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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0] 대대장의 악역으로 예비군 통제 유도한 동원훈련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인원·장비 식별, 화생방, 대공사격술, 환자응급처치 등 병기본훈련과 공용화기, 주특기 및 수색정찰, 전술훈련 과목들을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바쁘게 진행하자 어느덧 마지막 3일차 훈련을 하게 되었다. 마무리 훈련이 끝나고 퇴소할 때 예비군들을 심한 통제로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수고했다고 인사하며 복귀하는 모습에 보람도 느꼈다. 한편 힘들었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첫 동원훈련이 종료되자 필자는 예비군 통제를 위해 간부들에게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악한 모습으로 언성을 높이며 호되게 질책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여운으로 남아 후회를 했다. 훈련이 종료되면 다음 훈련을 대비하여 총기 반납 및 막사 청소 등 연대 동원훈련장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각 내무반을 돌며 2박3일 동안 고생한 간부들과 병사들을 격려하려고 사무실을 나와 마무리 정리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훈련 조교로서 예비군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기거하며 교장에서도 예비군들을 통제했던 대대 병사들이 빨리 부대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인지 열심히 땀을 뻘뻘 흘리며 총기를 옮기고 청소 및 정리정돈을 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감사해 일일이 수고했다며 어깨도 두드려주고 격려했다. 각 중대를 현장을 모두 돌며 격려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대 간부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병사들만 마무리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여운으로 남아 후회했던 감정이 모두 사라지고 화(禍)가 치솟아 오르며 15년전 소대장 시절에 대대장에게 간부들이 불려가 기합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도 대대전술훈련이 끝나자 지쳐서 마지막까지 병사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휴식을 취하던 간부들을 모두 소집해 화가 난 대대장이 직접 엉덩이를 때리며 끝까지 확인과 감독을 못하는 간부들의 불성실한 행동에 대해 엄청나게 혼을 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필자도 전 간부를 집합시켰다. 다음주 2차 동원훈련도 남아있고 전시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전장정리가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동원훈련을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최종 마무리를 병사들에게만 맡기며 지쳐서 퍼져있는 간부들에게 대대장 취임 후에 처음으로 언성을 높이며 심하게 화를 냈다. 예비군을 통제하기 위한 쇼가 아니라, 솔선수범(率先垂範)은 커녕 병사들과 마지막까지도 동거동락(同居同樂)도 못하는 간부들의 나태한 지휘·감독에 실망하며 감정이 폭발해 자제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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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3 10: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9] 대대장의 악역으로 예비군 통제 유도한 동원훈련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실 대대는 예비군 교육을 연중 지속적으로 하지만 훈련에 입소하는 예비군들은 일년에 한 번 뿐이다. 따라서 대대는 항상 새롭고 정성스럽게 일년 내내 계속해서 훈련장과 편의 시설을 보강한다. 양지에서 운용되는 훈련장의 강의장과 실습장에는 그늘을 만들기 위해 차양막을 설치했고 합판과 목제로 된 간판은 회전식 철제 간판으로 교체했다. 강의장 좌석도 가능한 블록과 폐타이어를 이용해 계단식으로 설치하고, 평지에는 사진처럼 목욕용 의자나 장판을 이용해 깔판도 만들었으며 모든 실습장과 이동로에는 모래와 석분을 깔고 경사지 계단에는 안전로프도 설치해 불필요한 고통을 방지와 편의를 제공하며 우발적인 사고를 예방하도록 조치했다. 훈련 첫날 오후에 중대별로 상이한 교육내용으로 훈련이 진행됐다. 그런데 대대원들이 정성스럽게 교장을 준비한 것에 비해 예비군들의 반응은 별로였다. 약 3분의 1정도의 예비군들은 전역후에 첫 훈련이라 아마도 전에 교장과 비교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일부 예비군들만이 정성스레 보완한 훈련장을 체험하며 호평을 해주었다. 주간교육이 끝나고 저녁식사 후에 강당에 소집시켜 만화식 제작된 괘도와 VCR을 활용해 필자가 직접 안보교육을 두시간씩 진행하여 취침시간이 되면 모두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 수 있도록 유도하자 예비군들은 빡빡하게 짜여진 스케줄에 대해 하소연하며 좀 더 자유시간을 부여해주기를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물론 취침 이후에도 간부들의 순찰을 계속 돌려 다른 예비군들의 취침을 방해하지 않도록 감독했다. 