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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⑥ 忍耐하는, 餘裕있는, 確實한 軍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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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⑥ 忍耐하는, 餘裕있는, 確實한 軍人...!

기사작성 2018.10.30 14:16
최종수정 2018.11.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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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png▲ 북한강변을 따라 행군하는 모습 (출처 : 국방부 사진 자료)
 
직업군인으로서의 삶은 보람과 고난의 길입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들도 직업으로서의 군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그 청춘들을 위해 '직업군인 사용설명서'를 작성합니다. 필자가 지난 1974년부터 썼던 17권의 일기장에 담았던 사적인 기록을 최대한 가감없이 전달합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장으로 전역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필자의 경험을 통해 직업군인의 현실과 이상을 발견하길 기원합니다.  <편집자 주>


대성산(1175m)을 20회 이상 올라가는 행군을 忍耐해야 전역하는 승리부대원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필자가 승리부대에서 초급장교로 근무한 것을 따져보니 약 8년 정도였다. 소위로 임관해서 소령진급 예정자가 되어서야 아스팔트를 밟을 수 있었다. 육군대학 교육을 마치고 수도방위사령부로 보직을 받았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서울 등 도심에서 근무한 장교들에게 ‘아스팔트’ 군인이라 칭했고 그들은 과거 역사를 볼 때 승승장구했다.

지금은 상황이 일부 달라졌지만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서울 수도경비사령부에서 근무한 간부들은 좋은 보직을 받을 수 있었고 진급도 잘 되었다. 전방 등 야전에 배치된 장교들 중에서는 수경사로 차출되기만 기다리던 친구들도 있었다.
 
반면에 생도시절 럭비부 주장을 했던 故 한황진 승리부대 전입 동기는 수도경비사령부와 육사에서 차출 의견을 물어 왔으나 “자신마저 아스팔트 군인이 되면 럭비부 출신이 오해 받고 우수 자원이 모두 빠져나가면 전방은 누가 지키느냐?”며 야전을 고수했던 참 군인의 멋도 있었다.
 
간부들은 임관할 때 전투병과와 비전투병과로 나누어진다. 전투병과는 보병, 포병, 기갑. 공병. 통신, 정보, 항공병과 등을 말하고 비전투병과는 병기, 병참, 수송, 화학, 인사행정, 헌병, 재정, 정훈, 수의, 의정, 간호, 군종, 교수, 연구개발, 획득전문, 국방관리, 기무, 군의, 치의, 법무 등이다.

소대이동을 할 때 다치트럭 한대가 좁은 길로 추월하며 빵빵 거렸다. 선임석에 앉아 있던 대대 통신대장(안철주 동기생)이 창문을 열고 나를 보며 "수고해" 하고 지나갔다. 포병은 '삼보이상 승차'라는 말도 있다. 전투병과 중에도 보병과 포병 및 통신 병과의 차이를 느끼게하는 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나를 따르는 자랑스런 소대원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철야행군도 많았다. 무거운 군장이 어깨를 짓누르고 다리는 천근만근처럼 느껴져도 자꾸 내려와 감기는 눈에는 힘을 주고 지리한 행군에 지친 몸과 마음을 부하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忍耐해야 했다. 소대장 시절엔 한번도 휴식시간에 군장을 벗지 않고 소대원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던 기억은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한다.


살을 에는 추위와 작열하는 태양아래에서도 餘裕를 찾아야 즐거운 군생활

동계훈련.png▲ DMZ작전 투입전 군장검사하는 모습 (출처 : 국방부 사진 자료)
 
대성산(1175m), 적근산(1073m)은 장병들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키워준다. 부모님 및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최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곳이지만 좀 특별나다. 필자가 근무하던 예상동과 GOP 등지에서는 주변에 민가가 완전히 없다.

무명고지에서 훈련중 산 아래 저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며 5번 도로를 질주하는 민간버스를 보면 병사들은 “와우~ 버스 지나간다..!”라고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든다. 일년에 한두번 휴가 갈 때야 만날 수 있는 민간인들이 타는 버스이기 때문이다.
 
눈썹과 수염에 고드름이 달리고 살을 에는 칼바람과 씨름하는 야간 근무를 끝내고 중대 행정반에 들어오면 고참 선임병이 난로와 베치카에 올려놓은 주전자에 담긴 오미자차를 따라줄 때 따뜻한 그 맛은 한 겨울 추위를 잊고 뜨거운 전우애를 느끼는 餘裕를 즐기게 한다.
 
전역/전출 후에도 땀과 눈물을 흘렸던 대성산이 그리워지는 確實한 軍人들의 전우애..

2010년_10월16-17일_대성산전우회.png
 
필자는 사진 속의 다른  전우회 모임들처럼 소대장과 중대장 근무 시절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들과 가끔 해후를 즐기는 시간을 40년 다되도록 이어가고 있다.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오히려 중소대원들이 더 나이 들어 보여도 그들은 아직도 중대장님, 소대장님이라고 부른다.

그 시절 행군하다가 낙오했던 일, 체육대회, 야외훈련의 추억, 또 야간 근무 불량으로 얼차려 받던 괴로운 순간들이 모두 화제가 되어 웃음꽃을 피운다. 비록 전역후 민간인으로 생업 전선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전우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서열이 정해지고 어느 순간 모두 친형제가 되어간다.

전역/전출 후에도 땀과 눈물을 흘렸던 대성산이 그리워지는 確實한 軍人들의 전우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忍耐하는 軍人,
餘裕있는 軍人,
確實한 軍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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