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군사령부 전투지휘검열시 사단에서 2개 대대 전인원을 대상으로 개인화기 사격측정을 한다. 이때 1개 대대는 사단에서 추천하고 1개 대대는 검열단이 사단에 도착해서 무작위로 선정하여 평가하는 측정계획이었다.
따라서 사단은 감찰참모가 검열수검 준비단장이 되어 6월 전투지휘검열을 대비하여 4월부터 대대별 사격측정을 시작했다.
대대원들이 사격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실거리 사격장을 예약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신교대에 정규 규격의 표준사격장이 있었고, 다른 곳은 비표준 간이 사격장이라 실제 사격 측정하는 현장에서 훈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나 각 대대가 서로 먼저 연습하려고 신청하여 쉽게 예약할 수 없었다.
결국 대대 예비군 훈련장에 있는 폐기된 실거리 사격장을 보수하여 연습을 시작했다. 사단에서 전투지휘검열 추천 대대 선발을 위한 사단 1차 사격 측정이 4월말에 있었는데 대대는 타 부대보다도 비교적 저조한 성적이었다.
대대로 복귀하여 원인을 분석해보니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들에 대한 별도 교육이 필요했다. 그들은 250미터 거리에 있는 E표적은 한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250미터 거리에 1.2m x 2.4m 크기의 합판 전지에 E표적을 붙여놓고 사격 저조자들의 사격자세와 클릭을 교정하면서 개인별 훈련을 시켰다.
이를 통해 일부의 실력은 향상됐지만 소수의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는 제자리 걸음으로 향상될 기미가 없었다. 또한 교탄 부족도 문제가 되었다. 할 수 없이 사격후에 탄피를 회수하여 인접 사단 동기생 대대를 찾아가 탄피와 실탄을 교환하여 대대에 할당된 교탄보다 열배 정도의 실탄 수만발을 소모하며 사격연습을 지속했다.
군사령부 전투지휘검열이 6월에 시행됨을 고려하여 5월 중순이 되자 사단에서는 최종 선발측정을 했다. 필자는 사실 사단 예비측정에서 1등 하기보다는 꼴찌를 피하며 2~3등이라도 하여 그동안 지속적으로 선발된 종합전투력 우수부대조차도 요란한 빈 깡통 소문이었다는 창피만이라도 면하길 바랬다.
측정 당일 인접 타연대 대대장은 전 대대원들에게 우황청심환을 먹이며 사격측정에 임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었다. 측정 후에 대대로 복귀하여 전달받은 것은 결국 바랬던 것처럼 대대는 간신히 2등을 하였고, 사단의 표준사격장과 원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대대 전원에게 청심환까지 먹이며 준비했던 타연대 대대가 1등을 했다.
대대 복귀후에 이런 측정 결과를 연락받은 필자는 도저히 향상시킬 수 없는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들 때문에 그나마 꼴찌가 아닌 2등을 하여 지난 2년 동안 연속해서 반기 종합전투력측정 우수부대로 선정된 명예를 지키며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소문이 역시 사실이 이라는 창피한 결과만이라도 면한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칼럼니스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2군사령관으로도 역시 전남 영광 출신인 조영길 대장(갑종172기)이 그해 3월에 부임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듯이 사단장급 이상의 상부 진영이 새롭게 편성되었다.
하지만 대대는 새해가 시작되면서 1월 동계혹한기훈련, 2월 비행장방어 전술토의와 예비군교장 사열, 3월에는 대대전술훈련과 사단 전투력측정, 4월에 들어서자 지상협동훈련 그리고 대대전술훈련 평가(대대ATT) 등으로 매년 지속된 연중 훈련, 시범 및 행사가 쉴 틈 없이 전개되었다.
금강경에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라는 명언처럼 “마땅히 어디에 머무르지 말라 즉 텅 빈 마음으로 집착없이 작용하라”고 말했지만 대대장 임기를 마무리하는 해가 되자 그동안 쌓아놓은 실적의 명성과 명예 등이 아까워 더욱 분발했다.
그와중에도 지역 예비군중대의 상근예비역 사고는 끊이지 않아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소문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고처리는 박우희 주임원사가 전담하도록 하면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처럼 대대장 임기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상단의 그림같이 악과 깡으로 버티며 미친 듯이 달렸다.
한편, 필자를 아껴주었던 조영호 사단장도 그해 가을에 임기를 마치는데 사단장 근무 성과를 평가하는 군사령부 전투지휘검열이 6월에 계획되어 있다.
그런데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사단의 대대별 전투력측정 결과 2년 동안 연속해서 반기 종합전투력측정 우수부대로 선정된 청원대대의 활약을 사단에서는 전투지휘검열시에도 엄청나게 기대한다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풍문이 들려왔다. (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사단 사격대표 최종 선발측정에 따른 창피한 결과만이라도 면한 것에 안심하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갑자기 대대장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며 필자를 더욱 당황하게 만드는 소식을 들었다.
