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1 보병 전투장갑차, K2 전차 등 명품무기로 대대적 홍보했으나 실제 운영간 결함 발생으로 신뢰 하락
방위산업진흥회, 미국 등 선진국처럼 단계적 성능개량을 통해 품질을 향상시키는 '진화적 개발' 적용 주장
현행 방위사업 법규에 성능개량 및 진화적 개발이 명시되어 있지만 비리 오해 우려하여 실제 시행 미미
(안보팩트=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2008년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건군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명품무기 10가지를 선정했다. K-9 자주포, K21 보병 전투장갑차, K2 전차, K-11 복합형 소총, KT-1 기본훈련기, 청상어(경어뢰), 신궁(휴대용 대공 유도무기), 해성(함대함 유도무기), 현무(지대지 유도탄), URC-700K(군위성통신체계) 등으로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도 했다.
이 가운데 K21 보병 전투장갑차, K2 전차, K-11 복합형 소총 등은 실제 운영 중에 중대한 결함이 발생했다. K21 보병 전투장갑차는 2차례의 침수 사고가 발생했고, K-11 복합형 소총은 약실 내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또 K2 전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복합된 파워팩의 국내 개발이 성공하지 못해 지금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체 개발한 무기체계는 사용 초기 여러 가지 결함이 나타날 수 있음에도 실전 테스트 과정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히 야전부대에 배치하였고, 명품무기라며 대국민 홍보를 앞세운 것이 문제였다.
실례로, K-21 보병 전투장갑차의 경우 2009년 12월 첫 침수사고의 원인을 조종수 과실로 덮어버린 탓에 2010년 7월 2차사고 시 사망자가 발생하는 불상사로 이어졌다. 이후 세밀한 사고조사가 이루어져 무게중심 설계 오류 등 설계 결함이 드러났고, 실전 테스트가 부족했음이 밝혀졌다.
K-2 전차는 최초 파워팩의 국산화가 어렵다는 ADD 의견이 있었지만 국내 개발을 추진하였고, 시험평가 도중 결함들이 속출한데다 아직까지 결함이 해결되지 않아 생산 일정에 차질을 초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진화적 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K-11 복합형 소총은 2008년 전투적합 판정 이후 2010년 208정을 생산하여 곧바로 실전 배치되었다. 미군의 유사장비인 XM25가 2년간의 실전 테스트를 거친 후 양산 여부를 결정키로 한 것과 대조적이다. K-11도 실전 테스트 부족으로 배치된 후 여러 차례 폭발사고와 품질 결함이 발생하여 결국 보급이 중단되고 전면 재설계되었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세계적인 명품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첨단기술 개발이 앞서야겠지만 초기에 발생하는 각종 결함들을 잘 보완하고, 이어서 지속적으로 성능개량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개발이 완료되면 시제품을 시험 평가하는 과정이 미흡한데다, 초기에 소량만 생산하여 운용하다가 결함이 발생하면 성능개량을 통해 단계적으로 생산하겠다는 생각보다 하루빨리 대량 생산하여 야전부대에 일괄 배치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명품무기 1호로 내세운 K-9 자주포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나, 1998년 실전 배치된 이후 지금까지 18년 동안 한 번도 성능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미군의 M1 탱크는 1980년대에 실전 배치된 후 3차례나 성능개량을 하였고, 향후에도 3차례나 더 성능개량 계획이 잡혀 있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는 처음부터 너무 첨단 제품을 요구하여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개발이 완료되면 낙후된 기술로 전락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방위산업진흥회는 “결함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처음부터 세계 최고수준의 작전요구성능(ROC: Required Operational Capability)을 목표로 한 무기체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면서 “단계적인 성능개량을 통해 무기 품질을 향상시키는 ‘진화적 개발’을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 ‘저비율 초도생산’(LRIP: Low-Rate Initial Production) 제도가 있다. 개발 후 초기에는 최소 물량을 생산하고, 이 때 결함이 발견되면 다음 단계 설계와 제작에 반영해 생산량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전천후 이동식 방공시스템(Iron Dome) 개발에 미국과 유사한 방식을 적용하였다. 2007년 12월부터 개발을 시작하여 최종 목표성능의 약 70% 수준만 충족한 채 2011년 실전 배치하였고, 이후 2년 동안 성능을 계속 높여갔으며, 최종적으로 미사일 요격율을 95%까지 향상시켰다.
우리는 무기체계 개발 시 최초 목표한 성능을 충족하지 못하면 실전 배치조차 할 수 없다. 또한 개발된 무기를 처음부터 대량 생산하다보니 ‘결함’이 발견되면 실전 배치는 중단되고, 사업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첨단기술 개발은 무수히 도전했다가 실패하면서 ‘수정·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업체가 개발에 실패하면 재도전의 기회를 주기보다 잘못한 것으로 낙인찍어 페널티를 물린다. 게다가 결함이 자주 발생하면 방산비리 누명까지 뒤집어쓰기도 한다.
현행 방위사업 법규에는 성능개량과 진화적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지만 방산비리 수사 여파로 그런 시도를 할 경우 혹시 비리와 연관된 것처럼 오해를 받을까 우려하여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업체들은 기술력을 쌓을 기회를 갖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초도 생산 이후 추가 물량이 없어 생산 라인을 계속 유지하기도 힘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방위산업에서 리베이트만 없애도 국방예산의 20%가 절감된다”는 말 한마디로 잘못 시작된 ‘방산비리 프레임’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계속됨에 따라 법규에 명시된 제도조차 제대로 활용되지 않아 방위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안보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 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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