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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3)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하지만 영관영어반에서 만난 선배중에는 광주 출신의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중국인 공산주의자로 행세를 한 정율성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도 있었다. 정율성이 북한과 중국에서 보였던 불손하고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지만 화려한 작곡가로서의 삶처럼 그 선배도 생도시절부터 뛰어난 지혜와 지휘생도 활약으로 후배 생도들의 존경심을 받아왔고 필자에게는 목발 및 지팡이를 짚고 있다고 해서 DJ라는 별칭을 즐겨 불러 주었다. 또한 그는 명석한 지능으로 영어 수업도 우수한 성적을 계속 유지했다. 마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정율성처럼 그의 모습은 수업시간에 뛰어난 영어 회화능력으로 교관들의 칭찬을 받아 학생장교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일과후 독신자 숙소에서도 타 선배들처럼 잦은 출타를 하거나 만취되는 일도 없이 착실한 학생장교로 돋보였고 필자는 친절하게 학업을 도와주는 그가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고 대령으로 일차 진급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그는 매우 힘든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생이 사업을 하는 데 급전이 필요하고 진행상 곧 회수 가능해 일주일 뒤면 갚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현금이 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필자도 교통사고 후에 많은 출혈이 있었고 저축한 돈도 별로 없어 죄송했다. 선배의 계속 독촉에 못이겨 현재 들고 있는 적금을 해약하면 요구한 금액의 반정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거라도 빨리 주면 바로 해결하고 일주일 뒤에 갚겠다고 다짐했다. 하는 수 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 적금을 해약한 후에 그 선배에게 전달했다. 물론 일주일 뒤에 갚는다고 해서 가족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에게 갚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돈을 주고나니 빌려준 사람이 을이 되어 있었고, 그는 여유롭게 생활하며 빌린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결국 교육 종료 직전에 그 선배에게 아직까지도 가족에게 말을 안했으니 빌린 돈을 갚아주어야 통장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독촉했다. 그 선배는 다음주로 다시 미루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던졌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생도시절부터 탁월한 모습으로 존경을 했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다. 가짜 한국인 정율성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그의 언행에 현혹된 필자가 부끄러웠고, 이후에는 잘 아는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금전 문제가 생길 때에는 여유가 있어 대출이 아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것이 돈도 잃지 않고 더구나 사람도 더 잃지 않는 길이라는 교훈을 영관영어반 교육과정에서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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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2)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㉗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율성이 6·25남침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군가도 작곡했지만 인민군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점령군으로서 자유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1·4 후퇴 때는 중공군과 함께 재차 서울에 내려와 조선궁정악보를 약탈해간 매국노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광주 출신이지만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공산당원으로 변절한 자를 추모하며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추진했던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은 동족상잔의 비국을 겪은 자유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현재도 핵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는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으려면 견고한 한미동맹이 절실한 실정이다. 필자가 다녔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북한의 재 남침에 대비해 합동참모본부의 주요부서에 근무하며 군사전략을 담당했던 용삼남(육사33기) 선배로부터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용 선배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재활치료에 전념했던 필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생도시절 럭비부 선수 생활을 했는데 운동중에 부상을 입어 척추가 심하게 손상되어 의사들이 판단할 때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였으나 강한 의지로 철저하게 운동을 하여 척추 주변 근육을 강화시킴으로써 전혀 불편함 없이 더 건강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합참 근무시에 매일 새벽에 가장 일찍 출근하여 책상 및 의자 정리 및 청소를 한 뒤에 책상위에 올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300개씩 하여 근육을 강화시켰다. 