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 교육종료 1주일을 앞두고 발생한 교통사고로 세명의 동기들은 마지막 종합시험도 치루지 못했다. 헌데 30년이 지난 최근에 육사 동기생들과의 회식자리에서 당시에 많은 동기생들이 피해를 입은 세명의 동기들을 돕기 위해 애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94년 4월25일 아침에 진해 육군대학 독신자 숙소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월요일 새벽, 마지막주 교육을 앞두고 숙소에서 아침 준비를 하던 김태경 동기는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방에서 나와 복도에 있던 전화 수화기를 들었는데 교통사고 소식이 최초로 육군대학에 전달되던 순간이었다.
김 동기는 각방의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없었고 마침 잠에 취해있던 김현수 동기를 깨워 소식을 전하며 학교본부에 보고를 한 뒤에 차를 몰고 대구 가야기독병원으로 향했다. 김태경 동기의 전언에 따르면 그날 아침에 유난히도 안개가 심해 운전도 몹시 힘들었고 추가 교통사고 위험도 있었다고 했다.
두명의 동기가 위험을 무릅쓰고 운전하여 대구 가야기독병원에 도착하자 피해자 세사람 모두는 중환자실 및 수술실에 있었고, 필자는 횡경막 및 비장 파열에 따른 심한 출혈로 생명이 경각에 달려 긴급 수술중이었다.
헌데 조사하던 경찰의 태도가 이상해 사고경위를 자세하게 따져 물었는데, 마침 가해자가 경찰출신으로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자 김현수 동기는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의 행정관이었던 이문석 동기에게 편파적이 아니라 정확하게 조치하도록 경찰에 통보하는 도움을 청했다.
때마춰 지금은 해체된 11군단 헌병대에서 근무하던 승장래 동기는 헌병을 급하게 대구 가야기독병원으로 파견하여 사고 조사를 하면서 부상자들이 치료를 받던 중환자실 앞에 무장을 한 헌병까지 배치했다.
일단 안전하게 운전하여 정상적으로 대대장반 교육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목숨의 경각까지 갔던 잔인한 4월의 아픔은 불행중 다행으로 많은 동기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하나 둘씩 회복되며, 뜨거운 동기애를 느끼게 한 소중하고 감사한 추억을 만드는 축복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