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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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소통시대 기사

  • [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 장성, 일명 별들이 제22대 총선 전투에 도전장을 제출하고 고군분투(孤軍奮鬪)중이다. 출마 선언을 하고 나선 예비역 장성중 4·10총선에서 ‘별’(국회의원 배지)을 얼마나 달수 있을까? 4·10총선에서는 군출신으로 공천이 확정된 후보들은 보수성향의 국민의힘이 한기호, 박성규, 유낙준, 고석, 이상철, 임종득, 강선영 국회의원 후보등이다. 진보성향의 민주당은 황기철, 김병주, 김도균, 민홍철 국회의원 후보 등이다. 국민의힘 대 민주당이 7대 4의 비율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이하게도 우선 각 당의 군출신 비례대표 후보는 국민의힘 강선영 후보가 유일하다. 참고로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에서는 김병주를, 미래통합당에서는 신원식(현 국방부 장관)을 내세웠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외침 등 위기에 처했을 때, 관군보다는 애국심이 강한 의병들의 자발적인 궐기에 의해 이 나라가 보존되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의병 의식이 강한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듯 평범한 우리 국민들은 4.10총선에서도 개인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 가짜보다는 이러한 애국심이 강하며 깨끗한 의원들이 등장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번 총선에 출마해 '제2의 인생'을 모색하는 전직 장성출신 후보들을 진면모를 소개한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4-03-2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7)] 작전분야 군생활 중 부담없는 첫 휴일 보내는 DJ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성모상 축복식이 거행되었던 태풍전망대 전방 이북지역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이후 휴전회담이 결렬되면서 1953년 7월에 전개된 중서부전선의 대표적인 고지쟁탈전으로 기적의 ‘36대800 승리신화’를 만들었던 김만술 소위의 베티고지(Betty)가 있다. 6.25남침전쟁 막바지인 7월15일은 휴전을 앞두고 중공군이 벌인 막바지 공세인 이른바 7·13공세의 사흘째가 되는 날이었다. 7·13공세는 중공군이 휴전을 앞두고 중부전선의 금성 돌출부의 만곡부를 없애기 위해 퍼 붓은 최후의 공세였으나, 이러한 불길은 서부전선 임진강 대안의 고양대 일대와 노리고지를 감제하는 중심부인 베티고지까지 불어 닥쳤다. 결국 베티고지는 소대장 김만술 소위와 2소대원의 임전무퇴의 감투정신에 의해 10배 넘는 중공군의 공격을 끝까지 방어하여 기적의 36대800 승리신화를 만들며 격퇴시키고 사수하여 역사에 남았다. 새로운 부대 전입을 앞두고 다시 전 근무지에 잠깐 들리는 동안에 태풍전망대를 찾아 베티고지를 바라보면서 김만술 소위 등 과거 선배전우들의 감투정신과 애국심을 되새김질하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태풍전망대의 동양 최대 성모상 축복식을 통해 많은 인파속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미사를 올린 것은 들에 핀 풀과 같은 인생길에서 교통사고 아픔을 극복하고 신 근무지에서 더욱 열심히 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느낌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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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3-21
  • [김희철의 CrisisM] 자유·정의·민주주의 위해 하나 된 시민·학생의 3·15의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5일(금) 오전 10시, 경남 창원 3·15아트센터(창원시 마산회원구)에서 ‘눈부신 큰 봄을 만들었네’라는 주제로 ‘제64주년 3·15의거 기념식’을 거행했다. 올해로 64주년을 맞는 기념식엔 3·15의거 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인사, 각계 대표, 미래 세대 등 약 700여 명이 참석하여 자유·정의·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시민과 학생이 하나 되어 일어났던 3·15의거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계승했다. 3·15의거는 1960년 3월15일 정․부통령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당시 마산시민과 학생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으며, 4·19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최초의 유혈 민주운동이다. 당시의 1차(3.15) 및 2차 의거(4.11~13)로 사망 12명, 부상 250여 명 발생했으며, 이후 4월11일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모습이 부산, 마산 및 서울 각 언론에 실리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지난 2010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정부기념식으로 격상되었고, 2011년부터 매년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기념식은 국립 3⋅15민주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10시부터 3·15아트센터에서 공연, 국민의례, 경과보고, 기념공연(1), 기념사, 기념공연(2), 3·15노래 제창 순으로 약 45분간 진행됐다. 먼저, 여는 공연 ‘눈부신 큰 봄’은 3·15주제곡이 나오면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배우)이 노래를 부르며 등장해 64년 전 그날, 마산에서 울려 퍼진 함성을 재연하며 3·15의거의 의미를 되새겼다. 1차 기념공연 ‘역사의 이름으로’는 총 4곡의 음악극(뮤지컬) 곡을 연결하여 3·15의거의 배경과 진행 과정은 물론 자유와 민주의 정신을 오늘날의 우리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함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삼월의 그들’과 ‘도시의 얼굴들’의 공연 곡 중 일부를 기념식 주제에 맞춰 각색해 모음(옴니버스) 공연 형식으로 선보였다. 기념사에 이은 2차 기념공연 ‘빛의 세상으로’는 노래 ‘빛의 세상으로(원곡 소향)’를 가수 정선아와 창원 학생연합합창단(30명)이 함께 부르며 3·15의거의 정신을 밑거름으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의미를 전했다. 끝으로, 음악극(뮤지컬) 극단과 창원 학생연합합창단, 그리고 참석자들이 함께 ‘3․15의거의 노래’를 제창하며 기념식이 마무리됐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번 기념식을 통해 우리의 미래 세대가 64년 전 평범한 시민들의 용기 있는 외침을 기억하면서, 자유와 민주, 정의를 향한 정신을 계승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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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3-20