그가 원주에 있는 부대에 근무할 때에는 고속도로에서 시비를 걸던 조폭을 한방의 주먹으로 넉아웃시킬 정도로 강해졌다는 여담도 남겼다. 건강한 체력은 건전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업무에 질도 고양시킬 수 있다. 건강의 이상을 극복하며 지칠줄 모르는 용 선배의 체력에 상관들은 힘든 업무도 쉽게 맡길 수 있었고 업무상 만나는 미군들과도 쉽게 친해져 한미 연합작전과 군사전략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일과후에는 독신자 숙소에서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을 연주하며 하루를 마감하여 건강상 어려운 위기를 적극 극복하는 강한 의지와 동시에 예술감까지 가진 문무를 겸비한 군인으로 끝없는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앞으로의 군생활의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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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1)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㉖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0월2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에 세워져 있던 중국 음악가 ‘정율성 동상’이 기단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정율성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 귀화한 음악가로, 북한·중공군 군가를 작곡한 인물인데, 광주시가 기념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정율성 동상은 중국 청년단체가 제작해 광주 지역 청년단체에 기증한 것으로 2008년 광주 남구 양림동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 입구에 세워졌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이날 재물손괴 혐의로 보수단체 회원 윤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전날(1일) 오후 정율성 흉상 목 부분에 밧줄을 묶고 2.5톤 승합차에 이를 연결한 뒤 쓰러뜨리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정율성 흉상은 위의 사진처럼 약 1m 높이의 기단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기단 옆 땅바닥에 누운 모습으로 발견됐다. 윤씨는 범행 직후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중단하라고 광주시에 요구했는데 이를 이를 수용하지 않아 강제로 (흉상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경찰에서 “내가 그랬다. 3일 오전에 경찰서로 가서 조사받겠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유족 대표인 고(故)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전 광주대성여고 교장은 2일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광주시가 혈세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짓는다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무조치로 일관하고 있다”며 “공원 철폐를 위한 릴레이 피켓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오복 전 교장은 “북·중공의 군가를 짓는 등 한국 침략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한 정율성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강기정 광주시장은 아무 중단 조치도 없이 정율성 공원조치를 강행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율성 공원 문제 제기에 대해 철지난 이념몰이, 색깔론, 민간외교라는 억지 논리만 되뇌고 있다”면서 “지난 한 달여 동안 보훈단체들의 집회를 관제 데모로 깎아내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과 보훈가족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을 철폐하거나 대안을 만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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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0)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근 국방부장관으로 지명된 신원식 의원(육사 37기)은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으로 독립군을 직접 사살한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의 동상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영관영어반’ 과정에 다닐 즈음에는 홍범도의 존재 조차도 몰랐다. 청산리 대첩 이후인 1921년,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와 그 일당들에 의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들은 몰살당하며 해체됐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소련군 복장의 공산주의자를 추모한다는 것은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인민군과 중국인민군 군가와 마오쩌뚱 찬양가 등을 수십 곡 만들며 뼈속까지 어용 공산주의자인 정율성 작곡가의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관생도를 포함한 건전한 국민들의 정체성과 대적관을 현혹시키는 잘못된 처사이다. 필자가 다니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확고한 대적관을 바탕으로 견고한 한미동맹을 위한 교육이 계속되었다. 