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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2]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⑫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담당 군의관에게 교육 입교 날짜가 이미 정해져 있어 완치 후 퇴원보다는 군수학교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에 입교해 회복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아직 퇴원시기는 조금 이르기 때문에 무리한 행동으로 재발할 수도 있으니 교육기간 동안에 각별히 조심하라’는 군의관의 당부를 듣고 통합병원에서 퇴원해 군수학교로 향했다. 지금은 위례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신도시가 형성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특전사와 종합행정학교, 학생군사학교 등이 위치한 군사지역이었다.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도 종합행정학교내에 있었던 군수학교에서 시행되어 전반기 동안 교육받은 군사영어반에 이어 후반기 8주간도 또 위례에서 지내게 됐다. 약 20명의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구성된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은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라 대부분이 선배들이었다. 필자의 동기들은 당시에 대부분이 대대장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필자처럼 작전직능의 장교도 군수과정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헌데 학생장교들 중에 군수직능의 동기생이 유일하게 한명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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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0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1]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⑪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산넘어 산이라고 했지만 재골절 수술 회복이 빨라졌고, 며칠만 더 있으면 퇴원할 때가 다가왔는데 또 다른 걱정이 앞섰다. 그해 7월초 사단장실에서 전입신고시에 DJ라는 별명의 필자는 차마 지팡이를 짚고 신고를 할 수 없어서 지팡이는 비서실에 놓고 약간의 통증은 있었지만 절뚝거리며 사단장 앞에 섰었다. 인사참모의 구령에 맞추어 절뚝거리며 신고한 필자를 바라보며 불안감을 감추진 못한 사단장 이상신 장군(갑종197기)은 불쑥 “김중령은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던져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한달만에 대퇴부 안의 골수정이 또 뿌러지면서 재골절되어 통합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고, 9월중순에 다시 절뚝거리며 목발을 짚고 사단장 앞에 서면 5개월 뒤인 이듬해 2월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도록 허락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불안한 고민을 했다. 그때 문뜩 입원하기 전에 사단참모 회식에서 군수참모가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당시 군수참모로는 “의무적으로 군수학교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에 입교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업무가 많아 고민중이다”라며 상급부대의 지침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었다. 바로 군수참모에게 전화를 거니 대환영이었다. 사단은 걱정하지 말고 퇴원하면 곧바로 군수학교로 가서 본인 대신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에 입교하라는 전갈이었다. 필자는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학교 8주간의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재활치료를 위한 최후의 피난처가 되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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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0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0]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⑩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어느덧 한달즈음 지나갈 무렵, 휠체어에서 일어나 목발을 집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많은 동료와 선배들이 위문을 다녀갔다. 특히 아리랑 전집을 구해 무료한 시간을 달래게 만들어 준 인접 사단 기동대장으로 근무하는 김남홍 동기는 병실에 찾아와 대뜸 간호사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환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으라고 재촉했다. 