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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7)]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휴대용 수첩 분실 사건은 보안의식을 더욱 굳건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항상 작전계획 등의 비문을 다루는 업무를 수행하는 필자에게는 원활한 비문 관리에 매우 제한이 많았다. 평소에 참고하는 자료 및 현황이거나 새롭게 작성하는 공문이나 보고서가 대부분 비밀문서이거나 비문에 준하는 서류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대의 보안업무를 감독하는 기무부대원들은 불시에 사무실의 보안태세 확인 점검을 계속하였다. 실무자들이 업무를 하다가 잠시 자리를 이탈하거나 퇴근 후에도 업무를 하던 책상 위에 서류, 작전계획 및 비문의 방치 또는 무단 반출 등을 확인하는 기무부대원들이 사무실에 들락거렸다. 한편 사단사령부 상황실 벙커 사무실에는 비문관리 등의 보안업무를 전담하는 정보처 간부들도 작전처와 같이 사용했다. 당시의 정보보좌관은 대위 시절에 기무부대에서 근무했던 장교였는데 필자의 부서원들과 차별화된 점검을 받았다. 그는 책상 위에 ‘정보보좌관 책상’이라고 크게 써놓고 퇴근하면 기무부대원들은 전관예우 차원에서 점검을 생략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뜨여 기무부대의 텃세가 심함을 느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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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6-0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6)]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작전보좌관 보직에 부임하자마자 ‘통일‘92-2워게임 훈련’에 참가한 것은 새로운 임지에서의 적응을 더 빠르게 만든 동시에 군사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재차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워게임 훈련장에는 각 부대의 작전계획에 의한 상황판과 자료들이 차고 넘쳐났다. 24시간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워게임 요원들은 임무를 교대했고, 퇴근시에 혹시 작전계획 등의 비문이 무단 반출되는지 확인하는 기무부대원들의 번쩍이는 안광은 눈부실 정도였다. ‘통일‘92-2워게임 훈련’이 끝나자 필자는 지형을 숙지를 위한 정찰을 계속했다. 마지막으로 부대 주변 봉암저수지 근처의 독립가옥 및 주요 고지 등을 살펴보다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했는데 휴대용 수첩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동안 정찰 및 워게임을 하며 기록한 사항 등은 비문 등재를 안했지만 중요 내용이 많아 만약 그 수첩이 불순분자 손에 들어가면 큰 보안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휴대용 수첩 분실이 추정되는 정찰지역으로 급하게 차를 몰고 갔다. 아마도 정찰시에 잠시 수첩을 차량 본넷트에 올려놓았다가 깜박하고 그대로 출발하여 분실한 것 같았다. 따라서 그 주변 민가의 문을 두드렸다. 한집 두집... 계속 확인했지만 모두 못 봤다는 대답이었다. 낙담하며 점심 식사했던 식당에 들어갔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동네 아저씨가 발견하고 기무부대에 신고하려고 한다”는 고마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만약 동네 아저씨가 이미 기무부대에 신고했다면 불명예스런 사건이 될 수도 있어 급하게 그 아저씨 집을 찾았다. 다행히도 그는 아직 신고를 안했고, 자신도 청년 시절에 군생활 경험이 있어서 수첩을 보고 중요한 것 같아 보관하고 있었다며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뿜은 필자는 폴더 인사를 하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후 작전보좌관 근무를 하면서 군생활 경험에 따른 보안의식으로 불명예스런 사건 발생을 막아준 동네 아저씨를 수시로 찾아뵈었고, 덕분에 그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민원도 해결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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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6-0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5]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필자가 대위 계급으로 사단작전장교 임무를 수행할 때에도 을지연습 기간에 워게임 요원으로 연합사로 파견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작전장교 임기 말기라 후임자가 이미 사단에 보직되어 있어 워게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소령 계급으로 무적태풍부대의 작전보좌관으로 보직되자 전임자는 중령으로 진급하여 곧 대대장 보직을 받고 대기하며 임무를 필자에게 인계 중이었고, 원래 사단작전보좌관이 통일‘92-2워게임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으나 대신하여 후임자인 필자가 파견됐다. 이번의 워게임 훈련에 필자는 대위 시절과 정반대로 임기 말기가 아닌 부임 초에 전임자를 대신하여 파견되는 야릇한 상황이었고, 따라서 이번에도 역시 훈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87)] ’‘88을지연습 워게임 실시단 파견서 깨달은 미군의 힘’ 참조) 전임자의 배려(?) 