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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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원문고개 생활공원에 세워진 전적비에서 추모식하는 모습과 통영상륙작전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김성은 장군의 흉상 [사진=해병대/보훈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해병대가 먼저 매일봉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던 적은 계속 매일봉을 향해 전진해 오고 있었다. 

 

이때 선점하고 있던 김성은 부대 7중대가 맹렬한 사격과 치열한 육박전도 불사하며 공세 행동을 감행함에 당황한 적은 필사적으로 대응했으나 더이상 전진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분산돼정양리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이에 8월18일 12시부터 해군함정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8월19일 10시까지 통영시내로 진입하며 치열한 소탕작전을 벌여 잔적을 완전히 괴멸시켰다.

 

해병대 김성은 부대의 적극적인 소탕작전에 전의를 상실한 적은 퇴로인 원문고개도 이미 차단당하자 목선 3척을 이용하여 해상으로 도주하다가 해상을 경비하던 504·512호정에 의해 격침되었다.


이 작전 결과로 유엔군의 낙동강 방어선에 보급이 끊기지 않게 유지시켰고, 통영반도를 먼저 확보한 뒤 거제도도 점령하여 이곳을 거점으로 견내량 해협을 건너 마산항과 진해항을 봉쇄하려던 북한군 지휘부의 의도도 좌절시켰다.

 

또한 적 사살 469명, 포로 83명, 따발총 128정, 아식소총 107정, 권총 13정, M1소총 3정, 기관단총 14정, 박격포 2문, 지프차 2대, 트럭 10대, 전화기 5대 등과 많은 포탄·수류탄 등을 빼앗는 대전과를 올렸으나, 아군은 15명이 전사하고 47명만 부상을 당했다.

 

이 통영상륙작전은 우리 해군·해병들이 최초로 성공시킨 단독 적전 상륙작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엔군이 후퇴 및 철수를 반복하며 방어만 하던 중 유일한 공격작전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1950년 9월23일 유엔군이 서울탈환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으로 출항할 때까지 통영을 평정하며 반격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에도 기여하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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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61)] 누란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한 ‘귀신 잡는 해병대’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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