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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3)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하지만 영관영어반에서 만난 선배중에는 광주 출신의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중국인 공산주의자로 행세를 한 정율성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도 있었다. 정율성이 북한과 중국에서 보였던 불손하고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지만 화려한 작곡가로서의 삶처럼 그 선배도 생도시절부터 뛰어난 지혜와 지휘생도 활약으로 후배 생도들의 존경심을 받아왔고 필자에게는 목발 및 지팡이를 짚고 있다고 해서 DJ라는 별칭을 즐겨 불러 주었다. 또한 그는 명석한 지능으로 영어 수업도 우수한 성적을 계속 유지했다. 마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정율성처럼 그의 모습은 수업시간에 뛰어난 영어 회화능력으로 교관들의 칭찬을 받아 학생장교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일과후 독신자 숙소에서도 타 선배들처럼 잦은 출타를 하거나 만취되는 일도 없이 착실한 학생장교로 돋보였고 필자는 친절하게 학업을 도와주는 그가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고 대령으로 일차 진급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그는 매우 힘든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생이 사업을 하는 데 급전이 필요하고 진행상 곧 회수 가능해 일주일 뒤면 갚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현금이 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필자도 교통사고 후에 많은 출혈이 있었고 저축한 돈도 별로 없어 죄송했다. 선배의 계속 독촉에 못이겨 현재 들고 있는 적금을 해약하면 요구한 금액의 반정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거라도 빨리 주면 바로 해결하고 일주일 뒤에 갚겠다고 다짐했다. 하는 수 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 적금을 해약한 후에 그 선배에게 전달했다. 물론 일주일 뒤에 갚는다고 해서 가족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에게 갚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돈을 주고나니 빌려준 사람이 을이 되어 있었고, 그는 여유롭게 생활하며 빌린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결국 교육 종료 직전에 그 선배에게 아직까지도 가족에게 말을 안했으니 빌린 돈을 갚아주어야 통장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독촉했다. 그 선배는 다음주로 다시 미루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던졌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생도시절부터 탁월한 모습으로 존경을 했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다. 가짜 한국인 정율성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그의 언행에 현혹된 필자가 부끄러웠고, 이후에는 잘 아는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금전 문제가 생길 때에는 여유가 있어 대출이 아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것이 돈도 잃지 않고 더구나 사람도 더 잃지 않는 길이라는 교훈을 영관영어반 교육과정에서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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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2)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㉗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율성이 6·25남침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군가도 작곡했지만 인민군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점령군으로서 자유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1·4 후퇴 때는 중공군과 함께 재차 서울에 내려와 조선궁정악보를 약탈해간 매국노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광주 출신이지만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공산당원으로 변절한 자를 추모하며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추진했던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은 동족상잔의 비국을 겪은 자유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현재도 핵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는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으려면 견고한 한미동맹이 절실한 실정이다. 필자가 다녔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북한의 재 남침에 대비해 합동참모본부의 주요부서에 근무하며 군사전략을 담당했던 용삼남(육사33기) 선배로부터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용 선배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재활치료에 전념했던 필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생도시절 럭비부 선수 생활을 했는데 운동중에 부상을 입어 척추가 심하게 손상되어 의사들이 판단할 때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였으나 강한 의지로 철저하게 운동을 하여 척추 주변 근육을 강화시킴으로써 전혀 불편함 없이 더 건강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합참 근무시에 매일 새벽에 가장 일찍 출근하여 책상 및 의자 정리 및 청소를 한 뒤에 책상위에 올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300개씩 하여 근육을 강화시켰다. 