이 교육을 통해 숙달한 영어회화 능력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 및 훈련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을 마치면 다음 보직은 연합사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다음 보직이 충북 충용부대로 정해져 있었고, 다른 교육생들은 연합사령부 또는 예하 부대 및 연합작전/훈련을 주로 시행하는 합동참모본부로 분류되었다. 마침 합참의 중요부서에서 근무했던 선배도 함께 교육을 받고 있어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한명은 육사 33기 용삼남 중령이었다. 과거 승리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양태수, 나대일, 김형배 선배 등을 포함하여 많은 선배 동료들을 다시 만나는 해후의 시간도 만끽했으나 용 선배는 6개월 교육기간 중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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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9)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㉔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75주년을 맞은 국군의 날은 6·25남침전쟁 당시 우리 육군의 38선 돌파를 기념하는 날이다. 추석 연휴 때문에 닷새 앞당겨 지난 26일 열린 올해 국군의 날 기념행사는 그동안 소홀히 했다가 10년 만에 대대적인 도심 시가행진으로 주목받았다. 유사시 북한 지휘부의 지하 벙커를 파괴할 고위력 현무 미사일과 한국형 사드로 불리는 장거리 지대공유도미사일, 엘샘(L-SAM) 같은 첨단무기가 대거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 위협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하며, 우리 군의 태동 시점은 1945년 광복 이후라고 언급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광복 후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동한 우리 군은 이제는 적에게는 두려움을 안겨 주고, 국민에게는 신뢰받는 세계 속의 강군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등 역사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군의 뿌리를 독립군에서 찾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식을 사실상 반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국군의 날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 북한군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동부전선의 우리 육군 3사단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한 10월1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1956년 제정됐다. 하지만 체제 경쟁이 끝나고 남북정상회담 등이 열린 2000년대 이후론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로 바꾸자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우리나라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헌법에 따라 군의 뿌리도 임시정부 군대인 광복군으로 정립하는 게 맞다고 민주당 등 일부는 주장하지만 확고한 대적관을 강조해온 현 정부는 선을 긋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싸웠던 광복군도 의미는 있지만, 지금 우리 군은 북한과 싸우는 군대라며 국군의 확고한 정체성을 강조했고, 여야의 인식 차는 국군의 날 메시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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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8)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㉓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6개월 기간의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간정도 지나갈 즈음에 필자는 그동안에 미루어 왔던 석사학위 논문의 마무리에 쉴 틈이 없었다. 그렇지만 ‘영관영어반’ 과정에 입교시킨 것은 능력이 부족한 필자가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신 신의 배려와 인도라 생각되어 감사할 뿐이었다. 최종 논문심사에서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라는 필자의 논문을 검토하던 동국대학교 3명의 지도교수들은 신통하다는 표정으로 새로운 착안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왜냐면 당시에는 독일통일에 관련한 자료와 논문은 많았지만 군사분야는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독일 통일 당시에 독일에서 군사과정을 다녔던 김영식 동기(전 1군사령관)가 제공해준 귀국보고서가 큰 바탕이 되었고, 다른 학생들은 논문들은 기존의 타 논문에서 인용하여 만들다 보니 필자의 논문보다 교수들이 참고할 사항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심사중에 지도교수들은 논문 내용보다 내 신상에 더욱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목발을 짚고 있지만 육사37기로 박지만과 동기라고 하자 그들은 ”아마도 그 동기들은 똑똑한 사람이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동기생 전체를 칭찬해주어 동기회 품격이 격상되는 이미지에 일조한 기분이 들어 보람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입교한 영관영어반 과정은 주말부부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됨과 동시에 이미 취임해 맹활약하는 동기생들을 만나 회포도 풀었지만 대대장 근무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계기가 되었고, 영관영어반 수료증과 동국대학교 석사학위기를 받아 내실을 기하는 일거다득(一擧多得)의 결실을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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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1)]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진급심사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는 심지어 생도생활까지 비교하여 선발하는 것을 보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바르고 정의롭게 최선을 다하며 인정을 받아야 한다. 