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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1]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필자가 대대장 취임전에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동기생 중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이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고,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금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다. 대대장 근무를 하던 당시에 타 동기들은 대부분 모두가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참모 보직으로 옮겼지만, 필자는 대대장반 교육과정에서의 교통사고 때문에 후유증 재활치료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여유를 갖게 된 졸업중대 동기들에게서 그들보다 2년 늦게 대대장직을 수행하는 필자의 부대를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관생도 시절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의 부대 방문은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깊이 감춰진 의미인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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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9]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조영호 사단장의 사고예방 최우선 부대운영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병사 개개인의 신상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긴밀한 소통을 통해 사고예방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대대의 60여명밖에 안되는 현역 전병력의 인적사항을 병원관리(兵員管理)용으로 전산화시켰다. 이는 탁월했던 후배 고(故) 김상철 대위(육사38기)의 포대에서 수년전에 활용했었지만, 당시에는 타부대는 아직 적용을 못하고 있던 상태로 사단에서는 필자가 최초로 시행했었다. 나중에는 일반화된 명암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결손가정 등 필요한 요소을 검색하면 전 대대원중에 해당자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그러나 병원관리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수시로 대대원들과 면담이나 소원수리함(대대장만 개봉 가능) 등을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에 한 병사가 면담을 요청하는 문건을 확인했다. 대대장실에서 아담한 키에 다소곳이 마주 앉아서 차를 한잔하던 00일병은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였다. “대대장님, 이것을 차마 중대장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시작하자 흠칫 상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애로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교육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후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입대 후에 생활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취침시에 모포가 쓸려내려간 동료의 허벅지를 볼 때마다 흥분되고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난감했다. 하지만 00일병의 입장이 되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대장이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런 이상 징후 치료가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며 안심하라고 달래주었다. 그를 생활관으로 돌려보내며 걱정이 됐으나 연대 인사과장에게 먼저 상의를 했다. 다음날 연대인사과 선임하사가 대대를 방문해 00일병을 면담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 치료차 대대를 떠난 병사는 의사 진료 후에 ‘성도착증세’로 확진이 됐고, 바로 전역 조치가 되었다. 한달 뒤에 그의 편지를 받았다. 전역해서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말미에 병명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망도 적혀있었다. 지휘관은 휘하에 부하들을 지휘통솔하는 직책이다. 질식사 위험의 부하도 살리는 보람도 있었으나, 후자같은 경우에는 많은 타부하들을 위해 지휘관을 믿고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던 부하를 아쉽게 전역시켜야 하는 아픔을 겪게 만드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괴로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희생양이 된 00일병에게 미안함이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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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8]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복귀를 고려해 우선 원거리부터 이동하여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미원면과 낭성면을 지나 가덕면에 위치한 지파출소 예비군무기고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짚차 출입문 틈으로 혹서기 삭풍을 예는 바람이 매섭게 파고들어 발밑의 히타의 온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저멀리 가덕면 지팔출소와 예비군 무기고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계초소가 보였는데 그 안에 초병이 없었다. 일순간 날이 추워서 경계근무를 안하고 임시 생활관에 들어가 쉬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며 경계근무에 소홀한 초병을 어떻게 혼을 내줘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차를 세우고 경계초소로 들어갔다. 헌데 초병인 상근예비역은 초소 밖을 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초소안에 총을 세워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을 쬐고있었다. 기습적인 대대장의 방문에 놀란 초병은 옆에 소총을 집어들면서 급하게 일어서서 ‘필...!’하고 경례를 했다. 경례구호도 제대로 하지못한 초병은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며 필자의 품에서 잠시 기절을 했다. 필자는 초병을 안은 채 초소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히며 등을 두드렸다. 잠시후 표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초병은 말을 할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초병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을 보냈는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여 거의 중독되기 직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품으로 쓰러졌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더듬거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초병을 생활관 대기실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기하던 다른 상근예비역으로 초병근무를 교대시켰다.