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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1]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필자가 대대장 취임전에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동기생 중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이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고,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금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다. 대대장 근무를 하던 당시에 타 동기들은 대부분 모두가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참모 보직으로 옮겼지만, 필자는 대대장반 교육과정에서의 교통사고 때문에 후유증 재활치료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여유를 갖게 된 졸업중대 동기들에게서 그들보다 2년 늦게 대대장직을 수행하는 필자의 부대를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관생도 시절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의 부대 방문은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깊이 감춰진 의미인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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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9]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조영호 사단장의 사고예방 최우선 부대운영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병사 개개인의 신상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긴밀한 소통을 통해 사고예방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대대의 60여명밖에 안되는 현역 전병력의 인적사항을 병원관리(兵員管理)용으로 전산화시켰다. 이는 탁월했던 후배 고(故) 김상철 대위(육사38기)의 포대에서 수년전에 활용했었지만, 당시에는 타부대는 아직 적용을 못하고 있던 상태로 사단에서는 필자가 최초로 시행했었다. 나중에는 일반화된 명암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결손가정 등 필요한 요소을 검색하면 전 대대원중에 해당자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그러나 병원관리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수시로 대대원들과 면담이나 소원수리함(대대장만 개봉 가능) 등을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에 한 병사가 면담을 요청하는 문건을 확인했다. 대대장실에서 아담한 키에 다소곳이 마주 앉아서 차를 한잔하던 00일병은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였다. “대대장님, 이것을 차마 중대장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시작하자 흠칫 상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애로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교육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후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입대 후에 생활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취침시에 모포가 쓸려내려간 동료의 허벅지를 볼 때마다 흥분되고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난감했다. 하지만 00일병의 입장이 되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대장이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런 이상 징후 치료가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며 안심하라고 달래주었다. 그를 생활관으로 돌려보내며 걱정이 됐으나 연대 인사과장에게 먼저 상의를 했다. 다음날 연대인사과 선임하사가 대대를 방문해 00일병을 면담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 치료차 대대를 떠난 병사는 의사 진료 후에 ‘성도착증세’로 확진이 됐고, 바로 전역 조치가 되었다. 한달 뒤에 그의 편지를 받았다. 전역해서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말미에 병명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망도 적혀있었다. 지휘관은 휘하에 부하들을 지휘통솔하는 직책이다. 질식사 위험의 부하도 살리는 보람도 있었으나, 후자같은 경우에는 많은 타부하들을 위해 지휘관을 믿고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던 부하를 아쉽게 전역시켜야 하는 아픔을 겪게 만드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괴로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희생양이 된 00일병에게 미안함이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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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8]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복귀를 고려해 우선 원거리부터 이동하여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미원면과 낭성면을 지나 가덕면에 위치한 지파출소 예비군무기고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짚차 출입문 틈으로 혹서기 삭풍을 예는 바람이 매섭게 파고들어 발밑의 히타의 온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저멀리 가덕면 지팔출소와 예비군 무기고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계초소가 보였는데 그 안에 초병이 없었다. 일순간 날이 추워서 경계근무를 안하고 임시 생활관에 들어가 쉬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며 경계근무에 소홀한 초병을 어떻게 혼을 내줘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차를 세우고 경계초소로 들어갔다. 