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고 현장에서 순직한 7군단장 故 이현부(육사 20기) 중장은 육사 졸업시 학업성적과 리더십이 가장 우수한 생도가 받는 ‘대표화랑’상을 수상했다.
그는 기계화부대에서 소대장~사단장등 모든 지휘관직을 역임하고 또 기동군단장에 보직되어 기계화부대 작전분야의 1인자로 통했다.
또한 군사전술과 작전지휘 능력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생활 자세와 리더십을 포함한 인품도 탁월하다는 정평을 얻어 군단장직책에도 동기생 중에 가장 빨리 보직됐으나, 그만 취임 두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
故 한황진(육사37기) 중령 역시 육사를 3등으로 졸업하고, 럭비부 주장까지 할 정도로 실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특히 한 중령은 임관 후 첫 번째 보직부터 승리부대에서 필자와 군생활을 같이 시작해 인접 중대장직을 수행했으며, 이 장군은 당시 부사단장으로 필자와 함께 근무한 인연도 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2)] ‘전방오지 산짐승과 눈싸움 그리고 셋방살이 오강의 추억…’ 참조)
한 중령은 미국 해대원 유학 복귀 후, 필자가 근무하던 무적태풍부대의 인근부대의 대대작전장교로 배치받아 오랜만에 친분을 나눌 수 있었으나, 워낙 우수한 장교인지라 군단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헌데 보직된지 얼마 안되어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들의 순국은 당시 그들을 군생활의 멘토로 삼고 있던 필자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또한 “추락 당시 수행원 모두가 이 장군을 끝까지 보호하려 장군을 감싸고 있었다”라는 사고수습자가 전해준 증언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숙연케 했다.
이 장군과 참모 및 동기생 한 중령을 추모하기 위해 바쁜 작전보좌관직을 수행하던 필자도 참모에게 보고후 장례식장에 참석했다. 전역한 병사들까지도 포함한 수많은 장병이 조문했던 7군단 사령부의 장례식장은 애도를 표하던 그들의 안타까운 눈물바다였다.
‘시졸여애자고 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故 可與之俱死)’, 즉 “장수가 병사들을 사랑하는 아들 돌보듯 한다면 가히 생사를 같이할 수 있다”는 손자병법 지형편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죽어서도 함께 했다. 대전 현충원의 묘비 번호를 1048번부터 1052번까지 나란히 부여받고 안장되었고, 사랑하는 동기생 한 중령은 새로운 군번인 묘비번호 ‘1-203-1051번’을 부여받았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다가오자 먼저 떠난 전우들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진다. 발렌티누스는 사랑을 위해 순교했다. 故 이현부 장군과 한황진 중령 등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순국했다. 비록 목적은 달랐으나, 이들의 순교와 순국은 남을 위한 희생이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을, 자신의 목숨보다 조국을 더욱 뜨겁게 사랑했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오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국립 현충원을 찾아 옛 전우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면서, 전후방 각지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의를 위한 희생의 길을 정진하며 묵묵히 책무를 다하고 있는 국가 안위의 마지막 보루인 우리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