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승호리철교 폭파ㆍ차단작전을 지휘했던 김신 공군장군은 공군창설, F-51 무스탕전투기 인수 및 공군의 최초 출격 등의 성공적 신화를 만들며 6·25남침전쟁에 참전했다. 휴전 이후에는 공군 행정참모부장, 참모차장, 6대 공군참모총장(1960∼1962년)을 역임하며 공군 발전에 기여했다.
그가 공군총장 재임시에 발생한 5.16은 육군 및 해병대 주도로 이루어졌고, 해군과 공군은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쿠데타를 지지해서 계속 공군참모총장 직위를 유지하였고, 국가재건최고회의에도 참여하였다.
전역 후에는 중화민국 대사를 거쳐 교통부 장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과 5공화국 말기에는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도 역임하여 힘든 역경의 길을 걸어온 아버지 백범 김구와는 달리 군과 정·관계의 원로로서 비교적 순탄하게 활동했다.
1988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00년부터는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으로 일했다. 덕분에 백범일지 간행 등 아버지와 관련된 각종 사업들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고, 오늘날 김구가 가장 대표적인 민족지도자겸 독립운동가로 기억되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
정부는 그에게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고 향년 94세였던 2016년 5월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또한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인 유치곤 공군장군(1927.7.17 ~ 1965.1.1)은 모든 출격조종사의 표상이 되었다. 평양 근교 승호리철교를 폭파시킨 그의 1,500피트 초저공 비행은 지금도 공군에서 전설이 된 신화로 내려오고 있다. 휴전후에는 공군의 전력증강ㆍ발전에 기여하다가 공군 제107기지 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65년 1월, 38세 나이에 안타깝게도 과로로 순직했다.
게다가 유 장군의 아들인 故 유용석 소령(공사 26기)도 ‘82년 제주도에서 훈련도중 순직하여 부자가 대를 이어 ‘빨간 마후라’의 순국영웅이 되었다. 한편 그의 고향인 경북 달성군의 '유치곤장군 호국기념관'에는 지금도 많은 추모객들이 유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