검열수검 준비단장인 사단 감찰참모 권재모 중령의 전화였다. 그는 측정 결과를 놓고 참모들과 토의한 끝에 비록 2등했으나 그동안의 종합전투력측정에서 4회 연속 우수부대로 선정되도록 육성한 필자의 청원대대를 사단이 추천하는 전투지휘검열 사격측정 대표대대로 선발했으니 잘 준비하라는 당부였다.
사실, 필자는 대표로 선발되었다는 사단 감찰참모의 전달에 기쁘기커녕 눈앞이 깜깜해졌다. 사단 대표선발 측정 준비 과정에서 아무리 교육훈련을 시켜도 사격 결과가 늘 제자리였던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들 때문에 대대가 아니라 사단을 대표하는 평가에서도 저조한 성적으로 사단 전체를 깍아 내리면 안된다는 걱정과 고민이 앞섰다.
전화를 받고 한참 고심하고 있을 때, 박우희 대대주임원사가 대대장실로 들어와 필자의 표정을 보면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박 원사는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 중에 3명은 보직을 바꾸어 측정에 임하자는 제안을 했다. 취사병, 운전병까지 대대전원이 사격을 하는데 측정 제외자가 바로 소총중대별로 1명씩 편성된 M60 기관총 사수 3명이었다. 다행히도 기관총 사수들의 소총 사격 실력은 고질적인 저조자들보다 월등하게 좋았다.
필자는 바로 짚차를 타고 사단 부관부로 달려가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들 중에 3명의 보직을 M60 기관총 사수로 변경시키도록 협조했다.
전투지휘검열이 한달도 남지 않았지만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 3명의 보직을 조정하였고, 인접 사단 동기생 대대에서 탄피와 교환해 온 충분한 실탄을 보유한 채, 사단의 표준 실거리 사격장을 독식하며 사격 훈련을 하며 점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선승구전(先勝求戰)이었다. 전투지휘검열 2일차인 6월9일 화요일은 날씨도 좋았다. 군사령부 검열관들이 사선에서 감독하며 시행된 대대의 사격 결과에 필자도 놀랐다. 그동안 연습할 때보다도 더 좋은 주간 95%, 방독면 92.2%, 야간사격 100%의 측정 결과는 타 사단의 보병대대는 물론 정예부대인 기동대대보다도 더 월등한 성적이었다.
실제 작전훈련(FTX), 행정 및 예비군 훈련 등의 검열 수검은 관심이 없었다. 검열 결과가 타 사단과 숫자로 명확하게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사격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검열이 종료되고 강평도 끝난 후에 대대로 복귀하는 필자를 조영호 사단장은 다시 불러 사단장실에서 어깨를 두드려주며 특별하게 격려금까지 주었고, 군사령관 표창도 받았다. 역시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우문현답처럼 검열현장의 사격결과로 필자의 대대는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소문과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군사령부 전투지휘검열시 사단에서 2개 대대 전인원을 대상으로 개인화기 사격측정을 한다. 이때 1개 대대는 사단에서 추천하고 1개 대대는 검열단이 사단에 도착해서 무작위로 선정하여 평가하는 측정계획이었다.
따라서 사단은 감찰참모가 검열수검 준비단장이 되어 6월 전투지휘검열을 대비하여 4월부터 대대별 사격측정을 시작했다.
대대원들이 사격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실거리 사격장을 예약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신교대에 정규 규격의 표준사격장이 있었고, 다른 곳은 비표준 간이 사격장이라 실제 사격 측정하는 현장에서 훈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나 각 대대가 서로 먼저 연습하려고 신청하여 쉽게 예약할 수 없었다.
결국 대대 예비군 훈련장에 있는 폐기된 실거리 사격장을 보수하여 연습을 시작했다. 사단에서 전투지휘검열 추천 대대 선발을 위한 사단 1차 사격 측정이 4월말에 있었는데 대대는 타 부대보다도 비교적 저조한 성적이었다.
대대로 복귀하여 원인을 분석해보니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들에 대한 별도 교육이 필요했다. 그들은 250미터 거리에 있는 E표적은 한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250미터 거리에 1.2m x 2.4m 크기의 합판 전지에 E표적을 붙여놓고 사격 저조자들의 사격자세와 클릭을 교정하면서 개인별 훈련을 시켰다.
이를 통해 일부의 실력은 향상됐지만 소수의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는 제자리 걸음으로 향상될 기미가 없었다. 또한 교탄 부족도 문제가 되었다. 할 수 없이 사격후에 탄피를 회수하여 인접 사단 동기생 대대를 찾아가 탄피와 실탄을 교환하여 대대에 할당된 교탄보다 열배 정도의 실탄 수만발을 소모하며 사격연습을 지속했다.
군사령부 전투지휘검열이 6월에 시행됨을 고려하여 5월 중순이 되자 사단에서는 최종 선발측정을 했다. 필자는 사실 사단 예비측정에서 1등 하기보다는 꼴찌를 피하며 2~3등이라도 하여 그동안 지속적으로 선발된 종합전투력 우수부대조차도 요란한 빈 깡통 소문이었다는 창피만이라도 면하길 바랬다.
