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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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이 독일 뮌헨 인근 그래펠핑시에 있는 이의경 지사 묘소를 찾아 그래펠핑 시장과 함께 참배하고 기념촬영 했다 [사진=국가보훈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당시 이미륵과 교류를 많이 했던 인물 중에 쿠르트 후버 뮌헨 대학교 교수가 있었는데, 후버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당시 유명하던 반 나치 저항활동단체인 백장미단 사건에 관계돼 반 나치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악명 높은 롤란트 프라이슬러의 인민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이때 이미륵은 후버 교수를 깊이 이해했으면서도 그의 활동을 상당히 우려스럽게 바라보았다. 결국 그가 처형당하자 이미륵은 이 시대의 가장 고귀한 사람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사건 이후 후버 교수의 가족들은 연좌제와 감시에 시달리며 전시 배급도 제대로 못 받았고, 지인들은 연루될까 두려워 이들과 연락을 끊었다.  


그러나 이미륵은 자기가 배급받은 물건을 그들에게도 나눠주며 전쟁 끝까지 별 탈이 없도록 돌봐주었다.  


그는 후버 교수 외에도 다른 반나치 지식인들과도 교류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유명한 반나치 운동가이자 언어학자인 프란츠 티어펠더 교수로, 셋은 자주 모여서 나치를 비판하곤 했다. 이렇듯 이미륵은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 양쪽의 지배를 모두 겪으면서도 그에 모두 반대했던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다.  


이 덕분에 2019년 뮌헨에 있는, 후버 교수의 이름을 딴 쿠르트 후버 거리에 이미륵의 기념 동판이 새겨졌다. 바로 옆에는 후버 교수의 동판이 자리한다. 동판에는 이미륵이 생전에 자주 하던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가시동산이 장미동산이 되리라"라는 명문을 남겼다.  


이미륵은 ‘무던이’, ‘이상한 사투리’, ‘이야기’ 등 소설 이외에도 수필을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문화·정치에 관한 여러편의 글과 ‘한국문어법(1927년)’ 등을 출간하며 독일에서 동양학의 중요 거두이자 한류스타가 되었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으로도 추서되었다. 1994년에는 정규화 성신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1966년부터 모아 온 이미륵의 유품 및 자료, 사진 등 300여 점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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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미륵을 독일 한류스타로 만든 ‘압록강은 흐른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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