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해 지속 감행했던 결과로 질식사 직전의 부하를 살렸다는 부듯한 보람이 엄동설한 속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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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5]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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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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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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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4)]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가 진정한 벗(중)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인생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좋은 일에는 방해(妨害)가 되는 안좋고 나쁜 일도 많이 생긴다. 연말 대통령 후보들의 장병 격려차 부대방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고,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강조했던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의 지휘의도를 구현하기 위한 시무식 사격측정 등의 이벤트를 통해 장병들의 사기가 높아져 부대 분위기가 활성화될 즈음에 개인적인 악재가 터졌다. 그해 1월 중순경 이른 저녁에 어머니의 울음 섞인 전화를 받았다. 평택 집앞 도로에서 아버님의 승용차와 트럭이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아버님이 병원으로 후송중이며 중태라는 소식이었다. 최전방을 지키는 부대의 사단작전보좌관이라는 직책 때문에 멀리 갈 수 없는 입장이라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참모에게 보고하니 “바쁜 당면 업무는 작전장교에게 맡기고 빨리 아버님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보라”고 배려를 해주었다. 어린 아들이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가족은 집에 대기시키고 우선 필자가 먼저 출발했는데 아버님 걱정에 눈물이 자꾸 흘러 운전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였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최대한 빨리 달려서 평택 병원에 도착하니 마침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아버님이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응급실 침대 위에 웅크리고 쓰러져 있는 아버지는 신음만 계속 내뱉으셨고, 어머니는 어찌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셨다. 수술 신청 및 동의서를 작성하자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피투성이의 아버님 모습을 지켜보며 당황하시는 어머니를 우선 진정시켜 집으로 들여보냈다. 담당 의사는 일단 응급처치를 했는데 워낙 상처가 심하고 다친 곳이 많아서 수술 시간과 생존 여부를 예측할 수 없다며, 필자에게는 멀리 가지말고 대기실에서 연락을 기다리라고 당부하고 수술을 시작했다. 평택 병원의 중환자실 대기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장기간의 간병을 통해 대부분의 가족들은 지쳐 초췌한 모습에 쪼그려 앉아 있고, 간호사의 호출에 놀라 달려가거나 환자의 상태가 안좋아 통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면서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아버님 수술 경과가 걱정되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혼잡한 대기실에서 잠시 벗어나 병원 밖으로 나갔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길거리의 인적도 뜸해진 상태에서 병원 입구의 공중전화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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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4)]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가 진정한 벗(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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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3)]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가 진정한 벗(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순우리말에 ‘벗’은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이나 늘 가까이하여 심심함이나 지루함을 달래는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비슷한 의미로 교우, 동무, 벗님 등으로도 사용한다. 반면에 ‘친구(親舊)’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또는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로 유의어로 교우, 동료로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친구 관련 사자성어에는 관포지교(管鮑之交, 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말, 매우 다정하고 허물없는 친구사이), 막역지우(莫逆之友,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르는 일이 없는,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 죽마고우(竹馬故友, 대말을 타고 놀던 벗이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벗, 불알동무, 불알친구, 소꿉동무)가 있다. 또한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라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 금란지교(金蘭之交,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으로, 우정이 깊은 사귐) 등으로 친구 관계를 표현한다. 그밖에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이란 흔치 않은 고사성어도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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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3)]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가 진정한 벗(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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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2)] 참모의 충성스런 직언과 지휘관의 탁월한 결심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93년 첫날 시무식을 마치고 상황회의 시간에 이영대 사단장은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사단 사령부의 전간부는 앞서 제시한 대로 단독군장을 하고 사격장에 집결하여 개인화기 사격측정을 하면서 ‘교육훈련 제일주의’ 첫날을 시작했다. 헌데 사단장과 김형배 작전참모의 사전 담판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김 작전참모는 사단장의 부대운영 중점을 정하기 전에 사단장실에서 독대하며 “사단장님의 색깔은 어떤 색이십니가?”라고 질문하자, 사단장은 “치밀한 ‘부대관리’를 통해 부대가 안정된 상태에서 강인한 ‘교육훈련’을 하여 완벽한 ‘전투준비’를 한다”라고 포괄적으로 답했다. 참고로 지난번 무적태풍부대 지휘관이었던 이재관 사단장(육사21기)은 사고를 예방하는 ‘부대관리’, 그 앞 김길부 사단장(육사20기)은 ‘전투준비’, 그전인 이상호 사단장은 ‘교육훈련’을 가장 우선하는 부대운용 중점을 선정했었다. 사단장의 의중을 파악한 김 참모는 “모든 것을 취하려 함은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역대 사단장들의 부대운용 중점을 비교하며 우선적으로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부대운용 중점으로 할 것을 재차 건의를 했다. 