덕분에 워게임 파견 기간 훈련에 임하면서 부대 작전계획을 예하 부대까지 속속들이 숙지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군에서 새롭게 도입한 워게임에 의한 전쟁연습이 점차적으로 체계를 잡아가던 당시, 필자에게 워게임과 전투지휘체계 관련 일가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훗날 필자가 연대장 및 군단작전참모 시절에 지상전술C4I체계(ATCIS : Army Tactical Command Information System) 전력화 완성에 따른 전군 최초 디지털 군단으로 발전시킬 때에도 큰 힘이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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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5-2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4]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사령부의 전투지휘검열시에도 군자산 대대장 김형배 중령은 수세적으로 검열 수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공세적인 자세로 임했다. 그는 검열관 전원에게 ‘전투지휘 검열관 초청 편지’를 사전에 보냈고 검열관들은 검열전에 상쾌한 기습을 당한 기분이었다. 당시에 대부분의 예하부대 지휘관들이 검열관들의 지적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부대로 검열나오는 것을 회피하는데, 김 중령은 오히려 자신의 부대를 검열해 달라는 적극적인 구애의 서신을 보냈기 때문이다. 전투지휘검열을 받기 직전에 발생했던 예하 부대에서의 월북사고와 맞물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군자산 대대를 방문했던 전투지휘 검열관들은 하나같이 군자산 대대를 칭찬했고, 대대장 김 중령의 노력과 우수성 및 지휘능력을 높이 치켜 세웠다. 초청편지 사건은 이후 가장 많이 회자(膾炙)되면서 신화처럼 남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단의 각 참모부는 연말 우수부대 선정시 전 년도에 이어 군자산 대대를 ‘선봉대대’로 선정했다. 하지만 선봉대대 2연패로 인해 예상되는 타 대대장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ATT(전술훈련 평가) 우수부대로 조정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필자에게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랬동안 모셨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사귀었는가가 중요하다. 허심탄회하게 심중을 드러낼 수 있어야 인정받는 부하가 될 수 있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얼마나 깊이 사귀었는가?’라는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던 김 중령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이듬해인 1992년 3월에 대대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사단 정보참모로 영전한 뒤에 작전참모까지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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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5-2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3]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야전 숙영지의 비좁은 텐트 안에서 신임 작전보좌관인 필자에게 귀중한 조언을 해주던 김형배 중령은 어떠한 임무가 부여될 때,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 능력을 평가받는다며 진지공사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비록 자신 부대의 별도 임무 수행 때문에 진지공사를 늦게 시작했더라도 김 중령 대대는 타부대 보다도 일정을 앞당겨 일찍 끝낼 수가 있었다. 그 이유는 쉬는 병력 없도록 간단없이 진지공사가 지속될 수 있게 철저한 계획과 사전 준비를 한 효율적인 ‘공정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형틀을 짜는 병사들은 대부분 병사가 잠이 들었을 때 작업을 했고, 대다수의 주력은 일과 개시와 동시에 분주하게 일했다. 이렇게 조직적인 업무 분담과 통합이 매우 중요했다. 또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높은 곳에는 간이 도르레를 이용해 시멘트와 물들을 운반시켜 병사들의 노력을 최소화 시킨 것도 유효했다고 성공담을 들려주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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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5-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2]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김형배 중령은 추계진지공사를 위해 적암삼거리 옆 공터에 설치된 야전 숙영지 텐트에 있었다. 필자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마음에 대대장 김 중령의 텐트로 들어서자, 그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의아해하며 던진 첫 마디에 움찔해질 수밖에 없었다. “희철아, 니가 왜 여기에 왔니?” 