그가 원주에 있는 부대에 근무할 때에는 고속도로에서 시비를 걸던 조폭을 한방의 주먹으로 넉아웃시킬 정도로 강해졌다는 여담도 남겼다. 건강한 체력은 건전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업무에 질도 고양시킬 수 있다. 건강의 이상을 극복하며 지칠줄 모르는 용 선배의 체력에 상관들은 힘든 업무도 쉽게 맡길 수 있었고 업무상 만나는 미군들과도 쉽게 친해져 한미 연합작전과 군사전략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일과후에는 독신자 숙소에서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을 연주하며 하루를 마감하여 건강상 어려운 위기를 적극 극복하는 강한 의지와 동시에 예술감까지 가진 문무를 겸비한 군인으로 끝없는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앞으로의 군생활의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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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1)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㉖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0월2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에 세워져 있던 중국 음악가 ‘정율성 동상’이 기단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정율성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 귀화한 음악가로, 북한·중공군 군가를 작곡한 인물인데, 광주시가 기념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정율성 동상은 중국 청년단체가 제작해 광주 지역 청년단체에 기증한 것으로 2008년 광주 남구 양림동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 입구에 세워졌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이날 재물손괴 혐의로 보수단체 회원 윤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전날(1일) 오후 정율성 흉상 목 부분에 밧줄을 묶고 2.5톤 승합차에 이를 연결한 뒤 쓰러뜨리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정율성 흉상은 위의 사진처럼 약 1m 높이의 기단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기단 옆 땅바닥에 누운 모습으로 발견됐다. 윤씨는 범행 직후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중단하라고 광주시에 요구했는데 이를 이를 수용하지 않아 강제로 (흉상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경찰에서 “내가 그랬다. 3일 오전에 경찰서로 가서 조사받겠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유족 대표인 고(故)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전 광주대성여고 교장은 2일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광주시가 혈세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짓는다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무조치로 일관하고 있다”며 “공원 철폐를 위한 릴레이 피켓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오복 전 교장은 “북·중공의 군가를 짓는 등 한국 침략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한 정율성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강기정 광주시장은 아무 중단 조치도 없이 정율성 공원조치를 강행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율성 공원 문제 제기에 대해 철지난 이념몰이, 색깔론, 민간외교라는 억지 논리만 되뇌고 있다”면서 “지난 한 달여 동안 보훈단체들의 집회를 관제 데모로 깎아내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과 보훈가족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을 철폐하거나 대안을 만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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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0)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근 국방부장관으로 지명된 신원식 의원(육사 37기)은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으로 독립군을 직접 사살한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의 동상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영관영어반’ 과정에 다닐 즈음에는 홍범도의 존재 조차도 몰랐다. 청산리 대첩 이후인 1921년,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와 그 일당들에 의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들은 몰살당하며 해체됐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소련군 복장의 공산주의자를 추모한다는 것은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인민군과 중국인민군 군가와 마오쩌뚱 찬양가 등을 수십 곡 만들며 뼈속까지 어용 공산주의자인 정율성 작곡가의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관생도를 포함한 건전한 국민들의 정체성과 대적관을 현혹시키는 잘못된 처사이다. 필자가 다니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확고한 대적관을 바탕으로 견고한 한미동맹을 위한 교육이 계속되었다. 