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현리전투에서 국군 2군단이 대패하자 밴플리트가 국군 전투력 강화를 위해 ‘야전훈련사령부(FTC)’ 운용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이에 힘입어 양양에서는 총 12개 부대가 창설됐다.
그 중 8·12·15사단은 아이젠하워에게 한국군 20개 사단 증강계획을 브리핑하기 이전에 창설됐다. 이후 20·21·22·25사단이 각각 창설됐으며 정전협정 이후에도 27사단(1953년 9월) 등의 부대들이 양양 송암리 등지에서 창설됐다.
결과적으로 양양을 비롯한 각지에서의 한국군 재건은 밴플리트 장군과 그가 만든 ‘야전훈련사령부(FTC)’에서 시작되었으며, 이에 따라 밴플리트 장군은 일명 '한국군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전투력 강화는 ‘야전훈련사령부(FTC)’에서의 교육훈련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증강할 수 있는 장비와 화기가 갖춰져야 했다.
6·25남침전쟁 막바지인 1953년 미군 제 2군수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한 위트컴 장군은 마치 한국군 재건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밴플리트 장군을 내조하듯이 한국군 전력증강과 유엔군의 군수물자 확보및 정확한 수송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3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한국군을 위해 탄약 70만 발, 소화기 50만 정, 화포 1500여 문, 차량 2만여 대 등 200만t 규모의 장비와 군수물자를 최전방으로 실어 날랐고, 후방지역 치안 유지는 물론 전쟁포로와 피난민 관리 임무도 수행했다.
이로써 6·25남침전쟁 중반에 10개 사단 규모였던 한국군이 1953년 정전협정 무렵에는 20개 사단 56만 8994명의 대군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대군이 된 것은 일명 '한국군의 아버지'라 불리던 밴플리트 장군의 ‘야전훈련사령부(FTC)’ 운용 등의 한국군 재건 노력부터였지만, 숨은 공로자였던 제 2군수사령부 사령관 위트컴 장군의 한국군 전력증강에 매진한 공도 컸던 것으로 평가됐다.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