수방사 작전장교로 근무했으면 선호하는 기계화 사단 등의 부대로 갈 수도 있었는데, GOP를 담당한 가장 평범한 부대로 배치를 받았냐하는 핀잔이었다. 그의 핀잔 속에 숨어있는 필자에 대한 진정한 아낌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가 현 부대와 수방사에서 근무했던 선배의 요청과 추천 때문이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당시 상황이야 어떻든 필자의 부대 배치는 과거의 일이 되었다. 허나 오히려 필자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선배임을 재확인하면서도 그를 가까이에서 벤치마킹하여 야전에서 성공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하늘이 주신 좋은 기회였다. 왜냐면 그는 수방사 경비과장을 마치고 무적태풍부대 예하 대대장으로 부임하여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부대를 지휘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 결과로 선봉대대와 대대전술훈련 우수부대 등 많은 부대 표창을 수상하며 성공적인 대대장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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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5-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1]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단장 이재관 장군에 대한 존경심이 모락모락 피어났던 전입신고 다음날, 사단 책임지역 지형 정찰을 위해 사령부에서 출발했다. 필자는 지형 숙지를 위한 목적으로 책임지역 정찰을 출발했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만나고 싶은 선배가 있어 군자산으로 바로 향했다. 10년 전에 중동부 전선 대성산 기슭의 승리부대에서 인접 중대장직을 수행하던 그는 소대장 근무하던 필자를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충고를 했던 선배였다. 당시 그는 필자에게 “김소위, 방금 대대장님은 이임 전날 그동안 지휘했던 부대에 애착이 있어 돌아보시는 것인데 자네는 상급자의 의도를 모르고 계속 점호를 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하면서 “상급자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다. 오히려 삼촌이나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상급자를 모셔야 한다네...”라고 말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26) “군 생활의 딜레마, 상급자는 우리의 또 다른 적인가?” 참조) 그 충고를 듣고 필자는 상급자가 하급자 지적을 통해 혼을 내며 가르치지만, 하급자는 그 지적에 오히려 감사하며 한 발 더 앞으로 다가서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군생활 뿐만 아니라 사회 조직의 험한 파도 속을 헤쳐나갈 수 있는 중요한 강점이 되었다. 또한 그의 가르침 덕분에 상하가 일치되어 '上下同欲者勝(상하동욕자승)'의 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 군생활 기간의 실천 노력으로 이렇게 ‘직업군인 이야기’ 칼럼을 쓸 수 있게도 되어 너무도 감사했다. 그 선배는 김형배(육사34기) 중령이었고 당시에 군자산 대대장으로 추계진지공사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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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5-1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0] 아스팔트 수방사에서 비포장도로 무적태풍부대로 가다(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장실로 들어서자 난로도 켜지않은 싸늘한 사무실에서 두꺼운 장군용 잠바를 걸치고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던 사단장은 함께 들어온 인사참모를 쬐려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짝 긴장하던 인사참모가 ‘사단장님께 신고’라는 구령을 붙였고, 이어 필자는 경례를 하며 “태풍, 소령 김희철은 1991년 10월28일부로 사단 작전보좌관으로 전입 및 보직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라고 우렁하게 외쳤다. 신고를 받은 사단장은 자리에 앉으며 ‘차한잔 가져와’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필자가 사단장 앞 테이블에 앉자 문밖으로 나가려는 인사참모를 다시 불러 세웠다. “인사참모, 넌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야? 지난번 소원수리 내용에 대해 후속조치를 빨리 하라고 지시했는데 깜깜 무소식이야 .. 멍청하게는 ...”라며 다시 쏘아 보았다. 나가려던 인사참모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칫하다가 지금 보고서가 준비되어 있으니 곧 보고드리겠다면서 절절매며 더듬거렸고, 부동자세를 버텨주던 무릅까지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살벌한 분위기의 신고 자리에서 필자는 사단장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도 안나고 잔뜩 긴장한 상태로 앉아 있다보니 어느새 뜨거운 커피는 방안의 차가운 온도와 분위기 때문에 아이스 커피가 되어 버렸다. 