  • [김희철의 CrisisM] 고종,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882년 고종은 태극기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백성을 뜻하는 흰색과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임금을 뜻하는 붉은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은 기를 제작하게 하였다. 이는 고종이 계승하고자 했던 정조의 군민일체(君民一體) 사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깃발은 다소 일본제국의 국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김홍집(金弘集,1842~1896, 초대 총리대신)은 “반홍반청(半紅半靑)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리면 일본국기와 구분이 될 것”이라 하여, 태극기 문양이 정해졌다. 고종이 왕명으로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지만, 국기 만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탓에 이후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사용되어 왔었다. 해방후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1949년 10월15일 ‘국기제작법고시’를 통해 국기 제작방법을 확정·발표하였다. 영광된 조국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의 탄생을 충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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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3-2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6)] 작전분야 군생활 중 부담없는 첫 휴일 보내는 DJ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동두천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 되었으나 멀리 증평에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행복했다. 게다가 고통도 행복이었던 필자는 복을 타고난 놈이다. 왜냐하면 일요일에는 좀처럼 쉽게 만나뵐 수 없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군종 주교님의 태풍전망대 성모상 축복식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오후 GOP 철책에 조성된 관광지인 태풍전망대에 많은 인파가 모였다. 군인 신자들뿐만 아니라 김 추기경을 따라온 천주교 신자들과 군인가족 및 일반 관광객까지 인산인해를 이루며 동양 최대 성모상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특히 추기경님을 환영하는 화동으로 필자의 아들이 선정되어 더욱 의미가 있었다. 남북분단의 아픔 가슴속에서 간직한 채 북녘땅에서 종교의 자유도 없이 고생하는 동포들을 위해 기도를 할 때에는 참석자 모두 숙연해지는 분위기 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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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를 말한다
    2024-03-19
  • [김희철의 CrisisM] 고종,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882년 8월9일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겸 수신사 박영효 등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배를 타고 도일할 때 당장 게양해야 할 국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만을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 의 기를 만들어 9월25일부터 사용하였다. 이들 일행은 8월14일 고베(神戶)에 도착하여 숙소건물 지붕 위에 이 기를 게양했는데, 이것이 태극기의 효시다. 그리고 10월3일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고, 고종은 다음 해인 1883년 3월6일 왕명으로 이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太極旗)를 국기(國旗)로 제정·공포하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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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3-1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5)] 작전분야 군생활 중 부담없는 첫 휴일 보내는 DJ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DJ별명의 필자는 비록 지팡이는 짚고 있었으나 직접 운전하여 증평에 위치한 사단사령부에 도착했다. 헌데 전입일자가 금요일이어서 인사참모는 사단장 신고를 월요일로 정하고 먼저 지형 정찰을 다니라고 전했다. 덕분에 충주에서 멋있게 대대장 근무를 하는 동기생 주충근 중령에게 달려갔다. 역시 동기생이 최고였다. 이미 그곳에서 2년 가까이 근무했던 주 중령은 저녁을 함께하며 사단의 분위기와 향토사단에서 유의할 점들을 소상하게 알려주었다. 사단에는 주중령뿐만 아니라 공병대대장을 동기생인 권태환 중령이 보직되어 있었고,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종선(36기)과 사단 참모로 재직중인 신규식(35기), 김영철, 박찬일(34기) 그리고 참모장 김현석(30기) 대령 등의 선배들도 있어 일단 마음도 편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어서 주충근 동기와 저녁식사를 한 뒤에 동두천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작전분야에서 군생활하면서 이렇게 휴일을 부담없이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특히 전입 신고도 안한 상태라 인사참모는 위수지역을 벗어나 집에 다녀오는 것을 허용해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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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3-13
