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1K1A1.png▲ 20 기계화사단에 최초로 배치된 한국형 전차의 개량형 K1A1 전차. (사진=현대로템 제공)
 
 6·25 전쟁 당시 한 대의 전차도 없던 한국군, ‘우리 손으로 만든 전차’를 갖는 것이 오랜 숙원

한국군 작전요구성능으로 개념 설계 후 미국 업체의 설계와 기술지원 하에  한국형 K-1 전차 개발

K-1 전차 개량형인 K-1A1, 구경 120mm 활강포 및 특수 장갑 장착 등 선진국 주력 전차와 대등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한국군은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시 단 한 대의 전차도 없었다. 반면 북한군은 소련제 T-34/85 전차를 242대 보유하고 파죽지세로 남침을 감행하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한국군은 이 때의 뼈저린 경험 때문에 ‘우리 손으로 만든 전차’를 갖는 것이 오랜 숙원이었다.

한국군이 최초로 보유한 전차는 미군의 M36 경전차이다. 6·25 전쟁 당시 기갑전력의 확보가 시급함을 느낀 육군은 1950년 11월 29일 부산 동래에 위치한 육군종합학교에 전차과를 설치하면서 M36 6대를 교육용으로 인수받았다. 전쟁 중 미군은 M36 외에도 M4 중전차, M24 경전차, M26 및 M46 중전차 등 다양한 전차를 운용했다. 미국에서 1940년대 개발된 이 전차들 중 M4, M24, M36 등 3종류가 한국군에서 사용되다가 1959년 퇴역했다.

M36의 뒤를 잇는 것이 M4 중전차이다. 이 전차는 1941년 개발되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주력 전차로 활약했고, 한국군에는 6·25 전쟁 당시 도입되었다. M36이 교육용 전차여서 육군의 기갑 역사는 M4 전차가 실질적인 출발점이다. 최초 도입 당시 해병대에서 먼저 운용하기도 했다.

한국군은 총 388대의 M4 전차를 미군으로부터 인수했는데, 76mm 주포를 탑재한 M4A3E8형이었다. 이 전차는 85mm 주포를 탑재한 소련의 T-34 전차에 비해 성능이 떨어졌고, 1959년 신형 M47 전차가 도입되면서 점차 퇴역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 초반 군에서 사라졌다.

M47 전차는 M26 및 M46으로 이어지는 1940∼1950년대 미국의 주력 전차 계보를 계승하는 전차 중 하나이다. M46의 차체와 포탑의 형태를 바꾸고 전면 장갑의 경사각을 높여 1952년 개발이 완료되었다. 미국은 90mm 포탑에 포탄 71발을 적재하는 M47을 동맹국에 제공했는데, 한국군은 1959년에 최초로 400대를 도입했고, 이후 1963∼64년에 60여대를 추가로 도입했다.

M47 이전의 미군 전차들은 눈으로 거리를 측정해 포수의 숙련도에 따라 명중률의 편차가 컸다. 그러나 M47은 정확한 사격을 위해 M12 입체식 거리측정기를 장착하여 비교적 정확한 거리 측정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가솔린 공랭식 엔진(AV-1790)이 탑재되어 고장이 잘 발생하지 않는 점도 호평을 받았다.

한국군에서 1970∼80년대 주력으로 활약한 전차는 M48 계열 전차이다. M47의 개량형으로 1952년 4월부터 양산되기 시작해 베트남전, 중동전, 인도-파키스탄전에서 활약했다. 전쟁 경험을 토대로 점차 개량되어서 M48A1, M48A2C, M48A3, M48A5까지 후속 모델이 나왔다. 그 중 대표적 모델인 M48A3는 전차포 구경이 90mm이고, M48A5의 경우 구경이 105mm이다. 이 계열의 전차 중 한국군에 최초로 보급된 것이 M48A2C이다.

남북한의 긴장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북한은 1,600여 대의 전차를 보유했고 자체적으로 전차를 생산할 능력도 갖고 있었다. 반면 한국군은 보유 수량이나 성능 면에서 열세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보고를 받고 1975년 7월 국방부에 한국형 전차를 개발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따라 1976년 12월 국방부에 전차관리사업단이 설치되었다.