그러나 그와중에도 입소시에 몰래 감추어 드려온 것으로 술판을 벌릴려고 준비하던 내무반도 사전에 적발하여 모두 압수하고 다시 적발시에는 퇴소 조치하여 재교육에 입소하거나 불참시에는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경고도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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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1 09:0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8] 대대장의 악역으로 예비군 통제 유도한 동원훈련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대에서 운용하는 예비군 훈련장은 일반 및 향방훈련 위주로 수용인원이 200명 정도이기 때문에 500명 가깝게 소집되는 동원훈련은 연대의 동원훈련장을 활용한다. 따라서 대대의 예비군 훈련장처럼 만들기에는 연대의 동원훈련장이 너무 광활하여 전체를 보완 할 수 없었고, 가능한 일부분을 대대에서 보유한 훈련장처럼 정성을 다해 준비하여 소집되는 예비군들을 맞이했다. 입소할 때부터 시간에 늦게 도착한 자들을 바로 돌려보내고, 식당 입장시에도 복장 점검과 오와 열을 맞춰 단체로 이동하는 등 강력하게 통제하는 모습을 보이자 동원된 예비군들은 “다시 신병으로 입대했냐?”며 불평을 하면서도 마지못한 표정으로 조교들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 2박3일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그동안 잊혀졌던 많은 훈련 과제들을 숙지시키기에는 너무도 부족했다. 그래서 소규모 단위로 실습조 편성을 다시해서 간단없는 순환제 실습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무료하게 대기하거나 놀리는 결과를 방지했다. 특히 인접부대에서 사격훈련간에 오발사고로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어 대비를 했다. 먼저 우천시를 고려해 표적지 설치대에 지붕 설치와 깔판도 준비해 지면 습기로 인한 실습 기피 방지했다. 또한 탄피받이를 제작해 탄피회수도 용이하게 만들며 경고용 수기와 총구이탈방지틀을 설치해 안전사고도 예방하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훈련을 통해 느슨하게 쉬어가는 시간이라는 인식을 배제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예비군들의 요구에 따라 편의를 한없이 제공하다 보면 퇴소 후에 예비군 교육이 너무 허술하고 효과도 없다고 오히려 역으로 이의를 제기했다는 선배들의 하소연을 들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타이트한 시간이 되도록 노력했다. 입소 첫날 오전은 편성과 물자분배 및 입소 신고로 모두 소요됐고 오후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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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31 15: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7] 대대장의 악역으로 예비군 통제 유도한 동원훈련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아보협업연구소장] 대대 전병력들이 사전에 동원훈련장으로 이동해 훈련장과 막사들을 정비하여 동원된 예비군들이 도착시에 정말로 정성스럽게 훈련 준비를 했다는 인상이 들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물론 훈련전에 연대장의 준비 사열이 있어 더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연대장은 동원된 예비군들이 무질서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통제하여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라는 당부를 추가하면서 동원훈련 준비사열은 잘 끝났고, 드디어 동원훈련이 시작되었다. 통상 예비군들은 동원훈련을 휴식 기간으로 생각하며 참석한다. 바쁜 직장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공인된 휴가 기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일탈 행동이 발생한다. 하지만 예비군들은 입소시 차량 주차 및 신고 준비부터 간부와 조교들의 행동이 매우 엄격하여 예전에 참가했던 훈련보다는 좀더 까다롭게 통제하는 인식이 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식당에 출입시에 정상적인 복장 점검을 하고 열과 오를 맞추어 이동하도록 통제하여 직장생활의 휴가 기간이 아니라 군에 다시 입대한 기분이 들도록 했다. 역시 인간의 본성 고려시에 의식주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성어린 막사 준비를 하여 작은 감동으로 기분 좋게 했지만 복장이 불량하거나 식당 출입시를 포함해 이동시에 무질서한 모습이 보일때에는 통제를 소홀히 하는 간부들에게 호통을 쳤다.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대대장인 필자가 악역을 담당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난히도 예비군들이 보는 앞에서 대대 간부들에게 엄격하게 힐책하며 지시하고 언성을 높혀 통제하는 모습을 통해 대대원들이 대대장 핑개를 대면서 협조를 부탁하여 예비군들이 지시에 순응하며 따라오도록 유도했다. 효과가 바로 발휘되었다. 