  • [김희철의 CrisisM] 고종,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3월6일(음력 1월27일)은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가 탄생한 소중하고 특별한날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기제정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던 것은 1876(고종13)년 1월이었다.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한 · 일 사이에 강화도조약체결이 논의되는 동안, 일본측은 ‘운양호에는 엄연히 일본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했느냐?’면서 트집을 잡았지만, 조선 측에서는 ‘국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국가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조선 임금의 어기인 "태극팔괘도"가 있었지만 조정에서 비로소 국기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히 논의되었다. 당시 청(淸)나라는 자국의 국기인 '용기(龍旗)'를 약간 변형하여 사용할 것을 조선 정부에 요구하였다. 이에 분개한 고종은 이를 거부하고, 청색과 적색으로 이루어진 태극원과 사괘를 그려 국기로 정한다는 명을 내렸다. 그런 와중에 1882(고종 19)년 5월22일에 체결된 조미수호 통상조약 조인식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조약 조인식에서 역관 이응준이 태극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이후 국기 제정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 정부는 종전의 '태극 도형기(太極 圖形旗)'에 8괘(卦)를 첨가하여 '태극·8괘 도안'의 기를 만들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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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4)] 작전분야 군생활 중 부담없는 첫 휴일 보내는 DJ①
    뇌진탕, 횡경막/비장 파열과 골반/대퇴부 골절 등 11가지의 병명으로 대구가야기독병원에 입원했던 필자와 유사한 환자 모습 [사진=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 시편 103장에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인생을 정의하고 있다. 1994년 4월 어느날 새벽 군부대의 헌병속보에는 진해 육군대학 대대장반 교육중인 중령진급자 예정자 3명이 대구 팔달천변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1명은 뇌사, 2명 중상이라는 내용으로 전파됐으며, 뇌사상태는 필자를 지칭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필자는 골반 및 치골은 전위골절, 대퇴부는 분쇄골절, 늑골8·9번 골절, 좌5족지 골절, 횡경막·비장 파열, 뇌진탕, 혈복흔 등으로 병명만 세어봐도 11가지인 중태 상태로 살아난 것이 기적이었다. 이후 서울 을지병원에서 5개월 가까이 치료받고 퇴원하여 목발을 짚으며 사단사령부에서 근무하다가 중령으로 진급 신고를 했고 해가 바뀌자 선배들의 관심과 배려 덕택에 성남에 위치한 행정학교에서 영관영어반을 다니며 재활 치료를 지속했다. 건강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로 그해 6월말경에 목발이 지팡이로 바뀌자 필자(DJ)는 새로운 근무지인 37사단으로 전속 명령을 받았다. 대대장 취임은 그다음 해인 1996년 2월로 정해졌고 그동안 어떤 보직에서 일하게 될지도 궁금하고 이사도 알아봐야 해서 먼저 혼자 이동하기로 했다.음 해인 1996년 2월로 정해졌고 그동안 어떤 보직에서 일하게 될지도 궁금하고 이사도 알아봐야 해서 먼저 혼자 이동하기로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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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1
  • [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은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참전기간 동안 1개 보병대대와 1척의 구축함 또는 프리깃함을 파견한 네덜란드는 기간 중 연인원 5,322명을 한국전선에 파견했다. 교대로 투입된 해군 함정의 경우 에베르센호 237명, 반 가렌호 247명, 피엣 헤인호 237명, 반 나소호 183명, 두보아호 209명, 반 지질호 209명, 기타 임무 28명이 참전했다. 횡성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 및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120명이 전사하고 645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3명이 포로가 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부상자 중 292명은 원복을, 262명은 예편했으며, 91명은 불구가 됐다. 1953년 10월 1일 네덜란드 대대는 그간의 전공으로 인해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받았다. 이에 앞서 대대는 횡성-원주전투에서 세운 전공을 높이 치하하는 미국 대통령의 부대표창을 1951년 8월 9일 밴 플리트 대장으로부터 수여받기도 했다. 이와 같이 네덜란드 대대는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기간 중에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비롯한 3회 부대표창과 156회의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또 네덜란드정부의 The Cross for Justice and Freedom의 영예를 차지했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국내외의 군사적인 사정으로 지상군의 파병이 불가한 형편이었으나, 많은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참전을 촉구하고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파병이 가능하게 됐다. 네덜란드는 다른 참전국과는 달리 민간단체에서 자발적으로 참전을 촉구해파병을 결정한 것에 의의가 있으며, 6·25남침전쟁을 통해 네덜란드 국민이 보여준 용감성과 자유수호에 대한 의지는 대한민국이 존립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자유세계를 결속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따라서 지난달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네덜란드를 방문해 추진한 ‘국제보훈 교류·협력’ 행사는 각별한 의미가 있으며, 또한 국내에서참전용사를 초청해횡성 참전기념비에서 개최하는 추모행사도 매년 지속되며 네덜란드군의 참전과 희생을 기리고 있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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