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0(목)
 
정상회담사진.png▲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비공개로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엇갈린 5.26남북정상회담 평가, 문재인 대통령의 '정직한 중재자' 역할 확인 VS. 북한에 대한 과도한 신뢰의 부작용 우려 

'배신'을 거듭한 김정은에게 '협조'로 응수한 문재인 대통령, 게임이론에서 보면 상대방 '협조' 유도 전략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미국에게 발각된 패,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국제사회 합류가 유일한 해법

(안보팩트=송승종 대전대 교수)

한반도의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지각변동(tectonic shift)이 전광석화처럼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5월 22일, 미 동부시각)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각하(Your Excellency)”라는 깍듯한 존칭으로 시작되는 미·북 정상회담 취소 서한(5월 24일, 미 동부시각)을 보낸지 하루도 안 되어 김계관이 반성문 같은 담화를 발표(5월 25일)하고, 그 이튿날인 5월 26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극비리에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두 번째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개로 요약된다. 하나는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의 진전과 함께 북한 핵문제 해결 및 미·북 관계 개선을 위해 ‘정직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남·북·미 3각 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과 관련하여, 과도한 신뢰를 부여함으로써 초래될지 모르는 부작용을 경계하는 시각이다.

문 대통령은 5월 27일 2차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3가지의 고무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첫째, 지난 4월의 역사적 판문점 회담 못지않게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이번 회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아직도 남북 간에 불신과 증오의 빙하가 켜켜이 남아 있는 한반도의 엄혹한 냉전적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이 언급한 “오랜 친구들 간의 우정”은 한반도 탈냉전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회담취소 불사’와 ‘회담취소 통보’로 기싸움을 벌인 이유는 서로가 정상회담을 제로섬 게임의 시각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회담을 통하여 김정은-트럼프가 ‘win-win’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셋째, 김정은이 판문점 선언에 이어, 다시 한 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음을 재확인해 주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천하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경제협력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즉, 그에 의하면 북한 비핵화와 대북 경제지원은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문 대통령은 현안의 긴박성과 당사자들의 해결 의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교착상태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정상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면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미·북 정상회담 간 상충적 요인을 극복하고, 두 개 회담 간의 양립 가능성을 제고시키는 막후 외교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와 관련, 2인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배신(defect)’과 ‘협조(cooperate)’라는 전략의 상호 작용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시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 대통령은 북한의 ‘배신’에 ‘협조’로 응수하는 햇볕정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북한은 돌연 이미 양해한다고 밝혔던 한·미 공군훈련을 핑계로 남북 고위급 회담의 일방적 취소를 알리는 ‘배신’ 행위를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김계관-최선희 라인을 앞세워 필요 이상의 미국 때리기로 문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내몰리는 또 한 차례의 ‘배신’ 전략을 구사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그 동안 남측의 ‘핫라인’ 통화 요청에 꿈쩍도 않던 김정은이 25일 오후 황급히 만나고 싶다는 SOS 메시지를 전했을 때, 그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는 ‘협조’ 전략으로 응수했다. 일회적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배신’에 ‘협조’로 대응하는 것은 가장 ‘멍청한’ 선택이다. 하지만 반복적 게임이론에서 보면 ‘배신’에 ‘협조’로 응수하는 것은 상대방의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효한 전략이다.

북한은 지난 70년간 번번이 벼랑끝 전술이라는 수법을 들고 나와, 반복되는 ‘배신’ 행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김계관-최선희 담화의 ‘헛발질’로 벼랑끝 전술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트럼프라는 변칙적 고수의 돌발 행위에 그 동안 통했던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트럼프의 ‘회담 취소’라는 초강수에 도발적 언사로 맞대응하지 못하고, 마치 ‘절에 간 새색씨’ 같은 얌전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들이 느꼈을 심각한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이러한 위기의식 때문에 북한이 먼저 남북 정상회담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북한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던 벼랑끝 전술의 한계를 절감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사고의 대전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에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 이뤄진다면, 비로소 북한이 ‘협조’에 ‘배신’이 아닌 ‘협조’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생각의 변화가 아니라, 남북 관계에서 근본적 변혁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도 예고한다.  북한이 패러다임과 사고의 전환을 실천에 옮긴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제 2개의 시각 중에서 덜 낙관적인 측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전격적인 2차 남북 정상회담은 바둑으로 치면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막힌 ‘묘수’에 속한다. 그래서 일부 언론은 이번의 회담을 “파격의 돌파구”로 표현했다. 과연 이번 회담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회심의 한 수였다. 이로써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 미·북 정상회담 취소라는 날벼락을 맞고 “극도의 당혹감과 유감”으로 초췌하던 안색이 2차 판문점 회동을 계기로 다시금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다.

하지만 바둑에 “묘수를 세 번 두면 바둑을 진다”는 말이 있다. 대개 묘수는 불리한 난국을 모면하기 위한 변칙적인 수법이다. 이는 상대방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허를 찌르는 일종의 ‘기습’이다. 이런 묘수를 자꾸 두다보면 패가 읽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묘수처럼 보이는 수법이 나중에는 자충수가 되기 쉽다. 묘수는 전체의 거시적 국면보다는 눈앞의 미시적 실익에 초점을 맞추기 십상이다. 거듭되는 묘수가 바둑의 패배를 가져오는 이유는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전쟁에서 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확실히 이번의 2차 남북 정상회담은 묘수에 가깝다. 그 묘수에서 불안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원초적인 근본 문제가 여전히 미결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본 문제란 바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비핵화, 보다 정확히 말해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 방식으로의 북핵 폐기’를 말한다. 문 대통령은 거듭되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CVID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주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몇 번씩이나 발표문과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지 “북핵 폐기”가 아니다. 양자가 서로 동문서답같이 양립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은 이미 분명해졌다. 미국이 거듭해서 북한을 겨냥하여 “트럼프 대통령을 갖고 놀 생각을 말라”고 경고한 이유는 북한이 북핵 폐기가 아니라 핵우산 제거,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전략 자산의 한반도 반입 금지 같은 엉뚱한 주제들로 물타기하며 미국을 망신시킬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풍계리 ‘폭파쇼’를 벌이면서도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딴청을 부렸다. 비록 볼품없는 헛발질로 끝났지만 김계관-최선희의 담화문 속에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러한 위험 부담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김정은의 진정한 의도라면서 북한 비핵화에 ‘빚보증’을 서는 것은 실로 대담하고 신선한 용단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도 마냥 ‘배신’이라는 속임수가 장기적인 이득의 극대화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계관-최선희 담화에서 보듯,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처럼 북한의 행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북한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그 입에서 나온 것은 오직 ‘거짓말’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밥 먹듯 거짓말을 일삼았던 고약한 공산주의자들을 여전히 말(word)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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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美 미주리 주립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駐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前 駐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前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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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2차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2개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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