대대장이 눈에 보이면 예비군들은 급하게 자신의 복장부터 챙기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간부 및 조교들의 예비군 통제는 수월해졌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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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30 10:4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6] 대대장의 악역으로 예비군 통제 유도한 동원훈련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평시 향토사단에 편성된 대대는 간편이라 소수 인원으로 운영되지만 동원훈련을 하면 전시에 편제된 예비군들이 동원되어 대대원 전원이 모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동시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훈련하면서 호흡을 함께하며 응집하여 온전한 전투력을 강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훈련이다.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를 끝내자 바로 몇주일 뒤인 6월3일부터 동원훈련이 계획되어 있어 시간에 쫒기며 바쁘게 준비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연대직할대도 포함되어 인원이 많다보니 두 번에 나누어 18일까지 훈련하기 때문에 각별히 더 확인하고 준비할 것이 많았다. 각 중대장들은 평소 10명도 않되는 인원들을 데리고 운용하다가 동원훈련이 시작되면 예비군들을 포함한 100명이 넘는 중대원을 지휘한다. 따라서 중대장들이 철저한 사전 교육받아 예비군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하며 훈련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또한 현역병들은 전 중대원이 모여 함께 훈련한다는 전우애보다는 이미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고참인 예비군들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더구나 현역 근무가 아닌 상근예비역이나 해·공군 예비군이 참가할 때는 박격포나 기관총 등 육군 관련 전시 훈련이 부족하여 더 어려운 상황이 될까봐 걱정도 했다. 반면에 필자는 대대장으로 취임했지만 전방에서 중대장 근무시보다도 적은 인원을 지휘하다가 동원훈련을 통해 완편된 대대원을 지휘하며 훈련시킨다는 것에 약간은 흥분에 빠지며 기대감도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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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7 10:2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5] 강력한 교육·훈련과 부하복지는 전우애를 돈독하게 만들어...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신 장군의 본명은 원극(元極)으로 함경남도 영흥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함흥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변호사가 될 뜻을 품고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일본이 학병제도를 만들어 학생들을 전쟁터로 보내기 시작하자 학병을 기피할 생각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일제 당국의 강압에 못이겨 1944년에 사병으로 입대했으며, 곧 간부후보생이 되어 견습사관중에 광복을 맞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북한 김일성의 공산당 독재정권에 실망하여 1946년 함경남도 영흥에서부터 단신으로 월남한 뒤, 이름을 신(信)으로 바꾸고 국군 사병으로 입대했다가 육군사관학교(경비사관학교) 제2기(박정희 대통령 동기)로 입교하여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제8연대에서 소대장 및 중대장 겸무로 군대생활을 시작하여 조선경비대 군기사령부의 행정관을 지냈으며, 대대장으로 옹진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수도사단 1연대장을 맡아 의정부전투를 시작으로 한강 방어선, 진천, 안강, 기계, 대관령전투를 비롯해 38선 북진작전 등 수많은 격전지를 누비며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승리하는 지휘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낙동강 최후 방어선의 요충지였던 안강,기계 지역에서 철수 명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며 북한군 12사단의 공세를 저지함으로써 국군의 방어선 유지와 반격작전 여건 조성에 결정적인 공도 세웠다. 1·4후퇴이후 중공군 춘계공세시 대관령전투에서는 연대 단독으로 이틀간의 사투끝에 중공군 1개 사단의 남하를 저지해 전세를 역전시켜 반격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호남지구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했고, 1953년 말에 육군준장으로 진급하여 1954년에는 첩보부대장을 시작으로 육본 수송감, 수도사단장, 감찰감을 역임하던 중에 육군소장으로 승진하였고, 1960년에 제2훈련 소장이 되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으로서 내무부장관이 되었으며, 1963년에 잠시 감사원장을 맡기도 하였으나 그해 군대로 복귀하여 6군단장에 보임되었으며, 1966년에 육군중장으로 진급하여 육군전투병과 사령관, 1968년 육군참모장과 제2군사령관을 1969년에는 제1군사령관직을 맡았다. 1970년 제1군사령관 재직시 육군대장으로 승진했고, 1972년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 부임했으며 오늘 죽어도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의 "일일 일생"을 좌우명으로 국가와 군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그는 1975년 육군대장으로 예편했다. 