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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7]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94년 4월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뇌사상태)으로 긴급 후송된 대구병원에서의 응급처리 과정부터 시작되어 이번 재골절로 인한 치료까지 6번째 수술을 받았다. 회복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통증은 계속되었다. 며칠 지나자 휠체어를 타고 병원복도를 다닐 정도가 되었고 이젠 병원생활에 이력이 붙어 입원한 다른 환자들에게 재활치료와 효율적인 병원생활을 조언도 할 수 있었다. 병원내의 순회진료를 하던 군의관에게 성급하게도 언제 퇴원할 수 있냐고 질문하니 그는 미소를 띄우면서 “아직은 장담할 수 없지만 약 두달간은 입원 치료로 예상된다”고 답하며 수술은 잘되었고 회복 시간이 필요하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한편 필자보다 먼저 대대장으로 취임한 동기들은 각 부대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활약상 소식이 들려왔다. 인접 사단에서는 박병준 동기가 37사단에서는 주충근 동기가 사단 선봉대대 표창을 받으며 모든 상을 싹쓸이했고 전방 철책에서 근무하던 임방순 동기는 임진강으로 침투하는 공비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그나마 사단장의 지시로 연구했던 ‘부대구조 개선(무열) 계획에 따른 교육훈련 방안’으로 ‘소부대 전투력 향상방안’과제가 육군지 게재된 것에 위안을 삼았다. 또한 치료 회복중이지만 석사학위 논문을 요약해서 ‘남북통일 과정에서의 군사통합’ 원고를 위문온 선배에게 부탁해서 합참지에 게재하도록 부탁도 했다. 하지만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들며 극복’하려는 다짐을 실현하기에는 군잡지에 원고 게재한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너무도 배가 고팠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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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6]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새벽 6시즈음에 병실에서 이동해 수술실로 들어가서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하고, 8시부터 시작됐는데 하반신 마취 상태에서 모로 누운채 수술 진행과정 중에 벌어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엉덩이에서 가까운 부분은 골수정이 부러진 상태에 쉽게 뺄 수 있었는데 무릅쪽에 박혀있는 대퇴부 골수정은 뼈를 깍아내고야 집을 수가 있었고 벌써 일년 전에 박아놓은 것이라 밀착되어있던 골수정을 당기면서 무척이나 힘이 들었는지 이진우 군의관은 헉헉대며 상스런 말까지 내뱉었다. 겨우 골수정 끝을 집어당기며 애를 쓴 끝에 쇠파이프가 쑥하고 빠져나올 때 수술복 위로 피가 터져나와 속에 입은 팬티까지 피범벅이 되었고 곁눈질로 이 군의관의 얼굴을 보니 전체가 땀 범벅이 되었다. 보조 간호사가 팬티를 가지러 간사이에 뼈에서 빼어낸 10mm보다 더 굵은 14mm 굵기에 길이 38Cm가 되는 골수정이 뼈속에 다시 박히고 뒤쪽 골반에서 긁어내어 빻아 가루로 만든 뼈가루를 다시 골절부위에 이식하는 대장정 수술이 계속됐다. 오후 3시 즈음에 무려 7시간을 점심도 거른채 꼿꼿하게 서서 땀까지 흘리며 수술을 집도한 군의관들이 존경스럽고 감사하며 군병원도 일반병원 못지않은 진료 능력이 있음을 확인할 기회였으나, 필자도 정신 말똥말똥하게 의식이 또렷한 상태로 장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수술시간 동안 주기도문을 몇 번이나 암송했는지 모른다.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시작됐으나 진통제를 맞으면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는 간호사의 말에 하루밤을 버티었는데 참으로 긴 밤이었다. 헌데, 수술 후의 통증보다도 6개월 뒤에 대대장으로 취임할 수 있을지가 더걱정되며 ‘재활치료의 위기를 어떻게 호기로 만들며 극복할까?’