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5(목)
 


19지원사.png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 이래 최초의 한국계 장성급 지휘관으로 부임한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 진H 박(Jin H.Pak, 52세, 한국명 박진형) 준장.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계 미군 장군이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된 지 46년만에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해 화제다. 


1970년대는 미국이 닉슨 독트린, 베트남 철수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 방위력을 최소화시키는 조치가 연속된 시대였다. 대한민국 역시 1972년 주한 미 육군 7사단의 철수를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에, 유엔사 해체 결의안 통과를 시작으로 주한미군 전체가 철수하는 최악의 안보 공백 시나리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와중에 베트남의 적화는 큰 이슈였다. 그때 한미연합사의 모체라 할만한 부대가 창설되었는데, 한미혼성 제1군단이었다. 군단장은 미군, 부군단장은 한국군인 현행 체제와 비슷했고 휘하 미군 사단을 지휘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유엔사를 대신해 유사시 한국군과 미군을 총괄 지휘하는 기구의 필요성을 미국 측에 역설했고, 이 결과로 1978년 11월7일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은 1976년부터 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존 베시 미 육군대장이 임명되었고, 한미연합사는 오늘날까지 46년째 이르고 있다.  


지난 6월5일 프레드릭 크리스트(Frederick L. Crist) 준장 후임으로 진H 박(Jin H.Pak, 52세, 한국명 박진형) 준장이 대구 남구 캠프헨리에 소재한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으로 부임해 대한민국 남부지역 작전 유지와 지휘, 물자 수송 등을 책임지고 있다.  


제19지원사령부 지휘관으로 취임한 박 준장은 1957년 주한미군사령부 및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 이래 최초의 한국계 장성급 사령관이다.   


1972년 태어난 그는 춘천에 거주하는 조부모 손에서 유아 시절을 보냈다. 그가 태어난 후 약사였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됐다.  


6살 되던 해인 1978년 부모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 박 사령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 하늘에 비행기가 보이기만 하면 ‘와...! 비행기가 미국으로 간다’고 말했다”며 “언제나 부모님이 보고 싶은 어린아이였고 늘 미국에 가고 싶어 했다”고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그는 뉴욕에서 성장해서 1994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수송장교로 임관했다. 


이후 독일과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등 전투지역에 파병돼 활약했고, 한국에선 주한미군의 주축이자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부대인 미 2사단에서의 근무 경험도 있으며, 2012년 제19지원사령부 예하부대 대대장과 한미연합사령부 기획참모부 연합계획과장을 지내는 등 30년째 미 육군에서 복무 중이다.  


금의환향(錦衣還鄕)한 박 사령관은 취임사에서 “여섯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19지원사령부와 같은 환상적인 부대의 지휘관으로 대한민국에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19지원사와 같이 갑시데이(갑시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친근감을 표시하며 한국계 미군 장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했다.(하편 계속)


태그

전체댓글 0

  • 8611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김희철의 CrisisM]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최초 한국계 사령관으로 금의환향한 춘천 소년(상)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