이 교육을 통해 숙달한 영어회화 능력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 및 훈련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을 마치면 다음 보직은 연합사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다음 보직이 충북 충용부대로 정해져 있었고, 다른 교육생들은 연합사령부 또는 예하 부대 및 연합작전/훈련을 주로 시행하는 합동참모본부로 분류되었다. 마침 합참의 중요부서에서 근무했던 선배도 함께 교육을 받고 있어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한명은 육사 33기 용삼남 중령이었다. 과거 승리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양태수, 나대일, 김형배 선배 등을 포함하여 많은 선배 동료들을 다시 만나는 해후의 시간도 만끽했으나 용 선배는 6개월 교육기간 중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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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9)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㉔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75주년을 맞은 국군의 날은 6·25남침전쟁 당시 우리 육군의 38선 돌파를 기념하는 날이다. 추석 연휴 때문에 닷새 앞당겨 지난 26일 열린 올해 국군의 날 기념행사는 그동안 소홀히 했다가 10년 만에 대대적인 도심 시가행진으로 주목받았다. 유사시 북한 지휘부의 지하 벙커를 파괴할 고위력 현무 미사일과 한국형 사드로 불리는 장거리 지대공유도미사일, 엘샘(L-SAM) 같은 첨단무기가 대거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 위협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하며, 우리 군의 태동 시점은 1945년 광복 이후라고 언급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광복 후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동한 우리 군은 이제는 적에게는 두려움을 안겨 주고, 국민에게는 신뢰받는 세계 속의 강군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등 역사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군의 뿌리를 독립군에서 찾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식을 사실상 반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국군의 날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 북한군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동부전선의 우리 육군 3사단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한 10월1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1956년 제정됐다. 하지만 체제 경쟁이 끝나고 남북정상회담 등이 열린 2000년대 이후론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로 바꾸자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우리나라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헌법에 따라 군의 뿌리도 임시정부 군대인 광복군으로 정립하는 게 맞다고 민주당 등 일부는 주장하지만 확고한 대적관을 강조해온 현 정부는 선을 긋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싸웠던 광복군도 의미는 있지만, 지금 우리 군은 북한과 싸우는 군대라며 국군의 확고한 정체성을 강조했고, 여야의 인식 차는 국군의 날 메시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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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8)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㉓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6개월 기간의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간정도 지나갈 즈음에 필자는 그동안에 미루어 왔던 석사학위 논문의 마무리에 쉴 틈이 없었다. 그렇지만 ‘영관영어반’ 과정에 입교시킨 것은 능력이 부족한 필자가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신 신의 배려와 인도라 생각되어 감사할 뿐이었다. 최종 논문심사에서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라는 필자의 논문을 검토하던 동국대학교 3명의 지도교수들은 신통하다는 표정으로 새로운 착안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왜냐면 당시에는 독일통일에 관련한 자료와 논문은 많았지만 군사분야는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독일 통일 당시에 독일에서 군사과정을 다녔던 김영식 동기(전 1군사령관)가 제공해준 귀국보고서가 큰 바탕이 되었고, 다른 학생들은 논문들은 기존의 타 논문에서 인용하여 만들다 보니 필자의 논문보다 교수들이 참고할 사항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심사중에 지도교수들은 논문 내용보다 내 신상에 더욱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목발을 짚고 있지만 육사37기로 박지만과 동기라고 하자 그들은 ”아마도 그 동기들은 똑똑한 사람이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동기생 전체를 칭찬해주어 동기회 품격이 격상되는 이미지에 일조한 기분이 들어 보람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입교한 영관영어반 과정은 주말부부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됨과 동시에 이미 취임해 맹활약하는 동기생들을 만나 회포도 풀었지만 대대장 근무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계기가 되었고, 영관영어반 수료증과 동국대학교 석사학위기를 받아 내실을 기하는 일거다득(一擧多得)의 결실을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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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7)]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 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매년 연말이 되면 대통령, 국회의원, 기업체 회장들을 비롯하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전방 각 부대를 위문한다. 