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며 다짐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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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1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5)]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참모장 김현석 대령(육사30기, 예비역 중장)에게 현 상태를 보고하자 주저없이 그는 “당장 입원하라”고 지시하며 “차후조치는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고 빨리 건강회복에 유념하라”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어 너무도 감사했다. ‘전문의가 있는 대형 병원에 입원하면 가족이 간병하는라 고생할까봐 군병원을 택했다’라고 생각하여 훌쩍대며 반대했던 가족의 걱정을 무릅쓰고 당시 조치원에 위치한 노후된 대전통합병원으로 향했다. 마침 그동안 재활치료를 하면서 고생하여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했는데 동국대학원 졸업식이 입원 기간과 겹쳐 참석을 못해 아쉬웠지만 졸업장과 학위증을 받는 것으로 만족했고, 사단장의 지시로 연구했던 ‘부대구조 개선(무열) 계획에 따른 교육훈련 방안’으로 ‘소부대 전투력 향상방안’과제가 육군지에 게재하기로 확정됐다는 소식에 위안을 삼았다. 입원을 하고 1주일동안 검진을 받으며 수술날짜를 조율했는데 담당 군의관인 이진우 대위(연세대 출신)는 불융합된 대퇴부 골절에 대한 재수술을 타 의사들과 상의했다. 이 대위는 일부 의사들이 병원의 현 상태로 수술이 제한될 것이라는 의견에도 강하게 자신감을 표현하여 공동으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하며 필자를 안심시켰다. 결국 재골절된 지 열흘만인 그해 8월31일 아침 7시간의 장기간 수술이 시작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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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교통사고 재활치료를 하면서 사단장에게서 부여받은 ‘부대구조 개선(무열) 계획에 따른 교육훈련 방안’으로 ‘소부대 전투력 향상방안’연구과제 연구도 병행했다. 특별참모로서 추가해서 향토사단의 예비군 동원훈련 및 일반훈련 감독 임무도 수행하며 부지런히 현장을 확인하고 연구과제를 작성해서 사단장에게 보고도 마쳤고, 이 과제를 요약해서 육군지에 게재도 했다. 그러나 앞편 칼럼([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06)] ①자신감에 빠져있던 필자에게 적신호가 켜져)의 내용같이 회복을 과신한 오만과 무리한 재활운동 및 업무 수행으로 인해 왼쪽 대퇴부안에 박혀있는 골수정이 휘어져 뿌러지기 직전이었고, 골이식한 부분에는 뼈가 생성이 안되어 안붙을 수도 있다는 정형외과 의사의 진단은 충격이었다. 추가적인 골이식과 골수정을 더 굵은 것으로 교체하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에 따른 또 다시 찾아온 위기는 가족을 통곡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성당을 다니며 기도했는데 효과가 없다며 성당에도 다니기 싫다면서 더 울었다. 게다가 의무대장은 “만약 전역을 할 때 비장 절개와 골반 및 대퇴부 골절은 1급 원호 대상자의 조건이니 일반 병원 보다는 군병원에 입원 치료받는 것이 근거를 남길 수 있어 정상적으로 입원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도 했다. 이 의견을 전해듣고 가족은 “그동안 일반병원에서 간병한 본인이 또 고생할까봐 실력이 떨어지는 군병원에서 수술을 하냐?”며 훌쩍대며 “완벽한 치료를 위해 일반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다그쳤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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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3)]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두타산을 오르며 재활치료를 하던 중에 웃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날도 산행을 마치고 증평의 대중목욕탕에 들려 다시 뜨거운 물속에서 무릅 관절을 굽혔다 펴는 재활운동을 약 2000번 하자 온몸에서 땀이 비오 듯 쏟아졌다. 옆에 있는 냉탕에 바로 들어가 기진 맥진한 몸을 차가운 물속에 담그고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고 있는데 목욕탕 문이 열리며 2미터 가까운 거구의 두청년이 들어왔다. 