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북미정상회담사진.png▲ 지난 6월 12일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 회담장에 마주 앉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
 
 
미·북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에서 한 발짝도 전진 못해...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미군철수 희망 속내 엿보여

후속 회담에서 비핵화 검증 시간표와 구체적 내용 나오지 않으면 언젠가 핵능력 가진 북한과 마주해야

문 대통령, 냉정히 안보 현실 직시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국방 기치를 내세우던 그 때를 되돌아봐야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주인공...국민 전체가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안보에 대한 주인의식 가져야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평통 발언’으로 알려진 유명한 연설을 했다. “우리가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현실을 만든 것은 전직 국방부장관들이고, 그들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자주국방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고, 그 배경에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에 대비해 독자적인 방위력 구축이 필요하며 한국도 경제적으로 그럴만한 능력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이 존재했다. 한편으론, 한국군이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음에도 독자적인 작전수행 권한을 갖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배여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자주국방은 국방비의 일부 증액 외에는 선언적 의미로 끝났고, 그로 인해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비용 대부분을 한국이 부담하는 결과만 낳았다.

지난 12일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미국이 원했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는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수준에서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김정은에게 트럼프가 농락당했다는 얘기까지 미국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알량한 미사일엔진 실험장 폐기 카드로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인 후,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미군철수 가능성을 희망하는 속내까지 엿보이게 만들었다.

미·북 협상 경험이 많은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수석대표는 지난달 25일 “북한이 CVID에 합의할 가능성에 맥주 한 잔 값도 걸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아직 모든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안 됐고, 미국은 단계적 보상을 할 준비가 안 됐다”면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 정상회담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었다.

실제로 정상회담 개최 1시간 30분 전에 폼페이오와 김영철이 마지막 회동을 했지만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시간이 없어서 (CVID는) 다 담을 수 없었다...완전한 비핵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고 말한 것이 곧 크리스토퍼 힐의 주장을 증명한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지난달 13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은 비핵국가로 포장된 핵보유국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CVID의 정확한 개념은 “강제 사찰과 무작위 접근”인데, “김정은의 절대 권위를 허무는 과정으로 보여 북한은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음 날인 14일 국회 강연에서 “김정은이 1차 남북정상회담 일주일 전 당 간부들에게 핵무기를 ‘강력한 보검’이자 ‘확고한 담보’라고 얘기했다”면서 “(북한이 비핵화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조만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사이에 후속 회담이 열리겠지만 비핵화 검증의 시간표와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핵능력을 가진 북한과 마주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이 시점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북한 핵이 갖는 의미를 찬찬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북한 핵은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다. 그 핵이 사라지면 북한은 더 이상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자신들이 필요한 과실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런데 미국은 그 핵을 완전히 없앤 다음에야 북한이 필요한 모든 것을 주겠다고 얘기해 왔다. 수십 년간 적대 상태로 지내온 사이였음에도 말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첫 걸음을 떼는 최초의 미·북 정상회담인데, 미국은 모든 것을 내놓아야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니 북한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진행하되 일정부분 비핵화가 이루어지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미국으로부터 적절히 얻는 방식을 원한다. 약속대로 지켜지기만 한다면 이것만큼 합당한 방식이 없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합의한 내용이 변함없이 이행된다는 보장이 없다는데 있다. 과거에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훌륭한 합의가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은 전례가 그것을 말해준다.

비핵화 이행에 장시간이 걸릴 경우 장기 집권이 가능한 김정은과 그를 후원하는 시진핑에게 시간은 매우 유리한 요소이나, 선거로 단기간 집권하는 문재인과 트럼프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반면 체제 안전 보장의 경우 단기간 집권하는 트럼프가 자신이 했던 약속을 정권 교체로 인해 후임 정부가 지키지 못할 수도 있어 단기간에 제공되지 않으면 김정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간의 유·불리함 때문에 단기간에 일괄타결 방식의 핵 폐기를 요구하고 완료되면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적 번영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 논리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에서 보았듯이 모양새조차 갖추지 못했다. 결국 추후 협상과 회담을 하더라도 제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가 미·북 간의 해결 과제라며 한 발 뒤로 물러서 중재자의 역할에 치중했다. 한국이 직접적인 위협의 당사자이면서도 말이다. 그 결과 문대통령은 자신이 베푼 선의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의 처분만 바라는 형국이 되었다.

그가 선대들과 다른 면은 분명히 있지만 정말 핵을 포기하고 경제 성장을 선택할지,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계속 추진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아마 지금은 본인도 모를 수 있으며, 모든 것은 미국과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미·북 정상회담까지 성사되도록 만든 최고의 공로자이다. 하지만 한반도 질서는 새로운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금부터는 냉정하게 안보 현실을 직시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세우던 그 때를 되돌아봐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했듯이 이제 국민 전체가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안보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강대한 국가는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며, 약한 국가는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한반도 문제만큼은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자세와 의지를 잃지 않도록...”이라고 역설했다. 그런 마음가짐이 모든 국민에게 절실하다.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로서의 문 대통령 역할과 판단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시점이다.

김한경200.png
 
안보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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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시선] 노무현 대통령이 외친 ‘자주국방’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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