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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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생도 4학년 시절 공수훈련시 수료전 마지막 공수낙하를 마치고 동기들과 기념 촬영하는 장면으로 사진 중앙이 사관생도 박지만, 바로 좌측이 고(故) 이재수(전 기무사령관), 맨 좌측에서 두 번째가 필자 모습 [사진=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나무위키에 따르면 박지만이 1977년에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육사 37기로 입교한 동기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 고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의 권유와 함께 박지만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박지만의 본래의 목표는 서울대 진학이었으나 고교 1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방황하며 성적이 하락했기 때문에 진로를 변경했다고 한다. 또한 육사에 입학하게 되면 더 이상 경호원들에게 둘려쌓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속박된 청와대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도 전해진다. 


허나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갈등은 1978년 생도 2학년 시절, 하계군사훈련시에도 야기되었다. 


지금은 이전했지만 그 당시 한여름에 원주 부사관학교에서 동기생 전체가 군사교육을 받았는데 불시 방문한 박 대통령에게 박 생도는 고생하는 동기생들을 고려하여 대통령이 직접 격려 회식을 베풀어 줄 것을 건의했다.  


이때 차지철 경호실장은 일정에 없는 계획이라며 반대했다. 허나 박 대통령은 경호실장의 건의를 묵살하고 동기생을 배려하는 아들의 모습을 기특하게 생각하며 전 생도들에게 파티를 베풀어 사기를 고양시켰고 지금도 동기들은 대통령의 격려만찬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때 1군사령관 정승화 장군과 부사관학교장은 급작스런 파티를 준비하느라 고생을 했고,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 생도를 더욱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사사건건 사소한 것까지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부자 관계를 이간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박지만 생도는 3학년 시절의 유격훈련과 4학년 때 공수훈련 등 모든 훈련을 동기들과 함께 똑같이 받으며 견고한 인내심으로 견디어내면서도 자신 때문에 더 고생하는 동기생들을 위해 보이지 않게 노력을 많이 했다는 후문도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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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9] 독불장군 경호실장과 고독한 황태자의 신경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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