측정 당일 인접 타연대 대대장은 전 대대원들에게 우황청심환을 먹이며 사격측정에 임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었다. 측정 후에 대대로 복귀하여 전달받은 것은 결국 바랬던 것처럼 대대는 간신히 2등을 하였고, 사단의 표준사격장과 원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대대 전원에게 청심환까지 먹이며 준비했던 타연대 대대가 1등을 했다.
대대 복귀후에 이런 측정 결과를 연락받은 필자는 도저히 향상시킬 수 없는 고질적인 사격 저조자들 때문에 그나마 꼴찌가 아닌 2등을 하여 지난 2년 동안 연속해서 반기 종합전투력측정 우수부대로 선정된 명예를 지키며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소문이 역시 사실이 이라는 창피한 결과만이라도 면한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칼럼니스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2군사령관으로도 역시 전남 영광 출신인 조영길 대장(갑종172기)이 그해 3월에 부임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듯이 사단장급 이상의 상부 진영이 새롭게 편성되었다.
하지만 대대는 새해가 시작되면서 1월 동계혹한기훈련, 2월 비행장방어 전술토의와 예비군교장 사열, 3월에는 대대전술훈련과 사단 전투력측정, 4월에 들어서자 지상협동훈련 그리고 대대전술훈련 평가(대대ATT) 등으로 매년 지속된 연중 훈련, 시범 및 행사가 쉴 틈 없이 전개되었다.
금강경에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라는 명언처럼 “마땅히 어디에 머무르지 말라 즉 텅 빈 마음으로 집착없이 작용하라”고 말했지만 대대장 임기를 마무리하는 해가 되자 그동안 쌓아놓은 실적의 명성과 명예 등이 아까워 더욱 분발했다.
그와중에도 지역 예비군중대의 상근예비역 사고는 끊이지 않아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소문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고처리는 박우희 주임원사가 전담하도록 하면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처럼 대대장 임기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상단의 그림같이 악과 깡으로 버티며 미친 듯이 달렸다.
한편, 필자를 아껴주었던 조영호 사단장도 그해 가을에 임기를 마치는데 사단장 근무 성과를 평가하는 군사령부 전투지휘검열이 6월에 계획되어 있다.
그런데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사단의 대대별 전투력측정 결과 2년 동안 연속해서 반기 종합전투력측정 우수부대로 선정된 청원대대의 활약을 사단에서는 전투지휘검열시에도 엄청나게 기대한다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풍문이 들려왔다. (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필자가 무적태풍부대에서 사단 작전참모부 작전보좌관 임무를 수행할 때 DJ(김대중)는 당시 평화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자격으로 사단사령부를 방문했었다. 그는 69세로 역경의 정치활동 속에서 모진 고문을 받아 다친 다리를 절면서 그 유명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75)] ‘부대 방문한 대통령 후보들의 진면목 ⑥현대 정치판를 이끌던 ‘양김시대’ 갈등 절정기에 부대를 방문한 DJ와 YS’참조)
DJ는 그동안의 세월에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마치 고향마을 어르신이 손자들을 만나기 위해 부대를 방문한 것 같은 온화한 표정이었다. 회의실에서의 업무보고를 받던 그는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서인 건강함을 과시하듯 여유를 보여주며 특유의 달변을 쏟아냈다.
그때 참석한 부대장들과 참모들은 전라도 사투리가 약간 가미된 특유 억양의 언변에 모두 빨려들어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터라 급하게 마무리하고 부대를 떠났다. 그 DJ가 필자의 대대장 근무 3년차로 접어들던 그해 2월25일 여의도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는 전쟁의 본질과 성격을 규명하는 핵심 주장으로 널리 인용되며 그는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수행되는 국가정치에 지나지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계역사를 돌이켜 보면 군(軍)이 다른 수단으로 수행되는 국가정치인 전쟁이 아닌, 정치의 시녀 역할을 한 사례가 많이 있다. 이는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이 군의 인사에 적극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육군발전목표(APP)와 도로견부위주의 종심방어전투, 통합메트리스 작성 등을 통해 최초로 독자적인 한국형 작전개념으로 발전시켰던 고(故) 윤용남(육사19기) 대장과 임무형 지휘와 군심(軍心)의 결집을 강조해 바람직한 군인상의 기준을 제시했던 도일규(육사20기) 대장이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었다.
DJ(김대중)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약 한달정도 지난 4월, 군사전략가로 명망이 높았던 호남출신 김동신(육사21기) 대장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이것은 대대장 임기 마지막 10개월 남았던 필자에게까지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지만 추후 장군들의 인사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을지연습이 끝나자 진급 시즌이 됐다. 연대 작전과장 김원기(학군장교)를 포함해 사단 참모부의 보좌관인 정석모와 문점팔 등이 중령으로 진급했다. 그동안 대대에서 각종 시범과 훈련에 대비해 제일 고생이 많았던 대대 동원장교 장석우 대위가 차기 진급을 위해 연대 작전장교로 영전했다.