참모의 건전한 판단에 의한 정확한 건의을 청취한 이영대 사단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을 하여 ‘교육훈련 제일주의’가 탄생되었다. 철저한 교육훈련을 통해 안정된 부대관리도 할 수 있고 그 성과로 전투준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사단장은 ‘간부는 견인포가 아닌 자주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본적으로 전투적인 사고를 견지하고,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준비를 위해 스스로 어떻게 효과적인 교육훈련을 할 것인가 생각하며 모두 창의적·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자”고 덧붙였다. 사단장의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체 부대원들의 참여가 중요했다. 따라서 참모는 ‘교육훈련 제일주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타부대와 달리 유일하게 12월31일 종무식날에는 항공기 유도능력 측정을, 신년초 시무식날에는 사단 전간부의 개인화기 사격측정을 하도록 조치했다. 지휘관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난제·고충을 해결하는 것이 참모 책무라고 강조했던 김 작전참모는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부대운용 중점으로 선정하는 과정과 붐조성 위한 사격 측정 등을 통해 어떻게 임무를 수행해야 바르고 유능한 참모가 될 수 있는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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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2)] 참모의 충성스런 직언과 지휘관의 탁월한 결심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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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1)] 참모의 충성스런 직언과 지휘관의 탁월한 결심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손자병법 “허실” 편에는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모든 것을 준비했다는 것은 아무것도 준비하지않는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전쟁 중에서 공격과 방어작전을 수행함에 있어 우선순위를 두고 작전을 계획하는 것이 실패를 방지하며 승리하는 길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일상도 마찬가지이지만 전장에서 모든 곳을 공격하거나 방어를 하면 예상치 못하는 곳에 적이 집중하여 작전함으로서 상대적 열세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따라서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미리 판단하고 작전을 준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의 사자성어이다. 그 이유는 자원과 인력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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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1)] 참모의 충성스런 직언과 지휘관의 탁월한 결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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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0] 참모의 충성스런 직언과 지휘관의 탁월한 결심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연말 장병 격려차 부대를 방문한 대통령 후보들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던 12월이 가면서 연말연시가 되자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강조했던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의 지휘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다. 지난 봄에 ‘지휘관의 구상을 실현하는 난제·고충 해결이 참모 책무’라는 제목으로 참모들의 임무 수행 과정을 주제로 글을 게재했지만 이번은 상황이 조금 특이하게 달랐다.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03~207)] ‘특공대대 여군팀 창설 비화’ 참조) 새롭게 작전참모로 보직을 받은 김형배 중령(육사34기)이 앞선 사단장들의 지휘 중점을 보고하고 충성스런 본인의 직언을 통해 사단장을 설득하여 지휘관의 부대운영 중점을 정했기 때문이다. 작전참모는 사단장과 의견을 조율하여 ‘지휘관의 구상’을 만들었고, 그것을 지휘관과 참모가 실현하기 위한 난제와 고충을 해결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는데 때마침 이영대 사단장과 참모의 생각이 일치하여 ‘교육훈련 제일주의’라는 부대운영의 중점이 선정되었다. 따라서 12월31일 종무식날에 예하 대대 및 연대 작전항공장교(S-3Air)들을 소집하여 항공기 유도능력 측정을 하였고, 신년초 시무식날에는 사단 전간부를 대상으로 개인화기 사격측정을 하여 붐을 조성하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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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0] 참모의 충성스런 직언과 지휘관의 탁월한 결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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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9]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㉓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하지만 YS(김영삼)는 ‘양김시대’의 역사에서 보듯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고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였다. 그는 1961년 5·16 이후 기나긴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며, 1993년 2월25일 대통령에 취임해 자신의 정부를 최초의 '문민정부'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검찰 사정과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등 정치개혁을 필두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에 앞장섰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수 폭로 및 구속, 조선총독부 철거, 금융실명제와 지방자치제 실시 등 핵심적인 개혁을 통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금융실명제 실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과 형평 과세를 통해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침 대통령 당선자 YS의 부대방문에 맞춰 당선을 축하하며 행운을 알리는 하얀눈이 온 세상을 덮었다. 또한 행동으로 보여주던 YS가 남기고 간 것은 놀라울 정도였다. 위문내용이 VTR 5대, 신형TV 40대, 격려금 1000만원으로 대통령 당선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각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방문 준비를 총괄하여 지휘한 작전참모 김형배 중령이 뒤풀이하던 회식 자리에서 “조직을 단결시키고 리더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은 ‘돈’과 ‘인사’이다”라고 던진 한마디가 명언이 되어 귓가를 맴돌며 가슴에 와 닿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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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9]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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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8]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㉒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드디어 12월30일 마지막 방문자인 YS(김영삼)가 부대에 들어섰다. 