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대령의 DMZ 종주기(8)] 6·25 전쟁 격전지 걸으면서 군 복지시설 혜택도 누려
문혜리에서 출발해 지경리, 김화,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 와수리 거쳐 육단리까지 18㎞ 종주
이 글은 현역대령이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3명과 함께 배낭을 메고 DMZ를 따라 걸은 이야기다. 이들은 한 걷기 모임에서 만난 사이로 당시 전역을 앞둔 56세의 안철주 대령과 60대 1명, 70대 2명이다. 2013년 8월 파주 임진각을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12일 동안 걸으면서 이들이 느낀 6·25 전쟁의 아픈 상처와 평화통일의 염원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와 따스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안철주 박사] 오늘은 8월 23일, 종주 5일째다. 문혜리의 군 숙소인 승포회관을 출발하여 지경리, 김화,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 와수리를 거쳐 육단리에 있는 필승회관까지 걸었다. 약 18㎞로 이번 종주 기간 중 하루에 걷는 거리가 가장 짧은 구간이다. 거리가 짧은 이유는 다음 날 걸어야 할 지역이 민간인 통제구역이어서 숙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전 6시 승포회관을 출발, 호국로라는 이정표를 보며 43번 국도를 따라 지경리, 학포리를 통과하여 김화로 향했다. 어제 한사모 회원님들의 격려 덕분인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더구나 천근같이 무거운 배낭들을 승포회관 관리관이 한사모 회장님이 당부한대로 오늘 숙소인 육단리 필승회관까지 옮겨 주기로 약속해 배낭 없이 나설 수 있었다.
길 가장자리와 부대 입구 등 여기저기에 백골이 그려진 모습을 보니 아마도 3사단 지역인 것 같았다. 잠자리 비행기가 일 열로 지나가는 모습도 보았고 ‘멸북’ ‘통일’이라는 구호가 적힌 도로 장벽도 통과했다. 점심은 종주 구간에 있는 철원반점에서 간짜장을 먹었고, 식사 후 식당 안방을 차지하고 잠시 쉬었다. 지경리를 지나고 쉬리공원에서 휴식한 후 조그마한 예쁜 다리를 건너 학포리를 거쳐 와수리에 도착했다.
학포리에는 ‘저격능선 전투’(Battle of Sniper Ridge)를 기념하는 전적비가 산등성이에 우뚝 솟아 있다. 이곳에서는 남대천 건너에 있는 저격능선을 볼 수 있다. 김화 북방 약 7㎞ 지점의 이 능선은 해발 고도가 580미터이고 능선 상부의 면적은 약 1㎢ 정도다. 오성산으로 접근할 수 있는 주요 지점이며 전선 고착 시 전방의 전초 진지를 차지하기 위해 중요한 지역이었다.
6·25전쟁 당시 이 능선에서 미군이 중공군 저격병들로부터 여러 번 저격을 받아 인명 피해를 입으면서 미군들이 저격 능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유래가 전해진다. 그 후 1952년 10월 14일부터 42일간 저격 능선에서 중공군과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를 ‘저격능선 전투’라고 부르며 그 기념비가 있는 것이다.
국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김화-금성 간 도로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휴전 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설정 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저격능선 전투와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최대 격전으로 평가된다.
와수리와 숙소가 있는 육단리를 지나며 발바닥에 문제가 생긴 단원의 치료약을 사려고 약국을 찾았다. 그런데 두 군데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후 필승회관 관리관과 상의하여 가까이 위치한 필승부대에 의료 지원을 요청했다. 대민지원을 나온 군의관은 그 단원의 발바닥을 정성껏 소독하며 아주 친절하게 치료했다.
발바닥이 악화된 이유가 며칠간의 여정이었다는 말을 들은 군의관은 한편 놀라면서도 환자의 나이가 70대 중반이라는 사실에 감탄하며 무리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 돌아갔다. 아직 현역 대령 신분인 필자가 단장을 맡다보니 이런 일이 있을 때 군부대의 협조를 얻기 쉬운 장점도 있었다.
저녁은 필승회관에서 질 좋고 저렴한 삼겹살에 반주를 곁들여 배불리 먹었다. 단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주 훌륭한 식사라며 흡족해했다. 군 복지시설을 사용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단원님들은 이번 종주 간에 군 복지시설을 이용할 기회를 가진 것이 아주 좋은 경험이라며 즐거워했다.
내일 종주할 코스에는 필자가 1981년 소위로 임관한 후 처음 부임했던 부대가 있다. 그 당시 필승부대로 불리는 사단 사령부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연대를 거쳐 대대에 도착할 때까지 기억과 대대에서 근무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특히 화천군 명월리에 위치한 사단 사령부를 출발하여 연대본부까지 이동할 때가 기억났다.
더불백 하나를 들고 덮개가 덮혀진 트럭 뒤편에 앉아서, 달리는 차량이 만들어내는 뿌연 흙 먼지를 바라보며 꽤 긴 시간을 이동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던 긴장된 시간이었다. 연대 본부에서 5Km정도 떨어져 있는 대대까지 가는 길 좌우측 철조망에 붙어 있는 ‘미확인 지뢰지대’ 라고 씌어져있는 팻말은 신임 소위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대대에서 통신소대장으로 1년 정도 근무하며 전투진지가 있는 대성산을 수십 번도 더 올라가곤 했다. 당시 소대 선임하사가 불현 듯 생각나서 전화했다. “DMZ 종주 5일째로 내일 말고개, 중고개를 넘어 옛날 함께 근무했던 소대를 잠깐 방문하려고 한다”고 하자 반가워하면서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잠자리에 누우니 수많은 단어들과 수많은 정겨운 얼굴들이 떠올랐다. 육단리, 다목리, 삼거리, 대성산, 적근산, 삼천봉, 말고개, 중고개, 실내 고개, 수피령, 봉오리, 민촌……. 그리고 대성 산의 좋은 기운과 맑은 공기를 느끼면서 편하게 잠이 들었다.
◀ 안철주 심리경영학 박사 프로필 ▶ 예비역 육군대령. 대한민국 걷기지도자로 100㎞ 걷기대회를 7회 완보한 ‘그랜드슬래머’이며, 스페인 순례길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완주한 걷기 애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