이는 대대가 그동안 예비군, 작전, 전투근무지원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던 것은 탁월한 능력과 훌륭한 인품의 장석우 대위의 공이 컸다고 연대장에게 추천한 것이 주효했다. 영전하는 그에게 비록 1차 진급은 놓쳤지만 좋은 보직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다음해에는 꼭 진급할 것이라는 확신의 덕담을 보내며 격려했다.
매년 대대와 15개 지역 예비군중대 및 8개 직장중대는 사단에서 예비군 업무 감사를 받는다. 이 결과로 해당 대대와 예비군 중대장들을 평가하고 보직도 새롭게 조정되어 매우 중요한 감사이다.
그런데 장석우 대위가 전출간 뒤에 치뤄진 감사 결과가 대대를 삐꺽거리게 만들고 있다. 감사평이 “말로만 듣던 청원대대가 아니다”라는 혹평으로 대대장 후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남은 대대장 근무 10개월의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욱 분발해야 된다. 너무도 치욕스러웠지만 어쩌면 신께서 자만심에 빠질 수 있었던 필자에게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책찍을 가하는 것 같았다.
군에서 중요 보직 인사시기인 10월이 다가오자 필자의 작은 노력과 탁월한 본인의 능력으로 사단 동원참모로 보직되어 능력을 인정받은 뒤에 사단 작전참모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던 한동주 중령(삼사14기, 예비역 중장)이 갑자기 삼사관학교 교무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21)] ‘추락에서의 회생을 격려하는 전우애로 업무수행에 탄력받아(하)’ 참조)
바로 그 뒤를 이어 청주 대대장을 마치고 사단 정보참모로 보직된 윤경식 중령(학군19기)이 작전참모로 취임했다. 항간에 사단장이 학군장교라 배려가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번 인사로 지(智)장, 덕(德)장, 용(勇)장보다도 더 출중한 장군은 운장(運將)이었다는 말이 증명됐고, 급하게 떠나는 한 중령만 아쉬웠다.
그나마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것은 이병우 연대장이 대대장들과 식사를 할 때에 먼저 돈을 지불하고, 본인에게도 선물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강조하며, 실제로 추석에 대대장들이 보낸 선물을 모두 돌려보내는 등으로 타인들과 비교되는 청백리(淸白吏)적인 모습에서 존경심이 스며들었다.
한편 육사 동기생들은 벌써 대대장을 끝낸 뒤에 사단 참모 보직도 마치고 있었다. 인접 특전여단 작전참모로 근무한 김현수 동기생이 이미 합참 주요 직위로 보직을 받아 이동했다.
필자는 그들보다 22개월 늦게 시작된 대대장 근무로 앞서가는 동기생들에게 박수만 보낼 수밖에 없었고, 단지 교통사고 후유증 재활치료 기간으로 지연되어 동기들과 나란히 달릴 수 없음이 아쉬웠다.(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필자가 무적태풍부대에서 사단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할 때 작전참모였던 강수명 장군(육사31기)은 “권위는 본인이 찾는 것이 아니라 부하들이 상급자를 잘 예우하고 주변에도 분위기를 조성하여 만드는 것이 바로 권위이다”라는 가르침을 준 적이 있었다.
을지 훈련간 군경관이 부여된 상황에 대해 통합작전을 잘하도록 조치하는 것에만 집중해서 준비했는데, 미처 사단장에 대한 의전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다. 사단장은 군청에서 군에 대한 예우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하며 그동안 필자에게는 칭찬만 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호되게 꾸짖었다.
다음부터는 유념해서 군의 명예와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잘 행동하라는 따끔한 충고를 남기고 사단장은 다음 지도방문 장소로 출발했다.
짚차로 출발하는 사단장에게 환송 경례를 한 뒤에 필자는 허탈한 심정에 공황이 발생해 멍하니 군청 정문만 바라보았다. 사단장이 취임한 이후 얼마나 노력해서 인정을 받았었는데... 그동안 쌓아놓은 공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무적태풍부대에서 근무할 때 작전참모였던 강수명 장군의 ‘상급자를 잘 예우하고 주변에도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바로 권위!’라는 교훈이 머리를 때렸다. 단지 필자와 군수와의 잘 협조하여 민관군통합작전을 잘 수행하는 것에만 전념하다보니 사단장의 의전을 포함해 군 전체에 대한 명예와 권위를 소홀히 했다는 자책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 수렁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했고, ‘우문현답’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은 역시 현장에 있었다. 다음 날 계획된 오창면사무소에서 주민 300명이 참석하는 ‘민관군통합 화생방 방호훈련’ 그리고 이틀 뒤에는 ‘비행장 방어훈련’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것이 역전의 기회였다.
