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유해발굴.png▲ 육군102기갑여단은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며 유해발굴의 안전을 기원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3일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개토식을 가졌다.
 

[안보팩트 = 강철군 안보전문기자]

육군102기갑여단, 강원도 고성 천우산일대에서 6·25남침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온 국민이 6·25남침전쟁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전쟁영웅을 추모하며 그 뜻을 따르는 자세는 진정한 보훈(報勳)이고 이것은 국민의 책무이다. 이렇게 온 국민이 한 뜻이 된다면 손자병법에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했던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가 구현되는 길이다.

102기갑여단은 5월 14일부터 6월 8일까지 4주간 여단 장병 100여 명을 투입해 강원 양양의 가라피리, 강원 고성의 천우산 일대에서 올해 유해발굴을 진행한다.

올해 유해발굴이 이뤄지는 천우산 일대는 과거 6·25전쟁 중 1951년 4월, 중공군 1차 춘계공세 시 수도사단과 11사단 등 국군 전력이 북한군 6사단 및 12사단에 맞서 치열한 격전 끝에 양양과 간성지역을 탈환한 격전지다.

이번 유해발굴에 나서게 된 김기범(중령) 충마대대장은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신 숭고한 호국영령들을 찾는 유해발굴 사업에 무한한 책무를 느낀다”며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따뜻한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모시기 위한 당연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훈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책임이자 의무

설악산 기슭인 양양에 위치한 호국사찰 영혈사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HID36지구대의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모셔놓고 매년 호국영령 천도제를 봉행한다.

미국에서 출판된 “My Father's War"의 저자 황성씨는 6·25남침전쟁 당시 HID(Headquarters Intelligence Detachment)36지구대원이었던 황하용씨의 아들이다. 
 
이 책에서 작가의 아버지가 활동했던 동해 영흥만은 남북첩보전의 최대 격전 지역이었고 북한인민군은 영흥만 도서에 있는 첩보부대를 타격하기 위해 하루에 300여발씩 밤낮으로 포격을 가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지휘소가 있는 여도에 포격이 집중되었다고 말했다. 
   
전쟁을 전후해서 160번이나 낙하산을 타고 북에 침투했던 故김동석 대령은 북한지역 첩보활동을 위해 인민군 경력이 있거나 영흥만을 거쳐 내려오는 피난민 중에 판단이 빠른 자 등 똑똑해 보이는 북한 출신들을 HID로 차출하여 편성하였다. 황하용씨도 이들 중 한명이었다. 


훈장.png▲ 故 김동석 대령은 무수한 공적으로 한국군 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았다.
 
HID36지구대 첩보부대원들은 야간에 은밀히 북한군 후방으로 침투하여 게릴라, 기습, 암살, 첩보, 납치, 주요시설 폭파 등 각종 임무를 수행했다. 밤이면 물에서 올라와 첩보활동을 펼치고 해가 뜨면 사라지는 36지구대 첩보원들의 활동방식 때문에 북한 인민군들은 이들을 “물쥐”라고 불렀고 故김동석 대령은 “물쥐 대장”이 되었다.  

백범 김구선생의 경호원을 역임했던 故김동석 대령은 육사 8기로 6·25남침전쟁이 터졌을 때 중위로 중대장이었으나 전쟁기간 중 박성철이 지휘한 북한군 15사단을 낙동강전선 안강-기계전투에서 궤멸시켜 전 장병 1계급 특진의 명예를 안기는 등 두 차례나 특진해 소령을 달고 육군첩보부대 HID36지구대장으로 부임하였다. 
  
앞서 조선 애국의용대 대장을 지내던 1945년 해방직후에는 일본 관동군 소속이었던 박정희 중위가 소련군에게 체포됐다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 밖에 무수한 공적으로 한국군사상 가장 많은 37개 훈장을 받았고 주한 미군으로부터 전쟁영웅 칭호를 받은 故김동석 대령은 정전 직후인 1954년 2월 적진에 잠입하여 강원도 통천부근에서 매복 중, 인민군 17사단장 이영희를 납치해 귀순시킨 뒤 일본의 미군기지로 보내 정보를 캐내도록 하는 전과도 올렸고 이것에 대해 김 대령은 “인민군 사단장을 잡은 것은 큰일 이었습니다”라고 간단히 소감을 말한 참군인 이었다.  

아쉬웠던 것은 장군진급을 앞두고 5·16쿠데타(혁명)가 발생하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령으로 전역하게 되었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삼척군수, 강릉시장, 목포시장, 함경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미국과 가수 진미령 처럼 전쟁영웅들을 추모해야

故김동석 영웅의 막내딸인 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씨는 방송에서 “선친이 살아계실 때 美 2사단의 김동석의 날(Kim's Day, 12월16일) 행사에 참석해 부대 장병들에게 매년 식사를 대접했다”며 “선친을 기리는 미 정부의 행사를 활성화하고 싶다”고 했다.
 
진미령.png▲ 생전에 故김동석 대령과 친딸인 가수 진미령(김미령)이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필자가 8군단 참모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6월 초에 강원도 양양 불당골에 위치한 영혈사 주지스님의 방문을 받았을 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과 현충일을 맞이하여 호국영령 천도제가 봉행되는데 군부대의 관심이 뜸해졌다며 호되게 꾸지람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영혈사는 설악산에 자리하는 조계종 사찰로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현재 지장전에는 동해의 영흥만 일대에서 활약하던 HID36지구대원 중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HID36지구대는 바로 ‘북파공작원의 대부’인 김동석 대령이 지휘한 부대로 휘하에 3개 지대로 편성하고 영화 ‘실미도’에 나왔던 부대와 같은 팀을 수십개 두고 북한침투공작을 펼쳤다.    

필자는 예복을 입고 행사당일 영혈사 충령각 지장전을 찾았다.  

충령각-horz.png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이 나를 보고 거수경례를 하시는 바람에 당황했지만 한편 이런 선배들의 피와 땀의 희생 덕택에 우리가 오늘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한한 존경심이 피어났다.  

현재 휴전선이 동쪽으로 갈수록 북쪽으로 올라간 이유는 HID36지구대 김동석 부대원들이 침투활동을 통해 얻은 정보로 동해 바다에서 함포사격지원을 받아 국군이 작전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걸고 국가를 지킨 전쟁영웅을 대하는 미국과 한국정부의 태도는 극과 극이다. 미국은 끝까지 찾아내 업적을 기리지만 한국은 그 평가와 업적발굴에 인색하다.
 
이제 미군이 선정한 6·25 4大 영웅중의 한분인 故김동석 대령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임을 분명히 알고, 그와 함께 첩보활동을 하다가 영혈사에 모셔진 위패의 영웅들처럼 군번도 계급도 없이 조국을 위해 싸우다 순직하신 호국영령들을 각골난망(刻骨難忘)하여 추모선양하는 활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기회에 김동석 전쟁영웅을 온 국민이 기억하고 추모하는 기회로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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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군의 아우성] 전사자 유해 발굴과 전쟁영웅 추모로 호국영령 넋 기리기, 그 진정한 보훈(報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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