1976년 5월 국방과학연구소는 M48을 M48A3와 M48A5로 개조하는 성능개량 사업에 착수한다. 국방과학연구소의 기술지원 하에 현대정공(현 현대로템)의 주도로 추진되었는데, 전차사업관리단이 사업을 관리했다. 1977∼78년에는 M48A1 중고 전차 400여대를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후 M48A3K로 개조했다.  이 사업은 한국형 전차 개발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향후 한국형 전차의 양산에 필요한 체계 조립 및 생산기술 축적에는 큰 역할을 하였다.

한국형 전차는 방호력, 기동력, 화력 면에서 제3세대 전차인 독일의 레오파르트 2, 미국의 M1 전차 수준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서는 이런 성능의 전차를 설계할 기술과 경험이 부족했다. 결국 1976년 미국 M1 전차의 생산회사로 지정된 크라이슬러 디펜스(현 GDLS사)와 설계와 개발에 합의했고, 1978년 한국정부는 미국정부와 한국형 전차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다.

이렇게 시작한 한국형 전차 사업은 이후 ‘88 전차’ 사업으로 불리는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81년 4월 한국군이 요구한 작전요구성능(ROC)을 토대로 개념 설계를 마치고, 1984년 4월 2대의 시험용 전차가 먼저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미 디트로이트 셀프릿지 공군기지에서 시제품 축하 행사를 가진 후, 미 육군의 애버딘 시험장에서 각종 테스트를 거쳤다.

국내에서도 현대정공이 미국의 생산기술을 지원 받아 5대의 전차를 생산하게 된다. 이 중 3대는 야전부대의 운용시험에 투입되었고, 2대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기술시험에 들어갔다. 성공적으로 시험 평가를 마친 88 전차는 이후 K-1 전차라는 제식명이 붙고, 1987년 7월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

K-1 전차는 수도기계화사단에 최초로 배치되었는데, 제3세대 전차의 기본적인 성능을 갖추었다. 주포는 구경 105mm 강선포를 장착하여 북한군의 주력 전차인 T-55/62 전차는 물론 T-72 전차도 충분히 격파할 수 있다. K1의 포수용 조준경, 전차장용 조준경, 탄도계산기 등으로 구성된 사격통제장치는 제3세대 전차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1990년대 중반까지 1,000여 대가 생산되었다.

K-1 전차는 헌터킬러 기능을 갖고 있다. 이 기능은 포수가 사격하는 사이 전차장이 새로운 표적을 조준하면 사격이 끝난 즉시 주포가 전환되어 다시 사격이 가능하게 한다. 사격시간이 단축되고 다수 표적과 교전이 가능한 것이다. 또 닐링(Kneeling) 시스템이 장착되어 전차의 차체 높이를 낮추거나 높일 수 있다. 전차 주포가 –6도∼+19도 범위만 사격할 수 있는 제한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1,200 마력의 엔진을 장착하여 65km/h의 속력을 낼 수 있다.

이후 1996년 4월에는 K-1 전차를 개량하여 화력과 방호력이 향상된 K-1A1 전차가 등장한다. K-1A1 전차의 경우 주포는 구경 120mm 활강포를 장착하여 선진국의 주력 전차와 대등한 화력을 발휘한다. K-1A1은 특수 장갑으로 방호력을 증가시켰고, 주간에만 헌터킬러 기능이 있는 K-1에 비해 야간에도 헌터킬러 기능이 가능하다. K-1A1 전차는 2002년부터 총 480대가 생산되었고, 20기계화사단에 최초로 배치되었다.

K-1 전차가 본격적으로 배치되면서 K-1 전차를 지원하기 위한 구난전차와 교량전차 등도 개발되었다. 구난전차는 손상된 전차를 신속히 구난 및 정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최대 25톤을 인양하고 70톤까지 견인할 수 있다. 교량전차는 K-1 전차의 차체 위에 가위형 교량을 탑재하고 있다. 가위형 교량은 영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현대정공에서 생산했다. 폭 4미터, 길이 20미터의 교량으로 3∼5분 이내에 가설되며, 60톤 차량의 통과가 가능하다.

김한경200.png

시큐리티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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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기 디테일] ⑪ 지상전을 좌우하는 육군의 핵심 전력, 현대로템의 K-1/K-1A1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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