헌데 초병인 상근예비역은 초소 밖을 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초소안에 총을 세워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을 쬐고있었다. 기습적인 대대장의 방문에 놀란 초병은 옆에 소총을 집어들면서 급하게 일어서서 ‘필...!’하고 경례를 했다. 경례구호도 제대로 하지못한 초병은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며 필자의 품에서 잠시 기절을 했다. 필자는 초병을 안은 채 초소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히며 등을 두드렸다. 잠시후 표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초병은 말을 할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초병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을 보냈는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여 거의 중독되기 직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품으로 쓰러졌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더듬거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초병을 생활관 대기실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기하던 다른 상근예비역으로 초병근무를 교대시켰다.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해 지속 감행했던 결과로 질식사 직전의 부하를 살렸다는 부듯한 보람이 엄동설한 속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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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5]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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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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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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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0]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에 이바지 함을 그 ‘이념’으로 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 평화의 유지에 이바지 함’이 ‘국군의 사명’으로 군인복무기본법(구 군인복무규율)에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가 37년간의 군생활 동안을 돌이켜보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국군의 사명을 이행하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근무하던 부대가 위치했던 지역의 지자체, 관공서 및 주민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더 많이 받았다. 필자는 지역 유지들의 도움과 적극적인 지원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려고 대대원들과 함께 태권도, 총검술 시범, 파티 등을 준비한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그들을 초청해서 약간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준비했던 국군의 날 행사를 통해 뜻밖의 ‘부대 앞 신호등 설치’라는 또 하나의 민관군 콜라보 성과를 올려 민관군이 함께하는 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지고 청주대대로 통합된 청원대대는 당시에 청주시 톨게이트에서 시내 진입시에 가로수 터널을 통과해 강서동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 남쪽에 바로 위치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차량들은 과속을 많이 했고, 대대의 정문으로 진입하려면 언덕을 넘어오는 차량을 주시하며 조심하며 좌회전하고, 또 정문 앞에서 정지하여 출입자 신원 확인도 해야하기 때문에 항상 교통사고 위험이 내재된 상태였다. 필자는 국군의 날 행사에 지역 기관장 및 유지들을 포함해 당시 친 형처럼 각별하게 지냈던 경찰서장 한진희 총경(전 서울경찰청장)도 초청했었다. 물론 교통사고 위험이 있는 대대 정문 앞에는 간부를 사전에 배치해 초청 손님들의 사고 위험을 예방하는 조치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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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0]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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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9]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민관군 관계가 돈독해지는 가운데인 어느 따뜻한 봄날, 예비군 교육훈련 중에 훈련용 수류탄을 잘 못 사용하여 파지한 손바닥 안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화상을 입은 병사가 발생했다. 사단 의무대까지는 너무 멀어서 긴급 조치가 필요해 이왕영 박사에게 부탁하니 부대 인근에 위치한 조긍희 정형외과를 소개해주어 급하게 환자를 보냈다. 전문성이 있고 신속한 치료 덕분에 오염되지 않고 빠른 시간에 수류탄을 파지했던 손바닥은 흉터도 없이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해당 정형외과는 우리 대대의 의무대 역할을 하게 되었고 필자는 담당 병원장과 가끔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친한 벗이 되었다. 게다가 필자의 교통사고로 인해 대퇴부에 박혀 있던 골수정을 제거할 때가 되어 병원장과 상의했더니 가능하다고 하여 5월 어린이날 연휴를 활용해 그 병원에 입원하여 골수정을 완전하게 제거시술을 받았다. 