합참의장 재직시 국군 현대화 계획을 입안하여 자주국방의 기초를 세우는 업적도 남겼다. 또한 솔직 담백한 성품을 지닌 청렴결백(淸廉潔白)한 군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군대의 제반 여건이 좋지 않던 시절에 강조했던 “부하들을 잘 먹여라(食). 잘 입혀라(衣). 잘 재워라(住). 교육훈련을 철저히 하라. 근심걱정을 해결해 주라”는 유명한 지휘방침처럼 군의 교육·훈련과 부하복지에 많은 신경을 써 전우애를 돈독하게 만들며 존경도 받았다. 전역 후에는 아세아자동차주식회사와 대한중석광업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생전에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등 많은 상훈을 받았으며 1996년 5월6일 향년 7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당시 청렴하며 솔직 담백한 성품으로 자주국방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긴 한신 장군을 존경했던 대부분 후배장교들이 한 장군의 영면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특히 필자의 장인은 한신 장군처럼 이북에서 김일성의 공산당 독재정권에 실망하여 단신으로 월남해 6.25남침전쟁을 겪으며 군생활을 했는데 그동안에 각별한 신뢰와 사랑을 아끼지 않고 보내주셨다며 눈물을 적셨다. 대대장직을 수행하던 필자도 강직한 참군인 한 장군의 삶을 보면서 롤모델로 삼아 한신 장군처럼 교육·훈련과 부하복지에 많은 신경을 써 전우애를 돈독하게 만들며 군생활을 바르게 하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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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6 13:0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4] 강력한 교육·훈련과 부하복지는 전우애를 돈독하게 만들어...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생활 동안에 많은 선후배 등의 동료들을 만난다. 그중 전우애를 느끼며 존경과 신뢰할 정도의 지인은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 하늘의 뜻이라 존경과 신뢰를 떠나 그 끈이 계속이어져 지금까지도 자주 만나는 선후배 전우들도 있다. 그중에 진심으로 아껴주며 멘토링을 해주고 위기에 빠져 극복하기 어려운 중요시기에 앞장서서 대변해 준 고마운 분들이 있었다. 특히 임관후 야전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 만나 좋은 인연을 쌓은 사람은 지금도 연락하며 서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더욱 더 소중한 전우들이다. 필자가 임관하여 첫 근무지인 승리부대는 사단 지역내의 최고로 높은 기관장이 마을 이장이며 사단 사령부 앞에도 비포장 도로였던 심심산골이었다. 그곳에서 같이 울고 웃었던 전우들은 아직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헌데 많은 지인들이 대대장으로 취임한 필자를 만나러 오던 5월경에 옛 전우의 소식을 들었다. 승리부대에서 동기생중에 1차로 소령 진급했고 필자가 무적태풍부대의 작전보좌관 시절에 인접 청성부대에서 대대전술훈련 평가도 1등을 하며 대대장을 성공적으로 마친 군선배인 한00 중령(3사14기)이 7군단에서 민심과장으로 근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마침 필자는 군사령부 전술토의, 예비군 교장 사열,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 등이 성공적으로 끝내자 사단참모들과 소통이 잘되고 있었다. 곧 군사령부의 전투지휘검열이 계획되어 있는데 동원참모 공석이 생겨 고민하는 인사참모의 사정을 듣게 되었다. 필자는 급하게 선배인 한 중령에게 참모보직 첩보를 제공했다. 작전참모를 해야될 상황이지만 보직할 자리가 없어 고민하던 차였던 한 중령은 우선 동원참모를 먼저 한 뒤에 작전참모로 보직을 옮길 수있는 좋은 기회를 포착하고 바로 신청해 사단에서 보직검토에 들어갔다. 결국 승리부대의 소중한 전우애를 갖고 있으며 작전직능의 탁월한 한 중령이 동원참모로 보직되었고, 두달 뒤에 계획된 전투지휘검열에서 한 중령의 탁월한 조언과 지원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얻었고 필자의 대대는 계속적인 신화를 만들어 냈다. 훗날 한 중령은 사단작전참모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도 승승장구하여 장군으로 진급하며 사단장, 육본실장, 3군단장을 역임하는 등 군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 무렵인 5월6일, 탁월했던 사단동원참모와 같은 청주 한 씨이면서도 겨레 가슴에 참군인상을 남긴 6·25남침전쟁 영웅 한신 장군이 향년 76세로 운명했다. 한신 장군은 전역후에 무적태풍부대를 방문해 간부교육을 했는데 그때 아주 작은 프라이드를 직접 몰고 와 위병소에서 병사들이 다른 분으로 착각해 신원을 확인하는 약간의 소동이 있었을 정도로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참군인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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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4 10:3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3] 강력한 교육·훈련과 부하복지는 전우애를 돈독하게 만들어...