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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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70년부터 그는 박정희정권을 용납하게 되었으나 ‘5.16은 일어나서는 안 되었던 일’이란 것이 평생의 신념이었다.  


1976년말 15년간의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장과 외무부 산하의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장을 역임했다. 1980년 주영대사에 임명되었고 1983년 12월부터 아일랜드 대사를 겸하였으며, 1984년 12월 이후 주로마 교황청 대사를 지냈다. 


1988년에는 제13대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같은 해 12월부터 2년간 국무총리로 첫 남북총리회담 개최와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등을 주도했다. 


그는 총리 시절에 서울과 수원을 시작으로 제주도와 마라도까지 전국 18곳을 순회하며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으며, 1989년 일본 쇼와 천황의 장례식 조문도 참석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역할을 충분하게 했다. 


총리를 퇴임한 뒤, 1991년 제18대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되어 매년 수시로 전방부대를 위문했는데 1992년 말 당시 대통령선거의 후보들처럼 무적태풍부대를 격려 방문했다. 

 

또한 그는 7년간 민간의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을 주도하면서 북한 수재민 돕기(1995년)와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제의(1997년) 등 남북 교류에 큰 족적을 남겼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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