이 훈련들을 더욱 전념해서 준비했고, 연 3일간 계속 사단장을 직접 맞이하며 지역 주민들의 적극 참여와 공군부대원들의 협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군청 종합상황실에서의 실책을 간신히 약간이나마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단장의 기습적인 꾸지람으로 공황상태에 빠졌던 상황은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소문과 함께 중첩되는 잔영으로 계속 남았다.(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사람은 한 평생 살면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는 것이 당연한 인생길이다. 살다보면 종종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받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상근예비역의 지속된 사고발생으로 그동안 쌓아온 노력의 공이 한순간 무너지는 심정의 좌절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군단전투지휘검열을 수검하면서 최고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 보람과 성취감을 만끽하는 분위기로 다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곧 사단장에게 혹독한 꾸지람을 직접 듣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또 발생했다.
매년 8월이 되면 을지/포커스렌즈 실제훈련을 한다. 사단 참모부는 사령부와 도청 지하 벙커에 위치한 전술지휘부에서 주로 훈련을 하지만 기간 중에 짬을 내어 사단장은 각 시청과 군청도 지도 방문한다.
이번에도 역시 사단장은 필자의 대대를 방문하도록 시간 계획에 포함되었고, 필자는 변종석 청원군수에게 사단장이 군청 훈련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다고 알려주며 민관군 종합상황실과 각 기능별 상황실의 준비 상태를 점검했다.
군수와 함께 군청 현관에서 도열하며 사단장을 영접하여 군청현관 입구에 전시된 민관군 통합작전용 비품들을 설명하고 바로 군청 건물 지하에 마련된 종합상황실로 내려갔다.
그런데 훈련 상황을 보고 받는 사단장의 얼굴에 영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훈련에 참석한 군청 직원 및 군과 경찰 등 관계관들에게 일장 훈시를 한 사단장은 군수실에서 차를 하자는 군수의 건의도 묵살한 채 필자를 조용한 사무실로 불렀다.
단 둘만 있는 사무실에서 사단장은 다짜고짜 “김희철, 훈련 준비를 왜 고따위로 해..!”라고 화를 내며 질책했다. 필자는 예상하지 못한 꾸지람에 어안이 벙벙하게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이유는 종합상황실 좌석 배치에서 어떻게 중앙에 군수가 앉고 사단장을 옆에 안도록 의전 조치했냐는 지적 내용 때문이었다.(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필자의 대대 책임지역 15개 면사무소에 편성된 예비군 중대의 상근예비역들은 주간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퇴근한다. 그런데 상근예비역의 사고는 주로 퇴근 후에 발생하지만 그래도 병력을 관리하는 지휘관들에게는 지휘 책임을 묻는다.
사단장에게 사고 분석 및 대책을 직접 보고하도록 한 것은 해당 부대 지휘관에게 지휘책임을 물어 벌을 주는 것과 동시에 타부대에게도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필자에게 사고 및 대책을 보고하면서 울먹인 해당 예비군 중대장처럼 필자도 연대장이 배석한 상태에서 사단장에게 직접 보고할 때에는 창피했고 그동안 쌓아온 노력의 공이 한순간 무너지는 심정을 느꼈다.
필자의 보고를 받은 사단장은 사고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병력를 철저하게 관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곧 시행될 군단전투지휘검열 수검시에 군단장이 강조한 것처럼 검열단장인 육군본부 감찰감이 대대를 방문하니 준비를 잘하라는 당부를 추가하였다.
사실 그동안 대대원들을 힘들게 만들었던 각종 시범 준비를 통해 이미 대대는 전투지휘검열 수검 준비가 되어있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우문현답’처럼 군단전투지휘검열 수검의 우려를 현장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군단장, 사단장이 그렇게 관심을 가졌던 육군본부 검열단장은 필자가 수방사 작전장교 시절에 예하 사단 연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장군으로 진급한 박훤재 육군소장으로 당시부터 이미 알고 있던 상태였다.
대대를 방문한 검열단장은 필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에 7월 중순의 하절기 30도를 훨씬 넘기는 찜통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비군 교장을 모두 둘러보며 현장을 확인했고, 이후 대대장실에서 준비한 보고를 모두 청취했다.
그는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육본 검열단장이 타지역으로 출발하자 배석한 이병우 연대장과 사단 감찰·동원참모는 물론 전화로 결과 보고를 받은 사단장과 작전참모도 모두 ‘OK’ 였다.
계속 발생했던 상근예비역 사고로 보완 대책을 사단장에게 보고할 당시와 방문객들이 호되게 지적을 하며 “우수부대라는 소문만 요란한 빈 깡통이 아니냐...?”라는 혹평을 들을 때에는 부끄럽고 창피했었다.
하지만 이번 군단전투지휘검열 수검을 통해 그동안 쌓아온 노력의 공이 한순간 무너지는 심정의 좌절감을 약간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육군본부 검열단장인 감찰감의 대대 방문으로 그해 후반기에 들면서 최고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며 보람과 성취감을 만끽하는 분위기로 다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역시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었다. (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당나라 태종에게는 중신들과 주고받은 리더십에 관한 유명한 문답이 있다. 바로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며 “창업에는 천운이 따라야 하지만 수성에는 본인의 역량과 성격이 문제가 되며 운이나 재수가 차지하는 요소는 적다”라는 언급이다.
