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12(화)
 

이 글은 현역대령이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3명과 함께 배낭을 메고 DMZ를 따라 걸은 이야기다. 이들은 한 걷기 모임에서 만난 사이로 당시 전역을 앞둔 56세의 안철주 대령과 60대 1명, 70대 2명이다. 2013년 8월 파주 임진각을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12일 동안 걸으면서 이들이 느낀 6·25 전쟁의 아픈 상처와 평화통일의 염원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와 따스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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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종주를 마치고 군 숙소인 을지회관 앞에서 우리를 격려하러 먼 길을 달려온 고령의 정전택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안철주 박사]

 

[시큐리티팩트=안철주 박사] 8월 27일, 종주 9일째이다. 오늘은 양구군 남면 광치터널 근처의 컨테이너 숙소를 출발하여 광치령로를 따라 걸었다. 광치터널을 통과한 후 서호교를 건너 인제 읍내를 지난 다음, 합강리를 거쳐 인제군 원통면에 있는 을지회관까지 약 28㎞를 걸었다. 우리가 종주한 인제 지역에는 광치령, 인제지구 전투 전적지, 리빙스턴교 등이 있었다.

 

오늘 아침은 양구 휴게소 아주머니가 김치를 곁들여 끓여준 표고버섯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들이 먼 길을 걸어왔고 아직 가야할 길이 상당하다는 것을 아는 아주머니는 먼 길 떠나는 자식에게 하듯이 밥을 수북이 담은 고봉밥 여러 그릇을 식탁에 갖다 놓으며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이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아주머니와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오전 6시가 되기 전에 출발했다. 구름이 약간 낀 날씨였다. 광치령로를 걸어 6시경 광치터널 입구에 도달했다. 터널을 지난 후에는 오르막길이 아니어서 걷기가 수월했다. 광치령의 표고는 약 800m이다. 양양 60㎞, 인제 12㎞라는 이정표도 보였다. 양구와 인제, 원통을 연결하는 광치령 인근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조성돼 여러 개의 폭포와 계곡들이 있었다.

 

우리가 오늘 걸은 광치령 길은 잘 닦여진 왕복 2차선 아스팔트 도로였지만 광치령 옛길은 오솔길이었다고 한다. 이 길은 워낙 높고 험해서 보통 사람은 걸어서 넘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 길을 북한이 6·25전쟁을 준비하며 확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994년에는 광치 터널이 준공돼 지금은 자동차로도 수월하게 넘을 수 있게 됐다.

 

필자가 1981년 초등군사반 교육 후 초임지 명령을 받았을 때 특히 중동부 전선의 백두산 부대와 을지 부대로 배치되는 동기들과 위로주를 마시던 기억이 났다. 그때 우리는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 할 것이라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옛날에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는 말도 있었는데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된 지금은 그런 말이 사라진 것 같다.

 

38선 이북에 위치한 인제군은 1945년 광복 이후 북한이 남침하여 6·25전쟁을 일으키기 전 까지는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이 수복했다가 중공군의 개입 후에는 국군이 후퇴하여 북한에 편입되는 등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연합군은 1953년 5월 20일부터 반격작전을 전개했다.

 

홍천부터 진격해 소양강의 교량을 점령하면서 교두보를 확보했고, 이어 관대리와 인제를 탈환하고 6월 4일 원통리까지 북진했다. 이 전투로 중공군에게 빼앗겼던 인제와 현리 지역 등 중동부전선의 실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산화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8년 합강리에 인제지구 전투 전적비가 건립됐고 1997년 인제군 남북리로 이전했다.

 