머리도 짧고 온몸에 문신이 가득 그려져있어 한눈에 조폭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탕안에 들어와 사워도 안하고 거침없이 냉탕 앞으로 다가오던 그 들은 냉탕 팔걸이에 왼팔뚝을 내놓고 이마에는 땀이 한없이 흘러내리는 필자 모습을 보는 순간 냉탕에 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멈칫하고 있었다. 게다가 물속에 비치는 필자의 복부를 보고는 겁을 먹은 두사람이 줄을 서서 조심스럽게 차례로 냉탕에 들어가 있던 필자의 발끝으로 조용히 쪼그리며 들어와 물에 잠겼다. 아마도 그들은 필자에 팔다리와 복부 등 온몸에 있는 많은 수술바늘 자국을 칼자국으로 오인한 탓인 것 같았다. 나중에 전언으로 들었는데 증평지역에 칼을 잘 사용하는 중간 보스가 살고 있었는데 필자로 오인해서 벌어진 에피소드였다...ㅋ 필자는 두타산 등반과 목욕탕 물리치료로 건강이 좋아져 지팡이 없이도 잘 다닐 수가 있었다. 심지어 대대전술훈련평가(ATT) 통제에 나가서도 밤낮을 산과 들을 누비며 신나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중 오만과 자신감에 빠져있던 필자에게 적신호가 켜졌다. 8월이 되어 UFL(을지)연습 통제업무가 끝나갈 즈음에 그동안 완전하지 못한 몸으로 이리저리 휘젖고 다니고 하루에 150번씩 앉았다 일어서기를 했던 것이 무리였다. UFL(을지)연습 통제관 회의를 참가후 돌아오는 길에 심하게 절뚝거려 사단에 돌아와서 의무대를 들려 X-Ray를 찍어보니 왼쪽 대퇴부안에 박혀있는 골수정이 휘어져 뿌러지기 직전이었고, 골이식한 부분에는 뼈가 생성이 안되어 안붙을 수도 있으니 추가적인 골이식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졌고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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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1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2)]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두타산 정상부근에는 상취(上娶)의 기가 있다하여 정상부근과 내려운 줄기의 대봉산, 왕기봉을 비롯한 곳곳에 명당을 찾아 뭍 묘들이 산재해 있다. 두타산은 증평군에 서북풍의 찬바람을 막아서 겨울에 따듯함을 주고 여름엔 비구름을 걸러주어 심한장마를 없게 해주는 천혜의 보물산이다. 증평의 사계절을 알려주는 화려한 경관과 역사의 자취를 보존하고 있는, 증평 땅에 상취의 기를 안겨주는 명산이다. 마침 큰아들이 방학이라 동두천에서 관사로 내려와 함께 천천히 두타산을 오르기도 했다. 산을 오르다보면 지팡이가 필요없이 다리에 힘이 들어가 걷게되어 마치 재활에 성공하여 곧 완쾌된 착각을 할 정도로 증평 두타산의 상스런 기(氣)가 온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산에서 내려오면 증평에 위치한 대중목욕탕을 들려 다시 뜨거운 물속에서 무릅 관절을 굽혔다 펴는 운동을 약 2000번씩 했다. 산행을 마치고 나서도 뜨거운 물속에서 물리치료를 하고 밖으로 나가면 온세상이 깨끗해보이며 기분도 좋아 날아갈 것처럼 몸도 가벼워지고 상쾌했다. 이사온지 한달이 채 지나기도 전인 7월28일 즈음 운동을 마치고 관사로 복귀할 때 증평에서 동북방 약 20km 떨어진 음성의 한 야산에 훈련중이던 UH-1H헬기가 추락했다는 급보가 전파됐다. 사단 상황실은 바쁘게 후속조치를 위해 움직였지만 이미 추락한 뒤라 현장을 수습하던 대원들에게서 육사 35기 선배 등 3명이 아깝게 순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모름지기 군인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임무수행을 위해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거침없이 나아가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GOP 사단에서 근무할 때 비무장지대의 지뢰밭 속에서도 작전지역을 긴장 속에서 탐침하며 수색정찰했고 철책 공사중에 지뢰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을 포함해 이번에 순직한 전우들의 명복을 빌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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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0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1)]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향토사단의 예비군 동원훈련 및 일반훈련 감독 임무 수행은 교통사고 재활치료를 위해 다리근육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 각 부대를 방문하고 신속히 복귀하여 부대 뒤편의 ‘두타(頭陀)산’을 오르기로 결심하고 바로 시행했다. 