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3(금)
 

 
청와대 예비군.jpg▲ 예비군 창설 50주년을 맞아 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가안보실 이상철(앞줄 가운데) 1차장이 주관으로 모범예비군 초청행사 개최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기자/ 발행인]

예비군 창설 50주년임에도 국가안보실 1차장 주관으로 축소된 모범예비군 초청행사 개최

동원전력사령부를 창설, 초대 사령관 구원근 소장…동원분야 전문가  

통일 후에도 미국·이스라엘 같은 동원체제 구축, 육군, 동원 업무의 효율성, 실효성 등 제고 기대

6일 50주년을 맞은 ‘예비군의 날’ 기념식이 국방부와 각 군단 및 사단별로 전국 17개 광역시·도에서 자치단체장 주관으로 개최됐다.

청와대에서는 모범 예비군들을 청와대에 초청하는 격려 행사가 이루어져 그동안 노고를 위로했으나 대통령이나 안보실장이 아닌 안보실 1차장이 주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지난 50년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내어준 예비군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한다"며 "예비역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를 지키고 만드는 일당백의 전력"이라고 말하고 "군복무기간 익힌 여러분의 경험은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며 훈련에 참여한 예비군 모두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비군 창설 50주년인 오늘 '육군동원전력사령부'를 창설했다"며 "예비군 역사의 새로운 50년, '예비전력 정예화'의 길을 함께 열어가고자 한다"고 했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의무만 강요하기보다 긍지와 보람을 갖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예비군의 장비와 수준을 향상하고 과학화 훈련장을 도입하는 등 여건 개선을 위해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와 제31보병사단이 예비군 육성 우수부대로 선발돼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한편, 육군은 이날 예비군 창설 50주년을 맞아 경기 용인시 3군사령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국회 국방위원, 육군발전자문위원, 예비전력 연구단체, 육군본부 주요직위자, 인접부대 지휘관 등 200여 명이 참석하여 동원전력사령부 창설식을 개최했다.

동원전력사령부는 평시 예비전력의 전투 준비태세를 갖춰, 개전 초기에 동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16만명의 긴요 전력 부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로 전쟁 개시 초기에 수도권 방어전력을 보강하는 것은 물론, 전쟁 지속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전쟁 초기 예상되는 대량 손실병력을 보충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를 위해 육군은 지난해 1월 창설추진단을 구성하고 부대의 임무와 기능, 역할 등을 정하는 한편, 지난달 20일에는 '육군동원전력사령부령'을 공포해 사령부 창설과 관련한 법적 절차를 마쳤다.
육군은 동원전력사령부 창설로 동원사단·동원지원단에 대한 단일 지휘체계가 갖춰져 동원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과 전방군단·지역방위사단의 지휘 부담이 감소하고, 동원계획 통합, 정예자원 우선관리, 예산 집중, 예비역 간부 활용 등으로 동원 체제의 실효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육군은 통일 이후에도 미국·이스라엘 등과 유사한 동원체제 구축을 할 수 있도록 동원전력사령부를 구심점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한편 초대 동원전력사령관에는 구원근 소장(육사 42기)이 임명됐다. 구 사령관은 2작전사령부 동원참모처장, 육군본부 동원차장, 36사단장, 육군본부 동원참모부장 등을 역임한 동원분야 전문가이며, 그는 "앞으로 동원전력사령부는 미래 예비전력을 재(再)디자인하고 작전환경에 부합된 예비전력 운용을 통해 전쟁승리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68년 만우절에 향토예비군의 창설, 2006년부터 4월 첫째 금요일로 예비군 창설일 변경

향토예비군.png▲ 1968년 4월1일. 대전 공설 운동장에서 향토예비군 창설식이 거행되고 있는 모습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소방서는 4월 1일 만우절 장난 전화로 불필요한 출동이 많아져 최근 허위전화에 대한 법적제재가 강화됐다.

그런데 1968년 1.21사태와 1월 23일 동해에서 발생한 미국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을 계기로 그해 2월 7일 경남 하동에서 열린 경전선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향토예비군의 창설의지를 밝히며 250만 향토예비군의 무장화를 역설했고, 드디어 4월 1일에는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향토예비군의 창설식이 거행됐다.

이후, 2006년 9월 6일 시행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4월 첫째 금요일로 변경됐다. 