모두들 바쁘고 중요한 직책이다 보니 서울에서 근접한 GOP부대를 선호하여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문산축선의 천하 제1사단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상이 종종 벌어진다. 특히 선거철을 앞두고는 표의 향방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표라도 더 얻을 수 있도록 군에서 가장 많은 장교를 양성하는 ROTC출신 지휘관 부대를 찾게 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1992년 말 대통령 선거시에 필자가 근무했던 무적태풍부대의 사단장이 덕망이 높은 이영대 장군(학군4기)이기 때문에 다소 교통이 불편하더라도 각 당의 후보들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와 적십자 총재인 강영훈 장군까지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사회를 좌지우지하던 권력의 실세이자 많은 국민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영광의 순간이자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부대 방문자 중 총리를 역임한 강영훈 장군은 ‘벽창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 말은 평안북도 벽동군과 창성군 사람 중에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강 장군의 고향이 바로 평북 창성군으로 압록강과 접한 국경지역의 교통 중심지였다. ‘벽창호’의 고향답게 창성군과 벽동군에서 기르는 한우도 예로부터 힘이 좋고 동시에 말 안 듣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강 총리의 회고록 제목에 나온 ‘벽창우’는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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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7)]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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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6)]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필자가 근무했던 무적태풍부대 사단장 이영대 소장(학군4기)은 고려대 학군단 출신으로 전후방 각지에서 근무할 때 매우 성실하며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는 위의 사진자료처럼 간부 교육을 통해 지휘여건 변화에 따른 성공비결을 강조했는데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의식 구조면에서 황금만능주의와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며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희생적 단체정신이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부대관리면에서 지휘 성공요소를 의욕고치를 위한 동기부여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여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본인부터 인정있고 어려움을 헤아려 주며, 고생과 위험을 같이 하는 지휘관으로 솔선수범했다. 그리고 ‘업무수행지침’을 손수 작성하여 간부들에게 나누어 주고 “상하 골육지정으로 철석같이 단결하여 교육훈련 질적 개혁의 꾸준한 추진과 좋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자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긍정적이고 실천적인 생활을 하자”고 강조했다. 또한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내가 근무하는 기간에 전쟁이 일어난다(적이 온다)”는 각오로 대비하는 전투적 사고를 견지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지휘철학은 결국 교육훈련을 통해 강한 전투부대 육성에 결정적 요소가 되었고 사단장 재임 기간인 1992년 말 대통령 선거시에 각 당의 후보들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와 적십자 총재인 강영훈 장군까지 학군단 출신인 이영대 장군의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결국 그 여세를 몰아 다음해에는 사단장 3대에 걸쳐 대통령 부대표창을 연속 받는 성과를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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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6)]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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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5)]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무적태풍부대의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기동훈련 및 전투지휘검열 등 주요 훈련 및 검열이 성공적으로 마치면 통상 사단에서는 고생한 참모 및 실무자들을 위해 격려 만찬을 했다. 이때도 학군장교 출신의 예비역들이 군의 현역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지원과 위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었다. 당시 사단장 이영대 소장(학군4기)은 격려행사를 할 때에 학군장교 후배이자 가장 인기 사회자였던 뽀빠이 이상용(학군5기)와 소설 ‘인간시장’ 작가 김홍신(학군9기) 등이 자리를 함께하여 부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며 행사를 빛냈다. 