이로써 교통사고 후유증 재활치료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 이후로는 공항 입출국시에 금속 탐지기에도 걸리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은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시끄러운 약육강식의 지옥같은 상황이지만, 민관군 콜라보는 평범한 국민들에게 아직도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저력을 만들 수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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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9]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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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8]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대대장 근무 당시에 조영호 사단장은 권위보다는 상당히 소박한 성품에 진심을 다해 베푸는 정겨운 심성을 가지고 지휘했다. 또한 착각일 수도 있으나 사단장이 각별하게 필자를 아끼다보니, 한 달에도 3~4번 청원대대를 방문했는데 어느날 필자에게 도움을 많이 줄 것이라며 자신의 고교후배 한 사람을 소개도 시켜주었다. 흥농종묘에서 종자를 연구하는 이왕영 박사였다. 그는 당시에 농업인으로는 드물게 정부에서 선발한 ‘과학인상’을 받는 등 활발하게 농업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었다. 마침 인접 203특공여단에서 대대장을 하던 후배 양 중령(육사38기)과 고교 동기라 쉽게 가까워졌고 현재까지도 가끔 연락하며 지낸다. 특히 이 박사는 흥농종묘가 외국 기업으로 넘어가자, 국가기간산업인 종묘는 우리 손으로 보존해야 한다며 종묘회사를 개업하여 기간산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던 진정한 농부이다. 현재는 충북농업마이스터대 학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대장 근무 당시에 이 박사 덕분에 가을이면 종자 연구가 끝난 배추들을 받아와 연대 및 사단에 나누어 주어 맛있는 김장을 담글 수도 있었고, 그밖에도 이 박사 고교 동창이자 육사 후배들과, 박종룡(청와도시락 사장, 현 농협 감사) 등 주변 지역 유지들과도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대대장을 마친지 20년이 넘도록 아직도 가끔 만나 라운딩도 하고 소줏잔을 기우리며 돈독하게 지내고 있는 절친이 되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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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8]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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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7]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최근 어느 인터넷 블러그에 나온 푸념은 다음과 같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망월폐견(望月吠犬)이다. 달 보고 짖는 개들이란 뜻이다. 도둑을 지키랬더니 둥근 달을 짖어 대니 그놈의 개가 도둑은 안 잡고 자기 키워 주고 밥 주던 주인은 나 몰라라 시끄럽게 짖어댄다. 그러니 요즘 짖어대는 놈들은 다 개들이다. 아니 개보다 못한 놈들이다. 개는 주인을 물지 않는데 이 개놈들은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주인 물어뜯으려 염병질 한다. 돌아버린 미친개들이다. 일견폐(一犬吠, 한 마리의 개가 달을 보고 짖으니), 이견폐(二犬吠, 두 번째의 개도 달을 보고 짖는구나), 만견종차일견폐(萬犬從此一犬吠, 만 마리의 개가 한 마리의 개를 따라 모두 짖는구나), 한마디 더 하면 주인이 뭔 일인가 하고 문을 열고 밖을 보니 하늘에 둥근달만 훤하더라......! 정치권 실세가 한번 짖으니 그 졸개들이 따라 짖고 검·경찰·공수처 등이 왕왕 짖어 댄다. 달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데 이걸 보고 왜 떴냐고 일부 사람들은 지랄을 떤다. 자유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은 꼬리를 감추었나? 그런데 진짜로 지금 세상은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상태이고, 지저분하며 치열한 약육강식의 지옥같은 상황이다. 한편, 연말연시 길거리에는 어김없이 구세군 냄비 앞에서 도움은 베풀기를 청하는 종소리가 청아하게 울리고, 익명의 기부가들은 주변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봉사와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연말인 12월29일, 무안공항에서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지만, 평범한 국민들은 안타까워하며 이에 대한 조의와 기부금이 줄을 잇고 있다. 그래서 아직 살맛은 조금 남아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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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7]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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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6]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⑦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초정약수에서 나와 복귀 중에 날이 저물자 청주시 강서동 부근에 예약된 식당에 모두 모였다. 사실 사관학교를 졸업하며 임관한 후에 보수교육 기간을 제외하고 이렇게 같은 중대출신 동기들 부부가 자리를 함께한 것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았다. 모두들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워했고, 생도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후 부모산 기슭에 새롭게 신축한 대대 독신자 숙소(BOQ)로 자리를 옮기자, 초급장교 시절 근무했던 곳의 열악한 독신자 숙소(BOQ)를 비교하며 군대도 많이 발전하고 좋아진 것 같다는 덕담도 늘어놓았다. 다행히도 식구별로 각 방을 배치할 수 있었고 피곤해서 먼저 잠든 가족들을 제외하고, 동기들은 중앙 거실에 모여 맥주 한잔씩 돌리며 그날 관광여행의 뒷풀이를 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각 방의 짐을 모두 챙겨 각자의 차에 올랐다. 그런데 한 동기가 난감한 듯 필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함께 온 아이가 그 방의 주인인 독신자가 사용하던 요에 밤새 실례를 한 모양이었다. 