교통사고 후유증 재활치료로 동기들보다 2년 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해 임기의 반이 지나며 내리막 길을 달리고 있지만, 취임 첫해에 이룩한 선봉대대는 대대원들의 충성심과 열성 덕분이었고 또한 운과 재수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당태종의 말처럼 대대의 수준을 최고 상태로 지속 유지하는 수성은 너무도 힘들었다. 대대장 취임 후 2년 동안에 사단의 전·후반기 평가에서 지속적으로 우수부대로 선정되자 상급부대 검열을 포함해 대대를 찾는 방문객이 유독 많았다.
하지만 가끔씩은 상급부대의 지도방문과 방문객에게서 호되게 지적을 받아 “우수부대라는 소문만 요란한 빈 깡통이 아니냐...?”라는 혹평을 받을 때도 있었다.
심지어 신임 연대장이 대대를 한번씩 방문하면 잘못을 지적받은 사항들이 열가지가 넘을 정도로 많아 그동안의 지속된 시범과 추가 업무로 힘들었던 대대원들을 더 고생하게 만드는 일들도 종종 생겨났다. 역시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느껴졌다.
또한 각 예비군 중대에 배치된 상근예비역 중에 일부는 폭행(살인미수), 교통사고 등을 평균적으로 한달에 한번씩을 저질러 당혹하게 만들었다. 매월 잦은 사고가 발생하자 심지어는 병원관리를 강조했던 사단장은 연대장이 배석한 상태에서 ‘사고 분석 및 대책’을 사고 발생 대대장이 직접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사고 분석 및 대책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해당 예비군 중대장이 필자에게 사전 보고를 했다. 필자는 부대원 관리를 잘못한 그를 질책하고 혼내줘야 했지만, 희끗희끗한 머리의 나이든 군 선배면서도 창피하고 부끄러워하며 울먹이는 모습에 오히려 그를 달래주어야 했다. (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급양관리/환경보존’ 시범을 주관한 사단장이나 배석한 연대장이 흐뭇한 미소를 띄우게 만들며 얻은 기대 이상의 성과는 고생한 대대원들은 밤잠을 설치면서 준비한 보람과 성취감을 만끽했다. 이런 성공은 준비를 위한 그동안의 사전 고생을 날려버리며 사기가 고양되는 마력이 있었다.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공용화기 사격 측정과 간부시험에서도 성공적인 시범이 기폭제가 되어 타부대와 명확히 비교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러한 평가 결과를 모아 6월 말에 시행된 전반기 지휘관회의에서 또 종합전투력 측정 우수부대로 선정되었다.
이로써 대대장 취임 후에 시행된 2년 동안 4회에 걸친 사단의 전·후반기 평가에서 모두 우수부대로 장식하며 위의 사진과 같이 사단 소연병장에 비치된 ‘종합전투력 측정 우수’ 부대기에 청원대대의 깃발이 게양되어 ‘96년 선봉부대와 함께 동시에 대대기 2개가 사단 연병장에서 계속 휘날리는 영광을 누렸다.
군부대는 후라이판에서 튀는 깨나 콩같이 바쁘게 생활하고, 이것은 흐르는 물처럼 끝임없이 계속된다. 전반기 지휘관회의가 끝나자 연대장 이취임식이 있었고 후임으로 이병우 대령(육사32기)이 부임했다. 지휘관이 교체되면 또 처음으로 돌아가 초도 업무보고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하지만 기존 부대원들은 새로운 지휘관을 모시면서 새롭게 각오를 다질 틈도 없이 흘러오는 물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계속되는 시범과 UFL을지연습, 군단전투지휘검열, 육군발전목표(APP) 추진 평가회의, 그리고 연중 지속되는 예비군 훈련 등을 위해 쉴 틈 없이 부여된 임무를 수행한다.
게다가 군단장이 군단에 전입오는 연대장 및 참모요원들은 반드시 청원대대를 견학하고, 군단전투지휘검열 수검을 앞두고는 검열단장인 육본 감찰감도 청원대대로 안내하도록 꼭 집어서 지시했고, 이처럼 유명세를 감당하는 추가적인 임무 때문에 필자를 포함한 전 대대원들의 피곤한 보람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필자의 대대장 보직도 절반을 넘기며 후반기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상급 보급부대에서 추진되는 주부식을 정확하게 수령하기 위해 준비된 저울과 확인용 받침대, 이를 보관하는 주부식 창고에는 구서대책이 강구된 상태에서 혹서기간에도 손상되지 않도록 통풍을 유지한 가운데 정리정돈하는 요령 그리고 취사장에서 하계 위생관리가 철저히 되어 식중독이 발생을 예방하는 조리 방법 등을 제시했다.
추가로 취사를 위한 유류 보관과 바닥에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정확하게 주유한 상태에서 취사가 이루어져 음식에서 기름냄새가 전혀 없이 정결하도록 준비했다. 이를 위해 유류창고에서 취사도구까지의 연결부위에 허점이 없도록 덮개 등을 보완했다.
