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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CrisisM] 인구절벽 시대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국민교육헌장은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반공과 민족중흥이라는 집권세력의 통치이념을 사회적 이상으로 삼고 그 실현을 지표로 삼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게 된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교육헌장이 일본의 메이지시대에 제정한 군국주의적 ‘교육칙어’와 이념이 매우 유사하다는 이유로 이의 철폐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민교육헌장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됐다는 의식이 확산됨에 따라 1994년부터 기념식행사를 개최하지 않았으며, 이후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잔재라는 미명 아래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삭제되더니 급기야 2003년에는 대통령령 제18143호에 의거해 선포된지 35년 만에 폐지됐다. 구시대의 잔재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선현들이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현재의 교육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몹시 흔들린다. 학교 교육은 붕괴됐으며 가정교육 또한 엉망이 됐다. 얼마 전에 학생이 학교에서 체벌을 받은 데 대해 교사를 경찰에 고발하고, 부모는 교사의 멱살을 잡는 사건까지 벌어졌으니 오래 전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사들은 땅에 떨어진 교권에 대해 토로하고 학생들은 인권침해를 호소한다. 교육환경이 엄청나게 변했으나 우리의 교육계는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더구나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까지 썩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한심하다. 이는 국민들이 교육에 대한 확고한 이념이나 지표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정책적 요소이다. 비록 국민교육헌장이 권위주의적, 국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우리나라가 중진국으로 진입할 때 국민들의 의식 개혁에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재론할 여지가 없다. 60~90세대들 중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우둔한 탓에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의 어느 부분이 비민주적인 내용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또한 모름지기 국민교육이란 국민이 행복하고 나라가 부강해야 하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따라서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서게 된 것은 국민교육헌장이 국민들의 의식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항간에 “우리의 교육에는 철학이 없다”는 말이 종종 들린다. 요즘처럼 사회가 혼돈스럽고 교육계가 엉망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 국민들에게 시대상황에 적합한 교육이념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국민교육헌장에 나온 문구처럼 ‘인류공영에 이바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리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가치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바뀌어 간다. 특히 출산율의 급감에 따른 인구절벽 시대가 도래해 군에 입대할 청년들 마져도 부족한 안보위기를 초래하게 될 상황에서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1만9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들을 포함해서 이 땅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은 반드시 기억할 가치가 있다. 이제는 정말 국민교육에 대한 시대에 부합된 새로운 국민교육헌장이 나와 우리사회가 걸어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더불어 급변하는 산업화 사회를 정신없이 달려온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단지 “구시대 역사의 잔재로 간주되고 있는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2-3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1]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필자가 대대장 취임전에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동기생 중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이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고,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금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다. 대대장 근무를 하던 당시에 타 동기들은 대부분 모두가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참모 보직으로 옮겼지만, 필자는 대대장반 교육과정에서의 교통사고 때문에 후유증 재활치료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여유를 갖게 된 졸업중대 동기들에게서 그들보다 2년 늦게 대대장직을 수행하는 필자의 부대를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관생도 시절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의 부대 방문은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깊이 감춰진 의미인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2-30
  • [김희철의 CrisisM] 백마고지를 사수한 이성덕 육군 중위, 12월의 6‧25남침전쟁 영웅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가보훈부는 6‧25남침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수차례 적의 공격을 막아낸 이성덕 대한민국 육군 중위(당시 소위)를 ‘2024년 12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29년 1월 출생한 이성덕 중위는 육군갑종사관후보생 제9기로 군사교육을 받고 1952년 1월5일 육군소위로 임관, 국군 제9사단 30연대 3대대에 배속되어 11중대의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백마고지(395고지)는 강원도 철원 서북방 12km 지점 고암산과 효성산이 교차해 남쪽으로 흐르는 능선의 끝자락에 위치한 야산으로, ‘철의 삼각지(철원, 김화, 평강)’ 중에서도 철원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물자 보급로로 국군에게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1952년 10월6일, 첫 전투가 개시되고 395고지를 지키던 제30연대는 다음날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4차례나 막아냈다. 