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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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2월 한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당선자 아이젠하워와 이승만 대통령이 함께 전선을 시찰하고 경무대에서 대담을 나누는 모습. [사진=국방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6·25남침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던 1952년 유혈만을 강요하는 진지 고착전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유엔군의 지원없이 우리 자체의 병력과 화력만으로는 155마일에 달하는 전선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이자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는 “미군이 장기적으로 한국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 앞으로 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강해 독자적인 방어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한국군 잔력증강의 필요성을 최초로 언급했다.  


1952년 말, 밴플리트는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에게 “곧 미국의 새 대통령 당선자이자 자신과 육사 동기였던 아이젠하워가 한국을 방문할 수 있으니 그 때 당신이 한국군 전력증강의 필요성과 세부 계획을 브리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당시 미 8군의 게스트하우스였던 지금의 서울 필동 ‘한국의 집’을 백선엽 장군에게 2주 동안 제공하면서 라이언 미 군사고문단장 등 자신의 참모들과 함께 한국군 전력증강의 밑그림을 작성할 수 있도록 지원도 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 때 ‘6·25남침전쟁의 휴전 필요성’을 선거공약으로 강조하고 다녔던 아이젠하워가 그해 12월3일 한국을 방문하자 밴플리트가 계획한 대로 백선엽 장군의 브리핑이 있었다.  


백 장군은 “현재 한국군은 10개 사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추가로 화력과 장비를 제대로 갖춘 한국군 20개 사단으로 증강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등이 맡고 있는 지역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보고 말미에 “미군 1개 사단이 주둔하는 비용으로 한국군 2~3개 사단을 창설할 수 있으며 미국이 협조하면 2년 안에 증강을 완료할 수 있다”고 한 마디를 더 보태며 강하게 설득했다. 


브리핑을 경청한 대통령 당선자 아이젠하워는 “원칙적으로는 동의한다”며 표정이 좋아졌다. 한국에서의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고 미군을 철수시키고자 했던 그가 한국군을 증강해 휴전선의 대부분을 한국군에게 맡기고자 하는 계획 자체에 반대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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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67)]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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