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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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 대화재시 미2군수사령부 요원들이 이재민들을 지원하는 모습. [사진=박주홍 장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당시 부산에 위치한 미2군수사령부의 사령관 위트컴 장군은 11월27일 ‘부산역전 대화재’가 발생하자 화마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정부도 할 수 없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대참사로 인해 부산 전체를 절망의 늪에 빠뜨린 패닉 발생으로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위기를 맞은 그는 자연스럽게 제2차 세계대전시 영국 애버데어에서 보여준 대민관계와 프랑스 르앙을 재건한 경험이 되살아났다. 


또한 유년시절 청교도 가문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기독교적 정의와 인간에 대한 기본 사랑을 실천할 기회라는 마음이 치솟아 올랐다. 


위트컴 장군은 민간에 사용할 수 없는 전투용 군수물자를 직권으로 풀어 추위에 갈 곳이 없는 이재민들에게 천막촌을 건립해 주고 먹을 것을 제공해 주며 즉각적인 구호활동을 개시했다.  


그는 매일 2만 3100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과 텐트, 의류, 침구류 등 군수물자를 긴급히 지원했고 화재 다음 날인 11월 28일엔 즉시 공병부대를 투입하여 화마가 휩쓸고 간 피해지역을 정리했다. 


이어 12월 9일에 첫 번째 텐트촌을, 12월 10일에는 두 번째 텐트촌을 제공하겠다고 계획을 밝히면서, 일반 장병들에게는 4만명이 기거할 수 있는 임시 천막촌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위트컴은 “이재민 중 누구라도 굶거나, 잠잘 곳이 없거나, 진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라고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 


장군의 대응방식은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걱정은 뒤로 하고, 빠르게 해결책을 찾아서 망설임 없이 추진하는 것이었다. 또한 일시적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본질적 문제와 해결책을 찾았다.  


즉, 화재로 인한 재해의 단순한 복구 수준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거주할 가옥의 건설, 도시 기반시설의 구축, 의료환경 개선, 학교 및 전쟁 고아 지원 등 총체적으로 도시를 재건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했다.  


이를 위해 위트컴 장군은 자신의 모든 노하우와 경험을 결집하여 해결책을 구상했다. 이것이 바로 AFAK(미군대한원조, Armed Forces Assistance to Korea) 프로젝트를 활용한 재건사업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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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74)]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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