특히, 이성덕 중위는 중공군이 395고지로 남하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395고지의 북쪽 전초진지인 ‘화랑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중공군은 화랑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켰으나, 이성덕 중위가 소속된 11중대는 중공군의 거듭된 공격을 막아냈다. 중공군은 후퇴하던 일부 병력을 화랑고지 공격에 투입하며 10월7일부터 다시 공격에 나섰다. 이에 탄약과 식수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고지를 사수하던 제11중대는 포위되었고, 이성덕 중위는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적의 공격을 막던 중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아 전사했다. 이후로도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한때 화랑고지를 포함해 395고지를 적에게 내주기도 했으나, 제28연대가 10월 15일 395고지를 되찾은 데 이어 제29연대가 화랑고지 선상의 전초진지를 확보하면서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395고지를 놓고 열흘 동안 12번에 걸친 공방전이 벌어지고, 고지 주인이 7번이나 바뀔 만큼 6·25남침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이며 중공군이 패배를 자인한 전투이기도 하다. 전투 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이 돌가루와 흙더미만 남아있는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정부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활약한 이성덕 중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소위→중위)을 비롯해 을지무공훈장(1952년)과 화랑무공훈장(1954년)을 추서하였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2-2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0]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2500년전에 20장 1만1,500글자로 작성된 고전이 지금은 중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교양 필독서가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인간들의 표상을 정위치에서 잡아주는 것이 논어(論語)의 위력이고 존재 이유이다. 논어에서 107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단어가 군자(君子)이다. 여기서 군자라 함은 삶의 표본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교양과 품격을 갖춘 인간상을 말한다. 의지만 있으면 온갖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며 새로운 가치와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학습자이다. 따라서 이 시대가 원하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유형별 군자의 인간상을 정리했는데 그중에 두 번째는, 동지형(同志型) 인간으로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하면, 불역락호(不亦樂乎)아라’했다. 뜻을 같이하고 지향점이 같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니겠는가? 즉,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행간의 숨은 의미이다. 필자의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에는 생도대가 지금과 달리 16개 중대로 편성되었는데 매년 소속 중대가 바뀌었다. 하지만 3, 4학년은 같은 중대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2년간 함께한 졸업 당시 중대의 동기들은 타 중대의 동기들보다도 유난히 돈독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2-26
  • [김희철의 CrisisM] 인구절벽 시대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경제개발 계획을 밝히면서 경제개발 계획은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민들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당시 문교부장관 권오범에게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정립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을 위해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총 망라하여 교육장전(敎育章典)을 제정할 것을 지시했다. 문교부는 헌장 제정을 위해 26명의 헌정 기초위원과 48명의 심의위원을 위촉하여 3회에 걸친 초안작성 준비회를 개최하였고, 7월엔 제 1차 심의위원회를 마련한 뒤, 박종홍, 이인기, 우형진 등이 헌장 초안을 다듬었다. 이후 국무총리가 주관한 소위원회를 4회, 대통령이 직접 주관한 전체회의를 4회 개최한 후, 11월 정기 국회 본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드디어 1968년 12월5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교육헌정을 선포했다. 이 헌장의 제정 소식을 들은 대만의 총통 장제스는 “기선을 빼앗겼다”고 부러워하며 김 신 주한국대사에게 자료수집을 당부했으며, 독일의 볼노브도 “독일 청년의 정신적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헌장 제정에 고심하던차”라면서 찬사를 보내왔다. 국민교육헌장은 민족의 주체성 확립,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개인과 국가의 일체감을 통한 복지국가 확립을 내용으로 해 총 393자로 쓰여졌다. 첫 문단은 우리 국민이 한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높은 긍지와 그에 따른 투철한 신명의식을 밝혔다. 가운데 문단은 국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개인윤리, 사회윤리, 국민윤리 순으로 국민 개개인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규범과 덕목을 명시했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반공민주주의정신으로 조국통일의 실현과 민주주의 발전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교육철학을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체 내용은 민족 주체성에 입각한 국민교육에 초점을 맞춰 자주독립과 창조와 개혁, 협동정신, 애국애족, 통일 등 우리나라 교육의 핵심 요소를 기본이념 속에 강조해 왔다. 국민교육헌장 선포 이후 정부에서는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그 실현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게 된다. 따라서 국민교육헌장은 국가 및 학교의 각종 행사에서 반드시 봉독하게 됐다. 또한 모든 국정교과서의 첫 장에는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게재했으며, 각 급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암기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한 때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닐때였으니 헌장의 전문을 모두 외운 것은 당연지사이다.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고 뒤이어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 국민교육헌장은 새마을 교육의 정신적인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은 곧 새마을 정신의 밑바탕이 됐다. 