그 친구 가족은 급하게 손질하여 빨래걸이에 널어 말리며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다음 관광지인 청주의 명품 무심천변에 즐비한 아침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무심천은 장관이었고 밤늦게까지 회포를 풀었던 까닭에 얼큰한 해장국은 분위기를 더했다. 아침 해장국 후에 아직도 많이 남은 충북 명승지를 한두군데 더 갈려고 했는데, 동기들은 일요일에는 차가 많이 밀린다며 일찍 출발하자는 의견이 많아 아쉬움을 남긴 채 바로 등을 돌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지금은 12.3계엄사태로 곡해받는 육사의 이미지이지만, 생도시절 같은 중대에서 2년간 함께 생활하며 졸업했고, 필자가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으며,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후에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는 문무 8중대 동기들이 너무도 소중했다.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됐고,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의미처럼 감사하고 행복한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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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6]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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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5]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운보의 집 관광을 마친 동기들과 가족들을 그곳에서 근거리이고 좌구산 구녀성 하단에 위치하며 탄산수로 유명한 초정약수로 안내했다. 그리고 함께한 방문자들에게 목욕까지 강권했다. 초정약수는 청주시 동쪽 10여km 지점인 내수읍에 위치하며 라듐 성분이 다량 함유된 천연탄산수이다. 세계 광천학계에서는 초정약수를 세계 3대 광천의 하나로 꼽는다.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솟아오르는 이 무균 단순탄산천은, 용출량(1일 약 8,500ℓ)도 풍부하며, 이를 가공하여 상품화하기까지에 이를 만큼 널리 알려진 약수로서 부강약수(세종시 부강리 소재)와 함께 국내 제일의 약수로 꼽힌다. 발견된 시기는 600여 년 전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에 세종대왕이 이곳에 60일 동안 머물며 눈병을 고쳤고, 세조도 이 곳 약수로 심한 피부병을 고쳤다는 기록도 있어 유명해졌다. 목욕탕물이 탄산수인 까닭에 탕 바닥에서부터 탄산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자 동기생과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수하기를 주저했다. 필자가 먼저 들어가 동기들을 유인하자 입수한 동기중 일부는 여린 살갗 부분이 약간 따가운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 마침 어떤 동기가 탄산수탕 속에 들어가자마자 “앗 따갑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이에 즉각적으로 필자는 그를 쏘아보며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그곳이 따가운데 너 혹시...?”라고 질문을 하자, 그는 정색하며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여 탄산수탕속에 몸을 담근 동기들은 한바탕 웃어제끼며 폭소가 터졌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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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5]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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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4]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1913년 서울에서 태어난 운보 김기창 화백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었지만, 불굴의 의지와 자기혁신으로 ‘청록산수’ ‘바보산수’ 등 한국화의 독보적 경지를 개척하며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화가로 활동했다. 어린 시절인 초등학교 때 청각을 잃은 운보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데 따른 친일시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남침전쟁이 갈라놓은 형제간 이산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픔, 그것의 현장 집합체이었다. 이런 역경을 그 특유의 바보스럽고 천진한 웃음으로, 때론 야생마 같은 광기로 털어버리며, 자기보다 어려운 이들에 대한 사랑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화가로 뿐만 아니라 운보 생애의 위대함이었다. 운보는 1930년 이당 김은호 문하에 든 지 6개월 만에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상하며 천재성을 인정받은 이래 ‘청록산수’와 1980년대 말 봉걸레로 그린 초대형 추상화 ‘심상예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왔다. 천주교로 개종한 운보 김기창 화백은 ‘최후의 만찬’ 등 예수님의 일대기를 특이하게도 화풍뿐만 아니라 외모나 복장, 배경을 모두 조선조의 것으로 바꿔 그려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예술적 성취의 뒤안에는 역시 탁월한 한국화가였던 부인 박래현(1976년 작고)의 동지애(同志愛)적 내조가 있었다. 또한 운보는 30만 청각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이었고, 대부였다. 그는 1980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설립, 목공 도예 등 기술을 가르치고 취업을 알선했으며 해외에서 열리는 청각장애인 스포츠대회 등에 참가비를 부담하기도 했었다. 