헌데 상급자에게 평가를 통해 인정을 받는 과정도 ‘운7기3(運七技三)’이다. 필자가 사단 작전보좌관 근무하며 을지연습에 임했을 때 ‘운7기3’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필자는 당시에 유별나게 입술이 잘 부르트고 물집이 생겼다. 주야 불문하고 작전 상황유지에 전념했던 피로감도 있었지만, 습관적으로 너무도 쉽게 입술이 부르트는 일이 잦아 신경이 쓰였다. 대위급 작전장교의 심사가 시작되어 신경이 쓰이던 을지연습 기간에 비상이 발령되고 군장을 결속하는 등의 출동준비테세 훈련을 하면서 안면 위장을 해야 했다. 그때에는 위장크림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터이라 우선 급해서 복사용 먹지로 얼굴에 발랐다. 을지훈련 시작 준비하다보니 정신이 없었는데 사단 참모들이 상황실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사단장도 안면위장을 한 채 좌정하자 훈련 상황 첫회의가 시작되어 필자는 당시까지 부여된 상황과 각 부대의 훈련 진행을 보고했다. 필자의 보고를 마치고 다음 참모부의 보고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 사단장이 말문을 열었다. “작전참모, 작전보좌관 너무 고생시키는 거 아니야?”하며 필자를 지목했다. “훈련 준비에 애를 쓴 보좌관이 입술이 터져서 저렇게 부어올라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훈련을 할 수 있겠어? 작전보좌관이 쓰러지면 큰일인데 ...ㅋ”하고 미소띤 얼굴로 참모장과 참모들을 돌아보자 상황실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그때 필자는 너무도 당황해서 “괜찮습니다. 제가 입술이 잘 부르트는 체형이라 건강에는 문제없습니다”라고 급하게 변명했지만, 흐뭇한 표정 속에 격려의 멘트를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껴주는 사단장을 위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이는 훈련이 시작되어 안면 위장을 할 때 사용한 복사용 먹지의 까만 독이 입술이 부르트는 곳에 닿아 심하게 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입술이 터지고 부어올라 부끄러웠지만 그 모습을 본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은 오히려 너무 열심히 훈련 준비를 하며 쌓인 피로 때문으로 인식했고, 이는 ‘운7기3(運七技三)’의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 사단장은 필자를 더욱 신뢰하는 또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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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1)]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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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0)]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세상의 어떤 조직보다도 군의 진급심사는 까다롭고 공명정대(公明正大)하다. 매 심사때마다 육군본부 진급심사실은 전후방 각 부대에서 심사위원들을 불시에 사전 통보없이 차출한다. 심사위원으로 선발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의 주변 상하급자들이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육본에서 출발한 인솔 장교는 해당 부대에 도착해서야 누구라는 것을 통보 받고 바로 선발된 심사위원을 만나 간단한 짐을 챙기게 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외부로부터 차단시킨다. 이렇게 육군본부 진급심사실에 심사위원들이 모이면 3개반으로 편성하여 각각 격리된 상태에서 각 반별 진급심사를 시작한다. 각반에서 대상자들의 평정, 경력, 전공 및 특별한 업무성과와 표창 그리고 해당 부대 지휘관의 지휘추천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거치며 진급심사를 하여 선발된 인원들은 다시 심사위원장 주관으로 3개반 반장들이 모여 최종 심사를 받게 된다. 최종 심사에서는 3개반에서 동시에 선발된 인원은 진급이 확정된다. 통상 80~90%는 일치한다. 그때부터 나머지 대상자의 진급심사는 더 치열해진다. 동일한 평가가 나오면 전 계급의 평가를 참조하며 심지어는 임관시 및 생도시절까지도 장단점을 비교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에는 우수자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던 장점과 결함을 찾아내 비교하여 떨어뜨리는 것 위주이다. 헌데 더 중요한 것은 부대별 안배이다. 3개반에서 동시에 선발되어 진급이 확정된 자들을 부대별로 집계하면 진급자가 없는 부대가 생기는데 해당 부대의 사기를 고려하여 그 부대 대상자에게 우선순위가 부여되어 1개 반에서 올라온 자가 2개반에서 올라온 대상자를 제끼고 최종 확정되는 경우도 있다. 진급 결과에 따라 희비애환(喜悲哀歡)을 느끼지만 어떻게 보면 ‘운7기3(運七技三)’이란 말처럼 인생은 운이 70%, 기가 30%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때가 아님 안되는 경우가 생긴다. 