대대장 짚에 올라 이동하면서 오랫만에 필자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만들었고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 지나자 짚은 인근 동네 목욕탕 앞에 멈추었다. 이미 수술자리는 살이 올라 괜찮았지만 필자의 몸을 김 중령이 보고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6번의 수술로 생긴 바늘 자국을 세어보니 약 270개로 팔, 복부, 허벅지, 골반 등 온몸에 문신처럼 자리를 잡았고 그동안 운동을 못한 왼 다리는 젓가락처럼 말라 있었다. 김 중령의 부축을 받아 뜨거운 탕에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옆에 앉아 등을 밀어주는 동기생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며 감사한 감동의 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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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해 9월초, 날씨는 가을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었는데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내리는 때늦은 폭우가 며칠간 계속됐다. 때맞춰 아들과 가족이 면회를 온다고 했는데 걱정이었다. 그날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가족이 입원해 있던 통합병원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산은 쓰고 있었지만 세찬 비바람에 온몸이 모두 젖어 있었고 일주일 만의 만남에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으로 갓 입학해 학교생활에 적응이 됐는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던 아들은 점점 좋아지며 건강을 회복하는 필자의 모습에 안심하며 재롱을 마음껏 부렸다. 사실, 지난해 교통사고 후 장기간 입원시에 간병하던 가족이 집을 비우자 외삼촌집에서 그 기간을 지내며 아쉬웠는데, 이번에도 아빠는 다시 입원했지만 엄마와 함께 있으며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빗줄기가 멈추지 않자 동두천까지 다시 올라가야 할 가족이 걱정되어 날 밝을 때 출발할 것을 재촉했다. 같이 있다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뜸들이던 가족과 아들은 손을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밤 늦은 시각에 동두천 집에 도착해서 연락이 왔는데, 그동안 내린 폭우로 통합병원 앞 도로가 침수되어 택시 운행이 안되어 아들을 업고 침수지역을 건너 큰도로로 이동하여 간신히 택시를 타고 복귀했다고 한다. 흙탕물 속에서 아들을 잃어 버리까봐 조심조심 건널 때 정말로 아찔했던 순간이었다며 함박 웃는 전화소리에 가슴이 찡하며 절여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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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2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8]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마침 통합병원 근처에 위치한 32사단의 기동대장으로 근무하던 김남홍 동기가 위문 방문을 했다. 김 중령은 수술을 마치고 회복중인 필자에게 한보따리의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당시에 100만부 판매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아리랑 12권이었다. 소설 아리랑은 조정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4년동안 연재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었고, 필자가 재골절로 인해 6번째 수술을 받던 1995년 전집으로 발간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명작이다. 특히 한일합방 무렵부터 군산, 만주, 하와이 등을 배경으로 해방 직전까지 동학혁명, 의병활동, 하와이 노동이민자, 만주 독립운동가 등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밝히며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잘 묘사해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따라서 필자는 침대에 누워있을 때 뿐만아니라 병원 복도를 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에도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무료했던 병원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 순식간에 아리랑 12권을 독파했다. 마치 1년전 을지병원에서 5개월 동안 입원했을 때 고교 동창이 계속 보내준 무협지에 취해 있을 때의 모습이 재현되었다. 자주 위문을 와주었던 김남홍 동기에 책을 반납하고 나니 또 적적한 시간이 되었고 이번에는 성경 신구약을 읽기 시작했다. 아마도 통합병원에서 2회를 통독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또 허전했다. 