동시에 취사장에서 유출되는 오폐수가 하수구로 연결되어 부대를 벗어나기 전에 부레옥잠으로 한번 더 정화시키는 정화조까지 만들어 놓아 참관자들은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도 제공했다.
그런데 시범의 절정은 혹서기에 상하기 쉬운 식자재 조리 방법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것에서 이루어졌다.
현장 견학 전에 군사령부 ‘급양관리향상 세미나’에서 제시된 사항과 상급부대 군수지침으로 하달된 하계에 손상되기 쉬운 식자재에 대한 조리요령을 이미 강당에서 설명했었다. 하지만 조리에 소홀하기 쉬운 생선에 대해서는 직접 행동시범이 필요했다.
그래서 취사장 앞 견학용 텐트에 설치한 조리대에서 시범을 책임진 필자가 앞치마를 한 채 취사용 식칼을 들고 소홀하기 쉬운 생선의 내장과 비닐을 직접 제거하며 착안사항을 설명하는 원맨쇼를 보여주었다. 이때 시범을 담당한 대대장의 행동시범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단장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특히 필자의 행동시범과 현장 견학을 마치고 추가 토의 및 의견 수렴을 위해 대대장급 이상 간부들이 사병식당으로 들어섰을 때 일부 참석자들은 “아니, 노후된 막사안에 시내의 민간 이테리식 카페같이 분위기 좋은 식당을 어떻게 만들었어?”라며 탄성을 뱉어냈다.
참석자들에게 이번에 제시된 내용같이 세심하게 준비하여 안전한 혹서기를 보내자고 강조한 군단 군수참모의 당부와 만족스런 격찬을 끝으로 ‘급양관리/환경보존’ 시범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시범을 끝까지 주관한 조영호 사단장(예비역 중장, 9군단장, 군인공제회 이사장 역임)은 수고했다는 격려와 함께 전속부관에게서 전해받은 격려금 봉투를 열어보며 “부관, 이것 말고 더 많이 넣은 봉투로 바꿔...”라며 계획된 액수보다 더많은 격려금을 필자에게 건네주자 이를 지켜보던 참석자들은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급하게 준비했던 시범을 일주일 앞두고 상급부대인 군단과 인접 사단 군수참모 및 실무자들도 참석하는 것으로 추가되어 사단 시범이 아닌 군단급 시범으로 확대되었고, 제목도 ‘급양관리’에서 ‘급양관리/환경보존’ 시범으로 추가 변경되었다.
미리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새롭게 착안해서 부레옥잠 정화조를 제작한 것이 다행이도 추가된 환경보존시범에 주효했다.
또한 사단 시범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책임지역의 일부 기관장들이 대대가 주관하는 급양시범에 활용하라며 롤휴지, 키친타올, 네프킨, 세제 등을 보내주어 카페식 식당에 비치하자 마치 시내 이테리식 카페에 온 것 같은 고급스런 분위기도 연출할 수 있었다.
시범은 예비군 훈련시 최대 200명을 대상으로 정신교육 등을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강당에서 유인물로 설명하며 토론한 후에 부대 막사의 식당과 취사장 등으로 이동해서 견학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원래 계획은 사단의 시범이었기 때문에 사단장이 주관했지만 강당에 사단 독립 중대급 이상 지휘관, 참모 및 실무자와 추가로 군단과 인접 사단 군수참모 등 150여명이 자리를 메웠다.
창원의 39사단에서 개최된 군사령부 ‘급양관리향상 세미나’의 자료와 사단 군수참모가 검토해 준 덕택에 유인물 설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토의도 이미 상급부대 지침에 거론된 내용이었고, 애매한 사항은 군단 군수참모가 명확히 설명하여 참석자들은 더 이상의 의문점 없이 시범에 제시된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도록 결론을 맺었다.
그러나 사실, 진짜 시범은 설명 및 토의 후에 이루어진 현장 견학이었다. 시범에 참석한 군수관련 지휘관, 참모 및 실무자들이 유인물로 설명한 지침을 주부식·유류창고와 취사장 및 식당에 어떻게 적용하여 제시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동안 대대원들이 밤잠을 설치며 준비한 시범결과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었다. (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레옥잠은 백합목 물옥잠과에 속하는 관속식물로 북아메리카, 일본, 중국 등지에 귀화식물로 정착하여 분포한다. 열대 아메리카 원산이며 연못이나 수조에 관상용 또는 수질정화용으로 식재하는 부수성 여러해살이풀로 수생식물이다.
물옥잠에 비해 잎자루는 길이 10~20cm로 중앙이 부레와 같이 되어 물 위에 뜨는 부엽성이다. 화피의 밑부분이 통 모양으로 중금속 제거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인공습지, 인공섬 등을 조성하는 데 이용한다. 관상용, 수질정화용으로 기르며, 가축 사료로 쓰기도 한다. 배옥잠, 부대물옥잠이라고도 한다.
군사령부 ‘급양관리향상 세미나’에 참석 이후, 사단 공병, 보수, 정비대 요원까지 지원되어 새벽 5시에 기상해 취침에 들어갈 때까지 부레옥잠 정화조를 비롯하여 카페식 인테리어 식당과 취사장, 급식창고, 부대 울타리 신축 등을 정비하고 보강했다.
