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0(화)
 
회담tkscor.png▲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두번째)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해변을 산책하는 모습 (사진=조선중앙TV 캡쳐)
 
불과 40일 만에 중·북 정상회담이 연거푸 열린 것, 전 세계 외교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이례적 사건

김정은, 대미 견제 및 혈맹관계 복원 외에도 북한 입장에서 유사시 회담 결렬에 대비한 보험의 성격 짙어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치열한 수 싸움 본격화, 트럼프는  전임 행정부보다 나을 것 없는 처지에 빠질지도

(안보팩트=송승종 대전대 교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월 7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또 다시 중국 다롄(大連)으로 달려갔다. 권력을 장악한 후 처음으로 금년 3월 말 베이징을 방문한지 불과 40일 만에 열차가 아닌 비행기로 다시 시진핑 주석을 만나러 간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다. 이처럼 초단기 간에 정상회담이 연거푸 열린 것은 전 세계적 외교사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 사건이다. 그래서 그 배경이 더욱 궁금해진다.

김정은은 전용기 ‘참매 1호(IL-62)’를 타고 5월 7일 오전에 평양을 출발하여, 정오에 다롄공항에 도착했다. 오후에는 방추이(棒槌) 섬 영빈관으로 이동하여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만찬을 함께 하였다. 이튿날(8일), 오전에 방추이 섬에서 시주석과 해변가를 산책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후 시주석과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3시 20분 경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김정은이 다롄에 체류한 시간은 약 30시간 정도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묵었던 다롄의 방추이 섬은 ‘방망이 모양의 작은 섬’이란 뜻을 갖고 있다. 이곳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모택동, 등소평 같은 수뇌부들이 즐겨 찾았던 중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중의 하나로 꼽힌다. 동시에 중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비밀리에 회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1983년 김일성은 이곳에서 등소평을 만났고, 2010년에도 김정일이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하필이면 시진핑-김정은이 만난 시점이 두 번째 항공모함이자, 중국이 자체 기술로 건조한 최초의 항공모함인 ‘OO1A’호를 진수하는 날이었다. 남중국해 일대에서 미·중 해상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 두 사람이 중국산 제1호 항모의 시험 운항을 관람했다는 사실은 중·북 간의 혈맹관계 복원 내지는 중·북 동맹관계의 과시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정은이 중국에 또 다시 달려간 시점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던 미·북 정상회담의 준비 과정이 삐걱거리는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워싱턴 조야에서 돌아가는 정황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감지된다. 우선, 백악관은 북한 핵폐기 방식을 ‘리비아’ 모델이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모델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튼은 리비아 모델을 선호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아공 모델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리비아 모델은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운 찜찜한 방식이다. 카다피는 2003년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지만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분출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와중에, 서방측 군사공격의 여파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미국이 주장하는 리비아 모델의 핵심은 ‘先 핵포기, 後 경제보상’이다. 한편, 이 모델에서 숨은 그림은 구질구질하게 시간을 끄는 ‘살라미’ 방식이 아니라,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원샷’ 방식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금 들고 나온 남아공 방식은 리비아 방식과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남아공은 6개의 핵폭탄을 포기했고, 핵포기 완료에 소요된 시간은 2년 6개월이다. 이 방식의 요체는 자발적 핵포기에 대한 보상이 ‘제로’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이 남아공 모델을 적용한다면 북한은 핵·미사일을 다 내놓고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북한이 반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한 노릇이다.

게다가 미국은 원래 핵폐기만을 겨냥한 비핵화에서, 화학무기·생물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전반, 중거리 탄도미사일, 인공위성 발사까지 폐기 대상에 포함시키는데 이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 방식을 PVID(항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 방식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등 시간이 갈수록 북한이 넘어야 할 장애물을 높이고 있다. 특히 CVID는 PVID와 글자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CVID는 과거와 현재의 핵무기 폐기에 초점을 맞춘 반면, PVID는 미래의 핵폐기도 겨냥한 한결 강화된 개념이다.

따라서 상기의 정황을 감안하면 김정은의 방중 타이밍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면밀하게 계산된 시점을 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롄 회동에서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조(朝, 북한)·중 사이의 마음 속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며, 마치 제3자가 중국·북한의 관계를 억지로 ‘떼어놓으려’ 하는 상황을 연상시켰다. 그러자 시진핑은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조·중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 변함없는 순치(脣齒)의 관계”라고 화답하였다.

‘일심동체’에 해당하는 ‘순치의 관계’는 김정일 시대에 시들해진 이래, 2000년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던 골동품 장식 같은 단어였다. 그런데 시진핑은 김정은에게 ‘순치관계’를 언급한 것이다. 이는 마치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단어가 그러하였듯이, 수면 밑에서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정책적 변화를 강력히 암시한다. 이는 일견 한동안 소원해 진 것처럼 보였던 중국-북한 관계의 회복, 또는 양국이 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맹관계, 나아가 혈맹관계의 수준으로 되돌아갔음을 대내외에 천명한 메시지이다.

이런 분위기는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조선반도 주변정세 추이”를 언급하며, “전략적 기회를 틀어쥐고 조·중 사이에 전술적 협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친밀하게 강화해나가기 위한 방도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대화를 나눴다고 전한 김정은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아울러 제2차 김정은-시진핑 회담은 대미견제 및 혈맹관계 복원 외에도, 북한 입장에서 유사시 회담결렬에 대비한 보험의 성격이 짙다. 트럼프 행정부가 ‘PVID → 남아공 모델 →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도 포함된 대량살상무기 전반을 폐기대상에 포함 → 인공위성 발사도 금지’ 등으로 북한에 대한 요구의 수위를 높여가자, 북한 외무성은 급기야 “우리의 평화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지 말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 또는 무산될 가능성도 점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이번 중·북 회담은 북한이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중국 보험’을 들어 놓으려는 속셈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말하자면 북한은 무역 분쟁으로 사이가 벌어진 미·중 간의 갈등관계를 이용하여, 설령 비핵화 구도가 깨지더라도 미·중 관계의 틈을 파고들어 회복된 중·북 밀월관계를 앞세워 생존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당사국과 주변국들 간의 치열한 수 싸움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며, 아마도 이런 드라마는 두 번 다시 연출되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번의 시도가 실패하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도 왜 트럼프가 김정은이 교묘한 속임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을 뻔히 알면서 정상회담 카드를 덥석 받았는지 의문이다. 미·북 정상회담에 관한 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틀렸다. “디테일이 곧 악마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가 몇 개이고, 핵시설이 어디 있으며, 핵물질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완전한 검증’이 가능하겠는가? 오죽했으면 전문가들이 북핵 문제를 가리켜 미국 행정부들의 ‘공동묘지(graveyard)’라고 표현했겠는가? 입만 열면 ‘승리’를 자신하며 큰소리치는 트럼프 대통령은 어쩌면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전임 행정부(특히 오바마)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처지에 빠질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처지에 빠진 것을 깨닫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모르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송승종_200픽셀.jpg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美 미주리 주립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駐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前 駐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前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
송승종 대전대 교수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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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 왜 김정은은 또 다시 중국으로 달려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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