이러한 학군장교 출신들의 저력은 해당 지휘관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게 만들었고 국가 및 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군의 현역에 남았는 학군장교들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부대를 발전시키는 데 전념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 및 군사령관 등 8명의 대장과 16명의 중장을 포함하여 약 150명의 학군장교들이 장성으로 진급하며 군발전을 위해 활약하게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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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5)]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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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4)]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육사, 3사, 학사 등 장교양성과정 중 가장 많은 약 23만명의 장교를 배출한 학군장교 출신 예비역들은 사회 각 곳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우수자원들은 국회의원, 기업체 사장 등 사회 지도층이 되어 봉사하며 이들은 군의 현역에 남아있는 후배 동료들에게 지원과 위문을 아끼지 않는다. 게다가 단기 자원들이 2년간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할 때에는 각 사업체에서 강한 책임감과 리더십을 견지하며 건전하고 국가관이 투철한 이들을 채용하기 위해 취업박람회 등에서 채용전쟁이 벌어진다. 필자가 장교 임관 초임지인 승리부대에서 GP장(소대장)직을 수행할 때 당시 연대장도 학군 1기인 박세환 대령이었다. 박 대령은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전후방 각지에서 맹활약하여 능력과 인품을 인정받아 학군장교 최초의 대장이 되어 2군사령관을 역임했고, 전역 후에는 국회의원 및 재향군인회장으로 국가와 군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연대장 시절에 고려대 출신 동문들의 엄청난 지원과 위문을 받아 GOP철책에 배치된 각 소대에 매달 밀가루 한포씩을 매월 제공해 수제비와 붙임개를 만들어 먹도록하여 GOP 경계근무의 피로에 쌓인 부대원의 사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고양된 적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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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4)]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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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3)]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현재 군에서 가장 많은 장교를 양성하는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는 군 내부에서는 학군 또는 학군단으로 불리고, 교육과정 중에 있는 장교후보생에게는 공식적으로 '학군사관후보생'이라고 호칭된다. ROTC는 대학 재학생 중에서 우수자를 선발하여, 2년간의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대학의 전공학문 완성과 더불어 소정의 군사지식과 실무능력 등 문무를 겸비한 장교를 양성하여 활용할 수 있는 효율성이 매우 높은 제도로서 미국의 ROTC 제도를 모델로 하여 시행되었다. 나무위키와 ‘대한민국ROTC중앙회’ 자료에 따른면 대한민국 국군의 최초 학군단은 1959년 한국해양대학교에 창설된 해군 제1001학생군사교육단이다. 2년 뒤인 1961년 육군이 18개 학군단을 창설하였으며, 2011년말 육군기준으로 101(서울대학교)부터 218(성신여자대학교)까지 전국에 110개 학군단으로 확대되어, 매년 임관하는 학군장교의 수는 약 4,000명 정도로 현재까지 약 23만명의 장교를 배출했다. 그동안 학군1기 박세환(고려대) 등 5명의 2작전사령관, 2기 김진호(고려대)21기 박한기(서울시립대) 2명의 합참의장, 23기 남영신(동아대) 육군참모총장 등 8명의 대장과 3기 임재문(건국대) 기무사령관 등 16명의 중장을 포함하여 약 150명의 학군장교들이 장성대열에 합류했다. 학군단 상징인 마크의 외곽테두리는 조국수호의 방패를, 백색은 백의민족의 평화 애호 정신을, 청색은 청년 대학생을, 별은 육군을, 칼과 펜은 진리 탐구와 유사시 국가 수호를 담당하는 고국 학생으로서 문무를 겸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음편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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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3)]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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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2)]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을지훈련이 끝나고 함께 고생했던 작전장교는 소령으로 진급하여 다음 보직으로 영전했고 후임 작전장교로 육사후배 백창진 대위(육사40기)가 전입을 왔다. 필자도 을지훈련시 부르튼 입술이 터져서 부어오르는 먹지 위장크림효과로 사단장 및 참모 등 상급자들에게 각인되며 인정받아 심사 대상자가 되는 다음해에 진급하는 영광을 얻었다. 또한 사단기동훈련이 끝나고 진급시즌 막바지인 11월에 이르자 사단에서 그렇게도 갈망했던 강수명 작전참모(육사31기)가 드디어 진급하여 병과의 장인 대령반열에 올랐다. 사실 대령 진급은 사단급 부대에서 매우 힘든 사례였다. 통상 대대장과 사단참모 보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군단급 이상의 부대에서 중요 보직을 수행해야 진급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아니면 군단급 이상의 부대에서 주요보직을 마치고 필수 보직인 사단 작전참모로 근무하면 간혹의 진급하는 기회를 주어지기도 했는데 당시 참모는 후자의 사례였다. 