초여름 날씨가 온몸을 땀으로 적시기는 했지만 지팡이를 짚고 산에 오를 때 기분은 마치 산을 나는 새가 된 기분이었다. 두타산은 동·남쪽으로는 증평과 청주, 충남 조치원에 이르는 미호천평야, 증평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금강의 발원지로 도안면 노암리(벼루재)쪽으로 흐르는 연암천, 미암리(대지랭이)쪽에서 흐르는 자양천의 발원지이다. 서·북쪽으로는 초평저수지, 원남 저수의 발원지이며 진천평야와 시원하게 뻗어있는 중부고속도로가 보인다. 산세는 증평쪽은 가파르나 진천방향에서는 완만하여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두타산의 유래는 중국 최고의 지리서적인 산해경(山海經)의 해외동경(海外東經)편에 “칠년홍수 치산치수 단군신팽우(七年洪水 治山治水 檀君臣彭虞)”로 기록되어 있어, 지금으로부터 4,300년전 단군성조께서 나라를 다스릴 때 오랫동안 장마로 물난리를 겪을 무렵 이 지역도 평해(平海)로 변하니 백성들이 가장 높은 산으로 모여들어 수난을 피했다고 기록 되어 있다. 그 대홍수때 이 산의 산봉우리가 섬같이 보였다고 하여 머리 두(頭), 섬 타(陀)자를 따서 두타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또한 많은 백성의 생명을 도와준 산이라 하여 일명 ‘가리도(加利島)’라 부르기도 한다. 당시 배가 진천과 증평 쪽을 넘나들던 고개를 “배넘어 고개”라 하여 오늘날까지 부르고 있다. 두타산 정상에는 석성으로 된 두타산성이 있는데 산성의 둘레는 913m, 높이는 1.2m 폭은 2.7m로 남문과 동문지가 있으며 남문지의 외측에는 적 침투방위를 목적으로 축성된 두 곳의 토루가 있다. 성내에는 삼국시대의 경칠토기 조각과 통일신라 및 고구려시대의 토기조각이 발견되며 2개의 우물터가 있다. 두타산성은 신라장군 ‘실죽(實竹)’이 486년 이찬에 임명되어 백제군을 막기위하여 쌓았다는 설이 있으며, 실죽 장군은 보은의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하기도 하고 살수지원(薩水之源)및 우산성(牛山城)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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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4-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0)] 오만감이 불러온 또다른 위기의 적신호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장 전입신고를 마치자 숙소도 배정되어 먼저 수리를 하고 전입온지 한달만에 동두천에서 증평으로 혼자 이사를 했다. 결혼후 벌써 11번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수용이는 1학년을 마치기 전에 첫 전학을 하게 되었지만 곧 대대장으로 취임하면 청주로 또 이사를 해야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두집살림을 시작했다. 지난번 근무하던 태풍부대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증평 연탄리에 위치한 사단 참모관사는 부대 정문을 건너면 바로인 가까운 잇점은 있다. 반면에 주변 축사에서 풍겨나온 악취와 여름철 파리 모기가 엄청 괴롭히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불편함은 가족을 동두천에 남겨두고 혼자 이사하길 잘했다는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사단의 특별 참모로 임시보직을 받자 사단장은 필자에게 연구과제를 부여했다. ‘부대구조 개선(무열) 계획에 따른 교육훈련 방안’으로 ‘소부대 전투력 향상방안’이었다. 추가해서 향토사단의 예비군 동원훈련 및 일반훈련 감독 임무도 병행 수행했다. 새로운 지역으로 전입온 필자로서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일부러 지형정찰을 다닐 필요도 없이 사단 전지역을 익힐 수 있었고 차후 대대장 취임시에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하는 노하우도 자연스럽게 타부대를 지도 감독하다보니 터득할 수 있었다. 그와중에 필자보다 2년 먼저 대대장으로 취임한 동기들은 각 부대에서 선전하고 있었다. 