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구적인 비핵화를 의미하는 PVID를 주장하면서 WMD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설정하여 북한 압박 중
북한의 적극적 협조 없이 ‘완벽한 비핵화 검증’ 어려운데, 주한미군 철수 논란과 국방부의 성급한 조치 나타나
정전협상 대표 조이 제독, “공산주의자가 진실로 알아듣는 논리는 힘뿐”이란 교훈 명심...최악의 상황 대비해야
(안보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4·27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북한 비핵화를 위한 본격적인 대화가 한국과 미국, 북한 간에 전개되고 있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의 말미에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란 문구를 넣었으나, 전문가들은 “완전한 비핵화의 길은 험난하고 멀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취임하면서 그동안 주장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인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에서 ‘완전한’을 ‘영구적인(permanent)’으로 바꾼 PVID를 비핵화의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했다. 또 폐기 대상도 핵에서 화학·생물학 무기까지 포함하는 WMD로 확장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져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일시적으로 실현하더라도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핵무기를 만들 수 있으므로 그 가능성까지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즉 CVID를 달성해도 그 상태가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PVID가 되어야 궁극적인 비핵화가 완성되는 셈이다.
일단 CVID가 달성되려면 북한이 검증 대상인 핵물질, 핵무기(탄도미사일 포함), 핵시설, 기술 인력 등을 숨김없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공개된 내용을 토대로 ‘완벽한 검증’이 이루어져 핵물질과 핵무기는 모두 폐기하거나 해외로 반출하고 핵시설은 영구히 해체하며 기술 인력은 별도의 추적·관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과연 천신만고 끝에 완성한 핵을 합의문만 믿고 내어놓을 것인가?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북한이 신고하는 내용을 전적으로 믿기 어려운데다,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정보도 부정확한 상태에서 검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핵물질의 경우 플루토늄 추출량은 오차범위 3%이내로 추정할 수 있지만, 고농축우라늄(HEU)은 생산량 확인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즉 북한이 숨기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감출 수 있어 알아낼 수 없다는 얘기다.
남아공처럼 핵무기를 스스로 해체하겠다며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100차례 이상 성실히 받은 나라도 문서상 신고한 HEU의 양이 IAEA가 실제로 발견한 양과 달랐다. 북한이 보험용으로 일부 HEU를 빼돌릴 가능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런 연유로 “북한 비핵화는 과거에 유사 사례가 없어 가장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고민 중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교수가 미국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하여 미군철수 논란에 불을 지폈다. 문대통령은 2일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라며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와 관련, 지난달 27일 매티스 미국 국방부장관이 “북한과의 협상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다, 뉴욕타임스(NYT)가 3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타곤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익명의 미 관리들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의 한반도 주둔 필요성이 줄어들 것을 인정했다”고도 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미국을 방문 중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 핵심 관계자와 통화한 결과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는 사병 복무기간을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하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인데다, 내부적으로 북한 핵에 대한 선제타격, 미사일방어, 응징보복을 위한 3축 체계 구축을 재검토 또는 축소 조정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과 국방부의 성급한 조치들을 보면서 이제 시작에 불과한 북한 비핵화 여정이 김정은 위원장의 말에 들떠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싹튼다.
북미 정상회담과 이후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중에 논의해도 충분한 사안들이 너무 빨리 공론화되는 분위기다. 반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갖고 정확히 살펴야 할 비핵화 추진과정의 여러 요소들은 북·미 정상회담의 몫으로 던져놓고 소홀히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만일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비 없이 남북 간 평화와 번영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2007년 10월 2일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판문점을 도보로 건너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지금과 거의 흡사하게 남북 간 교류·협력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10·4 공동선언은 거의 실행되지 않았고, 서울에선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김정일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남북관계는 다시 긴장 국면으로 돌아섰다.
이번에는 다를까? 분위기는 분명 나쁘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보다 대담했고, 조만간 열릴 북·미 정상회담도 만족스러운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합의가 이행되는 비핵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다. 아무리 빨라도 핵 폐기에 2∼3년은 걸리는데, 김 위원장이 과거의 북한처럼 국제사회를 속이고 과실만 따먹을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 변화를 진지하게 시도하여 도보다리 대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밝혔듯이 베트남 모델을 꿈꾸는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의 속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 비핵화의 전체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김 위원장이 쏟아낸 말과 행동이 실제로 일치하는지 관찰하는 것뿐이다. 존 에버라드 평양 주재 영국대사는 “최상을 희망하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모두 만난 임동원 전 국정원장도 그의 회고록 ‘피스 메이커’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평화를 담보할 실질적 조치인 비핵화, 군비통제 등이 필수적이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 신뢰를 쌓은 것 같다. 하지만 한국전쟁 정전협상의 미국 대표였던 조이 제독은 “대화하되 압박을 늦추지 마라”며 “공산주의자가 진실로 알아듣는 논리는 오직 힘뿐”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이 경구를 항상 염두에 두고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돈독한 신뢰를 형성하여 비핵화 이행 과정에서 ‘믿을 수 있는 행동’들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북한 비핵화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문 대통령의 혜안과 신중함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
안보팩트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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