예비군이 창설된 당 해년도 6월 25일 고성군 현내에 침투한 무장간첩 소탕 작전에 최초로 참가했다. 창설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실전에 투입된 것이다. 같은 해 7월 29일에는 목포 허사도에 침투한 무장간첩 소탕작전에 나서 군경과 합동으로 침투 간첩 2명을 사살했다. 조직·장비·훈련 면에서 아직은 미약한 상태에서 올린 값진 전과였다. 예비군이 왜 필요한지를 온 국민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김신조2.png▲ 1968년 11월,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소탕작전에서 생포한 공비 [출처 :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또한 같은 해 10월 30일 야간에는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 무장공비들이 울진·삼척지역 해안으로 침투했다.  무려 120명이었다. 공비들은 침투 후 3일 동안 울진군의 한 산간마을 주민들을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정부는 강원 정선·영월·삼척 지구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경과 예비군을 동원해 즉각 소탕작전을 전개했다.

2개월간의 긴박한 작전 끝에 113명이 아군에게 사살되고 7명이 생포됐다. 소탕작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예비군들의 활약상. 무장공비 ‘107명 사살. 7명 생포’라는 혁혁한 전과는 다름 아닌 ‘예비군’의 수훈이었다. 

김일성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인민의 무장화’ 등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하고 끊임없는 군사도발과 침투를 사주했다. 이런 국가적 안보위기 상황에서 우리 향토와 나라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향토예비군’이다.


군사작전과 국가적 재해·재난 현장에서 보여준 향토예비군의 활약상

당시 향토예비군의 활약이 없었다면 무장공비 소탕 작전은 자칫 장기전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었다. 우리 민·관·군의 피해도 더 확산됐을 것이다. 이 사건은 북한의 위협과 예비군의 위용을 동시에 각인시켰으며 전 국민의 안보의식을 다시 한 번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고, 적시적인 박정희 대통령의 과감한 결심과 창설 추진에 경의를 표한다.

향토예비군의 활약은 계속됐다. 1995년 ‘부여 지역 무장간첩 소탕 작전’,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무장간첩 소탕 작전’등 안보위기 상황에는 어김없이 큰 역할을 했다. 현재까지 예비군의 전과를 종합해보면 총 91회에 걸쳐 작전현장에 투입됐고 연인원으로는 457만여 명이 동원돼 무장간첩 등 173명 사살, 14명 생포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예비군은 비단 군사작전에서만 활약한 것이 아니다. 국가적 재해·재난 현장에서도 예비군의 활약상은 빛났다. 대표적인 예로 2000년 강릉·고성·삼척 지역 대형 산불 현장에 동원돼 진화에 앞장섰고, 2003년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참담한 현장에서도 피해복구 작업을 수행했다. 이 밖에도 태풍·폭설·홍수·산불 등 수많은 재해·재난에 맞서 싸웠고 현재까지 42회에 걸쳐 연인원 388만 명이 동원돼 재해예방 및 피해복구에 크게 공헌해 왔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의 향토예비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신라의 ‘화랑도’, 고려의 ‘광군’, 조선시대의 ‘속오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임진왜란을 계기로 창설된 ‘속오군’은 지금의 향토예비군과 유사한 개념으로 평상시 생업에 종사하던 각 지방의 주민들이 전시 전장에 투입돼 활약하는 제도였다. 속오군은 이후 정유재란에서 왜군의 북진을 저지하는데 한몫을 담당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조국의 영토와 자국민 스스로 수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너무도 조용하게 지나간 ‘향토예비군 창설 50주년’행사였지만 자주국방의 큰 축, 향토방위

올해는 대한민국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지 50년 되는 해다.  그러나 50주년의 의의보다 너무도 조용한 기념일이 되었다. 청와대 모범예비군 초청행사도 대통령도 안보실장도 아닌 국가안보실 1차장 주관으로 녹지원이 아닌 영빈관에서 작은 행사로 이루어 졌다. 자칫 의미가 점점 축소되고 있지않나 걱정된다. 

하지만, 우리의 향토예비군은 숱한 역경 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현재는 육·해·공군 합쳐서 275만명이 유지되고 있고 이번에는 육군 동원전력사령부도 창설됐다. 그 결과 향토방위는 물론 유사시 즉각 동원태세를 구축해 당당히 자주국방의 큰 축으로 자리 잡았다. 
 
4월이 되면 만우절의 가벼운 웃음 보다는 안보위기 시 향토수호의 주역이었고, 각종 재난 시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앞장서 일하면서 싸우는 대한민국 향토예비군을 기억해야 한다. 현역 장병들 역시 전역 이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향토예비군으로서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다시 한 번 활약하길 기대해 본다. 




김희철.png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 (현)안보팩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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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창설 50주년 맞은 ‘향토예비군'의 위대한 역사와 통일시대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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