책임지역내에 청주역이 있는 옥산면 중대장에게 과감하게도 철로 레일과 폐침목을 협조하라고 강권했다. 난처한 표정을 지었던 예비군 중대장은 결국 레일과 폐침목을 협조해 준비했고, 필자의 대대는 동굴 및 폐광 수색정찰 예비군 훈련장을 전군에서 최초로 설치한 부대가 되었다. 이는 예비군교장 사열시에 처음으로 새롭게 조성한 동굴 및 폐광 수색정찰 훈련장을 확인하며 필자의 설명을 듣던 사단장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띄우게 만들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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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2]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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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1]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사령관 조성태 대장의 군사전략 구상을 구현했던 공군비행장 방어 전술토의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초에 향토사단 부대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예비군교장 사열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동안 먼저 시행한 인접 대대들의 사단장 사열은 해당 부대의 열정을 다한 노력 결과 매번 사딘징의 칭찬이 계속되었고, 상급부대 지시에 의해 타부대들은 사열한 부대를 방문하여 잘된 사항들을 벤치마킹하기에 바빴다. 특히 예년에 없었던 대공사격술 교장은 인접연대의 사단장 사열시 공중으로 이동하는 표적에 대해 리드를 적용한 대공사격술 훈련을 체험할 수 있도록 착안해 준비한 것은 당시에 대히트였다. 다행히도 청원대대에 부임전에 경기도 일산 부근에서 예비군 관리대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부대대장 이완목 소령(3사14기)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필자를 대신해서 현장을 발로 뛰며 공휴일에도 직접 교장에 나와 확인하여 예하 23명의 예비군 중대장들도 동참하며 교장의 보수 및 정비작업을 함께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 헌데 전술토의 다음날 교장을 지도 방문한 부연대장은 과목별 교장은 잘되어 있는데 단계별로 이동하며 훈련을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각 교장이 지그재그식으로 배치되어 혼선이 생긴다며 사열을 앞두고 시간이 부족하지만 완벽하게 순환식으로 조정 배치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개선책을 제시했다. 그동안 애써 준비했던 부대대장 이 소령도 “2%가 부족한 데 지금 바로 시정하자”고 건의했다. 필자의 생각도 같았다. 바로 4일 뒤인 월요일에 사단장의 교장사열이라 어쩔 수가 없이 전 교장을 순환식으로 재배치 조정 작업에 즉시 투입해야만 했다. 그동안 군사령부 전술토의에 집중했던 대대장이 현장을 확인하고 사열을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예비군 중대장들을 소집했다. 휴일 이틀 동안 교장에서 간판을 옮기고 좌석을 다시 배치해 조정하는 등 부연대장의 지적을 급하게 개선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공군기지 방어 전술토의 성공적 개최에 이어 기대 이상의 점입가경(漸入佳境)이 되는 성과를 얻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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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0] 독불장군 경호실장과 고독한 황태자의 신경전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러나 박지만에게 또 한번 시련이 찾아왔다. 생도 3학년 시절인 1979년 10월26일에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서거했기 때문이다. 박지만은 1981년에 학사학위를 취득하며 육사를 졸업하며 방공포병병과 소위로 임관한 후 대구에 있는 방공포병학교에서 초급장교 군사반 교육(OBC)를 받았다. 장교생활은 당시 수도권의 빌딩 방공포 진지에 배치되어 시작했다. 하지만 복무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이 후유증으로 의무복무만 마치고 1986년에 육군 대위로 예편하였다. 이후 육영재단 이사를 지냈으며, 1991년에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친했던 박태준의 주선으로 삼양산업을 인수하였다. 삼양산업은 2000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상호를 이지(EG)로 변경하였으며, 회장인 박지만은 회사를 내실있게 성장시키며 잘 경영하고 있다. 2004년 12월, 16세 연하의 변호사 서향희와 결혼했다.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진행된 결혼식의 주례는 소망교회의 곽선희 원로목사가 맡았으며 결혼식은 하객들을 최소화 한채 조촐하게 치러졌다. 현재 슬하에 4남을 두고 있다. “삶! 모두가 가야할 길이라면 차라리 나만의 길을 걷고 싶다. 화랑대! 너와의 영원한 우정담을 흩어져 나뒹구는 저 낙엽속에 적어 아주 먼 훗날 추억속에 노래하면 아니될까....” 육사 졸업앨범에 박지만이 남겨 놓은 글이다. 하지만 그와 고교 동기이자 절친이었던 전 기무사령관 고(故) 이재수 장군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군의 명예를 지키면서도 자신 때문에 선후배들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장군의 장례식장을 끝까지 지켰던 박지만의 슬픔을 가중시켰다. 하지만 ‘차라리 나만의 길을 걷고 싶다’고 남긴 글처럼 비운의 고독한 황태자 박지만은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많은 시련과 아픔을 겪었지만 주변의 모든 유혹을 뿌리친 채 지금도 꼿꼿하게 모범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랑스런 동기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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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0] 독불장군 경호실장과 고독한 황태자의 신경전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