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돌이켜보면 너무 잦은 주말 모임으로 일부 거부감도 있었지만 평일 뿐만 아니라 휴일까지도 연대장에게 지휘주목할 수 있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또한 휴일에 연대장 주관으로 휴식과 여흥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주중에는 보다 더 업무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지금은 연대본부 테니스 코트와 야유회를 했던 쌍곡계곡과 문경새재 트래킹 등의 그 당시 시절이 오히려 그립기도 하며, 항상 이런 모임을 준비해 사기를 올려준 연대장이 고마웠다. 이러한 행사 덕분에 필자는 대형 교통사고로 인한 끝없는 추락에서 벗어나 회생을 격려하는 전우애로 탄력받아 업무 수행을 더 잘할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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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9 10:1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2] 강력한 교육·훈련과 부하복지는 전우애를 돈독하게 만들어...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대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연속된 군사령부 전술토의, 예비군 교장 사열,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로 바쁘게 지냈지만 연대장 중심으로 대대장과 참모들이 똘똘 뭉치며 전우애를 다지는 테니스 대회나 문경새재 등반 등 야유회 기회도 많았다. 굵직하고 상급부대의 관심을 집중하게 만든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연대장(신현정 대령, 삼사9기)은 휴일이 되면 대대장과 참모들의 격려 모임을 주최해 평소부터 원할한 소통을 통해 상호 협조를 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게 전우애를 다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면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연대장은 그동안 대인관계를 잘했던 탓인지 연대장의 동기생 뿐만아니라 기관장들까지 적극 협조를 해주어 여유있고 풍요로운 힐링시간이 되었다. 단지 지팡이를 짚은 DJ 대대장인 필자는 테니스 경기에 참여를 못하고 심판만 주로 담당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오히려 가족이 더 열심히 테니스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허나 운동 경기 후의 뒷풀이 회식에서 필자는 음주마저도 거부할 수 없어 대부분 과음하는 경우가 많았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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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8 10:0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1] 강력한 교육·훈련과 부하복지는 전우애를 돈독하게 만들어...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과정에서 대형 교통사고로 끝없이 추락하며 군생활 포기까지 생각했던 길고 길었던 재활치료 기간에 이렇게 지팡이를 짚은 DJ대대장으로 성과있고 보람찬 근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190)잔인한 4월도 나에게는 축복이었다(상) ~ (199)군생활 포기까지 생각했던 재활의 시련⑦ 참조 필자가 지휘했던 대대본부의 위치가 경부고속도로 청주 톨게이트와 인접해 있어 재임기간 동안에 수많은 손님을 맞이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동안 알고 지냈던 많은 지인들이 찾아와 교통사고 재활치료로 고생하다가 어렵게 대대장으로 취임한 필자를 격려해주는 혜택도 있었다. 취임 초기에 유달리 많았는데 2월 경 육사 동기생들도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동기들을 추모하러 내려가다가 가로수 터널에 위치한 청원대대를 들렸다. 또한 전 근무지였던 무적태풍부대에서 직속 상관인 작전참모로 함께 근무하며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김형배 선배도 찾아와 대대장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그밖에 고등학교 동창인 이상엽 부부가 4월경에 드라이브하다가 불시에 대대를 방문해 대대원들을 격려하며 필자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어 너무도 감사한 시간도 되었다. 그러나 상급부대의 검열관들이 사단을 검열할 때에도 사단본부 방문후 예하대 확인시에는 교통 편의를 고려해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가까운 청원대대를 수시로 불시에 방문하여 모든 검열에 감초 역할을 했다. 덕분에 대대원들은 예정에도 없던 검열을 대비하여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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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7 10:2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0]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연이은 큰 행사와 추가 임무 덕분에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고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에 긴장한 탓인지 브리핑도 미숙했지만, 예비군 교장 사열시에 예비군 중대장 보고를 사단장 옆에서 필자가 추가 설명을 간간이 병행한 것처럼 필자옆에서 신현정 연대장(삼사9기)의 적절한 보충설명이 주효하여 사단장은 만족한 표정이었다. 