필자가 취약한 영어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해 전반기에 다녔던 ‘영관영어반’과정에서 한미연합작전 및 훈련에 활용하기 위해 교육받았던 ‘전쟁원칙(Principl of war)’ 전체를 암기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보내준 소형 녹음기에 이어폰을 꽂고 당시 녹음했던 교관의 정확한 발음을 들으며 한문장씩 음송하며 암기하기를 반복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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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2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7]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94년 4월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뇌사상태)으로 긴급 후송된 대구병원에서의 응급처리 과정부터 시작되어 이번 재골절로 인한 치료까지 6번째 수술을 받았다. 회복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통증은 계속되었다. 며칠 지나자 휠체어를 타고 병원복도를 다닐 정도가 되었고 이젠 병원생활에 이력이 붙어 입원한 다른 환자들에게 재활치료와 효율적인 병원생활을 조언도 할 수 있었다. 병원내의 순회진료를 하던 군의관에게 성급하게도 언제 퇴원할 수 있냐고 질문하니 그는 미소를 띄우면서 “아직은 장담할 수 없지만 약 두달간은 입원 치료로 예상된다”고 답하며 수술은 잘되었고 회복 시간이 필요하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한편 필자보다 먼저 대대장으로 취임한 동기들은 각 부대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활약상 소식이 들려왔다. 인접 사단에서는 박병준 동기가 37사단에서는 주충근 동기가 사단 선봉대대 표창을 받으며 모든 상을 싹쓸이했고 전방 철책에서 근무하던 임방순 동기는 임진강으로 침투하는 공비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그나마 사단장의 지시로 연구했던 ‘부대구조 개선(무열) 계획에 따른 교육훈련 방안’으로 ‘소부대 전투력 향상방안’과제가 육군지 게재된 것에 위안을 삼았다. 또한 치료 회복중이지만 석사학위 논문을 요약해서 ‘남북통일 과정에서의 군사통합’ 원고를 위문온 선배에게 부탁해서 합참지에 게재하도록 부탁도 했다. 하지만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들며 극복’하려는 다짐을 실현하기에는 군잡지에 원고 게재한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너무도 배가 고팠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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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6]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새벽 6시즈음에 병실에서 이동해 수술실로 들어가서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하고, 8시부터 시작됐는데 하반신 마취 상태에서 모로 누운채 수술 진행과정 중에 벌어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엉덩이에서 가까운 부분은 골수정이 부러진 상태에 쉽게 뺄 수 있었는데 무릅쪽에 박혀있는 대퇴부 골수정은 뼈를 깍아내고야 집을 수가 있었고 벌써 일년 전에 박아놓은 것이라 밀착되어있던 골수정을 당기면서 무척이나 힘이 들었는지 이진우 군의관은 헉헉대며 상스런 말까지 내뱉었다. 겨우 골수정 끝을 집어당기며 애를 쓴 끝에 쇠파이프가 쑥하고 빠져나올 때 수술복 위로 피가 터져나와 속에 입은 팬티까지 피범벅이 되었고 곁눈질로 이 군의관의 얼굴을 보니 전체가 땀 범벅이 되었다. 보조 간호사가 팬티를 가지러 간사이에 뼈에서 빼어낸 10mm보다 더 굵은 14mm 굵기에 길이 38Cm가 되는 골수정이 뼈속에 다시 박히고 뒤쪽 골반에서 긁어내어 빻아 가루로 만든 뼈가루를 다시 골절부위에 이식하는 대장정 수술이 계속됐다. 오후 3시 즈음에 무려 7시간을 점심도 거른채 꼿꼿하게 서서 땀까지 흘리며 수술을 집도한 군의관들이 존경스럽고 감사하며 군병원도 일반병원 못지않은 진료 능력이 있음을 확인할 기회였으나, 필자도 정신 말똥말똥하게 의식이 또렷한 상태로 장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수술시간 동안 주기도문을 몇 번이나 암송했는지 모른다.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시작됐으나 진통제를 맞으면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는 간호사의 말에 하루밤을 버티었는데 참으로 긴 밤이었다. 헌데, 수술 후의 통증보다도 6개월 뒤에 대대장으로 취임할 수 있을지가 더걱정되며 ‘재활치료의 위기를 어떻게 호기로 만들며 극복할까?’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며 다짐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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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1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5)]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참모장 김현석 대령(육사30기, 예비역 중장)에게 현 상태를 보고하자 주저없이 그는 “당장 입원하라”고 지시하며 “차후조치는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고 빨리 건강회복에 유념하라”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어 너무도 감사했다. ‘전문의가 있는 대형 병원에 입원하면 가족이 간병하는라 고생할까봐 군병원을 택했다’라고 생각하여 훌쩍대며 반대했던 가족의 걱정을 무릅쓰고 당시 조치원에 위치한 노후된 대전통합병원으로 향했다. 