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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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 계급장을 달았던 프랑스 몽끌레어 장군(왼쪽)과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몽끌레어 중령(오른쪽 사진의 맨 왼쪽)이 한국전선을 방문한 맥아더 연합사령관과 만나는 모습[사진=보훈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랑스는 6·25남침전쟁 당시 육·해군 3421명을 파병해 이 중 262명이 전사하고, 7명이 실종됐으며 1008명이 부상하는 희생을 치렀다. 


1950년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연합군을 한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는 유엔군 파병을 결정했지만 한국에 파병할 여력이 없었다.당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알제리 등에서의 식민지 전쟁으로 병력 보충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프랑스는 1950년 7월, 12명의 시찰단만 한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반기를 든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몽끌레어(Ralph Monclar·1892~1964) 육군중장이다.  


그는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모병(募兵)을 했다. 그 결과 전국에서 1300여명에 달하는 병력이 모였다. 몽끌레어 장군은 직접 이들을 이끌고 6·25남침전쟁에 참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당시 막스 르젠 국방차관이 “미국의 대대는 육군 중령이 지휘하는데 중장인 당신이 대대장을 맡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대했다.  


이에 몽끌레어 장군은 중장 계급장을 떼고 국방차관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할 수 있다면 육군 중령이라도 좋다. 계급을 낮춰도 좋으니 나를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몽끌레어는 결국 중령 계급장을 달고 대대장으로 이국만리의 전쟁에 참전했다. 


공산군의 침략으로 백척간두 위기에 놓인 한국을 돕는 일이라면 몽끌레어 장군에게 강등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몽끌레어 장군이 한국에 왔을 때 나이는 58세였다. 그는 목숨을 걸고 6·25남침전쟁에 참전해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못지않게 중요했던 ‘지평리전투’는 1951년 1.4후퇴 이후, 2월13일부터 15일까지 벌어진 산악 전투로 당시 중공군은 국군과 유엔군의 전선을 밀어내며 파죽지세로 남진하고 있었다.  


만약에 지평리까지 무너지면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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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숨겨진 전쟁영웅인 '자유전사'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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