역경을 예술로 승화시킨 김 화백의 ‘운보의 집’을 방문한 동기들 뿐 만 아니라, 생도 시절 훈육관이었으며 인접 사단장으로 근무하던 선 장군이 전화로 부탁하여 안내했던 그의 지인(대학시절 그림 전공자)들 모두도 김 화백의 특유의 바보스럽고 천진한 웃음, 때론 야생마 같은 광기가 표출되는 심오한 그림과 주변 풍광에 감탄하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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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4]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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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3]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간신히 친구 부부들의 숙소가 해결돼었고, 금상첨화(錦上添花)로 필자가 근무했던 청주시와 청원군이 포함된 충절의 고장 충청북도에는 명승지가 즐비하여 안내할 곳은 많다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한반도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는 소백산맥을 넘어갈 수 있는 대표적인 고개인 죽령, 조령(이화령)과 추풍령이 있고, 청풍명월의 명성답게 충주호, 대청호, 쌍곡, 속리산 법주사, 단양팔경, 상당산성, 초정약수, 운보의 집 등에 많은 관광객들이 사계절 내내 즐겨 찾고 있다. 토요일 오후에 도착한 동기들을 우선 청주 시내 구경을 시킨 뒤에 인근의 상당산성을 거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였던 운보의 집과 초정약수로 안내했다. 특히 방문한 동기 부부들이 ‘운보의 집’을 찾았을 때 노환에 힘들어하며 아무말도 못했으나 휠체어에 몸을 싣고 산책하던 운보 김기창 화백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왜냐면 한국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 화백은 동기들과의 만남이 있은 뒤 얼마 되지않은 2001년 1월23일 향년 88세로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내수읍) 자택 ‘운보의 집’에서 숙환으로 별세했기 때문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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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3]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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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2]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사관학교에서 2년간 함께 생활하고 졸업시에도 같은 중대였던 동기들이 필자 대대로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은 참으로 감사한 소식이었으나 걱정이 앞섰다. 뜻을 같이하고 지향점이 같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지만 그들이 1박 할 숙소 등 사전 준비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필자가 위수지역 개념이 철저한 최전방에서 근무를 오래하다보니 휴일에도 비상시에 긴급 출동을 대비해서 부대 근처의 위수지역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상황은 답답함과 지루함 및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교통이 편리한 후방지역인 청주에 근무하는 대대 간부들에게 휴일 당직근무체제를 확고하게 유지한 가운데, 기타 간부들은 위수지역을 벗어나 서울 지역 등에 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반드시 비상 발령시에는 시간내 복귀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한 후의 위수지역 이탈을 묵시적으로 허락했었다. 때마침 필자의 특별한 노력으로 사전 계획에도 없던 대대 독신자 숙소(BOQ)를 신축하여 깨끗한 숙소가 준비되어있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24)] 전투지휘검열도 끝나자 더 바빠진 청원대대(상) 참조) 필자는 독신자 간부들에게 동기들이 방문하는 토요일에 방을 제공하고 모두 고향에 다녀올 수 있도록 양해를 구했는데, 오히려 편하게 다녀올 수 있어서 모두들 좋아했다. 덕분에 방문객들의 숙소는 해결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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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2]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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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0]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2500년전에 20장 1만1,500글자로 작성된 고전이 지금은 중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교양 필독서가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인간들의 표상을 정위치에서 잡아주는 것이 논어(論語)의 위력이고 존재 이유이다. 논어에서 107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단어가 군자(君子)이다. 여기서 군자라 함은 삶의 표본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교양과 품격을 갖춘 인간상을 말한다. 의지만 있으면 온갖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며 새로운 가치와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학습자이다. 따라서 이 시대가 원하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유형별 군자의 인간상을 정리했는데 그중에 두 번째는, 동지형(同志型) 인간으로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하면, 불역락호(不亦樂乎)아라’했다. 뜻을 같이하고 지향점이 같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니겠는가? 즉,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행간의 숨은 의미이다. 필자의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에는 생도대가 지금과 달리 16개 중대로 편성되었는데 매년 소속 중대가 바뀌었다. 하지만 3, 4학년은 같은 중대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2년간 함께한 졸업 당시 중대의 동기들은 타 중대의 동기들보다도 유난히 돈독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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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0]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