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시작하여 우여곡절 끝에 미국 지원으로 1976년 105mm 화포 최초로 개발
이 때 확보한 역량을 토대로 KH179 독자 개발, 1983년 기아기공에서 생산하여 이란·인니 등 수출
(안보팩트=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우리나라 무기체계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화포이다. 고려시대 말 최무선은 화약을 개발하고, 1377년 ‘화통도감’을 설치해 화포를 만들기도 했다. 조선 명종 때인 1555년에는 구경 130mm, 무게 300kg의 ‘천자총통’이 제작되었다. 그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손으로 만든 화포는 사실상 없었다.
창군 이후 한국군은 105mm 견인곡사포, 155mm 견인곡사포와 평사포, 8인치 자주 및 견인곡사포, 175mm 자주곡사포 등 포병 화력을 구비했다. 평사포는 탄도곡선이 낮은 화포이고, 곡사포는 포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화포로서, 이들은 대부분 미국의 군사원조이거나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인수받은 장비들이었다.
최초의 한국형 화포 개발은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됐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미군 부품을 역설계하거나 기술자료 등을 입수하여 도면을 설계하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1973년 6월 개발이 완료된 105mm 견인곡사포의 시험사격이 있었고, 박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실시된 사격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당시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던 백령도에 배치된 최초의 105mm 화포는 점차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하여 제대로 운용하기 어려웠다.
이후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미국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1976년 미군 화포와 동등한 성능의 105mm 견인곡사포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화포를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이를 바탕으로 사거리가 연장된 신형 105mm 및 155mm 견인곡사포 개발 사업에 착수함으로써 국산화포 개발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976년 무렵 서유럽은 사거리 30km의 155mm 곡사포 개발을 거의 완료한 상태였다. 한국군도 북한보다 현저히 열세인 포병 능력을 보강하기 위해 사거리 20∼30km급 화포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아군 포병의 90%가 사거리가 짧아 적 포병 사정거리 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당시 한국군 화포 중 20km 이상 사거리를 가진 것은 175mm 자주평사포 뿐이었는데, 탄도곡선이 낮아 산 너머에 멀리 있는 적은 공격할 수 없었다.
이에 ADD는 미군의 155mm 견인곡사포(M114A2)의 사거리 연장을 위해 미국에 자문을 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시 미국은 이미 사거리가 30km인 M198을 개발해 놓은 상태여서 한국이 이를 구매하길 원했다는 후문이다. 한국은 사거리 연장을 위해 영국, 독일 등과 접촉하며 필요한 화포와 탄약을 도입해 시험평가를 하거나 기술 자료를 입수해 시제품을 제작하는 등 국내 개발 가능성을 다방면으로 검토했다.
한국이 국내 개발을 시도하자 1977년 미국이 돌연 M114A2의 사거리 연장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자는 제의를 하였다. 하지만 당시 과도한 기술료를 요구한데다 미국에서 시제품 제작과 시험평가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등 지적소유권에 대한 분쟁 우려도 있어 미국 측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힘들지만 우리가 독자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독자적으로 화포를 개발한 경험이 없어 어려움은 많았지만 포신의 길이를 2배 가까이 늘려 정확도를 높이고 사거리를 신장시켰다. 사거리연장탄 개발도 동시에 진행하여 성공했다. 게다가 포신의 길이가 3.62m에서 7.08m로 길어졌음에도 경량화에 성공하여 총중량을 6,890kg으로 유지함으로써 CH-47 헬기로 공수가 가능하고 C-130 수송기에도 적재할 수 있었다.
KH179는 직사 사격과 곡사 사격이 모두 가능하도록 조준경이 장착되어 있다. 직사 사격의 유효사거리는 1,500m이고, 곡사 사격은 일반탄일 경우 18.1km, 사거리연장탄(RAP)일 경우 30km까지 사격이 가능하다. 발사속도는 최대 분당 4발이고 지속 사격 시 분당 2발로서, 미국의 M198과 같은 성능이다. 5톤 트럭에 견인되어 이동하며 사격에 필요한 인원은 5명이다.
한국형 155mm 견인곡사포는 KH179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는데, KH는 한국형 곡사포(Korea Howitzer)라는 의미이고 1은 최초를 뜻하며 79는 개발에 착수한 년도를 나타낸다. KH179는 1982년 개발에 성공하여 선진국보다는 개발이 늦었지만 미국이 1977년 개발한 M198, 영국·독일·이탈리아의 FH70 등과 동등한 성능을 갖고 있다.
KH179는 1983년부터 기아기공(현 현대 위아)에서 생산하여 운용 중이다. 자주포에 비해 사격준비 과정과 사격 후 진지이동 등에 시간이 걸리는 등 생존성에 다소 문제가 있어 현재는 주로 후방부대에 배치되고 있다. 그럼에도 육군이 아직까지 KH179를 사용하는 것은 가격(1억 2천만 원)대비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포병 화력 중 30km 이상 사거리를 갖는 화포는 K-9 자주포(50억~60억 원)와 K-55의 개량형인 K-55A1 자주포(30억~40억 원) 정도다.
게다가 KH179는 이란과 인도네시아 등에도 수출된 ‘명품 무기’이다. 이란은 이라크와의 전쟁 당시 KH179를 활용해 차륜형 자주포를 개발했다고 알려진다. 또 인도네시아는 KH179 18문을 도입하면서 화포 견인용으로 기아자동차의 5톤 트럭인 K711도 함께 수입하였다고 한다.
한편, 한국형 105mm 견인곡사포에도 같은 의미로 KH178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으며, 사거리는 11km에서 18km로 연장되었다. 겨우 1개 대대 수준만 기아기공(현 현대 위아)에서 생산하여 동부전선 보병사단 및 해병대에 배치되었다. 대량 생산되지 못한 이유는 기존의 105mm를 대체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데다, 이미 1970년대 말 155mm가 대세여서 KH178의 양산을 줄이는 대신 155mm 견인곡사포인 M114와 KH179를 양산했다.
그래도 KH178은 1년 먼저 개발에 착수하여 KH179 개발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KH178은 1991년 칠레에 16문을 수출했고, 2010년 인도네시아에도 3개 대대 분량인 54문을 수출하여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은 양이 존재하는 한국형 105mm 견인곡사포이기도 하다.

안보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 시큐리티팩트 & www.securityfac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