비록 각반심사에서 일부 선발되었더라도 최종심사에서 부대안배로 진급에 누락되는 것 같이 노력 이외의 외부적인 변수, 흐름, 사람, 기운 등 컨트럴 못하는 수많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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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0)]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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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9)]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제갈량은 호로곡에서 ‘모사재인 성사재천 불가강야 (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라며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되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어서 강제로 할 수가 없다”는 뜻으로 한탄했다. 이는 제갈량이 북벌을 단행할때 호로곡에서 사마의를 상대로 화공을 펼쳐 궁지로 몰아넣었으나,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국지성 호우의 비가 내려 화공이 실패하고 사마의를 살려보내고 말았다. 이를 두고 제갈량은 "과거 적벽에서는 화공으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으나 이번에는 소나기로 인해서 실패하였으니, 일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렸구나..." 하고 탄식하며 한 말이다. 진급심사를 앞두고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또는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으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활용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라며 진급은 천운이라고 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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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9)]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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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8)]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기동훈련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이 되자 작전참모 강수명 중령(육사31기)은 그동안의 업무 성과를 인정받아 대령으로 진급했다.([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5)] ‘벤치마킹은 창조적 성공의 지름길’ 참조) 사실 군간부들의 진급심사는 매년 을지연습이 한창인 8월말 또는 9월초부터 시작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징집된 병사들은 매월 진급 발표가 있다. 신병으로 입대해서 이병 계급장을 달고 시작하여 일병과 상병으로 진급하며 약 18개월 정도 군생활을 하다가 병장으로 제대한다. 직업군인인 군간부들은 계급별로 일정 기간이 지나야 진급심사 대상자가 된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다음 계급으로 승진하거나 비선되면 진급 발표와 동시에 다음 진급 계단을 오르기 위해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부여된 임무 및 업무에 전력투구한다. 통상 군의 장기복무 장교들은 소위에서 대위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 진급하는 경우가 많다. 헌데 소령 진급부터는 치열한 전쟁이 시작된다. 그 전쟁은 대부분 을지연습 시기부터이다. 그래서 중대장을 성공적으로 마친 대위급 장교들은 다음 계급 진급을 위해 사단 및 연대급 부대의 중요 보직을 찾게되고 을지연습 기간에 심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전에 각종 훈련 및 업무를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거나 실망하게 되어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을지연습이 끝날 즈음이면 소령 진급심사 결과가 발표되어 진급한 실무장교는 더욱 힘을 내어 훈련에 임하지만 비선된 장교들은 실망감에 빠져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후 중령~장군 진급심사가 2~3주 단위로 11월까지 계속되어 말 그대로 진급시즌을 맞아 그 결과에 따라 울고 웃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을 느끼며 매년 후반기를 근무한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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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8)]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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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7)]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미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지난 8월22일부터 9월1일까지 UFS(을지프리덤실드)라는 명칭의 연합훈련을 야외 기동훈련까지 병행하여 실시했다. UFS(을지프리덤실드)훈련은 KR(키리졸브)·FE(독수리훈련)와 함께 3대 연합훈련으로 꼽히는 UFG(을지프리덤가디언)의 이름을 변경한 것으로 UFG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8년 폐지된 후 5년만에 부활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 3대 연합훈련을 모두 폐지하면서 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이는 2018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기조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폐지한 UFG의 마지막 글자를 ‘실드(Shield, 방패)’로 일부 변형했지만 사실상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정부 소식통은 “‘동맹’이란 용어를 포함하거나 기존 UFG 명칭을 그대로 쓰는 방안 등도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론 UFS가 적합하다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특히 한미는 이번에 훈련 명칭을 변경하면서 종전에는 8월 연합훈련을 통상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됐지만 이젠 훈련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야외 기동훈련까지 병행했다. 