마침 그동안 재활치료를 하면서 고생하여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했는데 동국대학원 졸업식이 입원 기간과 겹쳐 참석을 못해 아쉬웠지만 졸업장과 학위증을 받는 것으로 만족했고, 사단장의 지시로 연구했던 ‘부대구조 개선(무열) 계획에 따른 교육훈련 방안’으로 ‘소부대 전투력 향상방안’과제가 육군지에 게재하기로 확정됐다는 소식에 위안을 삼았다. 입원을 하고 1주일동안 검진을 받으며 수술날짜를 조율했는데 담당 군의관인 이진우 대위(연세대 출신)는 불융합된 대퇴부 골절에 대한 재수술을 타 의사들과 상의했다. 이 대위는 일부 의사들이 병원의 현 상태로 수술이 제한될 것이라는 의견에도 강하게 자신감을 표현하여 공동으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하며 필자를 안심시켰다. 결국 재골절된 지 열흘만인 그해 8월31일 아침 7시간의 장기간 수술이 시작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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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교통사고 재활치료를 하면서 사단장에게서 부여받은 ‘부대구조 개선(무열) 계획에 따른 교육훈련 방안’으로 ‘소부대 전투력 향상방안’연구과제 연구도 병행했다. 특별참모로서 추가해서 향토사단의 예비군 동원훈련 및 일반훈련 감독 임무도 수행하며 부지런히 현장을 확인하고 연구과제를 작성해서 사단장에게 보고도 마쳤고, 이 과제를 요약해서 육군지에 게재도 했다. 그러나 앞편 칼럼([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06)] ①자신감에 빠져있던 필자에게 적신호가 켜져)의 내용같이 회복을 과신한 오만과 무리한 재활운동 및 업무 수행으로 인해 왼쪽 대퇴부안에 박혀있는 골수정이 휘어져 뿌러지기 직전이었고, 골이식한 부분에는 뼈가 생성이 안되어 안붙을 수도 있다는 정형외과 의사의 진단은 충격이었다. 추가적인 골이식과 골수정을 더 굵은 것으로 교체하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에 따른 또 다시 찾아온 위기는 가족을 통곡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성당을 다니며 기도했는데 효과가 없다며 성당에도 다니기 싫다면서 더 울었다. 게다가 의무대장은 “만약 전역을 할 때 비장 절개와 골반 및 대퇴부 골절은 1급 원호 대상자의 조건이니 일반 병원 보다는 군병원에 입원 치료받는 것이 근거를 남길 수 있어 정상적으로 입원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도 했다. 이 의견을 전해듣고 가족은 “그동안 일반병원에서 간병한 본인이 또 고생할까봐 실력이 떨어지는 군병원에서 수술을 하냐?”며 훌쩍대며 “완벽한 치료를 위해 일반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다그쳤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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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3)]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두타산을 오르며 재활치료를 하던 중에 웃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날도 산행을 마치고 증평의 대중목욕탕에 들려 다시 뜨거운 물속에서 무릅 관절을 굽혔다 펴는 재활운동을 약 2000번 하자 온몸에서 땀이 비오 듯 쏟아졌다. 옆에 있는 냉탕에 바로 들어가 기진 맥진한 몸을 차가운 물속에 담그고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고 있는데 목욕탕 문이 열리며 2미터 가까운 거구의 두청년이 들어왔다. 머리도 짧고 온몸에 문신이 가득 그려져있어 한눈에 조폭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탕안에 들어와 사워도 안하고 거침없이 냉탕 앞으로 다가오던 그 들은 냉탕 팔걸이에 왼팔뚝을 내놓고 이마에는 땀이 한없이 흘러내리는 필자 모습을 보는 순간 냉탕에 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멈칫하고 있었다. 게다가 물속에 비치는 필자의 복부를 보고는 겁을 먹은 두사람이 줄을 서서 조심스럽게 차례로 냉탕에 들어가 있던 필자의 발끝으로 조용히 쪼그리며 들어와 물에 잠겼다. 아마도 그들은 필자에 팔다리와 복부 등 온몸에 있는 많은 수술바늘 자국을 칼자국으로 오인한 탓인 것 같았다. 나중에 전언으로 들었는데 증평지역에 칼을 잘 사용하는 중간 보스가 살고 있었는데 필자로 오인해서 벌어진 에피소드였다...ㅋ 필자는 두타산 등반과 목욕탕 물리치료로 건강이 좋아져 지팡이 없이도 잘 다닐 수가 있었다. 심지어 대대전술훈련평가(ATT) 통제에 나가서도 밤낮을 산과 들을 누비며 신나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중 오만과 자신감에 빠져있던 필자에게 적신호가 켜졌다. 8월이 되어 UFL(을지)연습 통제업무가 끝나갈 즈음에 그동안 완전하지 못한 몸으로 이리저리 휘젖고 다니고 하루에 150번씩 앉았다 일어서기를 했던 것이 무리였다. UFL(을지)연습 통제관 회의를 참가후 돌아오는 길에 심하게 절뚝거려 사단에 돌아와서 의무대를 들려 X-Ray를 찍어보니 왼쪽 대퇴부안에 박혀있는 골수정이 휘어져 뿌러지기 직전이었고, 골이식한 부분에는 뼈가 생성이 안되어 안붙을 수도 있으니 추가적인 골이식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졌고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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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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