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사이버스파크사진.png▲ 사이버테크 행사장에 내걸린 '사이버스파크' 플래카드. '이스라엘의 사이버 혁신 아레나'로 표기되어 있다.
 

이스라엘, 군·산·학 협력의 상징적 공간인 '사이버스파크' 조성...군사적 경력이 학문적 경력보다 높게 평가

한국처럼 작은 나라지만 사이버 강국 꿈꾸며 우수한 인재 발굴과 IT 군·산·학 협력에 정부의 관심 지대

한국은 사이버 인재 확보 및 활용 미흡하고 IT 군·산·학 협력에 대한 정책결정자의 관심 없어 효과 미미
 
(안보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이스라엘 남부의 사막 도시 베르셰바에는 황량한 들판 위로 대규모 사이버보안 연구·개발 단지인 '사이버스파크(CyberSpark)'가 조성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글로벌 사이버 수도를 만들기 위해 2014년 발표한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한 ‘사이버스파크’에는 현재 IBM·시스코 같은 글로벌 기업과 대학 연구소뿐 아니라 이스라엘군 소속 기관들도 입주해 있다.

많은 국가가 치열한 IT 기술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 산·학(産·學) 협력과 군·산(軍·産) 협력에 열을 올리는데, 이스라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군·산·학(軍·産·學) 3자의 힘을 합치고 있다. ‘사이버스파크’는 바로 이스라엘 ‘군·산·학 협력’의 상징적 공간이다.

2016년 1월 텔아비브에서 열린 이스라엘 최대 정보기술 박람회인 ‘사이버 테크 2016’ 행사장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업체마다 사이버 정보부대인 8200부대 출신자를 영입했다고 자랑했기 때문이다. 1952년 설립되어 비밀 정보를 수집하고 암호를 해독하는 등의 업무를 주로 맡는 8200부대(미국의 국가안보국(NSA)과 유사) 출신이라는 군사적 경력이 취업 인터뷰 때 학문적 경력보다 더 비중 있게 평가받는 상황이다.

미국 포브스는 8200부대가 최신 IT 기술로 무장한 약 5천명의 사이버 요원으로 구성돼 있다고 추정했다. 또 이 부대 출신이 차린 회사가 1,000개를 넘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3억2천만 달러에 사들인 개인데이터 보안회사 ‘어데일롬’이나 페이스북이 1억5천만 달러에 산 데이터 분석회사 ‘오나보’가 대표적이다. 또 군대의 보안 기술을 활용해 창업하는 기업도 적지 않은데, 2015년 페이팔이 6천만 달러에 인수한 사이버보안업체 ‘사이엑티브’가 이에 해당한다.

8200부대 출신들은 사이버 보안이나 데이터 분석에 강하고 자기들끼리 커뮤니티를 구성해 정보 공유도 빠르다. 이들을 인터뷰한 기업 관계자는 “부대 안에서 엄청난 자유를 부여받고 어떻게 하라는 지시 없이 기업가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부대원들끼리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창업할만한 아이템이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2017년 1월에 열린 ‘사이버테크 2017’ 행사에서는 첨단 장비로 가득한 기업의 대형 부스들 한쪽에 철제 탁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이상한' 부스가 있었다. 별다른 홍보물도 없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는데, 알고 보니 이스라엘 대외첩보부 ‘모사드’의 입사 지원 접수처였다. 모사드 관계자는 “이란·북한 해커 등 나쁜 녀석들(bad guys)에 맞설 사이버 인재를 찾으러 나왔다”면서 “해커 요원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군이 사이버 세계의 동향을 파악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대학과 기업의 전문가들과 공유하면 다 같이 개발에 착수한다”며 “이렇게 탄생한 기술을 군은 군사 목적으로 활용하고 기업은 상업화할 방안을 찾는다”고 말했다. 또 ‘군·산·학 협력’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 핵심 사이버 부대들을 사이버스파크 인근으로 이전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군 사이버 전문가인 야론 로젠 준장(공군)은 “오늘날 전쟁에서는 키보드 하나로 적의 전투기를 떨어뜨리고 아이언 돔(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 같은 방공망을 무력화할 수 있다”며 “사이버 기술 발전은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가적 과제”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외교부 론 게르슈펠트 공보국장은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이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중국보다 큰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스라엘과 외견상 비슷한 조건을 갖춘 우리나라는 실질적인 IT 군·산·학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처럼 군에서 우수 자원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음에도 제도적 미비로 군내에서 인재를 제대로 확보하거나 활용하지 못한다. 일례로 정부가 장학금을 주고 양성한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들조차 우수한 사이버 인재들임에도 육군의 인력관리 프로그램이 불비하여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한 상태다.

또한 이스라엘처럼 계속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는 자신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 따라서 IT 기술에 대한 요구사항이 명확하고, 그 내용을 학계와 산업계의 전문가들과 실질적으로 공유한다. 하지만 한국군은 전쟁의 경험이 없어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로 인해 요구사항은 특정 업체나 기관이 제공하는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다. 군의 요구사항이 불명확하니 학계 및 산업계와 공유할 내용도 별로 없고 잘못 접촉하면 오해받거나 치부만 드러날 수 있어 보안을 내세워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국 특정 업체나 기관 또는 소수의 업무 관계자가 의도하는 대로 사업의 방향이 결정된다.
  
그 결과 사이버스파크 같은 유기적인 협력 관계는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 정부가 R&D에 상당한 예산을 배정하여 다양한 형태의 군·산·학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의문이 앞선다. 개발하는 IT 기술이 정말 군에서 필요한 것인지, 상용 IT 신기술을 도입해서 활용할 수는 없는지, 군 이외의 IT 전문 연구기관들과 협업을 통해 해결할 것은 아닌지, 군·산·학 협력 효과가 정말 있는지 등등 짚어볼 부분이 많지만 제대로 검토되지 않는다. IT 군·산·학 협력에 대한 정책결정자들의 관심과 노력이 미미한데다, 실무자들이 자신의 승진과 평가에 맞춰 업무를 수행해온 결과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이버 강국을 꿈꾸는 이스라엘의 발전하는 모습을 잘 살펴서 우리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한 후 제대로 보완하겠다는 정책결정자들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의지가 바탕이 되어 한국의 현실에 적합한 ‘IT 군·산·학 협력 모델’이 하루빨리 나오기를 기대하며,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을 비롯한 사이버 인재의 확보와 운영에 국방부와 육군의 실질적인 관심과 제도 마련을 촉구한다. 

김한경200.png

안보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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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투시경] ⑨ 이스라엘의 ‘IT 군·산·학 협력’을 벤치마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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