앞서 한미 정상은 5월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진화하는 위협을 고려하며 견고한 한미 동맹을 위해 연합훈련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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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7)]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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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6)]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⑦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예비비휘소에 도착하자 선발대로 사전에 투입했던 작전장교가 준비된 상황판으로 통제관 및 상호 평가관들이 배석한 상태에서 본대 이동간에 변화된 상황을 브리핑했으나 특이 사항이 없어 바로 정상적인 작전지휘로 전환했다. 그동안 적재적소 상황에 부합된 훈련을 강인하게 반복 숙달한 보람이 있어 신속하고 정확하게 지휘소 이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체계적으로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때 군사령부 통제관과 인접 부대 상호 평가관들은 지휘소 설치 상태 점검을 시작했고 주변에 배치된 직할대의 이동 및 준비상태도 확인했다. 저녁이 되자 야전 취사를 통해 준비된 식사까지도 교대를 적절히 하며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이후 통제부에서 계획한 특작부대 습격도 임시로 편성된 기동 예비대에 의해 격퇴하는 등 밤새 부여된 상황 조치에 전념하며 분주히 훈련하다 보니 새벽이 되었다. 동트며 주변이 밝아지자 진하게 안면위장을 하고 지휘 및 참모조치를 하던 사단장을 비롯한 참모들이 피곤에 절어 지쳐있는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합참전투준비태세 검열과 작전참모의 대령 진급심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서로 독려하며 성공적 평가를 위해 전념했다. 일정 시간이 경과하자 통제부에서 다시 주지휘소로 이동하라는 메시지가 하달되었고 모두들 성공적인 기동훈련에 보람을 느끼며 철수 준비를 했다. 모두들 자대로 복귀하며 훈련을 마치자 사단 회의실에서 강평이 있었다. 사전 철저히 훈련했던 결과로 강평시에 통제관 및 상호 평가관들은 절차에 입각한 참모판단 및 지휘결심 등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잘 진행되었다는 호평을 하였다. 게다가 투입전 수색과 이동간 헬기엄호 및 철수한 후 후발대의 철저한 전장정리 등의 행동절차도 극찬을 받았다.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는 뜻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사자성어가 있지만, 요즈음은 모든 것이 신속하게 변화하며 발전하며 바로 어제 일도 옛것이 되는 실상이다. 역시 강평시에 호평을 받은 것은 타부대 훈련에서 장점들뿐만 아니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많은 것들까지도 참고하며 벤치마킹(Benchmarking)하여 실전적으로 훈련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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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6)]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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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5)]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통제부에서 하달된 메시지에 의해 휴전선으로 책임 지역내에 적의 미사일 등 화력이 집중되고 적 지상군들이 불법적으로 남침하면서 사단기동훈련 상황은 조성되었다. 그 와중에 전선 일부가 돌파되고 정상적인 방어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적의 미사일이 사단 사령부에 집중되어 지휘소 기능이 마비되며 침투해있던 특수작전부대들의 기습이 지속되자 사단 지휘소를 이동하며 다음 단계작전으로 전환시킬 상황이 되었다. 당시까지의 상황을 식별한 참모들의 체계적이고 협조된 상황분석과 참모판단절차에 따라 사단장에게 지휘소 이동을 건의했고 사단장은 신속 정확한 지휘결심을 통해 이동 및 다음 단계작전 지침을 하달했다. 그동안 사전 반복된 숙달훈련을 했던 덕분인지 전 부대원들은 사단장 지침에 따라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행동하며 지휘소 이동 준비를 했다. 먼저 임시로 편성된 수색조가 정찰을 완료하고 경계를 강화한 예비지휘소로 선발대가 이동했다. 잠시후 선발대가 도착하여 지휘소 편성을 완료했다는 보고를 접수하자 곧 본대도 이동을 개시했다. 이때 공중에서는 헬기가 공중 엄호를 하면서 통로상 주요 감제고지 및 건물에는 선점조가 경계를 강화했고, 이동간에도 지휘통신망을 유지하며 예하부대 작전을 지휘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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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5)]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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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4)]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전장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재적소 상황에 부합된 훈련을 강인하게 반복 숙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코앞으로 닥친 사단기동훈련을 위해 본부대 및 직할대들을 예비지휘소 운영 지역에 사전 투입하여 지휘소 텐트 설치 훈련을 했고, 이동로 상의 중요 감제고지 및 건물지역에는 수색조에게 점령 훈련도 시켰다. 