지휘관들은 자신만의 색(色)을 가지고 있다. 전전 사단장 이상호 장군은 ‘교육훈련’을 강조 했고, 직전 사단장 김길부(육사20기) 장군은 ‘전투준비’위주로 부대를 지휘했다. 당시의 사단장 이재관(육사21기) 장군은 ‘부대관리’를 중점으로 안전 사고 예방에 치중하여 지휘했다. 아마도 이재관 사단장은 ‘부대관리’를 강조하며 필자에게 사단 전체를 총괄하는 차원의 업무를 하는 사단 작전보좌관으로 무리한 부대운용에 의해 사고를 유발시키지 않도록 전입 신고 면담에서 지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허나 엄격하고 단호하며 거칠어 보이지만 에너지 절약을 강조할 때에는 사단장 본인이 가장 먼저 사무실에서 난로를 피우지 않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는 추위를 견디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볼 때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웠다. 이 장군은 사단장을 마치고 승승장구하여 4성 장군으로 진급했고 제1군사령관을 마치고 전역하여 재향군인회 부회장까지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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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5-1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9] 아스팔트 수방사에서 비포장도로 무적태풍부대로 가다(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쌀쌀한 가을 바람이 엄동설한의 겨울을 재촉하던 1991년 10월말 무적태풍부대 사단장실 앞에 필자는 사단 전입신고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최전방 부대의 가을은 청명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상쾌한 가을이 아니라는 것을 군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왜냐면 시원하고 상쾌한 날씨라기 보다는 이미 겨울이 성큼 다가와 옷깃을 여미며 삭풍이 몰아치는 추위와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에너지 절약 운동으로 사무실에서는 난로도 못켜게 하여 내복까지 속에 껴입고 잠바까지 걸치며 난로를 피우는 한겨울보다도 더 추위에 떨면서 근무하는 실정이었다. 육사 3년 선배인 사단 인사참모는 사단장이 매우 까다로운 분이니 각별히 실수 없도록 잘하라고 몇 번이고 다짐하며 오히려 필자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사단 전입 신고를 위해 따뜻한 남쪽나라였던 수방사에서 출발한 필자는 내복도 안입고 야전상의만 걸치고 도착한 탓인지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에 적응이 힘들었고 인사참모가 긴장하며 던진 조언에 더 위축되었다. 긴장한 인사참모의 구령에 맞춰 몇 번의 신고 연습을 반복하고는 사단장에게 전입신고를 위해 굳게 닫혀있던 사단장실 문을 노크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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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5-0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8] 아스팔트 수방사에서 비포장도로 무적태풍부대로 가다(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상징명칭이 ‘무적태풍부대’인 28보병사단은 6.25남침전쟁 직후인 1953년 11월18일 충남 논산에서 창설되었으며, 경례구호는 '태풍'이다. 부대마크는 태풍의 눈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폭풍우를 휘몰아치며 북진하는 태풍의 위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전투에 임할때에는 북진의 교두보로서 적의 심장부를 일격에 무너뜨리겠다는 부대원의 결의를 담고 있다. 부대마크의 좌회전은 "영원불멸"을 상징하며, 바깥원은 "견적필살" "천하무적"의 총구를, 청색 바탕은 "정의"와 "평화"를, 백색은 "자유"와 "백의민족"을 의미한다. 창설 이후 강원도 사창리, 포천, 양평 등 4차례의 이동있었고 1966년 현 지역에 배치되어 중서부 전선의 최전방 GOP경계를 담당하고 있다. 부대가 위치한 연천군은 대표적인 안보관광지이다. 6·25남침전쟁 후 대부분이 수복지역으로 북쪽에서 흘러오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한탄강 유원지와 전곡 선사시대 유적지, 재인폭포, 감악산 비룡폭포 및 GOP지역 필승교 옆의 태풍전망대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한 고려 태조와 혜종·성종·현종·문종·원종(충경왕)·충렬왕·공민왕과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 외 15인에게 제사를 지냈던 숭의전이 있고, 태풍전망대에서 보이는 비무무장지대에는 6·25남침전쟁시 치열한 전투로 유명한 김만술 소위의 베티고지도 있어 역사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헌데 부대창설 후 지난 69년 동안 44회에 걸친 대간첩작전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적 사살 63명, 생포 8명, 장비 노획 1,308점이라는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던 28보병사단은 국방개혁 2.0으로 2025년에 해체될 예정이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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