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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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시 피난민들 모습과 선박들의 이동로[사진=생명의 항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무적태풍부대로 부임 당시에 처음으로 승용차를 구입했다. 이는 필자의 임무중에 군사보호시설 관리가 포함되어 수시로 현장을 확인할 필요에 따른 전임자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된 행정관서의 건축 심의를 준비하기 위해 비포장 도로와 험한 산길까지도 승용차를 이용해 정찰을 한 덕택에 고장이 많이 발생해 구입한 지 5년도 못되어 처음 마련한 승용차를 폐차 처리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휴일에 아들집을 방문하셔서 첫 구입한 승용차로 무적태풍부대의 안보관광지로 모실 때 흐뭇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효도를 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태풍전망대는 GOP철책에 건설되어 북한지역을 충분히 관측할 수 있다. 또한 동양 최대의 성모상과 십자가, 종각 및 절이 설치되어 각 종파에서 수시로 방문하여 행사를 한다. 김수환 추기경도 성모상 준공식에 참석해 헌당미사를 집도하기도 했다. 


특히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고장리 베티고지가 현재 비무장지대(DMZ) 안에 위치해 있어서 직접 방문은 어렵지만 태풍전망대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GOP철책 이북지역에 위치한 베티·노리고지와 임진강을 바라보시던 아버지도 김만술 소위를 언급하시며 감회에 젖었다. 태풍전망대 앞에 흐르는 임진강변 도로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안변 및 원산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아버지의 고향인 함흥시이다. 


해방된 이후 공산 치하에서 고생하시다가 자유민주주의를 찾아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가족 전체가 흥남 철수시에 월남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언급한 김만술 소위의 베티고지(Betty)전투는 이승만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이후 휴전회담이 결렬되면서 전개된 1953년도 중서부전선의 대표적인 고지쟁탈전 이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을 목전에 두고 전 전선에서는 중공군의 최종공세에 의해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전개되던 중에서도 베티고지는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북쪽에 위치한 고지로서 그 주위에는 임진강이 허리띠처럼 둘러 흐르고 있는 서부전선 작전상의 요충지였다.

 

만일 베티고지를 점령하지 못하고 휴전이 성립될 경우, 주 저항선에서 남쪽으로 2㎞ 이상이 비무장지대로 결정되기 때문에 실제로 국군은 그만큼 임진강 남쪽으로 물러나야만 되었다. 

 

베티고지 전투는 이러한 지리적 위치 및 정치적 중요성으로 인해 국군과 중공군간에는 이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함이 극도에 달았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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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3)] 태풍전망대와 베티고지 등 유명한 안보관광지에서의 사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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