부대 파악 실태를 보고하면서 대대 울타리 노후와 붕괴 우려지역이 상존해 있음을 사실대로 보고하자 업무보고를 마치고는 사단장은 현장을 직접 다니며 확인했다. 사실 대부분의 부대는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잘되어 있는 것 위주로 보고하는 데 필자는 부대의 약점을 보고하자 오히려 더 신뢰를 했던 것 같다. 특히 사단장은 매우 흡족하고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우선 총기번호의 오류를 잘 발견했다며 바로 군수참모에게 사단 전체의 진공포장된 총기 박스를 해체하여 세밀하게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대대에서 최초로 적용해 시행중인 ‘151전화사서함’ 제도를 신기하게 생각하며 부대운영과 훈련 및 작전시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사단 작전 및 동원참모에게 검토하라는 지시도 바로 했다. 성공적인 업무보고로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던 사단장이 복귀하자 잠시 뒤에 사단 군수참모가 성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우선 총기번호의 오류를 참모보고부터 먼저 안하고 사단장에게 보고한 것을 신경질적으로 질책했다. 그는 사단장 지시대로 밴딩된 총기박스를 해체해 확인할려면 군사령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자세히 발견과정을 물어보았다. 전화를 끊으면서는 비록 군수처를 바쁘게 만들었지만 총번 오류를 발견한 것은 잘한 것이라며 수고했다고 격려도 해주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군사령관에게 총기번호 오류 사실이 보고되어 2군 예하 전 사단이 밴딩을 해체해 수만정의 총번을 확인했다. 사단장 초도업무보고는 사단을 포함한 군사령부 등 전 상급부대가 뒤집어질 정도로 군수분야 관계자들과 예하 전부대를 바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단에서는 보유량의 약 3,5%인 1175정의 오류를 확인하고 개선 조치를 했으며, 군사령관은 참모회의시에 결과보고를 받으며 동원전문가인 사단장 이상신 장군은 역시 다르다고 극찬을 했다고 전해졌다. 물론 필자도 분석력과 집념을 가지고 준비한 업무보고를 통해 총기번호 오류를 정정한 유공자로 인정되어 군사령관 표창을 받았다.
    • 오피니언
    2024.07.15 10: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9]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민관군 통합작전이 중요시되는 향토사단은 사단장이 타부대를 방문할 때 지역 기관장들이 참석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다. 이번에는 상급부대에서 업무보고시에 해당 지역 기관장들을 초청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 그래서 사단장 업무보고 있다는 사항을 지역 기관장들에게 전파하지 않았고 초대도 안했는데 청원군수와 의회의장이 불쑥 찾아와 난처하게 됐다. 상급부대 지침으로 필자가 곤란하게 됐다고 청원군수에게 복귀할 것을 권했지만, 사단장을 이렇게 개별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다며 그들은 막무가내로 대대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승용차에서 내리는 사단장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는데 역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연대장과 필자가 사단장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청원군수와 의장은 한발 앞서 나서며 “사단장님, 기관장들을 초대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셨다면서요. 하지만 사단장님께서 우리 지역에 오시는데 군수가 인사를 안드리면 실례가 되고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이렇게 떼를 써서 나왔습니다. 대대장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라는 넉살에 대대막사 현관앞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할 수 없이 막사로 들어가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라고 권했지만 청원군수와 의장은 인사드렸으면 됐고 더있으면 업무보고에 방해된다며 바로 부대를 빠져 나갔다. 나중에 확인된 사항이지만 청원군수는 사단장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하여 업무보고 후에 사단장을 모시고 식사대접까지 했다고 전해졌다.(다음편 계속)
    • 오피니언
    2024.07.14 16:5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8]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성실한 사람은 그냥 평범할 뿐이다.