즉 새마을 교육은 국민교육헌장의 이념 아래 국민들에게 새마을 정신을 함양시킴으로써 국가발전에 공헌하는 실천적 인간을 육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새마을 운동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면 국민교육헌장은 새마을 운동이 성공적으로 전개되는 데 있어 정신적인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포일은 1973년 3월30일에 대통령령으로 정부주관 기념일이 됐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2-2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9]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조영호 사단장의 사고예방 최우선 부대운영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병사 개개인의 신상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긴밀한 소통을 통해 사고예방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대대의 60여명밖에 안되는 현역 전병력의 인적사항을 병원관리(兵員管理)용으로 전산화시켰다. 이는 탁월했던 후배 고(故) 김상철 대위(육사38기)의 포대에서 수년전에 활용했었지만, 당시에는 타부대는 아직 적용을 못하고 있던 상태로 사단에서는 필자가 최초로 시행했었다. 나중에는 일반화된 명암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결손가정 등 필요한 요소을 검색하면 전 대대원중에 해당자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그러나 병원관리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수시로 대대원들과 면담이나 소원수리함(대대장만 개봉 가능) 등을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에 한 병사가 면담을 요청하는 문건을 확인했다. 대대장실에서 아담한 키에 다소곳이 마주 앉아서 차를 한잔하던 00일병은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였다. “대대장님, 이것을 차마 중대장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시작하자 흠칫 상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애로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교육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후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입대 후에 생활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취침시에 모포가 쓸려내려간 동료의 허벅지를 볼 때마다 흥분되고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난감했다. 하지만 00일병의 입장이 되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대장이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런 이상 징후 치료가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며 안심하라고 달래주었다. 그를 생활관으로 돌려보내며 걱정이 됐으나 연대 인사과장에게 먼저 상의를 했다. 다음날 연대인사과 선임하사가 대대를 방문해 00일병을 면담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 치료차 대대를 떠난 병사는 의사 진료 후에 ‘성도착증세’로 확진이 됐고, 바로 전역 조치가 되었다. 한달 뒤에 그의 편지를 받았다. 전역해서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말미에 병명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망도 적혀있었다. 지휘관은 휘하에 부하들을 지휘통솔하는 직책이다. 질식사 위험의 부하도 살리는 보람도 있었으나, 후자같은 경우에는 많은 타부하들을 위해 지휘관을 믿고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던 부하를 아쉽게 전역시켜야 하는 아픔을 겪게 만드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괴로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희생양이 된 00일병에게 미안함이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2-24
  • [김희철의 CrisisM] 인구절벽 시대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최근 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가 혼외자를 출산한 것이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통계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 출생아 43만7000명의 전반 수준인 약 23만명이 2023년에 태어났고, 이중의 4.7%인 1만900명이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혼인 외 출생아는 2013년 9300명에서 2020년 6900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7700명, 2022년 9800명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혼외 출생율인 41.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계속 이어지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110년만에 최대로 많이 내린 첫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던 그날 저녁에 어릴적 친구와 소주한잔을 들이키며 건배를 하다가 우리가 철없는 강아지처럼 첫눈을 즐기는 삶을 아직도 영위함에 감사드리며 외친 말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였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한 60~90세대들이 ‘~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암송문을 5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역대 최대를 기록한 2023년의 1만900명를 포함해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1968년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의 가치를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2-2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8]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복귀를 고려해 우선 원거리부터 이동하여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미원면과 낭성면을 지나 가덕면에 위치한 지파출소 예비군무기고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짚차 출입문 틈으로 혹서기 삭풍을 예는 바람이 매섭게 파고들어 발밑의 히타의 온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저멀리 가덕면 지팔출소와 예비군 무기고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계초소가 보였는데 그 안에 초병이 없었다. 일순간 날이 추워서 경계근무를 안하고 임시 생활관에 들어가 쉬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며 경계근무에 소홀한 초병을 어떻게 혼을 내줘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차를 세우고 경계초소로 들어갔다. 헌데 초병인 상근예비역은 초소 밖을 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초소안에 총을 세워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을 쬐고있었다. 