이 지역에는 합강리와 덕산리를 잇는 리빙스턴교가 있는데, 인제지구 전투와 관련한 아픈 사연이 있다. 당시 미2사단 포병연대에 소속돼 작전을 수행하던 리빙스턴 중령은 북방 2㎞ 지점에서 매복해 있던 적군의 기습을 받았다. 리빙스턴 중령은 덕산리에서 인북천을 건너 합강리로 후퇴하기 위해 도하를 시도했으나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대다수 부대원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적군의 총탄에 전사했다. 그도 중상을 입고 후송됐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야전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던 그는 ‘이 강에 다리가 놓여있었다면 이렇게 많은 부하들이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말하고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사재를 털어서라도 인북천에 다리를 놓아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부인이 다리 건설에 필요한 기금을 희사해 1957년 12월 4일 길이 150m 폭 3.6m의 아이빔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목재 난간의 다리가 세워졌다. 이 다리는 리빙스턴 중령의 희생과 자유 수호를 기리는 상징물이 됐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내리쬐는 태양을 벗 삼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즐겁게 걸었다. 가끔 꽃밭을 잘 가꾼 집도 보였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과 계곡, 파란 하늘과 구름에 둘러싸인 산봉우리들은 아름다웠다. 산을 감싸고 흐르는 물줄기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산하를 기름지게 만들며 울창한 숲이 만드는 능선의 녹색 물결이 길을 걷는 우리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 국토가 베풀어주는 편안함의 이치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스페인 까미노 길을 30여일 걸으며 만났던 넓고 끝없는 평원, 이집트에서 2년간 머물면서 경험했던 생명체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황량한 사막이 떠오르며, 우리 국토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녹색 산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설악을 품은 인제”라는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원통 읍내의 중국집에서 우동과 간짜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많이 쉬었다가 일어났다. 을지회관으로 가는 도중 한사모 회원 중 특별한 인연이 있는 정전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원통에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회관 입구에서 만나 반갑게 포옹했고, 그와의 인연이 시작된 과정이 떠올랐다.

 

필자는 2012년 4월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100㎞ 걷기대회’에 처음 참가해 완보했다. 그 후 2017년까지 6년 연속 완보했고, 올해 다시 참가해 현재 7회를 완보했다. 100㎞ 완보는 엄청난 경험이었으며, ‘나는 100㎞ 완보 후 내 인생이 바뀌었다’라고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매년 주변의 지인들에게 함께 걷기를 권했고, 정전택님과는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다.

 

그는 한사모 주말걷기 회원이었고, 매주 일요일 함께 걷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필자가 그랜드슬램 워커가 된 사실을 알게 됐다. 2013년 어느 날 그는 100㎞ 걷기에 도전한다고 선언했다. 나이를 고려해 부인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2014년 100㎞ 걷기대회에 참가해 거뜬히 완보했다. 그리고 그해 7월 ‘제주도 250㎞걷기 대회’와 9월 ‘군산 새만금방조제 66㎞ 걷기대회’에 참가해 여러 사람의 박수를 받으며 여유롭게 완보했다.

 

대한걷기연맹에서는 그에게 ‘2014년 그랜드슬램 워커’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가 대한민국 최고령 그랜드슬램 워커라고 발표했다. 2014년 당시 그분의 나이는 77세였다. 정전택님은 “걷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충분히 준비하면 나이는 커다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선구자였다.

 

정전택님과 우리들은 수다를 떨며 걷기와 관련한 여러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여기 걷고 있는 사람들이 몇 년 후에 다시 이 코스를 걸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때는 나이가 80이 넘은 사람도 있을 테니 그때는 ’6780 순례단‘이란 이름으로 걷자”라는 얘기도 했다. 어떤 분은 “젊은이들을 동참시키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 40대가 포함된 4080단을 만들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현대인 중 적절한 운동 없이 건강 유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아주 오랫동안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운동 부족으로 건강함을 잃어버리는 시대이기도하다. 그리고 건강을 얘기하면 건강관리를 말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 운동을 실천해야만 건강이 관리될 수 있다. 걷기는 모든 사람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운동임이 분명하다. 남다르게 건강관리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정전택님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우리들이 가볍게 나눈 대화이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 어떤 형태로든 다시 한 번 더 이 길을 걸을 기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은 회관 식당에서 오리 백숙을 시켜 잘 먹었다. 정전택님은 다음날 우리가 먹을 햇반과 반찬, 포도주 팩 등을 가져오셨다. 걷기대회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지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맛있는 저녁도 사주셨다. 지면으로나마 다시 그 때의 감사했던 마음을 전한다.

 

안철주 심리경영학 박사 프로필 ▶ 예비역 육군대령. 대한민국 걷기지도자로 100㎞ 걷기대회를 7회 완보한 ‘그랜드슬래머’이며, 스페인 순례길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완주한 걷기 애호가

 

김한경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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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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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석

노후에 100Km를 걷기를 계속 도전한다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특히 군 복무햇던 의미로 전방지역을 갔다오신 것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무나 도던할 수 없는 일인데 대단하십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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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대령의 DMZ 종주기(12)] 인제지구 전투와 리빙스턴교의 아픈 사연 떠올리며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도 새삼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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