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4성(전문·적시·창의·현장성)’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하라고 전 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이성출 대장(육사30기)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4성중 현장에 적용가능한 창의성이 타인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그동안 타부대에서 업무보고한 내용보다는 적시적이며 창의성 있는 분석 결과에 따른 앞으로의 지휘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동원분야의 전문가인 사단장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전방사단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작전적 측면보다는 향토사단에 부합된 예비군 관련 내용들을 분석하여 발전시키는 방안에 착안했고, 급하게 확인된 예비군 총기번호 오류의 발견은 매우 고무적인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또한 현역 4개중대와 예비군 23개 중대로 예하대가 많다보니 상황전파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 당시에 사회에서 막 유행하고 있던 ‘151전화사서함’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다. 평시와 유사시 그리고 훈련시에 주기적으로 ‘151전화사서함’에 상황전파 및 지시사항을 입력하면 원거리에 떨어져 있는 예비군 중대장도 출근해서 비밀번호를 입력 후에 ‘151전화사서함’을 듣고 숙지하여 조치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매일 아침에 필자가 중요사항을 직접 전화사서함에 입력하여 예하 예비군 중대장들이 대대장 목소리를 듣고 부대운영에 반영하도록 유도하였고 원거리 다수의 예비군 중대장들이 지휘주목을 하기에도 용이했다. 지금은 부대개편으로 해체되었지만 당시 청주시 강서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청원대대에 드디어 사단장이 초도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방문했다. (다음편 계속)
    • 오피니언
    2024.07.12 16:4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7]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②
    [시큐리티펙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업무보고서 초안을 거의 완성시킨 상태에서 보고연습을 하고 있는데 군수장교 역할을 겸직하고 있는 현역 중대장이 대대장실 문을 노크했다. 대대는 간편이기 때문에 각 중대장들을 현역으로 편성된 10명의 중대원들만 갖고 있고 나머지 요원들은 모두 동원되는 예비군으로 편성된다. 따라서 중대장들이 부족한 대대참모 역할을 겸직하고 있고 통합 중대장이 현역병 전체를 지휘했다. 군수장교는 사단의 지시에 의해 대대에 보유하고 있는 진공포장된 M16 총기탁본을 세밀하게 대조확인결과 중복된 총번 24정 발견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다. 필자는 업무보고 연습을 일단 중지하고 주임원사와 모든 간부들에게 대대가 보유한 진공포장된 탁본을 모두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그때부터 14시간동안 무기고를 열고 진공포장된 총기들의 탁본을 일일 확인하자 대대가 보유한 총기 4100정 중 259정이 동일하게 중복된 오류 총기번호임을 발견했다. 전산에 입력된 자료에는 동일한 총번 앞에 *표로 표시하여 구분해 놓은 것도 확인이 되었고, 동일한 총기박스는 대부분 타부대에서 인계된 무기였음을 발견했는데 주로 대부분이 국내에서 제작된 총기와 미군에게 인수받은 총기가 번호가 중복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대 실태를 파악해서 분석 결과에 따라 앞으로 지휘방향을 제시하는 업무보고서에 긴급하게 포함시켰다. 연대에도 이렇게 확인한 진공포장 M16의 총기번호 오류를 보고할 시간도 없었다. 바로 다음날이 계획된 사단장 초도업무보고일이기 때문이었다.(다음편 계속)
    • 오피니언
    2024.07.10 13:5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6]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 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사령관 조성태(육사20기) 대장이 주관한 군사령부 전술토의에 이어 향토사단 대대의 연초 가장 중요한 예비군 교장 사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바로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취임후 첫 업무보고도 하기 전에 사단장 이상신 장군을 이미 여러번 만나 보고를 한 상태라 첫 보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대의 실태를 파악한 후에 대대장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초도 업무보고를 통해 밝히고 사단장의 추가 지침을 받아야 하는 관례상의 과정이었다. 먼저 전입와서 이미 부대를 잘 파악하고 있는 부대대장과 주임원사를 통해 예하 예비군 중대장들의 특성을 전해 듣고 본인이 직접 예비군 중대 사무실 23개소를 모두 방문하고 실태를 확인한 후에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를 준비했다. 본인이 직접 방문하며 확인해보니 대대본부 막사뿐만 아니라 예하부대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식별할 수 있었고 이들을 해결할 방도를 보고서에 담았다. 군사령부 전술토의와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에 혼신을 다해 고생한 대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짜피 예정된 업무라 가능한 대대원들에게는 덜 수고하도록 필자와 참모들만에게만 임무를 주어 고민하며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무래도 대대원들도 막사 주변 정리 등에 애를 많이 썼다.(다음편 계속)
    • 오피니언
    2024.07.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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