강수명 대령 진급 예정자는 작전참모 보직을 정보참모 임무를 수행하던 김형배 중령(육사34기)에게 인계하고 65동원사단 연대장으로 영전했다. 이후 장군으로 진급하는 그는 육군대학 교수부장직을 역임하고 전역하여 평택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한편 새로 부임한 백창진 대위는 탁월하게 작전 장교 임무를 수행해 필자와 같은 해에 소령으로 진급했다. 그는 그해 12월2일, 신임 작전참모인 김형재 중령에게 업무보고를 준비하여 능력을 인정받으며 작전처 총괄 선임장교로 활발하게 임무를 수행했는데 김 중령으로부터 무서운 후배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탁월을 넘어 출중했다. 희비애환(喜悲哀歡)을 느끼는 인생과 진급은 ‘운7기3(運七技三)’이지만 어떻게 보면 본인의 능력과 업적을 우선 쌓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폐결핵이 만연하던 1928년, 포도상구균 배양중에 실수로 오염된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최초의 항생제 개발에 성공한 영국의 플레밍 박사는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말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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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2)]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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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1)]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진급심사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는 심지어 생도생활까지 비교하여 선발하는 것을 보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바르고 정의롭게 최선을 다하며 인정을 받아야 한다. 헌데 상급자에게 평가를 통해 인정을 받는 과정도 ‘운7기3(運七技三)’이다. 필자가 사단 작전보좌관 근무하며 을지연습에 임했을 때 ‘운7기3’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필자는 당시에 유별나게 입술이 잘 부르트고 물집이 생겼다. 주야 불문하고 작전 상황유지에 전념했던 피로감도 있었지만, 습관적으로 너무도 쉽게 입술이 부르트는 일이 잦아 신경이 쓰였다. 대위급 작전장교의 심사가 시작되어 신경이 쓰이던 을지연습 기간에 비상이 발령되고 군장을 결속하는 등의 출동준비테세 훈련을 하면서 안면 위장을 해야 했다. 그때에는 위장크림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터이라 우선 급해서 복사용 먹지로 얼굴에 발랐다. 을지훈련 시작 준비하다보니 정신이 없었는데 사단 참모들이 상황실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사단장도 안면위장을 한 채 좌정하자 훈련 상황 첫회의가 시작되어 필자는 당시까지 부여된 상황과 각 부대의 훈련 진행을 보고했다. 필자의 보고를 마치고 다음 참모부의 보고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 사단장이 말문을 열었다. “작전참모, 작전보좌관 너무 고생시키는 거 아니야?”하며 필자를 지목했다. “훈련 준비에 애를 쓴 보좌관이 입술이 터져서 저렇게 부어올라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훈련을 할 수 있겠어? 작전보좌관이 쓰러지면 큰일인데 ...ㅋ”하고 미소띤 얼굴로 참모장과 참모들을 돌아보자 상황실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그때 필자는 너무도 당황해서 “괜찮습니다. 제가 입술이 잘 부르트는 체형이라 건강에는 문제없습니다”라고 급하게 변명했지만, 흐뭇한 표정 속에 격려의 멘트를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껴주는 사단장을 위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이는 훈련이 시작되어 안면 위장을 할 때 사용한 복사용 먹지의 까만 독이 입술이 부르트는 곳에 닿아 심하게 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입술이 터지고 부어올라 부끄러웠지만 그 모습을 본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은 오히려 너무 열심히 훈련 준비를 하며 쌓인 피로 때문으로 인식했고, 이는 ‘운7기3(運七技三)’의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 사단장은 필자를 더욱 신뢰하는 또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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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1)]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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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0)]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세상의 어떤 조직보다도 군의 진급심사는 까다롭고 공명정대(公明正大)하다. 매 심사때마다 육군본부 진급심사실은 전후방 각 부대에서 심사위원들을 불시에 사전 통보없이 차출한다. 심사위원으로 선발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의 주변 상하급자들이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육본에서 출발한 인솔 장교는 해당 부대에 도착해서야 누구라는 것을 통보 받고 바로 선발된 심사위원을 만나 간단한 짐을 챙기게 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외부로부터 차단시킨다. 이렇게 육군본부 진급심사실에 심사위원들이 모이면 3개반으로 편성하여 각각 격리된 상태에서 각 반별 진급심사를 시작한다. 각반에서 대상자들의 평정, 경력, 전공 및 특별한 업무성과와 표창 그리고 해당 부대 지휘관의 지휘추천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거치며 진급심사를 하여 선발된 인원들은 다시 심사위원장 주관으로 3개반 반장들이 모여 최종 심사를 받게 된다. 