그동안 전임 대대장들이 몇 번 교체되도록 개선되지 않았던 10년 묵은 때를 모두 싹 벗겨낼 수 있었고 비록 노후된 시설이지만 대대의 면모를 깨끗하게 정비된 모습으로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번 사단 급양관리 시범에 추가로 상급부대인 군단과 인접 사단 군수참모 및 실무자들도 참석해 사단 시범이 아닌 군단 시범으로 확대되었다고 연락도 받아 시범을 성공적으로 치루어야 할 부담이 더욱 과중되었다. (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주둔지 울타리는 블록담으로 설치되었는데 큰 대로변의 울타리는 블록 담장위에 원형철조망까지 설치되어 형태가 제대로 갖춰진 모습이었지만, 예비군 교장이 있는 산쪽의 노후된 울타리는 너무 오래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전임 대대장이 담벽에 2미터 단위로 나무로 버팀목을 대어 울타리 전도를 간신히 방지한 상태로 지탱했었고, 이미 상급부대에 울타리 담벽 보강공사를 건의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방치된 채 해를 계속 넘기고 있었다.
어느날 장마 폭우가 쏟아져 결국에는 산쪽 울타리 담벽 일부가 무너졌다. 마침 충청도 전체가 장마로 피해를 많이 입은 상태가 되어 군부대 피해도 파악했는데 이를 기회로 삼았다.
주임원사와 상이하여 산쪽 노후된 울타리 담벽에 받쳐놓았던 나무들을 제거하자 나머지 울타리도 모두 전도되었고, 폭우로 피해가 발생했다고 상급부대에 보고했다.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상급부대 울타리 보강을 역대 대대장들이 수차례 건의했지만 예산반영이 안되었는데 장마폭우로 붕괴됐다고 보고하자 행정관서 및 군부대에서 울타리 신축 예산이 바로 책정되어 산쪽 울타리 담벽을 깨끗하게 보강할 수 있었다.
이로써 수명의 전임 대대장들에 걸쳐 10여년동안 개선되지 않았던 숙원사업이 달성되어 병사들의 그동안의 장마폭우 때마다 치루던 고생을 덜 수 있었고, 급양관리시범을 위한 대대 환경개선에도 도움이 되었다.
한편 노후된 부대 환경 개선을 위해 나무껍질과 적벽돌을 활용해 카페식 분위기를 조성한 식당을 확인하며 극찬했던 신임사단장 업무보고 때문에 아마도 필자 부대가 급양관리시범을 맡게 된 결정적이 사유가 되었고,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6)] “신임사단장 업무보고, ‘때의 흐름을 잘 알아서 타야’ 실천” 참조) 추가로 취사장에서 배출되는 오폐수 처리를 위해 브레옥잠 정화조도 만들었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군대에서 체육대회는 친선 게임이 아니고 전쟁이다. 사단 창설기념일 기념으로 친목 도모를 위해 개최한 연대별 체육대회에서 연대가 17년 만에 쟁취한 종합우승은 연대 전체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그동안 연대참모 및 대대장들의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모두 다 날아가며 고대했던 쾌승의 상승 분위기가 연대 전체를 감싸고 돌아 자축할 일이었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다’라는 속담처럼 연대 축제 분위기와는 아랑곳없이 필자의 대대는 여름 혹서기를 대비한 사단 급양관리시범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연대별로 치열했던 사단 체육대회에 이어 공용화기 집체교육 후에 바로 전반기 우수부대 선정을 위한 공용화기 사격 측정을 성공적으로 우수하게 받아 전통있는 대대 박격포반의 탁월한 능력을 증명했다.
그리고 필자는 사단 사격측정 결과의 기쁨을 느낄 틈도 없이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여 창원의 39사단에서 개최된 군사령부 ‘급양관리향상 세미나’에 참석했다. 왜냐면 3주 뒤인 6월 중순에 개최할 사단 급양관리시범을 준비하기 때문이었다.
교통사고 후유증 재활 치료를 하면서 간신히 대대장으로 취임한 지도 벌써 17개월째 접어들며 임기의 반이 지나고 있었지만 대대장 재임 기간중에 남쪽 끝의 창원까지 먼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필자의 대대는 비행장 방어, 예비군 교장 2회, 민관군 통합 화생방, 정신교육, 예비군 교육, 출동준비태세, 야전취사장 운용 등에 이어 9번째로 ‘급양관리시범’을 보이게 돼 두달에 한 번씩 연대, 사단 및 군사령부 시범을 개최했다.
이 모두는 대대의 전 간부와 병사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최선을 다한 결과였지만, 덕분에 대대원들이 타 부대에 비해 너무도 고생을 많이 하여 미안했다.
그래서 이번 급양관리시범을 핑계로 대대의 노후된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부가적인 작업을 계획했고 대대원들은 묵묵히 따라주어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을 또한번 더 달성할 수 있었다.(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