인접 사단에서는 박병준 동기가 37사단에서는 주충근 동기가 사단 선봉대대 표창을 받으며 모든 상을 싹쓸이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그들의 활약에 무한한 갈채를 보내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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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9)] 오만감이 불러온 또다른 위기의 적신호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장은 필자에게 돌발 질문을 던졌는데 그의 눈길은 전입신고를 진행하는 인사참모에 가있었고 ‘이렇게 몸이 불편한 자를 실제 전투력을 발휘할 대대장 자원으로 왜 받아드렸냐?’하고 질책하는 눈빛이었다. 곤혹스런 표정으로 궁색한 변명을 찾고 있는 필자 옆에 서있던 인사참모는 정색하며 “사단장님, 김 중령은 내년 2월에 대대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며 그동안 건강회복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이런 우수한 자원을 사단에서 평가단 등 특별 참모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단으로 볼때는 오히려 좋습니다”라며 필자가 대답할 기회를 주지않았다. 불안해하는 사단장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도 못한 채 전입신고는 끝났다. 이후에 사단장이 별도로 인사참모에게 필자의 자력카드상에 교통사고로 인한 병원 입원기록이 누락된 사실을 확인하라고 지시했고, 인사참모는 전부대에 확인한 결과 ‘교통사고 직후 필자가 근무했던 부대의 전 사단장이 완치가 가능하다는 의사의 의견을 듣고 한직인 부대대장으로 보직을 조정하여 장기 휴가처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전언에 따르면 그러한 배려는 당시 사단장(이영대 장군 학군4기)이 취임전인 수방사 참모장 시절에는 작전장교로, 사단장 재임 전체기간 동안은 사단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필자의 능력과 인품을 특별하게 인정하여 취해진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전입신고간에 벌어진 에피소드 덕분에 사단장과 참모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위기가 오히려 호기가 되어 배려해주는 선배, 동료 및 후배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다시만난 김종선, 신규식, 김영철 육사 선배와 김현석 참모장까지 개별적으로 불러 격려했고 환영 회식도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다음편 걔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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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8)] 오만감이 불러온 또다른 위기의 적신호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월요일 아침 사단장실에서 전입신고가 있었다. DJ라는 별명을 얻은 필자는 차마 지팡이를 짚고 전입신고는 할 수 없어서 지팡이는 비서실에 놓고 약간의 통증은 있었지만 절뚝거리며 사단장 앞에 섰다. 인사참모의 구령에 맞추어 절뚝거리며 신고한 필자를 바라보며 불안감을 감추진 못한 사단장 이상신 장군(갑종197기)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김중령은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과 함께 자력카드를 훑어보면서 추가 의문의 한마디를 추가했다. “교통사고로 5개월간 병원에 입원했는데 왜 자력카드에는 입원 기록이 없지?” 일정주기가 지나면 전후방으로 교류해야만 하는 인사규정에 따라 필자는 전방부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2군으로 배치됐다. 보직을 검토하던 군사령부 인사처에서 해안사단보다는 바다 없는 내륙사단이 교통사고 후유증에 따른 불편한 몸으로 대대장 근무하기가 용이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37사단으로 보직명령 조치를 했다. 하지만, 신고를 받는 사단장이 ‘내륙사단이라도 절뚝거리는 몸의 대대장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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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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