행정적 훈련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물동량도 통제하여 사전에 꼭 필요한 물자로 경량화 시키며 실제 전투시를 대비하도록 강구했다. 또한 타부대 기동훈련의 평가관으로 참관하며 벤치마킹한 장점들뿐만 아니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많은 것들까지도 참고하여 참모들의 체계적이고 협조된 상황분석과 참모판단절차에 따른 정확한 지휘결심을 통해 지침을 하달할 수 있도록 숙달도 했다. 드디어 그해 9월25일 새벽에 군사령부 통제관들과 인접 사단 평가관들이 사단에 도착하면서 사단기동훈련은 시작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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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4)]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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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3)]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6.25남침전쟁 휴전 이후 전쟁 없는 평화가 반세기 넘도록 지속되자 각 부대는 오랫동안 한 지역에 고착되어 주둔하여 무거워질 때로 무거워진 상태였고, 부대를 이동하거나 각종 훈련시에도 실제 행동보다는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각부대는 행정적 처리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모든 장비와 물자를 이동시키는 실제 사단기동훈련을 강조하며 실전적인 전투에 대비하여 부대를 경량화시키려는 노력을 추구했다. 또한 적의 미사일 공격이나 침투한 특작부대의 습격으로 지휘소가 무력화될 때에도 신속히 복구하여 전투 지휘력을 유지하는 태세를 갖추는 것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위치가 노출되고 피해를 입어 무력화된 현 지휘소에서 신속히 예비 지휘소로 이동하여 전투지휘를 계속하는 것이 사단기동훈련의 평가 중점이었다. 따라서 지휘소를 이동할 때 사전에 예비지휘소와 이동로를 수색정찰하여 침투한 적 특수작전부대로부터 보호된 상태를 유지하는 조치가 우선되어야 했다. 이때 동기생 정보보좌관과 사전 토의 및 협조하는 과정에서 지상 수색정찰에 추가하여 헬기로 항공정찰을 병행하며 지휘소 이동간에 공중 엄호하는 방법을 계획하고 훈련시기에 맞추어 항공기를 사전에 요청했다. 물론 인접 열쇠부대 기동훈련의 평가관으로 참관하며 그부대의 장점들뿐만 아니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많은 것들까지도 벤치마킹해 새롭게 발전시킨 결과이기도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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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3)]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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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2)]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바로 코앞으로 닥친 합참전투준비태세 검열과 작전참모 강수명(육사31기)중령의 대령 진급심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사단기동훈련의 성공적 평가가 더욱 중요해진 상태에서 천군만마를 얻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때마침 기동훈련을 앞두고 육사 동기생 김종완 소령이 사단 정보보좌관으로 부임했다. 그는 야전 전후방 각지에서 정보분야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다가 이탈리아의 한국대사관 육군무관으로 발탁되어 성공적인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상태였다. 참모들의 체계적이고 협조된 상황분석과 참모판단이 절실한 시점에 정보분야에 대한 풍부한 야전 경험과 출중하고 원만한 성격의 인덕과 포용력을 갖춘 동기생이 인접 보좌관으로 부임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훈련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동기생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것은 두 번째이다. 첫 부임지인 승리부대의 최전방 대대에서 통신장교인 안철주는 대대 통신참모로 필자는 소대장으로 함께 근무하며 우정을 나누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3) “국제신사를 '철면피'로 만든 최전방 오지” 참조) 그때에도 대대참모인 동기생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 전입온 김 소령도 승리부대 근무 당시, 상급 군단 전투력 측정시에 검열관으로 필자를 도와준 추억도 있었기에 반가운 동기생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큰 힘도 되었다. 특히 문무를 겸비한 정보보좌관 김 동기는 유머감각이 뛰어나며 주변을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게다가 이탈리아군의 전술지식까지도 겸비함에 따라 더욱 창의적인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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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2)]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 성공의 첩경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