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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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경에 의해 23명이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고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교회에 불을 질렀던 곳에 세워진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사진=보훈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19년 경기도 화성 발안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한 뒤, 화성 고주리에서 일제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어 순국한 독립유공자 김흥열 지사(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일가 6위의 유해를 순국 105년 만에 국립묘지로 이장했다.


국립묘지 이장 순국선열은 김흥열 지사를 비롯해 동생 김성열, 김세열, 그리고 조카 김흥복, 김주남, 김주업 지사 등 6위(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로, 모두 천도교인들이다. 김흥열은 1919년 4월5일 향남면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안상용, 안진순, 안봉순, 김덕용, 강태성 등과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동생과 조카 등 온 가족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만세운동에는 1천여 명이 참여했으며, 일본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일본인 순사부장이 돌에 맞아 사망한 것을 계기로 일본 경찰과 헌병대가 대량으로 증파된 후 보복적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군중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고 연행하여 고문을 가했다. 


특히, 4월15일 일본군 20여 명이 제암리에 도착 후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을 제암리 교회에 모이게 하였고, 출입문과 창문을 잠근 채 집중사격을 가했다. 이에 23명이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고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교회에 불을 질렀다.


일제 군경은 제암리 사건 후, 근처의 고주리로 이동하여 김주업의 결혼식을 위해 모였던 김흥열 등 일가족 6명을 칼로 죽이고 시체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정대부(정3품)를 지냈던 김흥열의 아버지와 김주업의 새신부까지 죽게 되는 등 멸문의 위기에 처해졌다. 


이같은 일제의 만행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분노를 사게 하여, 4월17일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F. W. Schofield)는 현장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어 ‘수원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본국에 보냈다. 또한 일부 양식있는 일본인들조차 분격케 하여 ‘저팬 애드버타이저(Japan Advertiser)’와 ‘저팬 크로니클(Japan Chronicle)’ 등은 학살사진과 목격자의 증언까지 곁들여 상세히 보도하였다.


이후 고주리 주민들은 불태워진 김흥열 일가 6위의 유해를 수습하여 현재 위치한 팔탄면 공설묘지에 안장하였으며, 그간 유족과 천도교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매년 4월15일 추모제를 거행해 왔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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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제암리 3.1운동 순국선열 6위, 105년 만에 국립묘지에 안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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