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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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8군사령관 맥스웰 테일러 우드 장군(왼쪽)과 미2군수사령관 위트컴 장군. [사진=박주홍/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AFAK(미군대한원조) 프로젝트는 부산 대화재를 극복하기 위한 묘책으로 위트컴 장군이 제안하고, 미8군사령관 테일러(Maxwell D. Taylor) 장군이 승인해 탄생했다. 이는 미군의 기술력과 노동력을 직접 투입함으로써 군이 중심이 되어 복구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많은 양의 물자가 미군을 통해 공급되었고, 조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인력도 군이 다른 조직보다 월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프로젝트는 AFAK 기금과 미군 및 한국군의 인력을 묶어 한국의 지역 행정기관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미군은 시멘트, 목재, 유리, 철근, 못 등 자재와 중장비를 한국군 부대에 공급해시설을 복구하도록 지원했다.  


이때 민간에서는 군이 지원하지 않는 자재와 기본적인 노동력을 제공했다. 프로그램의 본래 취지는 지역주민을 위해 소규모 개발사업을 하는 것이었으나 위트컴은 프랑스 르앙(Rouen) 재건 경험에 따라 이를 도시 재건사업으로 대폭 확대했다.  


1953년 11월부터 1958년 11월까지 총 6백여만 달러의 AFAK 예산이 투입되었는데, 1954년 6월까지 이미 3백여만 달러가 부산에 집중됐다.  


내역을 살펴보면 동래, 송도, 영도 등 화재와 관련 없는 지역에서 공사가 더 많았는데, 단순히 화재 피해지역에 대한 긴급공사가 아니라 부산 도시계획 전반을 염두에 두고 진행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장군은 AFAK 기금은 물론 추가적인 예산 확보를 위해 UNKRA(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와 미국 정부에 의한 지원 방법인 FOA(Foreign Operation Administration)를 균형 있게 활용함으로써 부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지원 환경을 구축했다.  


1954년 말 미8군사령부에 보고한 위트컴 장군의 부산 재건 결과에 대한 마지막 보고서는 장군의 세부적인 지원활동 내용을 담고 있다.  


“1953년 11월 부산은 폐허가 되었고, 시민들은 좌절하였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지금 주택은 건축되고, 길은 포장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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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76)]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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