하지만 다른 대통령후보 및 주요 인사들의 격려 방문과는 확연히 달랐다. 특이하게도 YS 비서실은 방문 일정을 30일로 고집했는데 그날 숫자를 거꾸로 읽으면 03이 되기 때문이라고 부대원들은 추측했다.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것은 이미 노태우·김종필(JP)과 손잡고 3당 합당을 결행하며 집권 민자당 후보였던 YS가 1992년 12월18일 실시된 제14대 대선에서 영원한 맞수이던 김대중 후보(민주당)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을 대동하고 등장한 대통령 당선자 YS는 66세의 나이답지 않게 훨씬 젊어 보였고, 얼굴에는 기름이 잘잘 흐르며 빛이 났다. 꽉 아문듯한 입술에서는 그의 특유한 고집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으나 격려사를 할 때에는 약간 실망했다. 그는 격려사를 하면서 가끔씩 힘을 주어 강한 소리로 강조했는데 무슨 내용의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방문했던 달변가 DJ(김대중), JP(김종필)와 너무도 비교가 되었다. 순간 이틀전에 방문한 대한적십자사 총재 강영훈 장군의 모습이 스쳐갔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통해 겪게된 고난의 시간을 학문으로 극복한 강영훈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용장(勇將)이자 덕장(德將)이었다. 또한 군후배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덕담을 던지며, 벽창호처럼 올곧은 참군인의 길을 걷고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저력을 지닌 적십자사 총재로서 자랑스런 군선배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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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8]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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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7]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㉑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 무렵 평화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자격으로 무적태풍부대를 방문한 69세의 DJ(김대중)는 역경의 정치활동 중 모진 고문을 받아 다친 다리를 절면서 그 유명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의 세월에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마치 고향마을 어르신이 손자들을 만나기 위해 부대를 방문한 것 같은 온화한 표정이었다. 회의실에서의 업무보고를 받던 그는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서인 건강함을 과시하듯 여유를 보여주며 특유의 달변을 쏟아냈다. 참석한 부대장들과 참모들은 전라도 사투리가 약간 가미된 특유 억양의 DJ 언변에 모두 빨려들어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거를 코앞에 둔 터라 급하게 마무리하고 부대를 떠났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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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7]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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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6]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⑳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DJ(김대중)는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와 겨루었으나 패배하였다. 그후 미국·일본 등지에서 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가 1973년 8월8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 요원에 의하여 국내로 납치(김대중납치사건)되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76~1978년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되었고, 1980년 초 정치활동을 재개하였으나 같은 해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1985년 다시 귀국하여 김영삼과 더불어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직을 역임하였고 1987년 8월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에 취임하였다. 같은해 11월 평화민주당을 창당하여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1년 9월 통합야당인 민주당을 창당하여 공동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으나 김영삼에게 지면서 다시 낙선하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동시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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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6]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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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5]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⑲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들이 무적태풍부대를 방문하며 치러진 1992년 대선에서 YS는 노태우·김종필(JP)과 손잡고 3당 합당을 결행하며 집권 민자당 후보로, DJ는 제1야당(평화민주당)의 후보로 나섰는데, YS가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3당 합당은 영호남 지역구도 고착으로 이어지면서 현재까지도 지역주의라는 그림자를 만들게 된 시초가 됐다. 이 여파로 DJ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1995년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하여 1997년 말 DJ가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이후에도 남북관계와 통일 등 이념 문제에 있어서 YS는 보수, DJ는 진보의 목소리를 대표하면서 대립했다. 그러다 YS가 2009년 8월 폐렴으로 입원해 죽음을 앞둔 DJ를 전격 문병, 두 사람의 화해가 DJ 서거 직전 극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김대중의 타계에 이어 김영삼도 2015년 11월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이로서 인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묘사되었던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적 라이벌로, YS(김영삼)ㆍDJ(김대중)로 불리며 한국 현대 정치를 양분해 이끌어 왔던 ‘양김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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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5]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