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침투 첫날인 9월18일 16시40분, 강릉시 강동면에서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2명이 정찰국 해상처 소속 안내조원인 이광수를 체포하였다. 비슷한 시각인 17시에는 68사단 수색대대의 항공 수색 및 정찰 중 북한의 전투공작원인 정찰조가 살해(처형)한 공비의 시신 11구를 발견했다.
그날 16시30분 경, 거동수상자를 발견했다는 농부 홍성은씨 부부의 신고로 강릉경찰서 강동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최우영 경장과 전호구 경장이 M1카빈소총으로 무장하고 출동했다. 파출소에서 고작 2km 떨어진 거리였다.
최우영 경장과 전호구 경장이 신고자의 남편인 농장 주인과 대화 중이던 이광수에게 접근하여 M1카빈소총을 조준하며 “꼼짝 마,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라고 말하자 이광수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려고 했다.
이때 최우영 경장이 달려들어 이광수의 손을 내리쳐 이광수가 권총을 떨어트리면서 일촉즉발의 순간에 이광수는 제압되었고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생포자가 되었다.
신고 과정에서 농부 부부의 재치와 용기가 대단했는데, 남편이 이광수에게 다가가서 "송이버섯 따러 오셨냐?"며 동네 주민으로 인식하는 척하고 친근하게 접근하여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끄는 사이 부인이 전화로 경찰을 불렀다.
체포된 이광수는 조사 중 무엇을 먹고 싶냐는 물음에 "광어회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광어회는 최고급 음식으로 이광수 자신은 잠수기지에서 직접 여름철 해상훈련 도중 산소통, 작살 등으로 광어를 잡았기에 먹을 기회가 많았다고 하지만 '못 사는' 남한에 광어회나 있겠느냐는 심정에서 그렇게 대답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광수의 생각과 다르게 당시 대한민국은 광어양식이 80년대부터 시작돼 90년대 들어서는 대량 생산이 가능한 수준이 되어 광어회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은 상태였다. 조사관들이 광어회를 바로 가져다 주자 이광수는 그제서야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했다고 한다.(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