최종 심사에서는 3개반에서 동시에 선발된 인원은 진급이 확정된다. 통상 80~90%는 일치한다. 그때부터 나머지 대상자의 진급심사는 더 치열해진다. 동일한 평가가 나오면 전 계급의 평가를 참조하며 심지어는 임관시 및 생도시절까지도 장단점을 비교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에는 우수자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던 장점과 결함을 찾아내 비교하여 떨어뜨리는 것 위주이다. 헌데 더 중요한 것은 부대별 안배이다. 3개반에서 동시에 선발되어 진급이 확정된 자들을 부대별로 집계하면 진급자가 없는 부대가 생기는데 해당 부대의 사기를 고려하여 그 부대 대상자에게 우선순위가 부여되어 1개 반에서 올라온 자가 2개반에서 올라온 대상자를 제끼고 최종 확정되는 경우도 있다. 진급 결과에 따라 희비애환(喜悲哀歡)을 느끼지만 어떻게 보면 ‘운7기3(運七技三)’이란 말처럼 인생은 운이 70%, 기가 30%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때가 아님 안되는 경우가 생긴다. 비록 각반심사에서 일부 선발되었더라도 최종심사에서 부대안배로 진급에 누락되는 것 같이 노력 이외의 외부적인 변수, 흐름, 사람, 기운 등 컨트럴 못하는 수많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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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0)]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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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9)]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제갈량은 호로곡에서 ‘모사재인 성사재천 불가강야 (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라며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되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어서 강제로 할 수가 없다”는 뜻으로 한탄했다. 이는 제갈량이 북벌을 단행할때 호로곡에서 사마의를 상대로 화공을 펼쳐 궁지로 몰아넣었으나,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국지성 호우의 비가 내려 화공이 실패하고 사마의를 살려보내고 말았다. 이를 두고 제갈량은 "과거 적벽에서는 화공으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으나 이번에는 소나기로 인해서 실패하였으니, 일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렸구나..." 하고 탄식하며 한 말이다. 진급심사를 앞두고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또는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으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활용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라며 진급은 천운이라고 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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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9)]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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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8)]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기동훈련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이 되자 작전참모 강수명 중령(육사31기)은 그동안의 업무 성과를 인정받아 대령으로 진급했다.([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5)] ‘벤치마킹은 창조적 성공의 지름길’ 참조) 사실 군간부들의 진급심사는 매년 을지연습이 한창인 8월말 또는 9월초부터 시작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징집된 병사들은 매월 진급 발표가 있다. 신병으로 입대해서 이병 계급장을 달고 시작하여 일병과 상병으로 진급하며 약 18개월 정도 군생활을 하다가 병장으로 제대한다. 직업군인인 군간부들은 계급별로 일정 기간이 지나야 진급심사 대상자가 된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다음 계급으로 승진하거나 비선되면 진급 발표와 동시에 다음 진급 계단을 오르기 위해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부여된 임무 및 업무에 전력투구한다. 통상 군의 장기복무 장교들은 소위에서 대위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 진급하는 경우가 많다. 헌데 소령 진급부터는 치열한 전쟁이 시작된다. 그 전쟁은 대부분 을지연습 시기부터이다. 그래서 중대장을 성공적으로 마친 대위급 장교들은 다음 계급 진급을 위해 사단 및 연대급 부대의 중요 보직을 찾게되고 을지연습 기간에 심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전에 각종 훈련 및 업무를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거나 실망하게 되어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을지연습이 끝날 즈음이면 소령 진급심사 결과가 발표되어 진급한 실무장교는 더욱 힘을 내어 훈련에 임하지만 비선된 장교들은 실망감에 빠져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후 중령~장군 진급심사가 2~3주 단위로 11월까지 계속되어 말 그대로 진급시즌을 맞아 그 결과에 따라 울고 웃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을 느끼며 매년 후반기를 근무한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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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8)]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