기습적인 대대장의 방문에 놀란 초병은 옆에 소총을 집어들면서 급하게 일어서서 ‘필...!’하고 경례를 했다. 경례구호도 제대로 하지못한 초병은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며 필자의 품에서 잠시 기절을 했다. 필자는 초병을 안은 채 초소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히며 등을 두드렸다. 잠시후 표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초병은 말을 할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초병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을 보냈는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여 거의 중독되기 직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품으로 쓰러졌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더듬거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초병을 생활관 대기실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기하던 다른 상근예비역으로 초병근무를 교대시켰다.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해 지속 감행했던 결과로 질식사 직전의 부하를 살렸다는 부듯한 보람이 엄동설한 속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2-19
  • [김희철의 CrisisM] 백선엽장군기념재단, 2025년 달력으로 6·25남침전쟁을 상기시켜(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사실 요즈음 많은 신세대 시민들과 어린이들은 74년 전에 발발한 6‧25남침전쟁을 학교 및 가정교육에서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아직까지 일부 생존한 90세가 넘어가는 6‧25남침전쟁 참전용사들만이 그때를 회상하며 몸서리 칠뿐이다.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이는 전쟁을 원한다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에 굴복하기보다는 전쟁에 맞서 방어하라는 의미이다. 굴종은 평화가 아니다. 전쟁은 평화주의자를 노린다. 강력한 군사대비 없이 입으로만 평화를 떠드는 사람은 무책임하다. 전쟁이 발발하여 침략을 당하면 평화고 뭐고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처절하고 비참하게 피 흘리는 전쟁보다는 비겁한 평화가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따라서 남녀노소 모든 국민, 특히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남침전쟁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전쟁에 대비하여 평화를 지키려는 국민적 안보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그래야 비참하게 피 흘리는 전쟁 발발의 비극을 사전에 막아내 평화를 지키며 행복한 나라를 영위할 수 있다. ■ 백선엽기념재단의 2025년 달력은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와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 지난 정권에서 육군사관학교에서 조차도 전쟁사 교육이 약화되어 6‧25남침전쟁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바닥까지 떨어지며 안보의식이 희박한 안타까운 상태가 됐다. 하지만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은 북한군의 불법 남침부터 낙동강 방어작전, 유엔군 북진, 중공군 불법 개입 및 휴전에 이르는 6‧25남침전쟁 경과와 백선엽 장군의 애민 사상에 따른 활동과 육군재건 및 현대화를 위한 노력 등을 해당 월별로 표현한 2025년 달력을 제작하여 국민 안보교육에 기여했다. 지난 14일 전쟁기념관 429호실(생전에 백선엽 장군이 사용했던 곳)에 위치한 기념재단 사무실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김관진 이사장(전 국가안보실장)과 백남희 여사(백선엽 장군의 장녀), 방기봉 회장 등 이사회에 참석자들은 팽준호 사무총장의 2025년 달력 설명을 듣고, 한결같이 6‧25남침전쟁에 대한 충분한 교육자료가 될 수 있는 잘 제작된 교육자료 달력이라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때마침 방위산업공제조합에서 조합 홍보용으로 대량 구매를 결정했고, 방기봉 회장의 협조로 어린이들 교육을 위해 색동회와 한화그룹의 방위산업체에서도 홍보 및 국민 교육용으로 구매해 분배할 것을 검토중이다. 백선엽기념재단의 2025년 달력은 편협된 측면에서 친일논란에 소용돌이에 잘못 전해진 6‧25남침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잊혀져가는 6‧25남침전쟁의 동족상잔 비극이 이 나라에서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와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2-10
  • [김희철의 CrisisM] 백선엽장군기념재단, 2025년 달력으로 6‧25남침전쟁을 상기시켜(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군의 불법 기습남침이 있자, 그해 4월22일 취임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문산축선에서 3일간 방어하다가 철수하여 수원, 충북 음성, 경북 함창 일대를 거치며 축차적인 지연전을 실시했고, 결국에는 낙동강 최후 방어선인 다부동지역까지 이동했다. 8월부터 치루어진 한반도 방어의 마지막 보루였던 다부동지구 전투에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의 공격을 저지 격멸하여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38도선을 넘어 10월19일 대동강교 동측에 최초 진입하며 평양 탈환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이미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불법 진입한 중공군이 10월26일 운산전투에서 유엔군과 최초 교전한 이후 인해전술에 밀려 남북통일할 수 있었던 북진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듬해 1월까지 수원 ~원주~삼척에 이르는 선까지 축차적으로 철수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중공군 9병단 7개 사단 12만명의 포위섬멸전에 맞서 미 10군단 1해병사단 약 3만명이 1만7천여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치룬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4만8천여명을 사살하며 포위망을 돌파했고, 중공군의 공격을 지연시킨 덕분에 약 20만명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피난할 수 있는 흥남철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는 사회적 환경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남침전쟁은 많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이런 이유중에 하나는 문재인 정부시절에 국민 안보교육이 위축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쟁사 교육이 선택 과목으로 전환되어 졸업생 30% 정도만이 6‧25남침전쟁사 교육을 받는 상태까지 되자 당시의 신원식(현 국가안보실장) 등 여러 국회의원들과 많은 안보전문가들의 맹렬한 비판과 질타가 이어졌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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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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